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배수아 裵琇亞

1965년 서울 출생. 1993년 『소설과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 인형』 『그 사람의 첫사랑』, 장편 『붉은손 클럽』 『에세이스트의 책상』 『독학자』 등이 있음.

 

 

 

양의 첫눈

 

 

살아오면서 양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비난의 말을 들어왔는데, 대개는 그의 존재를 저주하는 것으로 끝나기 일쑤였으므로, 마침내 양이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그들이 이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여전히 불행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물론 그 불행의 이유는 그 이전이나 마찬가지로 양의 존재나 혹은 부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그러한 무관함이야말로 어쩌면 애초부터 양과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유일하게 인정할 만한 사실이었는지도 모르는 거지만, 양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소심한 마음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그런 사람들 중의 한명인 미라는 어느날 그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자신의 생활이―그녀의 전생애와 조금도 다름없이―폐허와 같다고 한탄하면서 며칠 동안 그가 살고 있는 도시를 방문할 예정인데 그때 그를 한번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던 것이다. 나의 전생애와 조금도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써내려간 이 표현이 양에게는 마치 밑줄로 강조되어 그에게 일부러 큰 소리로 들려주고자 하는 미라의 자존심 강한 최후의 욕망처럼 느껴졌고, 그러자 그것이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바를 그가 알아차리도록 명령하는 미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미라의 목소리라니, 그는 이미 그것을 잊은 지 오래되었으며 사실은 그녀의 모습마저도 희미하고, 과연 그녀의 어머니와 구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모호한 정도로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미라라는 존재 자체를 완전히 잊은 것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 그 기억이라는 것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이고 상투적인 표현 정도만큼의 가치만 있을 뿐이었다.

