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재영

김재영 金在瑩

1966년 경기 여주 출생.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소설집 『코끼리』가 있음. kjy0773@hanmail.net

 

 

앵초

 

 

1

 

거실과 부엌 사이에 놓인 장식장 위에서 남편은 언제나처럼 웃고 있다. 무화과 그늘 아래 머리칼을 휘날리며 저렇게 웃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뒤로 다가와 눈을 가리며 장난칠 것만 같다. 쾌활했던 그의 성품이 사진 속 짓궂은 눈매에, 웃는 입매에 가느다란 실주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람은 늙거나 병들어 허약해지면서 무화과나 감이 가지에서 놓여나듯, 그렇게 사지(四肢)에서 해방되는 거라 믿었다. 하지만 칠년 전 구월 어느날, 남편 민욱은 생가지가 꺾이듯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주검을 찾아 헤맸던가. 아아, 빌딩의 잔해와 비명과 통곡이 아우성치던 그곳. 하지만 나는 피와 먼지로 심하게 얼룩진 구두 한짝 달랑 주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주검도 없고 무덤도 없는 그의 생은 내 몸속에 시꺼멓고 커다란 구멍으로 남았다.

인간의 뇌는 자기 자신보다는 수많은 타인들을 기억하는 걸로 채워져 있는 게 아닐까. 눈을 감으면 정작 내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리운 사람들은 선명히 떠오르는 것처럼. 나는 민욱이란 사내의 삶을 기억하는 무덤이 되었다. 내 웃음과 내 목소리와 내 입술의 감촉을, 내 젊은 날의 이상과 고민과 상처를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던 민욱의 소멸과 함께 내 존재의 일부도 이승에서 사라졌다. 공허하고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건 단순히 슬픈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 삶의 조건도 뿌리째 흔들렸다. 비자가 소멸되어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생활비가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나는 아들 보람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날마다 사고현장을 찾아갔다. 시신도 무덤도 없었기에 찾아갈 데라곤 거기밖에 없었다. 추도식이 열리는 데마다 찾아가 아무나 부여잡고 울고 또 울었다. 어느 날 어느 거리였던가. 내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주변에는 기세등등한 성조기가 하늘을 뒤덮을 듯 나부꼈고, 미국 국가가 고막을 찢을 만치 크게 울려퍼졌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라더니. 누군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동했고, 어떤 이들은 먼 나라를 침략했다. 아무도 죽음 자체에 대해 슬퍼하지 않았다. 억울한 죽음들은 번쩍이는 미국 정부홍보지에 실려 총알이 되고 폭탄이 되고 미사일이 되어 다른 죽음을 불러들일 뿐이었다. 그런 아수라장에선 더이상 남편의 밝은 미소도, 쾌활한 목소리도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차라리 우리 집 정원에서, 그가 그토록 아끼던 꽃과 나무들 틈에서 조용히 향을 피워 망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니 늙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때, 갸웃거리며 내 눈으로 파고들던 갓 피어난 여린 앵초꽃…… 보랏빛 꽃잎들이 하늘대는 평화로운 정원에서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나는 오랜만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뒤 나는 더이상 외부의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해마다 구월이면 몇몇 지인들을 불러 조촐한 추도식을 마련했다.

어제 우창이 전화해 이곳에 잠깐 들른다고 했을 때, 음식을 준비해 간단한 추도식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다음날이 민욱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니까. 그리고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찾아왔으니까. 아침부터 탕을 끓이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쳤다. 이제 녹두부침개만 부치면 얼추 일이 끝난다. 곧 공항으로 우창을 마중가야 한다. 서둘러야겠다.

팬에 두른 들기름이 고소한 향을 내며 부침개를 익히는 동안 부엌창 너머로 바깥을 내다본다. 무화과나무 잎 사이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땅이 부는 퉁소소리라던가. 바람이 일면 모든 형태있는 것들은 생긴 구멍대로 소리내어 운다고 했던가. 바람 그치면, 깨진 항아리가 웅웅대는, 전깃줄이 허공을 할퀴어대는, 강물이 버려진 어망을 훑으며 지나가는, 거꾸로 처박힌 의자가 덜컹대는, 풀잎에 맺혔던 이슬이 부서지는 그 모든 소리들 다시 고요해지듯이 내 마음의 어두운 구멍도 울음을 그치고 고요해질까.

