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오늘의 한국, 변모하는 사회운동

 

언론개혁운동의 과제와 전망

 

 

임영호 林永浩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민운동이 정치판을 바꾸고 있다. 총선시민연대는 정치인 물갈이를 16대 총선의 쟁점으로 제기해 선거판도에 큰 파장을 가져왔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단 기간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언론보도에서 이를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부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론은 낙선운동에서 ‘정치적 배후론’이나 ‘탈법·불법성’ 등을 제기함으로써 운동에 타격을 입히는 양면성을 드러냈다. 이는 언론이 사회운동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이다. 언론개혁운동은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사회부문의 모순을 개혁하는 데 목적을 둔다. 그렇지만 언론개혁은 언론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와 사회운동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이 점에서 언론개혁은 한국사회 전반의 개혁운동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지난 90년대에는 갖가지 형태의 언론운동이 나름대로 언론개혁을 모색했다. 이 운동들의 성격은 그 객관적 여건에 따라 계속 변화했다. 90년대의 언론운동은 어떤 구조적 문제점들을 개혁과제로 삼았으며, 이러한 모순에 대응해 어떻게 운동을 전개했는가? 이 운동들의 개혁이념은 어떤 특징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가? 90년대 언론개혁운동의 경험을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2000년대 언론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많은 함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언론개혁운동이란 무엇인가?

 

언론개혁운동은 어떤 매체를 개혁대상으로 삼는지에 따라, 또 개혁의 의미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구체적인 성격이 달라진다. 언론이란 용어는 신문이나 방송 등의 대중매체를 지칭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론이나 언론개혁이란 단어에는 ‘공공영역’(public sphere)의 기능과 같은 ‘규범적’ 차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지만 언론이 이러한 기능을 실제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회제도로서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효과적인 언론개혁 전략을 수립하려면 언론의 규범적 이상이 현실적 존재양식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는지 이해해야 한다.

언론매체의 제도적 존재양식은 시장, 국가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신문매체는 공공영역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시장에서 신문을 판매해 얻는 수입으로 운영되는 독립된 사기업 형태를 띤다. 따라서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지만, 시장논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반면에 방송매체는 소유와 운영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여러 세력들의 통제를 받는다. 특히 전파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국가는 전파관리의 명분으로 제한된 방송사에만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이를 관리하는 권한을 행사한다. 방송사의 구체적 소유, 운영방식은 공영제와 상업방송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순수한 상업방송이라 해도 채널 이용이라는 특권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하므로 시민사회의 압력과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방송의 공공성은 이같은 제도적 위상에서 비롯된다. 신문과 방송의 이러한 제도적 차이 때문에 언론개혁을 위한 과제나 운동양식 역시 매체마다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90년대의 언론운동에서 ‘언론개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시기의 다양한 언론운동은 추구하는 개혁의 의미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 언론매체의 문제 개선을 지향하는 개량주의적 운동인 ‘시민언론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 매체의 개혁이 아니라 대안매체에서 사회 진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민족민주언론운동’이다.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언론개혁운동인 민족민주언론운동은 1987년 이후 『한겨레신문』이나 『말』지, 각종 노동자신문 등이 활기를 띠면서 한때 주목을 받았지만 90년대에 들어와 급진적인 사회운동의 쇠퇴와 함께 점차 퇴조했다.1

90년대의 언론개혁운동은 시민언론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한 ‘언론인단체 운동’, 특히 언론노동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된 ‘수용자운동’이다. 이 둘은 기존의 제도적 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점진적 개량을 통해 개혁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90년대의 언론노동운동과 수용자운동은 비슷한 이슈와 이념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모두 시민언론운동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2

언론인단체 운동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주로 국가권력의 간섭에 대항해 언론의 독립성을 지키는 데 주력했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나 기자협회 등은 이러한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언론사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1988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출범하면서 언론인단체 운동은 강력한 조직과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는 노동조건 개선 등 노동조합 본래의 활동 외에 언론의 정치적 기능과 관련된 사안을 놓고 투쟁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이는 언론계 ‘내부로부터의 개혁운동’으로, 언론사 내부에서 자본의 전횡을 막고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정착시켰다. ‘편집권’이 권리로서 인정받고 노사가 같이 편집정책의 문제를 논의하고 평가하는 ‘공정보도위원회’가 제도화된 것도 이 운동의 성과다. 그렇지만 언론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언론노동조합 중심의 언론개혁운동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우선 시민사회 영역의 성장과 제도정치권의 활성화로 대대적인 항쟁을 유발할 만한 정치적 쟁점이 감소했고, 시장경쟁의 격화로 단위노조들의 ‘자사이기주의’가 싹터 단체행동이 점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수용자운동은 언론계 바깥에서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언론개혁운동이다. 수용자운동은 1986년의 ‘시청료거부운동’에서 시작해 90년대에 들어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스포츠신문 음란폭력 항의운동’(1990) ‘선거보도감시운동’(1992) ‘TV끄기 운동’(1993) 등이 두드러진 사례들이다. 시민단체의 언론운동 내에서도 세분화가 이루어져 어떤 것들은 아주 전문적이고 정치적 성격이 희박한 영역을 다루는 전문적인 매체운동으로 분화되었다.

언론노조운동과 수용자운동은 상시적 조직과 동원인력을 확보함으로써, 90년대의 언론개혁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두

  1. 김동규 「언론운동과 언론민주화」, 한국사회언론연구회 엮음 『현대사회와 매스커뮤니케이션』, 한울 1996, 436〜38면.
  2. 강상현 「정보화시대의 시민언론운동: 현단계 운동평가와 미래전망」, 『한국사회와 언론』 3호, 1993, 96〜9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