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영하 金英夏
1968년 경북 고령 출생. 1995년 『리뷰』로 등단. 소설집 『호출』 『오빠가 돌아왔다』,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등이 있음. timemuseum@hanmail.net
아이스크림
그러니까 그것은 국제통화기금이 일종의 집달리가 되어 한국을 접수하고 있던 시절의 일이다. 국가대표 축구팀도 시원찮고 경제는 빌빌대던, 그야말로 조국은 빈사상태였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던 시절. 동규와 그의 아내는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있었다. 그 무렵 그들은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신구약성서 합본호 크기 상자에 스물네 개의 소포장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는 유명 제과회사의, 그러나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사랑했다. 상자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따로따로 포장된 작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먹는 재미가 제법이었다. 지우개 크기의 아이스크림은 한입에 쏙 털어넣기엔 조금 컸고 그렇다고 베어먹기엔 작았다. 조심스럽게 비닐포장을 반쯤 찢어 한입 베어물고 초콜릿 코팅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질 무렵이면 나머지 반을 털어넣고 작은 비닐포장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숟가락을 들고 모여앉아 머리를 부딪치며 퍼먹어야 하는 볼썽사나움과는 거리가 먼, 국민소득 1만 달러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귀여운 낭비였다. 그 무렵 제과회사들은 앞을 다투어 포장방식을 바꾸며 제품을 고급화하고 값을 올려받기 시작했다. 자동화된 기계로 구운 쿠키 하나를 봉지에 넣어 다시 상자에 차곡차곡 포장해 인상된 가격으로 파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라 경제가 결딴이 나서일까. 사소한 사치도 큰 감동을 주었다. 동규와 그의 아내는 비록 국제통화기금 치하에 살고 있다 해도 30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한 통이 주는 기쁨을 금가락지 헌납하듯 나라에 갖다 바치고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슈퍼마켓에서 문제의 그 아이스크림을 카트에 던져넣고 서둘러 계산대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가지고 오는 길에 조금 녹았을 수도 있으므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느긋한 마음으로 하나씩 포장을 까서 베어물고 있노라면 금세 행복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초콜릿이 주는 작은 흥분과 차가운 유지방의 부드러움으로 그들은 천천히 녹아내렸다.
동규가 사는 곳은 80년대 중반에 지어진 21평짜리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 집 앞까지 오는 동안 다른 집에서 내놓은 세발자전거 따위가 발치에 차였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두 명이 서 있기도 비좁은 현관이 있었다. 거기에 신발을 벗어놓고 안으로 들어가면 거실은 작은 창 때문에 어둠침침했다. 거실의 오른쪽에는 두 칸짜리 싱크대가 있었고 타일의 틈새에는 그을음과 기름때가 침착되어 있었다. 가끔 혜선이 특수세제를 이용해 닦아보려 했지만 너무 오래된 것이어서인지 잘 씻기지 않았다. 그나마 타일의 한쪽은 깨져 있었다.
“아파트가 기울고 있어서 그래요.”
옆집 여자는 주장했다. 화장실 문이 잘 닫히지 않는 이유도 아파트가 한쪽으로 기우뚱 기울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들은 그 타일과 싱크대를 늘 부끄러워했다. 네 가구의 세입자가 물려가며 쓰던 싱크대인데도 주인은 쓸 만하다며 여간해서 바꾸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입자인 그들이 생돈을 들여 남의 집 재산을 불려줄 일도 아니어서 그들은 습기에 불어 접착력이 떨어지며 무늬목이 들뜨기 시작한 낡은 MDF 싱크대를 그저 참고 견디고 있었다. 싱크대의 끝은 90도로 꺾어지며 간이식탁 노릇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것은 굵고 둥근 다리 하나로 지탱되어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그들은 두 개의 의자를 갖다놓고 거기에서 밥을 먹었다. 그 간이식탁은 급할 때는 아쉬운 대로 부족한 싱크대의 역할을 대신했다. 야채를 썰거나 양념통들을 올려놓는 용도였다. 혹시 친구라도 찾아오면 동규의 회전의자를 갖다놓을 수밖에 없었다. 몇걸음 더 들어가면 왼쪽으로 동규가 쓰는 방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화장실, 그리고 안방이 있었다. 그들은 안방에 텔레비전을 갖다놓았다. 침대에 누운 채 왼발과 오른발 사이로 보이는 삼성 20인치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안방 바로 오른쪽은 베란다였다. 만약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냅다 뛰어들어오고, 게다가 베란다 창문까지 열려 있다면 미처 멈추지 못해 추락할 수도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미닫이 반투명 유리문으로 거실과 분리되어 있는 베란다는 폭이 좁아서 빨래 널기도 힘들 정도였다. 둘은 세탁기에 빨래를 한번 돌리면 건조대에 갖다 널고는 다음 빨래를 할 때까지 잘 걷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널린 빨래가 햇빛을 가려 커튼 노릇을 했다. 베란다의 한쪽에는 동규의 부모님이 굳이 떼어주신 구형 에어컨의 실외기가 바다표범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용달차 운임 10만원, 설치비 8만원을 내고 에어컨을 설치했다. 