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분단 너머의 한반도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 것인가

촛불혁명 시대의 한반도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최근 저서로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이상 공저) 『2013년체제 만들기』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등이 있음. paiknc@snu.ac.kr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 것인가? 지금이 촛불혁명의 시대라면 ‘촛불혁명에 부응하는 남북연합’만이 그 답이다. 이때 ‘촛불혁명’이 과연 혁명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고, 남북연합이 도대체 가능한가를 물어볼 수도 있다.1 두번째 질문을 먼저 다루면서, 남북연합이 가능할 뿐 아니라 이미 그 건설작업이 진행 중임을 지적하려 한다.

 

 

1. 남북연합 건설은 진행 중

 

한반도의 당면 목표는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이다. 당면 목표라면 의당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냐는 반박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과제의 성격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뒤에 더 설명하듯이 ‘비핵화’만 강조해서는 비핵화가 이룩될 수 없고, 게다가 남북연합이 건설 중이라는 최근 소식에 어두운 반응이다.

2000년 6·15공동선언 제2항의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는 합의를 따르더라도, 그 방향으로 가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길은 연합 중에서도 결합의 수준이 꽤나 낮은 연합을 통과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목표를 그렇게 잡으면 남북연합의 건설은 2007년 10·4정상선언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10년 가까운 중단과 역행 끝에 2018년 판문점선언으로 화려하게 재개되었다.2 6·15가 아닌 10·4를 통해서야 연합제 건설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2005년 6자회담에서의 9·19공동성명과 이후의 후속 합의들을 통해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이 한반도 평화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달성한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힘입어 남북의 정상들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관련국들의 종전선언, 평화회담 등 6·15공동선언에서 다루지 못했던 사안까지 합의하면서 남북 교류와 협력의 세부적 실천방안을 마련했던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 이후의 진행은 괄목할 만하다. 4월 27일의 정상회담은 종전의 온갖 격식을 갖춘 평양 방문이 아니라 판문점에서의 당일치기 만남이라는 점을 비롯하여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획기적이었다.3 물론 아직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안 풀린 상태라 경제협력 등 많은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고, 북미 간 협상의 진도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바로 그런 조건 속에서도 남북 사이에는 제2차 판문점 정상회담을 위시하여 수많은 회담과 교류가 뒤따르고 적대장치 해소와 소통수단 복원 조치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측이 북미협상이 지체되는 동안 한국도 대북접촉을 자제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를 훌쩍 넘어서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변화에 대해 미국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때 방한한 펜스(M. Pence) 부통령처럼 애초부터 몽니를 부려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어렵게 만들었다면 몰라도—그렇더라도 지연은 시킬지언정 끝내 막을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되지만—판문점회담이 일단 성사된 뒤에 미국 스스로 북측과의 만남을 무한정 뒤로 미룰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트럼프(D. Trump) 대통령이 곧바로 북미정상회담에 동의한 것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일단 그가 남북회담을 지지하고 나선 이상 미국도 마음대로 못하는 흐름이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고, 6월 12일 싱가포르 조미(북미)정상회담의 성사로 그 흐름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 중요한 일부가 바로 ‘낮은 단계 남북연합’의 건설과정이다. 물론 이 과정이 지속되어 다양한 성과가 누적된 어느 지점에 가서 남북연합을 공식적으로 선포할지 말지는 누적성과의 절대량만 아니라 그 지점에서의 정무적(政務的) 판단을 요할 것이다. 아니, ‘남북연합’이라는 표현을 그 전에 굳이 쓸지도 상황을 봐가며 결정할 일이다(아마도 당장은 너무 자주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기 쉽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중요한 것은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건설’이며, 이는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으로 거의 불가역적인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2.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남북정상과 북미정상이 모두 합의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남북연합 건설의 성공과 직결되어 있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양자의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연합의 과정이 비핵화를 요하듯이 비핵화 또한 남북연합 건설작업의 진전 없이는 달성되기 힘들다.4

알려졌듯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북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북에 대한 미국의 ‘안전담보’(security guarantees) 제공을 맞바꾸기로 했다. 흔히 쓰이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CVIG(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보장)라는 표현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완전한 비핵화’가 검증과정과 실질적인 불가역성을 내포한다는 해석은 가능하지만 CVIG는—북이 안전담보를 그렇게 표현한 적도 없거니와—도대체 인류역사에 없는 항목이랄 수 있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완전한’ 체제보장이라기보다 ‘최대한으로 확실한’ 보장을 얻어내야 하는데 여기에는 물론 관계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교수립, 경제협력 등이 포함될 것이다.

