소설

박범신 朴範信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소설 『풀잎처럼 눕다』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소설집 『흰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있음. wacho@thrunet.com
아버지 골룸
1
아버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이제 아버지는 다섯 걸음 정도밖에 걷지 못했다. 지난달만 해도 열 걸음 이상 걸었는데 불과 한달 만에 기력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물 좀 갖다주렴.” 침대 머리맡의 작은 물병을 들었다 놓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숨을 헐떡이는데다가 잔뜩 갈라진 쉰 소리였다. 가만히 누워 있을 때조차 아버지의 목구멍에선 쌔액쌔액 하는 기분 나쁜 바람소리 같은 게 났다. 어떤 날은 아버지의 목피리가 불어대는 쉰 바람소리 때문에 잠을 깰 때도 있었다.
나는 말없이 물병을 받아들었다.
아버지의 침대에서 안방 문까지만 해도 내 걸음으로 무려 열여섯 걸음이나 되니 밤새 목이 말랐어도 아버지로선 어쩔 방도가 없었을 터였다. 거실은 안방보다 세배쯤 넓었다. 나는 씨근벌떡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에 놓인 생수통의 물을 물병에 받았다. “생수통을 아예 아버지 머리맡으로 옮겨와야겠어요.” 내 목소리가 아버지의 그것과 달리 너무 쾌청해서일까, 아버지가 갑자기 비대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에 옮겨놓으면 내가 없을 때나 잠잘 때에도 아버지가 얼마든 물을 마실 수 있잖아요.” “너 혼자 힘으론 안될 게다.” “키는 다른 애들보담 작지만요, 나도 중학생이라구요, 아버지. 푸셥을 서른번이나 해요.” “손자귀아저씨가 조금 있으면 올 거야. 아저씨한테 옮겨달라고 하자.” “아저씨는 점심때나 온댔어요. 지금 일하는 데 들어갈 보랑 도리로 쓸 목재를 골라야 된다나봐요.” 손자귀아저씨는 아버지가 큰 집을 지을 때 여러 해 데리고 다녔던 자귀목수였다. 손으로 나무를 깎을 때 쓰는 연장을 자귀나 손자귀라고 하는데, 먹줄 그은 대로 정확히 나무를 깎으려면 자귀목수의 일솜씨가 깔끔하고 매워야 한다고 애당초 누누이 설명해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요즘이야 새끼목수들이 너나없이 자귀질을 하지만 큰 대궐집이나 대웅전 같은 걸 지을 땐 늘 자귀목수를 따로 두었다고 했다. 손자귀아저씨는 자귀목수 출신이라서 지금도 어쩌다 우리 집에 들를 때 늘 자귀를 들고 왔다. “네가 아직껏 보를 기억하고 있구나. 도리까지.” 아버지가 빙긋 웃으며 나를 환히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 하는 표정이었다. “중도리 처마도리도 다 알아요. 손자귀아저씨가 도목수가 됐다면, 나도 뭐 새끼목수, 아니 지차목수 일쯤은 거뜬히 할 수 있다구요.” “사개맞춤이 무슨 말인지 알겠냐.” “재목에다가 촉과 구멍을 내는 걸 바, 바심이라고 하고요.” 얼핏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만 딴청을 부렸는데, “암, 그렇지.” 아버지는 내가 딴청 부리는 걸 짐짓 모르는 체, 여전히 환한 표정으로 덧붙여 말했다. “바심을 잘해서 못 하나 쓰지 않고 기둥, 도리, 보를 찰떡궁합으로 짜맞추는 일이 사개맞춤이다. 우리네 집들이야 뼈대 맞추는 것부터 다 그렇게 지었거든. 서양집하곤 방식과 재료가 다 딴판이지. 못 박아 짓는 집은 오래 못 간다. 사개맞춤만 잘 해놓으면 나머지 일이야 뭐 공것 같지.” 아버지가 실눈을 뜨고, 그렇지만 여전히 수만 갈래 잔주름을 합족한 얼굴 가득 피워올리면서 멀고 먼 데를 보았다. 먹줄통과 그무개와 수평대와 정과 끌과 손톱과 대패가 든 바랑 하나 달랑 메고 세상 끝까지 떠돌았던 지난날들을 추억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먼저 웃통을 벗어부쳤다.
