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아프가니스탄 여성: 이미지와 현실

 

 

김영희 金英姬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영문학. 저서로 『비평의 객관성과 실천적 지평』이 있음. gnosis@kaist.ac.kr

 

 

들어가는 말

 

지난해 9·11 사태가 일어나고 이어 감행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서구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아프간 여성은 남다른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억압의 희생자라는 이미지가 압도했으니, 온몸을 철저히 뒤덮고 눈까지 망사로 가린 부르카(burqa)가 억압을 강렬하게 표상하였다. 그런 아프간 여성의 이미지는 때때로 이슬람권 여성 일반을 대표하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슬람권 여성들이 꼭 수동적인 수난의 대상으로만 현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령 부각의 정도야 현격하게 덜하지만, 역시 무력갈등에 휘말린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미지는 같은 이슬람권이어도 좀더 복잡하고, 사뭇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언론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자살테러를 주도한 여성들이었지만, 머리에 흰 스카프를 쓰고 기다란 검은 옷을 걸쳤든, ‘서양식’ 옷에 하이힐을 신었든, 가두행진에 나서거나 시위군중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여성들의 모습도 전해진다. 1987〜94년에 걸친 1차 인티파다(intifada, 민중봉기)에서 이미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거리에 나서서 돌을 던지며 시위하는 모습으로 각인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여성의 이미지, 그것도 부르카를 입은 하나의 이미지가 유독 관심의 촛점이 되며 ‘이슬람 여성’ 전체로 일반화되기도 하는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우선 아프간 여성이 겪어야 한 억압이 그만큼 극심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현실에서 걷어올린 이미지인만큼 거기에는 해당 여성들의 삶의 일면이 분명 담겨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미지의 선별과 시선의 고착은 또다른 의미도 담고 있다. 가령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의 이미지는 투쟁하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미지보다 침략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우기에 훨씬 적절한 것이었다.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투쟁적인 이미지보다 부르카로 상징되는 희생자의 이미지가 기왕의 ‘여성’ 이미지, 혹은 ‘전근대적’인 ‘제3세계’ 여성의 이미지에 더 부합한다는 점도 짚어야 할 것이다. 워낙 이미지가 현실에서 발원하고 현실을 어느정도 드러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선별과 구성, 유통과정을 통해 바라보는 자의 특정한 시선이 담기게 마련이며, 때로는 맥락에서 분리되고 동결되어 그것을 만들어낸 역사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부르카 이미지는 그 전형적인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은 아프간 여성의 단일화된 이미지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그런 이미지를 낳는 한편 그 뒤에 가려지기도 하는 아프간 여성들의 역사와 현재를 재구성해보려는 한 시도다. 그렇다고 ‘현실’의 전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주장할 생각은 물론 없다. 관심이 일천한 한국의 필자로서 그럴 처지도 아닐뿐더러, 관련 글들이나 정보를 접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른바 ‘총체적’인 혹은 ‘객관적’인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이었다. 지배적인 이미지 뒤에 자리한 현실의 일각에나마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2. 부르카라는 이미지

 

부르카를 입은 여성 이미지는 아프간 여성들이 처한 참담한 처지를 충격적으로 전달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아프간 여성들의 삶 자체를 또한번 위협에 몰아넣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쓰이기도 하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다치고 죽고 생활터전과 가족을 잃어 고통받는 ‘전쟁의 희생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한 ‘억압의 희생자’라는 여성 이미지가 압도하였다.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들은 이 전쟁의 ‘인도적인’ 명분을 뒷받침해주었다. “여성에 대한 야만적 억압이 테러리스트들의 중심목표다. (…) 테러리즘에 대한 투쟁은 여성의 권리와 존엄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고 주장한 로라 부시(Laura Bush)의 연설1에서 드러나듯, 미국은 아프간 여성의 구원자인 것처럼 형상화된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Taleban) 정권을 테러리즘의 본거지로 규정해나가는 과정에서 부르카는 그 폭력성과 ‘반문명적인’ 억압성을 환기시키는 가장 적절한 상징이 된 것이다. 탈레반의 패퇴 이후 부르카를 벗고 화장을 한 얼굴을 드러낸 여성들이 화면에 되풀이 비추어졌는데, 아프간의 두 대조적인 여성상은 미국의 대아프간 전쟁이 자국을 공격한 세력에 대한 응징일 뿐 아니라, 아프간 국민을 탈레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준 해방전쟁인 것처럼 분식(粉飾)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2