주변국들이 제공하는 온갖 보장에 필수적으로 더해져야 할 추가적인 보장 장치가 남북연합이다.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해놓는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뒤에 더 논하겠지만 분단상황에서는 남한의 존재 자체가 북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이 현실을 공동으로 관리할 기구로서의 남북연합 또한 필수적인데, 6·15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이 통일을 하기는 하되 서둘러 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적인 합의를 했듯이, 국가연합이 무한정 지속될 최종 목표는 아니되 서둘러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도 않는다는 약속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이 시간을 끄는 데는 비핵화라는 과제 자체의 복잡성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핵무력을 확보한 북이 핵과 관련된 온갖 장치와 물질을 어떻게 완전히 제거하느냐는 기술적 문제도 간단치 않지만, 이를 검증하는 과정과 절차는 더욱 복잡하기 마련이다. 나아가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도 철회한다고 할 때는 그 범위를 정하고 검증에 합의하는 또다른 문제가 따른다. 그렇더라도 ‘완전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론상 불가능한 작업은 아닌 반면에, ‘완전한 체제보장’은 애당초 불가능하며 미국이 얼마만큼의 보장을 제공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는 끊임없는 줄다리기의 대상이고 검증이 필요한 작업이다. 여기에 추가적 보장으로 남북연합 건설작업까지 필요한 형국이라면 단기적인 ‘일괄타결’은 도저히 불가능함을 실감할 수 있다.5

그런데 ‘사실상의 연합’이 건설 중이지만 남측 당국이든 북측 당국이든 이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부 주변인사가 그런 개념을 가졌을 수는 있으나 대다수 공직자와 전문가들이 그렇다고는 보기 어려운데다, 북측 당국의 의중은 더욱 불분명하다. 적어도 이제까지 북측 선전매체들이 강조해온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과 ‘연방제 통일’은 연합제에 대한 무관심 내지 경계심의 표현이었기 쉽다. 어쨌든 ‘낮은 단계 연합’이 북의 공인된 국가목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며, 북미관계 타결의 과정에서도 남측을 국가연합을 통한 담보제공자라기보다 주로 ‘중재자’로 간주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두 당국은 그렇다 치고, 한반도식 시민참여형 통일을 주도할 ‘제3당사자’ 곧 남한의 시민사회조차 아직껏 ‘1단계 통일’로서의 남북연합 그리고 그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갖는 현실적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한참 부족한 듯하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도 사실상의 연합이 이미 건설 중임을 인지하고, 어떤 남북연합을 어떻게 만들지 진지하게 연마할 시점이다.

 

 

3. 북의 개혁·개방과 한반도 공동번영은 어떻게 가능할까

 

북은 원래 개혁·개방이라는 표현을 싫어했는데6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나 북이 일단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당 주도의 사회주의경제를 건설하기로 작정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대외개방과 그에 따른 개혁조치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또한 남북한 사이에 예전과 다른 차원의 경제협력을 수반하게 되어 있다. 6·15공동선언 제4항은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고, 4·27판문점선언은 다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제1항 6호)을 약속했다.

북측 당국이 이러한 목표들을 ‘우리식’으로 달성하겠다는 의지 외에 어떤 구체적 구상을 지녔는지는 분명치 않다. 반면에 미국은 ‘한국모델’에 따르는 번영을 약속하기도 하고 ‘베트남모델’을 추천하기도 하는 등, 어쨌든 북핵 폐기의 댓가로 개혁·개방을 전제한 번영을 도와주겠다는 입장이다. 남한의 다수 논객들도 ‘중국모델’이냐 ‘베트남모델’이냐의 논란은 있을지언정 크게 보아 소련·동구권처럼 개혁·개방과 더불어 자본주의로의 체제전환이 일어난 유형과는 다른 경제발전을 전망하는 것 같다. 아무튼 북의 경제가 외부와의 연결이 긴밀해지면서 번창한다면 이 또한 체제보장의 한 축이 될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중국/베트남식이건 한국식이건 북이 처한 상황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전자에 관해 나는 2007년 정상회담 직후에 이렇게 진단했다.