생수대 위에서 물이 반쯤 남은 생수통을 바닥으로 내려놓는데 이미 땀이 나기 시작했다. 생수통의 무게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워낙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어깨는 날로 벌어지고 팔뚝의 이두박근도 쑥쑥 솟아나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키는 영 자라지 않아 중학교 들어와서 받은 출석번호가 일번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땅꼬마’라고 불렀다. “손자귀아저씨 오면 옮겨달라고 하라니까 그러는구나.” 열린 문 사이로 여전히 헐떡이는 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렸다. “문제없다니까요. 아버지 화장실도 침대 옆으로 옮겼는걸요.” 나는 하하 하고 웃었으나 아버지는 웃지 않았다. 아버지의 침대 밑에 요강으로 쓸 백자항아리를 가져다놓아준 걸 두고 하는 농담이니 미상불 아버지는 민망한가보았다. 처음엔 소변용으로 쓰다가 지금은 아예 대변용으로까지 쓰고 있으니까 아버지로선 유쾌하게 내 농담을 받아들일 순 없을 것이었다. 나는 창고방에 처박아둔 군용담요를 가지고 나와 이번엔 생수대를 이리 불끈 저리 불끈 담요 위로 올려놓았다. 온몸으로 땀이 비오듯 했다. 벌써 거의 한달째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참이었다. “우리 아들, 청년장사가 다 됐구나. 대들보도 들어올리겠다.” 내가 담요에 태워 생수대를 끌고 오는 걸 보면서 아버지가 역시 합족, 볼우물을 만들고 웃었다. 몸은 날이 갈수록 풍선처럼 부풀어올라서 이제 퀸싸이즈의 침대를 거의 꽉 채울 정도인데 얼굴은 그와 달리 하루가 다르게 근육질이 빠지고 주름살이 늘어나는 게 아버지의 병증이었다. 웃을 때의 아버지는 주름살이 하도 많아 족히 아흔살은 되어 보였다. 어찌 주름살뿐이겠는가. 눈매는 벼이삭이 익어 구부러지는 속도로 내려앉고 주름살은 물살이 번지는 것보다 더 빨리 번졌으며 잇몸이 내려앉고 마침내 이가 힘없이 빠져나오기도 했다. 지난달엔 불과 열흘 사이로 삭은 이가 두개나 빠져나온 일도 있었다. 이제 아버지에겐 어금니가 한개뿐이었다. “글쎄요. 병이라고 해야 할지…… 이런 증상은 학계에 보고된 바가 전혀 없어서……” 의사가 아버지의 병증을 두고 한 말이 이러했다. 간단히 말해, 아버지는 급속도로 늙어가는 병을 앓고 있었다. 노쇠과정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병원에 쫓아갔을 때는 이미 병이 상당히 진전된 후였다. 그 무렵의 아버지는 한달을 일년처럼 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게, 내 몸으로 느껴진다.” 아버지는 그때에도 지금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몸이 부풀어오르는 것과 반대로 주름살이 빠른 속도로 느는데도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이 태평스런 얼굴을 했다. 아버지의 몸을 통해 시간이 지나가는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졌다. 작년만 해도 한달이 일년처럼 지나간다고 아버지는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 요즘은 열흘이 일년처럼 지나갔다. 아버지의 몸은 지금 한달마다 삼년의 시간을 통과시키는 셈이었고, 머지않아 하루가 일년의 시간을 통과시키게 될 것이었다. “어떤 땐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급행열차가 막 내 몸속에서 지나가는 것 같은…… 그거, 시간을 느낀다. 조금 있으면 케이티엑스기차가 될 게야. 이쪽 갈빗대를 뚫고 들어온 기차가 기적도 없이 쏵쏵 하고 이쪽 갈빗대 사이로 빠져 달아나는 느낌이랄까. 흐흐. 에버랜드 놀이기차 탄 것처럼, 어떤 땐 고소하고 어떤 땐 어지러워.”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며 웃을 때, 합족한 볼에 수많은 주름살이 물결치는 걸 보면, 슬픈 느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 얼굴의 주름살들이 너무도 환해서 내 마음까지 덩달아 환해지곤 했다. “머지않아, 비행기가 지나는 것처럼 될 거다, 아마.” 아버지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별똥별은 어때요, 아버지.” 