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금희

김금희 金錦姬

1979년 부산 출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함. novelist79@hanmail.net

 

 

아이들

 

 

1

 

정육점 주인이 엄마에게 건넨 것은 물푸레나무로 만든 코뚜레였다. 나는 열살이었고 올림픽 중계가 한창이던 1988년 9월이었으므로 코뚜레를 월계관처럼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머리에 닿을 듯 말 듯만 대주고는 코뚜레가 이사갈 집을 지킬 거라고 말했다. “5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황소 기운을 이긴 코뚜레야.” 검정 비닐 앞치마에 손을 쓱 닦으며 정육점 주인이 으스댔다. 그러면 황소와 코뚜레도 선수들처럼 시합을 벌였냐고 물었지만 정육점 주인은 붉은 고기를 네모난 칼로 발라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는 이제 아파트 아이들처럼 굴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아이들은 엄마가 일을 나가도 울지 않고 낯선 이에게 문 열어주지 않으며 밥도 혼자 찾아먹고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도 잘한다. “엄마도 아파트 아이였어?” “아니.” 일곱 남매가 득실대던 성주 시골집은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초가였고 닫을 대문도 없는 집이었다 했다. “그러니 너는 행운아야.” 엄마가 속삭였고 그러자 동네친구와 헤어지는 일이 더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삿날 엄마는 트럭에 올라탄 나를 안았고 아버지는 줄을 바짝 죄어 흔들흔들하는 밥상을 잡았다. 해바라기가 우르르 몰려 자라는 공터를 지나, 덩치 큰 개가 묶인 통장 아저씨네 집앞을 거쳐 트럭은 도로로 나왔다. 커브를 돌 때 종이인형 상자가 떨어졌고 발딱 일어선 나를 엄마가 도로 앉혔다. 옷도 입지 않은 세라와 나나 같은 계집애들이 옛 동네 쪽으로 바람 따라 날려갔다. “아빠 공장이다.” 엄마가 가리키는 곳에서는 밑동 잘린 나무들이 기중기에 매달려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었다. “코뚜레 모양이네!” 원목 단면에는 붉고 파란 스프레이로 가, 아, A같은 약자들이 암호처럼 써 있었고 그중‘l’도 있었다. 코뚜레가 아니라 알파벳‘엘’이라고 설명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엄마는 늬 아빠는 만물박사야, 했다.

아버지는 나무들이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멀리 있는 열대숲에서 잘려 나온다고 했다. 저 약자들은 나무를 베거나 수출하거나 수입하거나 사들인 회사들의 이름이다. 적나왕, 황나왕, 티크, 에보니 같은 나무 이름들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건 나무가 아니라 공장에서 만드는 완성품들이야.” 같은 나무라도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판잣집 지붕도 되고 고급주택 기둥도 되고 장롱이나 소파도 된다. 아버지 말투가 어쩐지 비장해서 더 묻지 않았다. 그러다‘양’‘미’가 수두룩한 내 통지표 이야기로 곧 넘어갈 것 같았다.

목재단지를 지나 잠시 멈춘 트럭 운전사는 아버지에게 길을 묻고는‘콜롬비아 공원’쪽으로 달렸다. 넓적한 느티나무 잎 사이로 십자검을 든 군인상이 보였다. 공원을 지나니 비포장도로였고 트럭은 비탈길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새가정 아파트’는 골목도 도로도 가게도 가로수도 없이 불시착한 유에프오처럼 산비탈에 처박혀 있었다. 올라가며 세어본 계단은 층마다 열네개였고 우리 집까지는 전부 일흔개였다. “대체 집은 어디야?” 엄마가 철문만 덩그런 그곳이 집이라고 해서 놀랐다. 하지만 문 뒤로 현관, 방, 부엌, 화장실이 나타났고 나는 아파트가 과자상자나 성냥갑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이불 속을 살그머니 빠져나가 맞은편 아파트 동을 지켜봤다. 하나, 둘, 셋, 넷, 불 켜진 집을 세는 동안 이가 듬성듬성하던 집주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이제 마당을 어질러놓는다고 혼나는 일은 없겠다. 그사이 몇집이 불을 껐고 열둘까지 셌던 나는 다시 하나, 둘, 셋, 넷, 불 켜진 집에 눈도장을 찍었다. 전기세를 낼 때마다 텔레비전이 두 대라고 엄마가 반지하 순영이네를 흉보는 일도 없겠다. 아까 분명히 새카맣던 부근이 또 환해져서 한숨이 나왔다. 저들의 밤은 왜 자꾸 꺼졌다 켜졌다 하는 걸까? 그때 뭐가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아버지 말이 생각났고 저렇듯 깜박이다 아파트는 언젠가 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