 

남북의 화해·협력을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꼭 보수진영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경제협력을 계속하면 북이 베트남이나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하게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 점에서만은 보수측 논객들과 공감하는 면이 있습니다. 북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는 분단상황 아닙니까?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해서 승리하고 통일을 이룬 다음에 개혁·개방을 한 것이고, 중국도 대만이 있습니다만 (…) 국공내전(國共內戰)에 이기면서 1949년에 일찌감치 무력통일에 성공한 나랍니다. (…) 북의 경우는 북미수교가 이루어지고 남측하고 교류가 활발해진다 하더라도 남한이라는 상대가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남한의 존재 자체가 엄청난 위협인데 그 앞에서 중국식 내지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개혁·개방에 해당하는 조치가 전혀 안 나온다는 건 아니고 그 과정에서 중국과 베트남에서 배울 것이 많겠지만, 중국이나 베트남식의 개혁·개방과는 매우 다른 길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7

 

그렇다고 당장에 통일국가를 만들어 그 문제를 해결할 길도 없는 한반도에서 유일한 대안은 남북연합이라는 안전장치를 창안하고 실행하는 길이다.

트럼프가 생각하는 ‘한국식 번영’이 어떤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신자유주의적 개방이 크게 진행되고 민주화가 상당부분 실현된 현재의 대한민국이 북의 경제에 모델이 될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오히려 독재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곧 ‘박정희모델’이 그나마 방불하다. 후자가 분단상황에서의 개발독재였기에 더욱이나 그렇다. 하지만 이것도 북의 ‘모델’로서는 결정적인 문제점을 지닌다. 사회주의 또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념과 상치하는 점은 차치하고도, “박정희식 개발은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 대결상태 그리고 지구적 차원의 냉전체제라는 현실 속에서나 가능했다는 사실”8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전제로 하는데다 세계적으로도 비록 미·중 대립이 있지만 왕년의 미·소 관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경쟁관계가 진행되는 시대에, 북은 박정희식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우리식’을 창안해야 할 처지이며 여기에는 남북연합 또는 그에 준하는 정치적 장치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 한국사회는?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북의 비핵화와 개혁·개방 그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여기서 빼놓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북만 변하고 남은 그대로 있어도 된단 말인가?

물론 한국사회라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단체제 아래서의 특권과 이득을 움켜쥐고 조금도 안 내놓겠다는 사람들조차 우리 사회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많다. 정권을 잃은 뒤로는 더욱이나 그렇다. 하지만 첫머리에 지적한 대로, 요는 ‘촛불혁명에 부응하는 변화’냐는 것이다.

세월호 때나 탄핵행동 때 무작정 ‘가만있으라’던 권력자들은 몰락했고 그들의 노골적인 ‘종북·좌파’ 몰이는 자유한국당 내에서조차 신용을 잃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반공 수구세력보다 훨씬 뿌리가 깊고 신축자재한 것이어서 일반민중더러 ‘가만있으라’는 기득권층의 논리는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재생될 수 있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의 전망이 열리면서 부쩍 잦아진 ‘통일을 배제한 평화공존’ 주장도 그런 논리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 이념에 입각한 일회성 통일론이야 분단체제론이 일찍부터 배제해왔고, 한반도 평화과정의 궁극적 목표로 단일형 국민국가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었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이냐 평화냐’라는 자의적 이분법을 설정해놓고 ‘통일 없는 평화’를 주창하는 것은 평화협정 달성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과제인지를 외면한 탁상공론에 불과할뿐더러 학문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자세다. 나는 그 대표적 논자 중 한분에 대해 이미 실명으로 비판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그 비판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진지한 비판이 다른 논자들에 의해서도 10여년간 지속되어왔는데도 그에 대한 정면대응 없이 똑같은 이분법을 되뇌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 진지성마저 의심케 한다는 것이다.10 물론 비판이 주로 ‘창비’ 주변의 논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주류학계로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음을 말해주지만, 6·15공동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의 정상이 일관되게 견지한 입장이 바로 그런 양분법을 넘어선 것임을 간과하는 주류학계야말로 현실의 주된 흐름으로부터의 소외를 자초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판문점선언 이후 한국 주류사회의 많은 인사들이 갑자기 ‘통일에서 평화로’를 외쳐대는 현상을 어떻게 볼까?11 본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담론의 공허함 때문이다. 남북연합 추진이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필수적 요건이고 시민참여를 통한 추진력과 창의성 발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며 그러자면 남쪽 사회도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지는 상황에 이르러, 비핵화는 미국의 압박과 협상에 맡기고 정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맡기며 장래의 남북관계는 외교부에 맡긴 채 시민들은 좀 가만있으라고 달래는 기능을 수행하는 논리가 아닌지 성찰해볼 문제인 것이다.

