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

 

야스꾸니 신사와 사까모또 료오마

시바 료오따로오 『료오마가 간다』의 경우

 

 

김응교 金應敎

시인 eungsil@hanmail.net

 

 

박물관 이야기

야스꾸니 신사(靖國神社)는 하나의 거대한 정신적 박물관이다. 야스꾸니 신사라는 말에서, 사무라이의 투구를 연상시키는 둔중한 곡선 지붕과 그 앞에 고개 숙인 검은 정장의 일본인 정치가를 떠올릴 이도 있겠다. 야스꾸니 신사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결한 인물을 앉히고 즐기며 배운다”는 의미의 유우슈우깐(遊就館)이라는 전시관이다. 전함에 돌진하여 자폭하는 ‘인간어뢰’, 쥐고 흔들면 날개가 흔들릴 정도로 가벼운 자살폭격기, 전사자의 일기·유품·혈서 등을 보고 ‘광적인 군국주의’를 회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익적인 일본인이 이곳에서 느끼는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종교적인 성스러움이다. 일본인에게 이곳은,1853년 개항 이후 태평양전쟁까지 전쟁에서 숨진 246만명의 전몰자가 주신(主神)으로 ‘모셔져’ 있고, 이 신들을 찬미하는 ‘영혼의 축제(みたま祭り)’가 벌어지는 성소(聖所)1인 것이다. 더욱이 야스꾸니 신사는 메이지 신궁(明治神宮), 노기 신사(乃木神社)와 더불어 국가가 공인하는 ‘국가주의 성전’이다. 그만치 야스꾸니 신사는 일본정신의 핵심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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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어진 유우슈우깐

유우슈우깐은 노인들이나 방문하는 추억의 역사관이라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이곳은 요즘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이며, 부모와 아이들이 역사 공부하는 장소가 되었다.2002년 7월 13일, 개관 120주년을 기념해서, 거대한 대리석 입구가 이제는 토오꾜오(東京) 번화가의 까페 같은 통유리 입구로 바뀌었고, 전시상태도 세련된 방식으로 변했다. 홈페이지(www.yasukuni.or.jp/yusyukan) 역시 세련된 디자인과 전자음악으로 젊은층의 호감을 사고 있다. 새로운 입구로 들어가면 까페떼리아, 서점과 기념품 판매소가 있다. 시원스레 만들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영화실이 있는데,5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잊지 않는다(私たちは忘れない)」를 볼 수 있다. 전시관에 들어가면 메이지 시대를 연 요시다 쇼오인(吉田松陰) 같은 인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물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사까모또 료오마(坂本龍馬,1835~67;이하 ‘료오마’로 줄인다)의 초상화다. 료오마는 1883년(메이지 16년)5월에 야스꾸니 신사에 합사(合祀)되었다. 하지만 증축되기 2년 전의 유우슈우깐에서는 료오마의 사진이 이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 유우슈우깐 안의 서점에 가도 전에 없던 료오마 특설코너가 자리잡고 있어, 그에 관한 동화책·전기물·평전·만화책·연구서 등을 구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 그가 야스꾸니 신사에 놓이게 되었을까.

료오마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영웅이 되어가고 있다. 시바 료오따로오(司馬遼太郞,1923~96)의 『료오마가 간다(龍馬がゆく)』는 이미 오래전에 ‘제국의 아침’이란 이름으로 번역되어 스테디쎌러가 되었다. 야마모또 소오하찌(山本莊八)의 『사까모또 료오마』도 소개되었다. 또한 도오몬 후유지(童門冬二)의 『사까모또 료오마』와 미조우에 유끼노부(溝上幸伸)의 『사까모또 료오마와 손정의의 발상의 힘』은 료오마를 ‘성공한 CEO’로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무곤 교수는 『NQ로 살아라』에서, 그를 자신의 공을 타인에게 돌리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먼저 인정해준 인물, 높은 공존지수를 보여준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청와대 도서관의 경우,2003년 9월 말 『료오마가 간다』가 국내서적을 제치고 문학베스트쎌러를 차지했다고 한다.“료오마가 구체제인 막부체제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점이 개혁정권을 자처하는 청와대 사람들의 감성과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2고 한다. 웹에도 료오마를 사랑하는 까페가 여럿 있다. 료오마는 왜 일본과 한국에서 영웅이 되었을까. 그를 소설로 살려낸 시바 료오따로오는 야스꾸니 신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영웅 이야기, 사까모또 료오마

『료오마가 간다』는 료오마를 가장 아끼던 누이 오또메(乙女)와 대화 나누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어릴 때는 공부도 못하고 늘 ‘울보 료오마’로 불리며 바보 취급받았고, 어디에서나 쫓겨나기 일쑤였으며, 선생이 그를 포기해버릴 정도였던 료오마. 그가 열두살 때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 세살 위의 오또메는

  1. 靖國神社事務所 『靖國神社:祭典と行事のすべて』(1986)3면.
  2. 「‘책 읽는 청와대’도 심란?…최근 사회과학 대출 늘어」, 『굿데이』 2003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