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수린 白秀麟

1982년 인천 출생.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등이 있음. paper_petal@hanmail.net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일요일엔 당신이 잔디를 깎는 거지.”

“좋아. 그럼 당신은 맥주와 고기를 사와. 바비큐를 해 먹게.”

정체가 심한 도로 위, 동요 메들리가 흘러나오는 차 안에서 그녀와 남편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 인근의 단독주택들 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붉은 지붕의 집에서 그들이 사는 삶을 함께 공상하기.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언제부터인지 대화할 거리가 줄어든 남편에게 그녀가 말을 거는 한가지 방법이었다. 그녀가 그 붉은 지붕의 집을 발견한 것은 그들이 이사하고 얼마 안 있어 첫째 아이를 하원시키기 위해 어린이집을 처음으로 찾아갔던 지난봄이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굳이 동네 한쪽의 고급 주택가를 지나쳐 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근사한 포치가 있는 이층집들을 구경하며 걷는 것은 둘째 아이를 낳은 이후 집 밖을 나갈 일이 거의 없는 그녀에게 커다란 낙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우리 이사 가?”

뒷좌석에 앉아 동요를 따라 부르던 첫째 아이가 참견했다.

“아니, 나중에.”

운전석 뒤쪽의 카시트에서 쌀과자를 손에 꼭 쥔 채 잠들어 있는 둘째 아이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그들은 주말을 맞이해 모처럼 동물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나중에 언제?”

“글쎄, 나중에 언제일까?”

그녀는 운전을 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웃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런 집에 살기 위해서라면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게 나았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잠깐 들다가도 육아 도우미를 부르는 비용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계속 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되지 않으며 그저 욕심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아이를 낳고 유산을 두번이나 한 끝에 둘째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남편은 그전부터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길 원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나면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따돌림을 당한다던데. 아무리 종종거리며 점심시간에 준비물을 사러 다니고, 하루 종일 보고 싶었던 아이를 오분이라도 일찍 보기 위해 환승역에서부터 뛰어봤자 아이와 친정엄마에게는 언제나 죄인일 뿐이라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왔으므로 그녀는 둘째 아이가 생기자마자 퇴사를 결심했다.

“나는야, 춤을 출 거야, 헤이!”

첫째 아이가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다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참, 한나씨한테 안부 전해줘.”

다음 날은 그녀가 아이들을 두고 처음으로 혼자 저녁 외출을 하는 날이었다. 한나가 레스토랑의 개업식 겸 파티를 열고 싶다며 친구들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한나와 그녀는 흔히 말하는 단짝 친구였다. 그녀가 한나와 붙어 다니던 대학 시절, 그들에게는 각기 맡은 확실한 역할이 있었다. 미용실의 잡지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혹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유명한 식당과 까페를 찾아내거나 볼만한 영화가 상연되는 극장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한나의 몫이었다면 한나가 가자고 제안한 여러 장소 중에서 가볼 순서를 정하는 것은 그녀의 역할이었다. 그런 분담은 꼭 까페나 식당, 혹은 영화관을 정하는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같이 먹을 음식의 메뉴부터 나중에는 여행지를 고를 때도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고 둘 중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한나는 하고 싶은 일이 언제나 너무 많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누군가 정해준 틀 안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편한 스타일이었으므로 둘은 그들이 이룬 균형에 만족했다. 둘은 새내기 시절 같은 과에서 만나 친구가 된 이후 줄곧 함께였다. 졸업 후 각자 다른 회사에 취직한 뒤에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일년에 몇번씩 군산이나 통영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녀가 결혼하고 한나가 파인다이닝 요리를 배우겠다며 이딸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요리를 배운 후 현지 식당에서 일하며 지냈던 한나가 한국으로 돌아와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은 거의 사년 만의 일이었다. 한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녀가 첫 아이를 낳고 막 복직했을 때였고, 그녀는 얼른 첫째 아이를 키워놓고 보러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며 한나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둘째 아이를 낳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때였다.

 

*

 

레스토랑은 작지만 운치가 있었다. 그녀가 처음 레스토랑 안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식당의 온기였다. 그다음엔 향기. 고소하고 달콤한. 조도가 낮은 식당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그녀가 아는 얼굴도 있었고, 이름만 들어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한나의 가까운 지인들이었고, 친구의 개업을 축하해주려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으므로 그들은 금세 낯선 상대를 향한 경계심을 풀었다. 머메이드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한나는 요리사라기보다는 만찬의 호스트처럼 보였다. 그것도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었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한나는 그녀를 보며 환히 웃었고, 그녀 쪽으로 다가와 끌어안으며 “와줘서 고마워” 하고 말했다.

“음식이 정말 너무 맛있죠?”

한나의 이전 직장 동료라고 자기를 소개한 여자가 몸을 그녀 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네, 정말 맛있네요.”

트러플 마요네즈를 곁들인 까르빠치오부터 흰목이버섯을 넣은 딸리올리니 빠스따까지 모든 것은 완벽했다.

“정말 한나씨는 대단한 것 같아요. 계획도 없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는 사실 다들 걱정이 많았거든요.”

같은 테이블에 앉은 다른 사람이 포도주를 한모금 마시며 말했다. 모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다보니 그녀 역시 탐스러운 빛깔의 포도주를 한잔 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수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와인잔 대신 물잔을 들었다.

 

식탁 위의 음식들이 거의 사라질 무렵, 한나가 “난 요리랑 결혼한 거니까, 나가기 전에 카운터 위 상자에 알아서들 내고 가요. 내 축의금 받고 결혼한 사람들은 모른 척 나가면 찝찝할 거야”라고 농담조로 말하자 사람들이 와하하, 웃었다. 한나는 사람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진심을 농담처럼 전하는 데 능했고, 한나의 그런 면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녀는 미색 커튼이 양옆에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묶여 있는 커다란 창밖으로 이미 짙게 깔린 어둠을 내다보면서, 충만한 기쁨에 사로잡혔다. 낯선 나라에서 요리를 배워서, 목표했던 것같이 이토록 근사한 자기만의 식당을 연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이제 사람들의 대화는 어느새 부동산 쪽으로 흘러갔다. 어느 지역의 땅값이 오를 것이고 어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했다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러 아이들을 두고 나온 것은 아닌데. 그녀는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하자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리던 둘째 아이를 떠올렸다. 지금쯤이면 남편이 아이를 달래 놀아주고 있겠지만, 그녀는 마치 버림받은 아이처럼 숨을 헐떡이며 울던 아이가 떠올라 죄책감에 고통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먼저 일어난다고 말을 할까 생각하며 어딘가에 있을 한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식당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깔끔한 세미정장 차림을 한 남자였는데, 군살이 전혀 없어 날렵해 보였다. 남자는 탐스러운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연자주색 장미로만 이루어진 다발이었다.

“축하해요.”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한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그녀에게 커다란 장미 다발을 안겼다. 이제 장미 다발은 카운터 옆 원목 콘솔 위, 가장 잘 보이는 화병에 꽂혔다. 한나가 남아 있는 음식들을 데워 오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