통일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려면 남북 사이의 모든 기존 합의는 물론 대한민국 헌법의 평화통일 조항들과 북측의 노동당규약 및 건국이념을 깡그리 부정하는 대역사(大役事)가 필요하기에 북에서나 남에서나 가망이 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억지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남북이 항구적 분단에 동의한 두개의 독립국가가 되었다 가정해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중·일·러·한 등 자신보다 훨씬 부강한 국가에 둘러싸인 채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숨 막히는 경쟁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수년 내로 물러날 트럼프 대통령의 호의가 큰 버팀목이 될 리도 없으며 한국 또한 다음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를 일이다. 최고지도자와 당이 알아서 해줄 테니 인민들은 따르기만 하고 ‘가만있으라’고 권유하는 일은 북측 체제의 한 속성이기도 하다고 생각되지만, 쳐들어가지는 않을 테니 통일 같은 건 생각도 말고 핵무기도 없이 인권탄압 시비에 계속 시달리는 동북아의 약소국으로 ‘가만있으라’는 주변국의 권유를 평양당국이 순순히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그건 ‘남의 나라’ 사정이라 치자. 대한민국은 어찌 되는가?

적대적인 분단국가가 경쟁대상인 이웃나라로 바뀌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종북’ 몰이가 크게 약화되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당한 개선을 가져오리라는 주장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거치며 입지를 굳혀온 세력들의 특권수호 의지는 여전할 것이며 ‘빨갱이’ 운운하는 색깔론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분단체제의 고질병 중 하나가 상대방을 욕하며 자기개혁을 회피하는 습성인데, 영구분단에 동의한 두 나라로 바뀐다고 해서 그런 습성이 사라질 확률은 낮다.

자본의 대북진출은 통일을 지향하는 경제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원활해지리라는 예상 역시 그 자체로는 그럴 법한 이야기다. 다만 온갖 이권을 선점하고 경험을 축적한 중국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어려울 때 도와준 러시아나 심지어 뒤늦게라도 식민지 배상금을 지급하는 일본에 비해서도 북한 당국이 경쟁국 한국에 얼마만큼 호의적일지 의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본의 북한진출로 이 나라 대중의 생활이 얼마나 향상될 것이냐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자들의 교섭력은 지금도 한국기업의 동남아 및 남아시아 진출로 심각하게 제약된 상태인데(일부 대기업노조들은 예외일 수 있지만), 아무런 범한반도적 조절장치 없이 여타 외국에나 마찬가지로 대북 자본진출이 이뤄진다면 국내의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환경 문제도 그렇다. 한편으로 남한 땅을 황폐화하던 개발세력이 활동무대를 북녘 땅으로 옮김으로써 우리가 한숨 돌리는 면이 없지 않겠지만, 더욱 막강해진 저들을 제어하기는 훨씬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환경운동이 남한기업이 북한에서 사업하면서 환경파괴를 자제하라고 요구한들 그게 먹히겠는가? 국가연합의 틀이 있어도 쉬운 일이 아니고 동아시아 및 지구적 연대의 도움이 있어야 다소나마 효력이 있을 터인데, 완전히 남의 나라라면 일종의 내정간섭이 되고 심지어 북의 경제발전을 방해하려는 남한 부르주아들의 책동이라는 비난마저 사기 십상이다.

성차별 문제는 어떤가? 전쟁위협이 제거되고 군비축소마저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가 약화되고 남성우월주의도 줄어들리라는 주장 또한 형식논리상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차별은 인류역사의 거의 모든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면면히 이어져온데다 말로는 만인평등을 표방하는 근대에 이르러 그것은 왕년의 공공연한 가부장주의보다 한층 음험하고 비열한 성차별주의로 진화한 면이 있다. 게다가 분단체제 아래 더욱 폭력적이며 대대적인 여성혐오로 번지고 있기조차 하다. 이 문제를 공존하는 두 성차별적 국민국가의 ‘쎌프개혁’에 맡겨서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남북연합으로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건 아니다. 그야말로 문명의 대전환을 수반하는 과제라 보아야 옳다. 하지만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창의적인 통일과정이라는 한반도체제의 변혁과 이에 수반되는 획기적인 시민참여를 외면해서는 해결은커녕 완화도 힘든 문제가 아닌가. 실행은 ‘이소성대(以小成大)’로 차근차근 해나가더라도 원(願)은 크게 세우고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 남녀를 불문하고 곳곳에 횡행하는 ‘갑질문화’라든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로 인해 일그러진 인간심성 등 평화공존 속 보통국가가 치유 못할 병폐가 너무나 많다. 다만 (거듭 말하지만) ‘평화공존 속 보통국가’라는 것 자체가 탁상공론이요 상상해본 가정일 뿐이므로 그걸 전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 것이며 어떻게 촛불혁명에 부응하는 남북연합을 만들까 하는 한층 실질적인 고민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5. 촛불혁명과 흔들리는 세계체제