 

나는 아파트단지에 새로 문 연 국민학교로 전학했다. 대부분 이사온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텃세 같은 건 없었다. 대신 아이들은 마무리 공사로 하루 종일 시멘트가루가 날아드는 교실에 시무룩하고 불안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철마산 푸른 솔의 정기를 받아,라는 교가를 제일 먼저 배웠지만 불도저며 포클레인이 달라붙어 붉은 흙을 파내는 그 산에서는 어림없을 것 같았다. 아파트 동 열채 뒤에 11동과 12동을 짓고‘황해’‘뉴서울’‘하나’같은 이름의 아파트들도 머지않아 들어설 거라고 했다. 아파트들이 철마산을 죽 둘러싸고 몰아넣는 모양새였다.

엄마는 문제집 회사에 취직해 월간 학습지를 팔고 집집마다 배달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로 오기 전에도 부업거리를 놓은 적 없던 엄마였으니 당연했다. 나뭇조각에 붉은 펠트를 붙여 피아노 부품을 만들거나 스웨터에 꽃무늬를 수놓는 엄마 옆에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는 열쇠를 잘 간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윗옷 안으로 밀어넣는 바람에 심장 부근에는 언제나 차고 단단한 열쇠가 있었다. 기대와 달리 나는 바람직한 아파트 아이가 못 됐다. 괴괴한 적막에 휩싸인 아파트가 무서워 울었고 벨 누르는 교회 아줌마들에게 문을 벌컥 열었으며 빵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잔소리꾼 경비 아저씨를 미워했다. 열쇠를 몇번이나 잃어버려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왠지 아파트 놀이터가 시시했던 나는 건설사 부도로 공사가 멈춘 11동과 12동 건설현장에서 놀았다. 인형으로 삼은 기다란 볼트들을 드럼통에 재우고 나무부스러기를 먹였다. 플라스틱 통에서 흘러나오는 약품으로 칸을 그려 사방치기를 하다가 성공하면, 못이 박혀 있는 건설목에다 철사를 맸다. 어느날 공사장으로 가보니 살진 볼이 축 늘어진 남자애가 자전거 폐타이어를 주워다 굴리고 있었다. 끝이 디귿자인 철근으로 밀고 있어서 굴렁쇠 소년을 흉내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른 애와 공사장을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쫓아낼 방법도 없었다.

그 다음날도 남자애는 비닐을 여러겹 깔아 만든 웅덩이 앞에서 스티로폼 배를 만들고 있었다. 그건 미처 생각 못했던 놀이라서 쭈뼛쭈뼛 옆으로 다가갔다. 스티로폼 선체에 나무젓가락 돛대를 세운 다음 시멘트 포대로 돛을 달았다. 하지만 배는 자꾸 기우뚱했다. 그럼 그렇지, 흥미가 떨어질 즈음 등 뒤에서 어떤 여자애가 나타나더니 돛대를 배 밑까지 깊숙이 꽂으라고 했다. 여자애는 이목구비가 뚜렷해 예쁘장했지만 심한 짝눈이었고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았다. 남자애가 어리둥절해하자 여자애는 이리 내, 하고는 스티로폼 정중앙에 나무젓가락을 쑥 박아넣었다. 그리고 연필을 꺼내 누런 돛에다 21세기호,라고 적었다. 배는 꼿꼿이 떠 있었고 남자애와 나는 와아, 환호했다.

우리 동 1층에 사는 남자애는 은욱, 3동이 집인 여자애는 주홍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공사장을 아지트 삼아 고무호스로 줄넘기를 하거나‘후레시맨’이 되어 노끈으로 레이저빔을 쏘았다. 그러다 지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