고단한 세월이었다. 무작정 일거리를 찾아 낯선 거리거리를 헤매야 했다. 이전에 내 자존감을 지켜주던 높은 학력과 대기업 사무경력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짓조각에 불과했다. 나는 이 나라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바보였으며, 어떤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은 싸구려 불법체류 노동자에 불과했다. 몸집이 큰 아기가 어머니 자궁을 찢고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고통을 몸서리치게 겪어야 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끝에 마지못해 찾아간 곳은 한때 남편의 직위 덕분에 사모님이라 불리던 시절 자주 이용하던 미용실이었다. 주인이 한국인이어서 의사소통은 가능할 것 같아서였다. 그나마 나를 받아준 그곳에서 하루 열세시간이 넘도록 청소와 빨래 따위의 허드렛일을 돕고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수없이 많은 머리들이 눈앞이 노랗게 변하도록 내 손끝을 거쳐갔다. 라벤더 인공향기를 뿜어대는 샴푸통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게다가 손님들 중엔 유난히 까다로운 손님이 있어 신경을 바짝 쓸 수밖에 없었다. 피부가 예민한 백인들은 어쩌다 손톱끝이 두피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도 벌겋게 부풀어올랐다며 다음날 항의전화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 일이나마 그만두면 당장 집세를 물 수도, 생활비를 벌 수도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노모와 아이는 잠들어 있기 일쑤였다. 죽은 듯이 쓰러져 잠자다 새벽이면 경찰에 쫓기는 꿈에 소스라치게 놀라 깼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나는 졸음을 쫓으며 영어를 배웠다. 차차 서툴게나마 말이 익숙해지자 미용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책을 붙들었고, 틈틈이 미용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수년 고생한 끝에 겨우 기술자가 되었고 영주권도 손에 쥐었다. 최근에는 은행대출을 얻어 작은 가게도 마련했다. 그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이란 그다지 너그럽지 못해, 하나의 고민이 사라지자 새로운 걱정거리가 죽순 돋듯 자라났다. 일 구덩이에 빠져 정신없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보람은 내 품에서 멀어져 낯선 아이가 되어갔다. 아들의 겉모습은 날이 갈수록 제 아버지를 닮아갔지만 마음만은 아니었다. 철저하게 이 나라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대신 아이는 내가 잘 모르는 이 나라의 어느 거리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아름답다거나 선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고국이란 말마저 보람에겐 의미없는 한갓 추상적 기호에 지나지 않았다. 때때로 그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럽고 두려운 현실 앞에서 나는 어둠을 저주하며 악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를 거칠게 대했고, 아이는 내게서 더욱 멀어져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번엔 어머니가 문제였다. 어머니 의식의 밑바닥, 그 거대한 동굴 속에 남아 있던 외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사소한 냄새 그리고 낯선 존재의 시선에 의해 현실세계로 튀어나와 일상을 뒤흔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데친 숙주와 잘게 썬 김치, 돼지고기를 넣은 녹두부침개를 부치다 말고 부르르 몸을 떤다.

처음 어머니가 이상한 낌새를 보인 건 3월말경이었다. 그날은 앵초가 마른 잎을 뚫고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솜털 빽빽한 배춧잎 모양의 새순이 꽃대를 밀어올리고 보랏빛 꽃망울을 터트리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침부터 어머니는 기대에 들떠 정원을 서성였다. “헤이, 미스터 싸이먼!” 이웃집 노인을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는 활기에 넘쳤다. 잠시 뒤에 밖에서 싸이먼씨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커피와 무스케이크를 준비해 정원으로 가져갔다. 비슷한 연배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라서 그런지 어머니는 싸이먼씨와 남달리 친하게 지냈다. 몇해 전 싸이먼씨가 구하기 힘든 자줏빛‘코위찬’앵초를 어머니에게 선물한 뒤로 부쩍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해마다 화려한‘퍼씨픽 자이언트’와 색깔 짙은‘반헤이번’, 꽃송이가 잎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줄리아나’교배종이 줄줄이 필 동안 두 노인은 다정한 부부인 양 정원을 돌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올봄은 예년처럼 순탄치 않았다.

그날 오후에 내가 미용실에서 일하다가 짬을 내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부터 정원을 돌본 탓인 거 같았다. 관절염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한의원에 가기로 예약되어 있었지만 차마 단잠을 깨울 수 없었다. 나는 방에서 나와 거실 정리를 하다가 무심히 창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랬다. 처음엔 그저 검은 셔츠를 입은 우편배달부로 보였다. 한쪽 팔을 우체통 위에 얹은 커다란 몸체. 자세히 보니 그건 검은 털로 뒤덮인 곰이었다. 아질한 현기증이 일었다. 곰은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넘더니 테이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민첩한 동작으로 미처 치우지 못한 케이크를 집어 입속으로 넣었다.