 

촛불혁명이 과연 혁명인가 하는 첫머리의 질문을 아직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사실 이 물음을 나는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17년 초에 제기했었다. “‘촛불’은 분명히 기존의 혁명 개념과 동떨어진 면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바로 그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성격의 혁명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른다”12는 취지로 ‘촛불혁명’ 개념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같은 논지를 그해 연말의 신년칼럼 「촛불혁명과 촛불정부」(『창비주간논평』 2017.12.28)에서 조금 더 진전시켰고, 지난 5월의 국제토론회 기조발제 「촛불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남겨진 과제」에서 한층 본격적으로 다뤄보았다.

나의 지론인즉, 촛불항쟁을 통한 대통령탄핵과 정권교체가 모두 기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졌기에 기존의 혁명 개념에 미달함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교과서와 역사책에 없는 ‘분단한국의 특수성’이라는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체제〕에 따른 질곡 가운데 하나가 민주적 법치의 본질적 제약인바, 남한에서 1987년의 6월항쟁으로 군사독재가 종식된 뒤에도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흔들렸을 뿐이지 극복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공공연한 반민주적 헌법 대신에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크게 향상시킨 헌법이 만들어졌지만, 남북분단 상황에서는 반공·반북을 위해 헌법이나 법률을 안 지켜도 된다는 오래된 관행이 계속 작동해왔다. 성문헌법에는 안 보이는 일종의 이면헌법(裏面憲法)인 것이다. 그 폐해가 극대화된 것이 이명박·박근혜 시대의 민주주의 역행이요 국정농단이었다.

촛불항쟁은 그러한 이면헌법의 작동을 일단 정지시키고 민주적인 성문헌법을 가동하여 박근혜정권을 끝장냈다. 다시 말해 “헌법이 안 지켜지던 나라를 헌법이 지켜지는 나라로 바꾸는 한층 본질적인 혁명”(졸고 「새해에도 가만있지 맙시다」, 『창비주간논평』 2016.12.28)을 일으킨 것이다.13

 

이러한 혁명은 한국과 세계에서 모두 오랜 학습과정이 선행한 결과였다.14 특히 1919년의 3·1운동이 주목할 만한데 비록 일제당국의 무력진압으로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처음부터 비폭력시위를 수단으로 삼았던 운동이다. 동시에 3·1운동과 달리 대대적인 무력이 동원되었던 동학농민전쟁 역시 평화사상에 근거했다는 사실도 상기함직하다.15 아니, 일견 ‘테러리스트’로 분류 가능한 안중근(安重根)도 동양평화를 깊이 사색한 평화사상가였다.

그 전통은 분단 이후에 일어난 4·19혁명, 5·18민주항쟁, 6월항쟁 등에서도 지속되었다. 물론 이들 또한 당국의 폭력적 탄압으로 온전한 평화혁명에는 미달했다. 4·19는 경찰의 발포로 대대적인 유혈사태를 낳았고, 5·18은 계엄군의 무차별적 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무력항쟁으로 일시적인 평화세상을 만들었다가 처참하게 진압당했으며, 6월항쟁도 박종철, 이한열 등의 죽음과 수많은 부상자를 내고서야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2016~17년의 촛불항쟁이 드디어 철저히 평화적인 혁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선행학습에 더해 87년체제라는 전보다 한결 민주화된 정치지형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시민의 상호소통과 수평적 연대의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며, 이는 세계적인 대세와도 부합한다. 통신기술이 발달하고 인권의식이 퍼지면서 독재국가도 비무장 시민에 대한 폭력진압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고 있는데다가,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을 모범으로 삼는 종래의 혁명 개념에 대한 수정을 초래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었다. 1917년의 볼셰비끼혁명 이후로는 (민족해방전쟁의 성격을 겸했던 중국과 베트남, 꾸바, 니까라과를 빼고는) 폭력에 의한 고전적인 사회혁명이 성공한 사례를 보기 힘들어졌고, 러시아혁명 자체가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러시아의 체제전환으로 모델로서의 설득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대세를 타고 첨단의 성과를 거둔 것이 한국의 촛불혁명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분단한국의 특수성’이 곧 현존 세계체제의 모순이 집약된 현장이자 ‘약한 고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약한 고리를 깨는 공력을 쌓기 위해 한민족은 한말 이래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고 혹독하면서도 창의적인 학습과정을 거쳤다. 분단 이후에도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린 끝에 1987년의 시민혁명을 수행했으며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이론적·실천적 적공이 이어져온 것이다.