그러나 미국이 여성을 포함한 아프간 민중의 처지에 진정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탈레반을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근본주의세력의 확산은 이미 20여년 된 일인데 이제 와서 새삼 문제인 양 나오는 것부터가 수상쩍거니와, 오히려 미국이 바로 이 근본주의세력을 직접 지원해왔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번 사태에 국한해 보더라도 미국의 관심은 아프간 민중 해방은커녕 스스로 테러세력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공격도 아니다. 미국이 탈레반 축출을 위해 북부동맹 세력과 손을 잡고, 평화정착단계에서도 이들에 크게 기대고 있는 점만 보아도 분명해진다. 북부동맹이 누구인가? 탈레반에 반대해 집결한 군벌연합이지만 그 상당부분은 무자헤딘(Mujahedeen, 聖戰의 전사라는 뜻으로 대소 항전세력의 총칭) 출신이다. 무자헤딘은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전에 부르카를 강요하고 여성들을 강간·납치·살해하는 등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무법지대로 몰고 갔다. 탈레반이 ‘제도적’인 여성억압을 자행하였다면, 무자헤딘 및 북부동맹의 여성억압은 더 자의적이고 무질서한 형태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애당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좌파정권과 소련 점령군에 맞선 무자헤딘을 지원했을 때부터, 이들의 반여성적인 입장과 정책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3 부르카 강제를 비롯하여 여성을 집안에 격리시키는 푸르다(purdah) 제도는 이미 ‘반소항전’ 당시 난민캠프에서 실시되었는데, 이에 대한 일부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미국은—그리고 일부 서구 여성이나 페미니스트들까지—자국 문화에 대한 존중이라는 명분으로 묵살하기 일쑤였다. 여기에 반공이라는 냉전적 사고가 작동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4

탈레반 정권이 축출된 후 ‘부르카를 벗어버린 여성’의 이미지가 집중 부각된 것에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의도가 다분했다. 그러나 부르카를 둘러싼 문제가 이처럼 단순치 않다는 것은 곧 드러났

  1. Laura Bush, “Radio Address to the Nation,” 2001년 11월 17일; Gary Leupp, “Bush, Burqas and the Oppression of Afghan Women,” Counterpunch 2002년 7월 16일자 (www.counterpunch.org/leupp0716.htm)에서 재인용.
  2. 이같은 미국정부 쪽의 언설을 ‘군사·산업적 페미니즘’으로 규정하며 상세히 소개·비판한 글로는 폴 크레이머 「클린턴, 남성성, 테러와의 전쟁」, 『여성과사회』 14호(2002년 상반기호) 63~76면. 이 글은 ‘여성을 위한 전쟁은 없다’라는 특집의 일부이며, 그에 앞서 『이프』 2001년 겨울호에서도 ‘Against War, Against Terrorism’이라는 특집을 마련한 바 있다.
  3. 이스라엘 역시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대한 대항세력을 키운다는 생각에서 팔레스타인의 근본주의 집단인 하마스(Hamas)를 지원한 바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들의 적은 근본주의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일 뿐이다.
  4. 아프간 난민과 관련한 다문화주의의 이같은 문제점에 대한 지적으로는 Valentine M. Moghadam, “Revolution, Islam and Women: Sexual Politics in Iran and Afghanistan,” Andrew Parker, et. al. (ed.), Nationalisms & Sexualities (New York & London: Roultledge 1992) 437면 및 Sima Wali, “Muslim Refugee, Returnee, and Displaced Women: Challenges and Dilemmas,” Mahnaz Afkhami (ed.), Faith & Freedom: Women’s Human Rights in the Muslim World (New York: Syracuse University Press 1995) 177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