물새떼 솟아오르는 것같이 내 또랑한 목소리가 솟아나자 아버지의 처진 눈매에 단번에 흰빛이 떠올랐다. “옳거니.” 아버지는 딱 하고 손가락 부러뜨리는 소리를 내고 나서, “별똥별, 그거 좋구나. 암, 별똥별이 지는 거지. 이쪽 갈빗대 사이를 뚫고 들어와 내 몸 안을 환히 밝히며 이쪽 갈빗대로 빠져 달아난다, 별똥별이. 정말 멋지구나 멋져.” 아버지는 별똥별이라는 말을 새각시처럼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버지의 나이는 쉰네살이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여전히 구릿빛 피부와 떡 벌어진 어깨와 옹이가 박힌 듯한 팔뚝 근육들, 그리고 오로지 집을 지어올리려고 세상 끝까지 안 가본 데 없는 남자가 지녔음직한 형형한 눈빛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호탕한 장부 같았을 터였다. 나와 달리 눈 코 입이 모두 또렷한 명암을 거느렸고 키 또한 훤칠하게 컸으므로,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아버지가 대들보를 타고 앉아 끌질하고 있는 걸 올려다보면, 뭐랄까, 몸의 깊은 심지로부터 불항아리 열꽃들이 사방으로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다. “참, 많이…… 흘러다녔구나.” 아버지가 이윽고 가래 끓는 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별똥별이란 말로부터 비롯된 흰빛은 더이상 아버지의 눈에 남아 있지 않았다. 창 너머 드넓은 뜰엔 정오를 향해 타오르는 햇빛이 막힘없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의 혼잣말에 대꾸하지 않았으므로 마치 아버지와 나 사이로 별똥별이 지는 것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아버지도 먼 데를 보고 나도 먼 데를 보았다.
배낭을 머리꼭대기까지 오지게 지고서 산맥의 가파른 한 허리를 올라가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이사이 떠올랐다. 아니 산맥의 한 허리인가 했더니 어느새 외진 바닷가 개펄이 되었고, 바닷가인가 했더니 또 어느새 지평선이 보이는 들이 되었다. 아버지는 한결같은 걸음새로 걷고 있는데 밑그림은 빠르게 바뀌면서 흘러갔다. 꽃이 피어 있기도 하고 비바람 몰아치기도 하고 눈이 날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지금 보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럴 터였다. 땅끝에서 땅끝까지, 도시에서 도시까지 아버지가 흘러가보지 않은 곳은 세상천지 아무 데도 없었다. 막일꾼으로 시작해 새끼목수 지차목수를 거쳐 마침내 먹줄을 튕기는 도목수가 된 것은 아버지 나이 마흔살 때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목재가 들어가는 것으로는 모든 집을 다 지어올릴 줄 알았다. 귀폿집 다폿집은 물론이고 천장이 까마득히 높은 대웅전 같은 것도 아버지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어느 도시에서 한번은 일곱채의 기와집을 도맡아 지은 적도 있었고, 길도 제대로 뚫리지 않은 차령산맥 너머 어느 궁벽진 산중 절을 지을 땐 삼년이나 걸린 적도 있었다. 집을 지으라면 어디든 달려갔으며, 집을 다 짓고 나면 하루도 더 머물지 않고 배낭을 메고 일어서는 게 아버지의 성미였다. 드높은 배낭에 파묻혀 성큼성큼 걷는 아버지의 뒤를 쫓아 어린 나는 매양 다리가 찢어져라 종종걸음을 쳐야만 했다. 집 짓는 공사판이 언제나 내 놀이터였고 흐르는 길이 내 요람이었다. 도목수가 되고도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보나 도리로 쓸 거대한 통나무에 앉아 젊은 새끼목수들로부터 나는 한글쓰기를 처음 익혔고, 절집 보살들이 두루 내 어머니가 되어주었다. 어쩌다 어머니에 대해 물으면 앞서 걷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따라갈 수 없게 빨라졌으므로 나중엔 아예 어머니란 말을 입에 올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때맞추어 아버지가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