싱가포르회담이 북미화해의 첫 발걸음을 뗀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국전쟁 발발부터는 68년, 정전체제 성립 이후로는 65년 만에 양측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새로운 양국관계를 만들자고 합의한 것이다. 비핵화의 수순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하나, 세밀한 약정보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발전시키겠다고 합의한 점 자체가 오히려 더 획기적이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정녕 세계체제 자체에 균열을 일으키는 변화인가? 오히려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이 아닌가?

아마도 이 질문에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빌려 신중히 검토할 문제들인데, 다만 미국의 주류언론과 여야를 막론한 의회세력이 대북화해정책을 열심히 헐뜯고 있는 것만 봐도 그것이 오로지 트럼프 개인에 대한 반감의 표출만이 아닐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세계무역기구(WTO),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미국이 세계지배를 위해 그동안 공들여 만들어놓은 각종 기구와 장치를 거침없이 허물어온 트럼프가 대북봉쇄를 해제하는 또 한건의 사고를 치고 있다는 그들 나름의 진지한 우려를 담은 비판이 아닐까 싶다. 미국주도 세계체제를 위해서는 베트남전쟁보다 한국전쟁이 더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커밍스(B. Cumings)의 지론을 기억한다면 더욱이나 그렇다.16

동아시아만 보더라도 메이지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노선 이래 아시아의 분열이 수많은 역내 전쟁과 분쟁을 야기하며 세계체제의 패권구조를 지탱해왔는데, 지난 60여년 동안은 바로 한반도의 휴전선이 ‘일본과 나머지’의 단층선을 대표해왔고 그간 일본의 우경화와 무장력 강화도 그에 힘입어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적인 사건이 남북화해를 이끌어내고 남북화해가 다시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대변화에 동참하느냐 아니면 이를 거부함으로써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느냐 하는 위기를 불러옴에 따라, 일본의 아베(安倍)정권도 뒤늦게나마 북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형국이다. 세계적으로 얼마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흔들린 지는 꽤 오래되었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못 박는 게 능사는 아니다. 약탈적 자본축적의 전면화와 이에 따른 빈부격차의 확대,17 기후변화에서 실감되는 지구환경의 파멸적 변동, 탐(貪)·진(瞋)·치(癡)를 운행원리로 삼은 사회체제18 속에서 인간성의 황폐화, 전대미문의 기술발전에 대해 이를 맹종하든 ‘제어’하든 똑같이 기술주의적인 대응을 넘어서지 못하는 인간 지혜의 고갈 등을 보면서 바야흐로 문명의 대전환을 절실히 요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거대한 인류역사의 과제 앞에서는 촛불혁명조차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이고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 건설은 더욱이나 그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원이 클수록 실행은 ‘이소성대’로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에서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옳지 않겠나.

 

 

