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어느 혁명적 낙관주의자의 초상

김학철론

 

 

김명인 金明仁

문학평론가. 평론집 『희망의 문학』 『불을 찾아서』 등이 있음. CRITIKIM@chollian.net

✽ 이 글을 쓰는 데는 장춘 길림대학 윤해연 교수의 도움이 컸다. 그는 내게 김학철 선생의 문집들과 선생에 대한 추모특집이 실린 잡지 『장백산』을 보내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필자

 

 

1. 한 시대가 문을 닫는다

 

2001년 9월 25일, 중화인민공화국 길림성 조선족자치구 연길시 연변병원에서 향년 86세의 한 노인이 눈을 감았다. 그가 지니고 떠난 이름은 김학철(金學鐵). 하지만 그가 1916년 식민지 조선 함경남도 덕원군 현면 룡동리(현재의 원산시 용동)에서 태어나 지녔던 이름은 홍성걸이었다. 1916년에서 2001년까지, 원산에서 연변까지, 그리고 홍성걸에서 김학철까지,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전유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름이라 부르는 존재의 기표가 차지하고 있는 이 좁은 듯 넓은 영역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김학철. 1916년 원산에서 누룩제조업자의 장남으로 출생. 서울 보성중학 재학중 1935년 상해로 건너감. 민족혁명당의 테러활동에 참여. 1937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전 황포군관학교) 입교. 1938년 민족혁명당의 군사조직인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의 전신)에 참여. 1941년 태항산 팔로군 근거지에 합류. 이 무렵 중국공산당에 입당. 그해 12월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중 다리에 총상 입고 일본군에 피체. 나가사끼 형무소에서 4년간 복역, 부상 악화로 한쪽 다리 절단수술. 해방 직후 서울에서 10편의 단편소설 발표. 1946년 월북하여 『로동신문』 기자, 외금강휴양소 소장, 민족군대(인민군)신문 주필 등 역임. 1950년 중국행. 북경 중앙문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1952년 연길에 정착, 전업작가로 활동.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 등 창작. 1957년 ‘반우파투쟁’ 과정에서 탄압받음. 1967년 모택동 우상화와 ‘반소 히스테리’, 경제파탄 등을 격렬히 비판하는 미발표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필화사건으로 이후 10년간 복역. 1985년 이래 장편 『격정시대』 등 여러 권의 소설과 수필, 자서전 등을 연변과 남한에서 간행.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역임. 1994년 KBS 제정 해외동포 특별상 수상. 2001년 사망.1

이것이 그의 생애의 이력이다. 그 이력이 차지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역사와 지지(地誌)는 길고도 넓다. 그 안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3국의 근대의 시간들이 대부분 녹아들어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화와 한국과 중국에 대한 침략, 한국의 민족해방투쟁과 내전과 분단, 중국의 항일전쟁과 혁명의 성공과 오류 등이 그의 이력 속에서 구체적 육체성을 지니고 살아 있다. 또한 그 안에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여러 공간들이 역시 구체적 물질성을 지니고 그 역사시간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이 이 생애의 주인공의 삶과 의식 속에서 모순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 인간(김학철) 속에 동아시아(공간)의 근대(시간)가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생애는 이제 종언을 고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죽음과 함께 독특한 시공간적·물리적 체험으로 충만한 이 모순적 통일도 이제 시효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동아시아 지형과 그가 생을 마감한 싯점의 동아시아 지형은 이미 현격히 달라져 있다. 더이상 그가 살았던 시대와 같은 격변과 유동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 당시에는 얼마든지 있었던 김학철 같은 삶의 모델들, 즉 ‘동아시아 일체형’의 모델은 이제 다시 등장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의 죽음과 함께 고전적 의미의 혁명의 시대 역시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민중들이 직접 무기를 들고 자기에게 들씌워진 운명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시대, 격렬한 유동과 변전의 시대, 그 시대를 혁명의 시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제 다시 그런 시대는 오지 않는다. 한 소년이 어느날 유도복을 넣은 트렁크 하나를 들고 서울을 떠나서 의주를 지나고 만주를 거쳐 상해로 가는 시대, 한 청년이 대륙을 무대로 간난의 전장을 종횡편력하고 제국주의 일본의 감옥과 사회주의 중국의 감옥에서 도합 14년 동안 갇혀 있게 되는 시대는.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안정과 성숙인지 정체와 부패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시대는 더이상 파란만장의 시대는 아니다. 김학철의 시대는 끝났다.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이 종결선언 속에는 끝내 총을 들 기회를 갖지 못한 세대가 총을 든 세대에게 느끼는 어떤 종류의 선망이 뒤집힌 채로 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 가득한 낭만적 노스탤지어(nostalgia)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 내가 예를 갖추어 장송하고 있는 것은 한 시대의 성격이고 그 시대를 바로 그 시대답게 살아간, 당대의 구현체로서의 한 인간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대가 넘겨준 과제와, 그 시대가 그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축적했던 방법과 양식까지도 함께 땅에 묻고 싶지는 않다. 김학철이 살았던 시기도 지금도 근대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김학철이 총을 들고 맞서 싸웠던 대상도 근대라는 이름의 리바이어선(Leviathan)이고, 지금 우리가 총 없이 맞서 있는 대상도 여전히 그것이다. 단지 역사적 국면이 변화하고 생활세계가 달라졌을 뿐이다. 최원식(崔元植)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기본적으로 근대 전기에 속해 있었고, 우리는 근대 후기에 속해 있다는 차이뿐일 것이다.2

김학철은 생전에 연변에서 5권의 소설집과 두 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전집에 해당하는 네 권의 『김학철문집』을 간행했고, 남한에서 한 권의 소설집, 세 편의 장편소설, 한 권의 자서전, 두 권의 산문집을 간행했다.[3. 현재 확인된 그의 저작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연변: 소설집 『군공메달』(1951) 『뿌리박은 터』(1953) 『새 집 드는 날』(1953) 『고민』(1956) 『김학철단편소설선집』(1985),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1954) 『격정시대』(1986), 저작집 『김학철 문집』 전4권(1998〜1999).
서울: 소설집 『무명소졸』(풀빛 1989),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풀빛 1988) 『격정시대』(풀빛 1988) 『20세기의 신화』(창작과비평사 1996), 자서전 『최후의 분

  1. 이 간략한 연보는 김학철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문학과지성사 1995)과 한홍구 외 편 『항전별곡』(거름 1986), 그리고 연변에서 발행되는 격월간 문예지 『장백산』 2001년 11-12월호의 ‘김학철 선생 추모특집’을 참조하여 작성되었다.
  2. 최원식 「80년대 문학운동의 비판적 점검」, 『민족문학사연구』 제8호(1995년 하반기) 64면. 여기서 최원식은 해방 이전을 근대 전기, 해방 이후를 근대 후기로 나누고 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김학철은 근대 전·후기를 공히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의 생애의 성격은 근대 전기에 주조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