전생애와 조금도 다름없이. 이것은 양에게, 그가 미라의 전생애에 대해서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당위를 부과하고 있는 것과 같았고, 설사 모른다 할지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함에 어떤 의문이 있어서도 안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데다가, 더 나아가서 그는 그 안에서 일종의 은근한 비난과 조롱마저도 읽을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그녀의 전생애라고 할 만한 것에 대해서 사실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으며 게다가 그녀의 생애가 폐허라는, 좀 멜랑꼴리한 전(前)세기적 서정의 풍경으로 명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갔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가 유효성을 잃었고―그들은 이미 지난 팔년 동안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간접적인 소식을 우연히 전해들을 수 있는 공동의 친구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녀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잊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가 그들은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서로의 생애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이 부분에 대해서 양은 자신의 기억에 자신이 있었다―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이 서로가 상대편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단지 이전의 미라는 양에게 ‘전생애’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양은 미라에게 있어―그 누구에게도 마찬가지리라고 생각하지만―그런 표현이 요구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미라는 이전에 ‘내 일생’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고 삶이 어떠어떠하다는 경구식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인간과 시간을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는 표현은 무수한 다원(多元)의 현재를 살고 있는 그녀라는 개인에게는 결단코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전혀―이 점이 특히 용서될 수 없었는데―창의적이지도 못함이 분명했다. 양은 미라의 길지 않은 그 편지를 여러번 읽었는데 의례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오만하고 초조하게 고개를 내미는 그 과시적 표현―나의 전생애, 그리고 여전한 폐허―이 양에게 자신의 전생애에 관해 들려줄 준비작업이 드디어 모두 끝났으며, 그러므로 그가 그녀와 관련해서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미라가 창조해낸 세계인 돌연한 그 폐허의 풍경 안으로 뛰어들어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뿐이라는 식으로 해석되어 마치 강압적이고 무신경한 표현에 의해서 수갑이 채워진 듯 거북함과 부자연스러운 어색함에 사로잡혀 승낙도 거절도 아닌 어정쩡한 답장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양은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호숫가에 누워 있었다. 바람은 찼으나 물은 의외로 따뜻했고, 사실은 비릿할 정도로 뜨끈뜨끈했으며 익숙하지 않은 기묘하게 미끌미끌한 상한 풀 냄새가 났다. 구름 사이에서 해가 잠시잠시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에 타월로 몸을 감싸고 있으면 춥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서늘한 여름이었기 때문인지 그해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야생오리 몇마리가 양의 근처에서 꼼짝 않고 몸을 웅크리고 있어서 양은 시험삼아 점심으로 먹다 남은 빵조각을 던져보았으나 그들은 그깟 빵조각 때문에 움직이기는 몹시 귀찮다는 듯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간혹 제법 강한 바람이 불었고 그럴 때마다 그들 몸통의 깃털이 더욱 둥그렇게 부풀어오르고 짧게 웅크린 목덜미의 솜털이 회색 담요처럼 반짝거리면서 한 방향을 향했다. 양은 가능하면 이곳에 오래 있고 싶었다. 그의 피부와 건강이 그 소망을 최대한 지탱해주기를 바라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리칼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오리의 목덜미 솜털처럼 가벼워져서 바람에 날리는 기분, 그렇다 마치 꿈속에서처럼―지상을 낮고 미지근하게 날면서 오랫동안 그윽하게 평평한 들판과 납작한 집들과 장난감처럼 다정해 보이는 사람과 자전거들로 이루어진 아래를 낮은 한숨을 쉬면서 내려다보는 꿈 말이다―그런 기분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그는 자신의 한숨의 강도를 조심스럽게 조절해서 갑자기 지상으로 추락하거나 아니면 방망이에 맞은 야구공처럼 궤도를 잃고 원심력의 허공으로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었다. 그는 날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에 그는 어느정도 겁먹고 정체 모를 슬픔에 잠겼는데, 그것은 기분 좋을 정도로 미미하고도 막연한 네거티브였으므로 정말로 눈물을 흘리고자 하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가을날 저녁의 가벼운 열과 같이 그렇게 따뜻한 눈물을, 11월의 허공에 고요히 떠도는 거미줄같이 무해한 그런 눈물을. 그는 어떤 구체적인 슬픈 일을 떠올림으로써 눈물을 흘려보려고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는 몇개의 시구를 떠올렸다. “오늘, 단지 오늘만 나는 아름다우리/내일이면 모두 사라지고/죽음, 죽음이 온다.” 그는 항상 이 시구를 아름답고도 슬프다고 느꼈으나 그렇다고 해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쉬운 중에도 계속해서 슬프고도 평온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알고 있는 슬픔 중에는, 이른 아침 막 깨어났을 때의, 준비되지 않았으면서 아무런 방어도 없이 만나게 되는 그런 슬픔이 가장 시적이었다. 창밖에는 새가 울고 입 안에는 비린내 나는 눈물이 가득 찼으며 아주 멀리서 자동차의 소음이 이제 막 시작했다는 듯이 그렇게 들려오고 창 아래로 난 길에는 이른 시간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 자박거리는 발걸음 소리, 부엌에서는 개가 신음하고 나뭇잎과 햇빛과 바람, 발코니의 꽃들은 어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그는 침대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마치 그가 바로 어제 심장이 쨍 하고 깨어질 만큼 치유되지 못할 슬픔을 가졌는데 오랜 잠 때문에 그 일을 잊어버리고, 마치 종이가 물속에서 녹아버리듯이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리고, 망각의 강을 따라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흘러 여기에 있게 된 듯한 그런 슬픔을 느끼곤 했다. 눈을 뜬 순간 이미 그가 잊어버린 꿈속에서 그는 슬픔에 대한 암시를 받았으나, 하지만 그것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결코 기억의 윤곽으로도 다가가지 못할 가설(假設)의 슬픔일 뿐이었다. 자신에게 속하며 자신에게 무관심한 슬픔과 평온. 양은 그렇게 의도적인 이완의 상태에서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양이 문득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에는 젊은 두 남녀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들은 누운 채 몸을 쭉 뻗고 있었는데 둘 다 키가 몹시 컸다. 사실은, 깜짝 놀랄 만큼이나 큰 키였다. 아마도 백구십 센티미터에 가깝거나 혹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양은 짐작했다. 일광욕을 하면서도 그들은 둘 다 테가 굵고 검은 근시용 안경을 벗지 않고 있었고 그들 몸의 수영복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은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광택 있고 희고 크면서도 단단해 보였는데 여자는 다리에 면도를 하지 않아서 흰 피부에 찰싹 달라붙은 물에 젖은 갈색의 털이 허벅지에 조그맣게 올라온 소름과 함께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양은 언제나 키가 큰 사람들을 좋아했다. 물론 그들 쪽에서 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양은, 언제나 그렇듯이 키큰 그들이 마음에 들어서 가능하면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다. 키가 크다는 점 외에도 그들은 양이 실제로는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아마도 문학적인 독특함이라고 불릴 수 있는 요소를 그들의 육체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나란히 누운 두 육체가 마치 미지의 언어로 이루어진 것처럼 양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걸어온다고 느껴진 때문이다. 사투리로 부르는 방심한 노래, 말없는 질문, 웃는 당나귀처럼. 그러나 동시에 눈을 감고 누운 그들의 표정과 자세에는,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경계의 몸짓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테두리를 강하게 의식하고 배설물로 그것을 지키려는 원시적인 동물다운 신호 또한 드러나 있어서, 아마도 예를 들자면 그들이 파티장에 손을 잡고 나타난다면 문지방을 넘는 순간 아무도 그들 주변으로는 다가오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육체는 확실하고도 배타적인 어떤 별개의 영역을 스스로 말하고 있기도 했다. 그들은 말랐다고는 할 수 없으나, 분명히 매우 금욕적이고 검소한 몸매를 가진 것은 맞았다. 남자의 경우는 숨을 쉴 때마다 갈빗대가 선명히 드러날 정도였고 그들의 길고 튼튼한 뼈대는 몹시 우아하기는 했으나 어쩔 수 없이 기묘하게 보이게 되는 운명을 타고난 듯했다. 그들은 남매처럼 닮아 있었는데 실제로 이목구비가 비슷하다기보다는 그들의 태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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