  1. 4·27판문점선언 이후 나는 비슷한 주제로 세번의 발표를 했다. 5월 24일에 열린 ‘촛불항쟁 국제토론회’에서 「촛불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남겨진 과제」라는 기조발제를 했고(자료집 『촛불항쟁 국제토론회: 광장민주주의와 사회변화 전망』, 퇴진행동기록기념위원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8.5.24), 6월 15일 제133차 세교포럼에서 ‘북미정상회담과 지방선거 이후 한반도, 그리고 시민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했으며, 7월 12일에는 한반도평화포럼의 제5기 한평아카데미에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과 한반도 평화’를 제목으로 강의했다(한반도평화포럼 소식지 『한반도의 아침』 2018년 7월 13일치; 『프레시안』에서는 2018년 7월 16일 ‘백낙청-최장집 한반도 평화체제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보도). 본고는 이 발표들의 연장선에 있고 일부 내용이 중복되며 때로는 그대로 원용하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2. ‘재개’는커녕 ‘시작’이라도 됐나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는 본고의 핵심논지에 해당되는 사안인데, 남북관계의 긴장이 아직 한창이던 작년 12월 중순 제1기 창비담론아카데미 수업에서 내가 “남북이 국가연합 준비작업을 재개하기까지는 길이 먼데…” 운운했을 때 한 참여자가 ‘재개’라는 표현에 대해 물었다. 나는 2007년의 정상회담 후에 이미 “아주 느슨한 연합기구에 해당하는 조처들이 많이 마련”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그 작업의 ‘재개’를 기대하는 뜻이라고 답했다(백낙청 외 지음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 창비 2018, 130면).
  3. 판문점의 상징성, 그리고 선언의 내용과 그 ‘구성적 프레임’의 특성에 관해 이정철 「흔들리는 판문점 그리고 평화로의 병진」, 『창작과비평』 2018년 여름호 참조.
  4. 나는 이명박정부 들어 북핵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부터 남북연합 건설작업이 비핵화를 위해 필수적임을 강조해왔다. 졸저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창비 2009) 서장 ‘시민참여 통일과정은 안녕한가’ 32~33면 및 『2013년체제 만들기』(창비 2012) 제5장 ‘“포용정책 2.0”을 향하여’ 121면 등. 남북연합의 필요성 자체는 6·15선언이 나오기 전부터 제기했었다(「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새 발상」〔『통일시론』 1999년 겨울호〕,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특히 제3절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국가연합 단계’ 참조).
  5.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일괄타결’의 불가능성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협상의 시간표를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북의 ‘시간 벌기’에 놀아나고 있다는 해석이 미국과 한국의 언론에 파다한데 이는 조리가 안 닿는 이야기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강연 「변화하는 북한, 어떻게 볼 것인가」(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 2018.7.21)에서 지적했듯이, 북이 시간을 벌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과거 같으면 핵무장을 위한 시간 벌기를 했을 법도 하지만, 경제발전에 매진한다는 당 노선을 결정하고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장거리미사일 발사기지를 해체하는 마당에 시간을 벌어서 무슨 핵무력을 향상하려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자신들이 원하는 보장을 받아내기 위한 협상전술이라면 물론 별개 문제다.
  6.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나도 참석한 특별수행단 오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의 반응을 전해준 바 있다(졸고 「2007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시민참여형 통일」,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199~200면).
  7. 「2007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시민참여형 통일」 201면. 이러한 나의 지론을 직업외교관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인해준 최근의 예가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강연 「남·북·미 협상: 현장의 경험으로 전망한다」(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 2018.7.28)이다. 그는 남한을 ‘안전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북한과 통일 후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선 베트남은 전혀 다른 상황이므로 베트남식 개발은 불가능하고 “긴 시간에 걸쳐 가치체계의 접근을 통해 공존/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리라고 전망했는데, 그가 남북연합을 상정한 것은 아니지만 남북연합에 준하는 정치적 타결과 이를 통한 상당기간의 상호접근 과정을 내다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남북연합이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가치체계의 접근”을 이루는 작업은 남북연합 형태로 공존/통합하는 ‘긴 시간’이 되긴 하지만, 그 작업은 시간의 흐름에 무작정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빨리 시작되는 낮은 단계 남북연합의 건설을 통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추진되는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8. 졸고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29면.
