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에 비친 자화상

 

 

이영미 李英美

대중예술평론가. 연극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로 『한국대중가요사』 『이강백 희곡의 세계』 『서태지와 꽃다지』 등이 있음. ymlee@knua.ac.kr

 

 

1. 문제 제기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지독하게 뻔한 상투형의 반복에 질려버린다. 몇년 동안의 인기드라마들을 되돌아보면 줄거리와 인물을 헷갈릴 정도로 똑같은 작품들, 그나마 만화처럼 단순한 이야기로 엮어가는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이런 작품이 좋은 평을 받을 리 만무하다. 표절시비가 줄을 이었고, ‘너무한 짜깁기’1라는 둥 자기복제라는 둥 온갖 악평이 쏟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작품이, 몇년 동안 계속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이른바 트렌디(trendy) 드라마라고 불리는 젊은 감각의 드라마의 주도적 유형으로 자리잡아왔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에 ‘대중에게 인기있으나 질 낮은 작품’이라는 구도로 접근하는 것은, 드라마의 상투성에 못지않은 상투적 비평을 낳는다. 이는 자칫 대중예술을 저급한 취향의 대중들이 향유하는 저급예술로 못박는 엘리뜨주의적인 관점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대중의 평균적 감수성에 호소하여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대중예술의 상업주의적 성격 때문이라는 교과서적인 지적도 타당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대중문화 일반론에 불과하여 그 ‘평균적 감수성’이 어떤 질의 것이며 그 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예술 연구자들의 분석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언뜻 생각하기에는 수십년 동안 요지부동으로 반복되어온 듯한 대중예술의 상투형이란 것도, 좀더 세밀히 살펴보면 시기에 따라 현격한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비록 그 변화가 본격예술에서처럼 큰 폭으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대중예술의 흐름 속에서 보자면 주도적 유형이 확연히 변화하는 양상을 띤다. 이 글과 관련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한 여자와 악한 여자가 일과 사랑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구도의 트렌디 드라마가 90년대 말부터 작년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나타나 주도적인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그 이전에는 나타난 적이 없는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물론 단순한 선악구도나, 일과 사랑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이야기는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극, 대중소설에 자주 나타나는 익숙한 것이지만, 근자의 드라마는 몇가지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작품의 유사성의 정도가 매우 높고, 경쟁을 벌이는 주인공이 주로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데, 이러한 유형은 90년대 초·중반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발견되지 않다가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매우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다.(90년대 중반 이전의 작품으로는 1984년의 김수현 작 「사랑과 야망」이 유일한데, 이 작품의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형은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도적 경향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그 의미는 무엇이고, 그 변화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에서 나타났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필자는 이미 여러 글에서, 대중예술의 ‘뻔함’ 즉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일정한 유형을 이루는 것에 대하여 대중예술, 더 나아가 서민예술 일반의 특성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서민대중의 경험과 욕구·욕망, 취향, 예술적 관습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서민대중의 적극적 휴식행위로서의 서민예술·대중예술을 섣불리 본격예술의 창의성이란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본격예술과 예술사적 맥락이 다른 대중예술이나 서민예술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말하자면 텔레비전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소설·대중영화 등이 두루 지니고 있는 ‘뻔함’이라는 특성은, 전근대의 서민예술인 설화가 상사성(相似性)을 지니면서 일정한 유형을 이루는 점과 비슷한 현상으로 상사성과 유형성의 의미가 분석대상이 되어야 한다. 한 시기에 대중적 인기를 얻는 특정 경향, 특정 양식 등은, 그 시기 수용자 대중이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느끼는가 하는 것과 조응한다. 대중적 양식의 변화, 양식의 생성·발전·퇴락이란 단지 그 양식의 반복으로 인한 지겨움이 외국 양식의 수입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수용자 대중의 생각과 느낌, 수용자 대중의 관심사와 욕구·욕망과 사회심리의 변화가 그 근본적 원인이다. 대중예술은 뻔하기 때문에 분석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뻔한 것이 그렇게 많이 생산되고 향유된다는 점이야말로 눈여겨 살펴보고 분석해야 할 대목이다.2 이는 상투성의 옹호가 아니다. 상투성의 근거와 존재방식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섣부른 재단에 앞서 체계적인 분석과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의 특성과 그 세계인식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글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90년대 말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2000년에 전성기의 모습을 보였던, 선한 여자와 악한 여자가 일과 사랑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드라마이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이를 ‘야망의 콩쥐팥쥐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콩쥐·팥쥐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동년배 혹은 자매인 두 여자의 선악구도가 분명한 반면, 두 여주인공 모두 일과 사랑의 성취를 위해 강한 야망을 보이며 적극적인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하디착한 주인공이 오로지 행운과 왕자의 선택에 의해 계층상승을 이루는 콩쥐팥쥐 설화나 신데렐라와는 다르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1998년 「미스터 큐」, 1999년 「토마토」, 2000년 「이브의 모든 것」 「진실」 「비밀」, 2001년 「귀여운 여인」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유형과 몇몇 중요 특성을 공유하는 작품으로는 1997년 「신데렐라」로부터 2000년 「덕이」나 「태양은 가득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유형이 지니는 내용상의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앞에서 열거한 모든 작품이 아래에서 지적하는 모든 특성을 완벽하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약간씩의 변이는 존재한다.