에어컨은 13평짜리 벽걸이형이었는데 한번 켤 때면 아랫집에서 항의할 정도로 강력한 소음을 내곤 했다. 마치 잠에서 깬 괴물이 잠투정으로 으르렁대는 것 같았다. 자동온도조절 기능에 의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는데 특히 꺼져 있다가 다시 켜질 때 굉장한 소리를 냈다. 쇠를 긁는 소리와 함께 망치로 철판을 두들기는 소리가 뒤섞여 요란했다. 여름밤에는 열대야 때문이 아니라 에어컨 소리 때문에 자주 잠에서 깼다. 도대체 에어컨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프레온가스가 순환하며 열을 떨어뜨린다던데, 왜 철판이 저토록 덜덜거릴까, 그들은 가끔 궁금해했지만 바람도 잘 통하지 않는 아파트에서 그나마라도 없으면 불쾌지수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 어느 여름날. 둘은 나란히 아파트단지 내 상가에 장을 보러 갔다. 동규의 일주일짜리 여름 정기휴가가 시작된 날이었다. 농협이 직영하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야채와 우유, 달걀을 산 후에 마지막으로 계산대 근처에서 문제의 그 아이스크림―진짜 이름은 따로 있지만 소송을 당할 우려도 있으니 이름은 그냥 ‘미츠’쯤으로 해두자–을 샀다. 아이스크림까지 샀으니 쇼핑은 다 된 셈이었다. 이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산을 하고 슈퍼마켓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여름이라 햇볕이 굉장했다. 자외선을 차단하는 검은색 반투명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여자들이 그들을 스쳐지나갔다. 자외선을 가리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남의 시선에는 무신경한 그 중년 여성들은 챙을 너무 내려쓴 나머지 마치 누군가가 그들의 얼굴을 검은 먹으로 지워놓은 것 같았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약간 공포스럽기도 한 장면이었다. 그들은 여자들이 지나갈 때마다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무리 자외선이 무서워도 그렇지. 저게 뭐야? 가끔 무심코 걷다가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꼭 외계인 같지 않아?”
혜선이 뒤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어린아이들은 마침 유행하기 시작한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그들을 스쳐지나갔다. 땀냄새가 훅 끼쳤다. 아이들은 더위와 햇볕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동규와 혜선은 그들을 질투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마침내 자신들이 사는 동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 사온 식료품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가장 먼저 집어든 것은 더위에 녹아버릴 수 있는 미츠였다. 냉동실을 열자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왔다. 꽝꽝 얼어붙은 굴비의 눈이 동규를 노려보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내용물이 담긴 비닐봉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규는 그것들을 재배치한 후, 적당한 공간을 만들어 행여라도 비린내가 배지 않도록 조심하며 미츠 박스를 밀어넣었다.
그들은 에어컨을 가동시켰다. 이이이잉– 드르르릉– 덜컹덜컹. 거세게 울부짖으며 남극 상공에 오존 구멍을 낸다는 프레온가스, 환경단체들이 반대하는 그 구식 냉각제가 파이프로 뿜어져나와 순환하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규는 나가면서 열어놓은 베란다의 창문을 닫았다. 채 베란다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실외기의 더운 공기가 발목을 핥고 지나가는 것을 동규는 느꼈다.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러나 실내에 차가운 공기를 공급하기 위하여 저 자신은 뜨거운 열을 내뿜어야 한다는 것이 어쩐지 공평하다는 인상을 주었고 마치 세상의 중대한 섭리를 깨달은 것 같은 쾌감도 주었다.
장 보아온 것을 모두 적재적소에 집어넣은 후, 그들은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그 무렵 텔레비전에선 연일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토종기업들의 이야기를 방송하고 있었다. 뉴스와 기획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을 계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록 당장은 아깝더라도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외국자본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부실기업을 조금이라도 정상화하고 이것을 외국자본에 매각해 돈이 돌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나라의 살길이다’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우리 돈이다’라는 주장도 있었다. 동규는 아주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한 사람의 납세자로서 억울한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부실기업이 마냥 돈을 까먹는 물귀신이 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그의 생각에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는 간혹 공적자금 투입에 분개하는 아내 혜선과 논쟁을 벌일 때도 있었다. 혜선은 그런 기업들은 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