  9. 앞의 졸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새 발상」 82~83면 및 「6·15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평화」, 같은 책 20~21면 등 참조.
  10. 최근 나의 실명비판으로는 각주1의 『프레시안』 보도 참조. 양분법의 자의성·부적절성에 대해서는 일찍이 서동만과 유재건이 비판한 바 있고(서동만 「6·15시대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발전구상」,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219~22면 및 유재건 「역사적 실험으로서의 6·15시대」, 같은 책 288면: 후자는 『변혁적 중도론』(정현곤 엮음, 창비 2016)에 수록하면서 ‘한반도 분단체제의 독특성과 6·15시대’로 개제했는데 최장집 비판은 130면), 나 자신도 같은 의견을 「한반도에 ‘일류사회’를 만들기 위해」와 「분단체제와 ‘참여정부’」(『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180~83면 및 62~63면) 등에서 발표한 일이 있다. 그후 이승환도 비슷한 비판을 제기했으며(「분단체제 변혁의 전략적 설계를 위하여」, 제5절 ‘안보국가 규율의 상호협약으로서의 남북연합’, 『변혁적 중도론』 215면), 최근의 예로는 이일영의 「양국 체제인가, 한반도 체제인가」(『동향과전망』 2018년 봄호)를 들 수 있다. 현재의 휴전선을 안정된 국경선으로 바꿔야 평화가 온다는 주장 역시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아무런 방책이 없는 소망사항일 뿐인데, 휴전선을 국가연합의 북측 가맹국과 남측 가맹국 사이의 안정된 경계선으로 만드는 제3의 방안은 어째서 검토조차 안 하는지 모를 일이다.
  11. 한국사회의 여러면으로 합리적인 인사들이 다수 집결한 (재)한반도평화만들기는 그 첫 학술행사(2018.7.13)의 표어를 ‘한반도 패러다임의 대전환: 통일에서 평화로’라고 했고(물론 참석자 전원이 동의한 건 아니겠지만) 그중 한 참석자는 이후 중앙일간지에 시평을 발표하여, “평화는 통일을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다. 거꾸로 통일을 내려놓는 데서부터 참된 평화가 솟아난다. 평화가 목표다”(박명림 「패러다임 대전환: 통일에서 평화로(I)」, 중앙일보 2018.7.18)라고 역설했다. 이런 대목은 ‘통일에서 평화로’라는 논조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통일도 통일 나름인 점은 차치하더라도, 두 국가 사이의 전쟁 없는 공존이라는 의미의 (소극적) 평화는 한층 차원 높은 평화를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수단일 수도 있으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점진적·단계적 한반도 재통합을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거꾸로 통일을 내려놓는 데서부터 참된 평화가 솟아난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뿐더러, 마치 그동안 한반도의 전쟁위험이 오로지 남북 ‘민족주의자’ 탓인 듯이 몰아세우고, 통일을 내세웠다고 보기 힘든 미국이나 통일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바 없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결과가 된다. 나 자신도 “장기적으로는 역시 통일보다 평화다”라고 잘라 말한 적이 있지만, 이때 ‘장기적’에 강조 표시를 했고 “단순한 전쟁부재가 아니라 인류가 고르게 화합해서 잘사는 상태로서의 평화이며, 그때는 국가도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는 사라질 터라 ‘국가의 자주성’도 중·단기적 목표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리로 가기 전에 한반도 주민과 한민족은 분단체제극복이라는 중기 과제를 먼저 수행해야 한다”(「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백낙청 외 지음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창비 2015, 43면)라고 부연했다.
  12.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19면.
  13. 각주1의 자료집 12~13면.
  14. 이 단락 및 다음 단락 역시 같은 기조발제의 제5절 ‘세계사적 맥락’(자료집 16~17면)의 논의를 상당부분 원용했다.
  15. 동학연구자 박맹수 교수는 농민군 지도부의 ‘무장포고문(茂長布告文)’, 농민군의 행동규범에 해당하는 ‘사대명의(四大名義)’와 ‘십이개조기율(十二個條紀律)’, 그리고 ‘폐정개혁 이십칠개조(弊政改革二十七個條)’를 근거로 ‘전봉준의 평화사상’을 설파하고 있다(박맹수 「전봉준의 평화사상」, 『통일과 평화』 9집 1호, 2017년 6월, 72~98면).
  16. “한국전쟁의 발발이 미국 안보기구를 강화하는 데 대단히 중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의 최종적인 마무리는 과대성장한 미국 안보기구를 해체하는 데 커다란 압력을 줄 것이다. 이것이 한국전쟁이 베트남전쟁보다 역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또하나의 이유다.”(브루스 커밍스 「70년간의 위기와 오늘의 세계정치」, 이승현 옮김, 『창작과비평』 1995년 봄호 80면. 유재건은 각주10에 소개한 글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한반도 분단체제는 냉전의 낡은 유물이 아니라 그 본질적 면모를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는 체제인 셈”(『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280면; 『변혁적 중도론』 115~16면)이라고 덧붙였다.
  17. 신자유주의시대 자본주의의 약탈형 자본축적에 관해 데이비드 하비·백낙청 대담 「자본은 어떻게 작동하며 세계와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중 ‘새로운 제국주의와 “약탈에 의한 축적”’, 『창작과비평』 2016년 가을호 39~44면; 『백낙청회화록』 제7권(창비 2017) 444~49면 참조.
  18. 자본주의가 불교식 어법을 빌리면 탐·진·치로 운전되는 사회체제라는 주장은 졸고 「통일시대·마음공부·삼동윤리」(『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294~96면) 및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 18~20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