어머니는 그날 곰을 보았던 걸까. “너무 많이 잤나 봐!” 잠에서 깬 어머니는 마른세수를 하며 민망해했다. 나약하고 욕심없는 초식동물 같은 미소가 얼굴 전체에 번졌다. “돌아가신 아버지 꿈을 꾸었어. 오랜만에 오셔서는 날 바라만 보다가 그냥 가버리더구나.” 어머니는 아쉬운 기색으로 말하더니 다시 정원으로 나갔다.

그날 밤부터 어머니의 이상증세가 시작됐다. 처음엔 어머니에게 야식증이 생긴 줄 알았다. 아침이면 부엌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식탁과 부엌바닥은 물론 소파 여기저기에 음식물을 묻혀놓기도 했다. 새로 산 딸기잼과 베이글이 거의 매일 통째로 사라졌다. 할 수 없이 자지 않고 어머니를 살펴야 했다. 자정 무렵이 되자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낯선 발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검은 몸체는 식탁으로 다가가더니 어머니가 꺼내놓은 딸기잼과 베이글을 먹었다. 이번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속에 갇혀 있던 푸른빛이 어둠속으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곰이었다. 나는 폭발할 것처럼 거칠게 뛰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곰은 냉장고에 있는 양배추와 생닭을 끄집어내더니 순식간에 먹어치운 다음에야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현관문을 닫았다. 나는 어머니한테 달려가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뭐야, 왜 이래?” 그러자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쉿, 산에서 아버지가 내려왔어요, 어머니.” 나를 어머니로 착각하는 어머니 눈빛이 어둠속에서 파랗게 빛났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몇가지 약을 처방했다. 그는 어머니의 무의식이란 동굴에 자리잡은 억압된 감정과 공포, 분노 따위가 곰에 의해 촉발된 거라며 어머니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심리치료를 받도록 권했다. 낮 동안의 어머니는 별 이상 없이 잘 지냈다. 아침이면 기분좋게 일어났고, 끼니마다 음식을 달게 먹었으며, 매일 정원에서 앵초를 돌보면서 싸이먼씨와 우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밤이면 달라졌다. 곰이 올 때쯤이면 현관으로 달려갔다. 보람이 현관문 위쪽, 어머니 손이 닿지 않을 높이에다 잠금장치를 새로 달았지만 어머니는 의자를 딛고서라도 올라가 문고리를 땄다. 의사는 더 많은 양의 약을 처방했고 상담시간도 늘렸지만 소용없었다. 게다가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비와 약값은 또 얼마나 비싼지, 내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 수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밤새 집 안에 불을 켜두기로 했다. 빛이 환한 동안에는 빨치산 아버지를 기다리는 열아홉 처녀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야간 불빛이 수면을 방해했는지 어머니는 점차 기운을 잃어갔다. 식사량도 줄었고, 혈색도 나빠졌으며, 무엇보다 웃음을 잃었다. 옆집 싸이먼씨가‘앵초협회’에서 구한 앵초를 가져왔을 때조차 의례적인 답례를 할 뿐이었다. 싸이먼씨는 매일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봄이 무르익어 앵초마다 꽃망울을 터뜨렸지만 어머니의 건강은 나아지지 않았다.

추도식에 쓸 음식 준비를 끝내고 공항으로 가기 전에 방에 들어가 어머니 안색부터 살핀다. 핏기없는 얼굴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오는데 뒤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산에서 아버지가 내려오셨어요, 어머니. 어쩌나, 먹을 게 떨어졌는데.”

밀려드는 절망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내가 대답한다.

“걱정 마라. 벌써 밥 한그릇 드시고 가셨으니.”

“하지만 아직 저기 계시잖아요. 집 안으로 들어오게 문을 열어야 해요, 어머니.”

어머니는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킨다. 창밖에 곰이 와 있다. 이런 시간에 곰이라니. 지금 집을 나서지 않으면 공항에 늦을 텐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방 안을 서성인다. 이러다간 늦을 게 뻔하다. 휴대전화를 꺼내 우창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한동안 실내를 서성이다가 장롱 깊숙이 넣어둔 산탄엽총을 집어든다.

나는 눈의 초점을 가늠쇠에 두고 곰을 노려보고 있다. 방아쇠에 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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