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황정은

황정은 黃貞殷

1976년 서울 출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주요 작품으로 「무지개풀」 「문」 「오뚝이와 지빠귀」 등이 있음. aamudo@empal.com

 

 

야행(夜行)

 

 

한씨와 고씨는 그 부근에서 헤매고 있었다.

곰과 밈은 그들을 모퉁이에서 발견했다. 한씨는 귀마개 천이 달린 모자를 썼고 고씨는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깊은 밤이었다.

아빠.

곰이 한씨에게 말했다.

왜 여기에 있어.

여기 어디라며.

여기가 아니라 저기라고 했잖아.

저기가 어디냐.

저기 위쪽, 문방구가 있는 모퉁이에서 왼쪽으로 돌아야 한다고, 말했잖아.

한번 봐라, 한씨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어디에 문방구가 있는지, 한번 보라고.

대문과 담을 부수고 새롭게 벽을 올리고 있는 건물이 많은 골목이었다. 시멘트 반죽이 될 모래가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이상하네.

밈이 말했다.

분명히 여긴데, 전에 왔을 때보다 길이 좁아 보여.

어두워서 그럴 거야. 공사중인 집이 많아서.

곰이 이렇게 말하며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곰을 따라서 좀더 위쪽의 모퉁이로 이동했다. 여길 봐, 곰이 말했다.

이 건물. 새로 짓고 있잖아. 여기가 문방구 아니었나?

그런가.

잘 봐.

그러네.

없어졌군. 이러니 몰랐지.

그들은 또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어서 계속 걸어갔다. 어디선가 개가 짖고 있었다. 골목에 그들의 발소리가 자박자박 울렸다. 빌어먹을, 고씨가 말했다.

내가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다.

엄마.

곰이 말했다.

알겠는데, 우린 싸우러 가는 게 아니고, 이야기하러 가는 거야. 그렇지?

그렇더라도.

밈이 말했다.

이거 지금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안될까, 엄마.

빌어먹을.

그들은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건물 사이에 섰다. 어, 곰이 고개를 갸웃했다. 두개의 건물은 똑같아 보였다. 군데군데 벽돌을 박은 상아색 건물이었고, 출입구는 남쪽을 향해 있었다. 꼭대기층의 비스듬한 천창이나 가스파이프, 현관에 달린 둥근 등, 사선으로 정리된 주차선, 유리덧문의 손잡이까지도 같았다. 그들은 건물 주변을 돌며 구별할 수 있을 만한 단서를 찾아보았다. 다섯번째 집의 주차장엔 자전거 두 대가 묶여 있었고, 여섯번째 집엔 영업용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여기 있네.

한씨가 차를 알아보고 조수석 문에 붙은 스티커를 읽었다.

천일특수방수.

그들은 유리덧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계단엔 불이 꺼져 있었다. 밈이 문고리를 잡고 앞뒤로 조금 흔들어보았다.

잠겼어.

벨을 눌러.

위층에도 불이 꺼져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몇시지?

0시 36분.

잠들었으면 어떡해.

우리가 온다고 말해두지 않았어?

비켜라.

고씨가 나서서 벨을 눌렀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위층에서 희미하게 벨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씨는 머플러에 코를 묻고 다시 한번 깊숙이 벨을 눌렀다. 쇠붙이 스피커폰에 불이 들어왔다.

누구세요.

나야.

누구.

우리 여기 아래에 와 있어.

고씨가 말했다.

와 있다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고씨는 스피커폰을 바라보았고, 곰은 고씨를 바라보았고, 한씨는 불이 꺼진 계단 위쪽을 바라보았고, 밈은 모두에게서 눈을 돌리고, 건너편 집의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다려요.

스피커폰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 검정을 내려 보낼게요.

그들은 뒤로 물러나서 검정을 기다렸다. 계단에 불이 켜졌다. 머리는 까치집이고, 어깨는 구부정하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소녀가 인쇄된 셔츠를 입은 검정이 계단 위쪽에 나타났다. 그는 슬리퍼를 철떡거리며 계단을 내려와서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깨웠나, 이거 네게는 미안하게 됐다.

한씨가 검정에게 말했다.

뭘요.

검정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나의 경우, 어차피 자지도 않고 있었는데요.

 

 

그들은 불이 켜진 현관으로 들어섰다. 싱싱하게 자란 치자 화분이 신발장 곁에 놓여 있었다. 백씨와 박씨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을 맞이하러 나왔다. 어서 오세요, 형님. 백씨가 웃으며 말했다.

늦었는데, 어려운 걸음들 하셨네요.

그는 아래쪽 단추 몇개를 채우지 않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털은 헝클어져 있었고, 맨발에 양복바지 차림이었다. 박씨는 그의 곁에서 눈을 굴리며 서 있었다. 잠들기 전에 바르는 크림을 듬뿍 발랐는지 얼굴이 균일하게 반짝거렸다. 한씨와 고씨는 말없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갔다. 곰과 밈은 현관에 서서 거실을 바라보았다.

거실은 안쪽으로 깊었고, 등을 한개만 켜두어서 조금 어두웠다. 바닥재며 식탁이며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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