 

① 같은 회사(업종 혹은 학교)에서 일하는 동년배 여주인공 두 명은 어렸을 때부터 경쟁심리를 지닌 라이벌이다.

두 명의 여자주인공은 동일한 직종의 같은 나이의 동급생이거나 동년배의 자매로, 강한 경쟁심리를 가지도록 설정되어 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경쟁심을 키워왔는데, 대개 악한 인물이 선한 인물보다 더 강한 경쟁심리와 열등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② 하나는 선하고 다른 하나는 악하다.

선명한 선악구도야말로 ‘야망의 콩쥐팥쥐형’의 뚜렷한 특성이며 작품을 끌어가는 핵심적인 요건이기도 하다. 악한 인물은 집요하게 선한 인물을 공격하여 곤경에 빠뜨리지만 결국 그러한 악덕 때문에 파멸한다. 악한 인물은 선한 인물에 비해, 업무능력이나 도덕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훨씬 더 강한 계층상승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음모와 처세술에 탁월하여 선한 인물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③ 여자주인공들은 전문직 여성으로 그 직종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꿈이다.

주인공의 직업으로 가장 빈번하게 설정되는 것은 디자이너이다. 「미스터 큐」에서는 속옷 디자이너, 「토마토」에서는 구두 디자이너, 「비밀」에서는 여성복 디자이너, 「귀여운 여인」에서는 가방 디자이너이다. 「이브의 모든 것」에서는 방송국 아나운서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 직종은 젊은 여성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을 하는 전문직이면서 돈과 화려한 명성이 함께 보장되는 동시에, 이른바 ‘여성적 매력’까지 유지할 수 있는 직종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트렌디 드라마의 수용층인 젊은 여성들의 욕망과 조응하는 설정이다.

 

④ 남자주인공은 여주인공들이 다니는 직장의 고위직이거나 실력자이다.

남자주인공들은 대개 사주의 아들·양아들 혹은 후계자이다. 그와의 사랑의 성취란 일에서의 성공과 계층상승을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

 

⑤ 악한 인물이 선한 인물의 행운을 가로챈다.

「토마토」에서는 크게 다친 남자주인공을 선한 여자주인공이 구해주나 이 공을 악한 여자주인공이 가로채며, 「비밀」에서는 악한 여자주인공이 여성복회사 사장의 진짜 딸이 자신의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이를 밝히지 않고 자신이 딸 노릇을 계속한다. 이는 악한 인물에게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 역할을 하는 듯하나, 궁극적으로 그를 파멸시키는 요건이 된다.<

  1. 이수진 「드라마 ‘토마토’ 너무한 ‘짜깁기’ 」, 『문화일보』 1999.5.7.
  2. 『한국대중가요사』(시공사 1998) 13~35면과 「대중가요 연구에 있어서 균형 잡기」, 『인문과학』 31집(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1)에서 대중예술·서민예술의 본질을 고려한 연구방향에 대한 필자의 입장과 관점을 정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