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촛불 5년, 새로운 진전을 위하여

 

언론개혁, 어디까지 왔나

개혁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성재호 成在鎬

KBS 기자, 방송기자연합회장.

jhsung@kbs.co.kr

 

 

언론개혁 논란이 한창이다.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해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물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전세계에서 꼴찌라는 한국의 언론 신뢰도 조사 결과도 언론개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한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확산되는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언론개혁의 목소리는 큰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더욱 높아졌다. 2년 전 조국사태 당시엔 ‘검언유착’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그보다 전에는 방송장악이 화두로 떠올랐다. 세월호참사 오보 이후 모멸적 수준인 ‘기레기’로 전락해버린 한국 언론은 촛불혁명을 거치며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 보였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개혁 요구가 봇물처럼 터진 것은 단지 언론이 권력의 부정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세월호참사를 비롯해 4대강, 천안함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사건과 이슈를 공동체의 이익과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시민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것, 즉 언론이 민주주의의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줄탁동시

 

줄탁동시(啐啄同時), 알에서 다 자란 병아리가 때가 돼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껍데기 안쪽을 부리로 쪼면, 어미 닭은 밖에서 알을 쪼는 것을 말한다. 이 사자성어를 처음 들은 것은 19대 대통령선거를 얼마 앞둔 2017년 4월 말, 문재인 대통령후보자와 전국언론노조가 미디어정책협약서를 체결하던 자리였던 것 같다. 노조 간부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쌓인 언론적폐 청산, 구체적으로는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공영방송 경영진의 청산과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 개정 등을 요구하자, 문 후보자가 이 사자성어를 꺼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론노조 KBS 본부장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필자는 당시 ‘줄탁동시’에 대해 이렇게 이해했던 듯하다. 정치권력에 기대기 전에 ‘공영방송사 구성원 스스로 먼저 내부에서 싸워야 한다’고. 마치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껍데기 안에서 부리로 쪼듯이.

2017년 5월, 정권은 교체됐고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과 과업을 이어받은 촛불정부를 자임했다. 그해 9월 4일 공영방송사인 KBS와 MBC 구성원들은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적폐 경영진의 퇴진과 정상화를 위한 동시 파업에 돌입해 MBC는 72일 만에, KBS는 142일 만에 사장 등 기존 경영진의 퇴진을 이끌어냈다.

 

 

잘못 낀 첫 단추

 

촛불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던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다음 날인 2017년 3월 11일, 촛불시민의 염원을 담은 10대 분야 100대 개혁과제를 발표하여 촛불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언론개혁은 자유권과 함께 열번째 분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혁과제는 이른바 ‘언론장악 방지를 위한 4대 법안’의 입법이 전부였다. 당시 언론장악 방지 4대 법안은 KBS, MBC, EBS, 연합뉴스 등 공적 소유 언론사들의 13인 이사 구성을 여야가 7 대 6 비율로 추천하는 구조로 변경하고, 사장 선출과 같은 중대 사안의 결정에 이사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는 ‘특별다수의결제도’를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도입하는 것이 골자였다.

지금 보면 이사회를 여야가 나눠 먹음으로써 공영언론의 정치적 예속을 영구화할 수 있는 이 법안이 어떻게 개혁 진영에서 주창되고 추진됐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현재 전국언론노조 등 개혁 세력은 공영언론 이사회의 구성과 사장 선출 절차에서 국회와 정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개입을 완전히 차단하고 시민이 직접 경영진 선출에 참여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당시와는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모순된 상황이 전개된 이유는 이른바 ‘언론장악방지법’이 박근혜정부 시절 정치권력에 장악된 KBS와 MBC를 조금이라도 정상화시켜보려는 임시방편적 처방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잇달아 배출한 한나라당 세력은 이명박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임기가 끝나지 않은 사장을 비롯해 기존 공영방송 경영진을 강제로 쫓아낸 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장과 이사들을 앉혔다. 2016년까지 9년 동안 이어진 공영방송 장악의 서막이었다. 정권의 은혜를 입고 임명된 공영방송의 사장과 이사들은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보도를 하도록 직·간접적인 통제를 가했다. 그 결과 용산참사와 4대강 개발, 세월호참사 등에서 참혹하리만큼 친(親)정권적인 보도와 사실 은폐, 축소, 오보가 양산됐다.

이런 상황 속에 2016년 4월, 기대치 않은 야권의 총선 승리는 박근혜정부하에서 신음하던 공영방송을 조금이나마 정상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됐다. 총선 직후부터 공영방송법 개정을 통한 정상화 노력이 전방위로 시작됐고, 20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그해 7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간사였던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을 대표로 하여 민주당·정의당 등 국회의원 과반에 해당하는 162명의 이름으로 ‘언론장악방지법’이 제안됐다.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등 이 법안들은 촛불시위를 거치며 그해 11월 담당 상임위인 미방위에 상정됐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진척을 보지 못했다.

당시 공영방송 노동조합과 언론개혁 세력이 이러한 법 개정을 추진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계속된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반작용적 성격이 강하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여야 7 대 6 이사 추천이라는 ‘나눠 먹기’식 개정을 통해서라도 공영방송이 특정 정치세력의 일방적인 통제에 휘둘리지 않고자 함이었다. 또한 법 개정이 이뤄지면 그에 따라 사장을 비롯한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해야 하므로, 당시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KBS와 MBC 사장을 조기에 축출할 수 있었던 점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치세력 간 균형을 이루고 특정 세력의 장악을 막는다고 해서 공영방송이 진정 정치적 독립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보도 및 제작이 외부의 통제와 간섭,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아가 공영언론의 정치적 독립만으로 우리 언론 전반이 민주주의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고민조차 없었다. 촛불혁명을 주도한 퇴진행동이 언론개혁 과제로 언론장악방지법 통과만을 제시한 것은 이처럼 임시방편적인 언론개혁 방안을 숙려와 고민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와중 2017년 5월 정권은 교체됐고,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7 대 6 이사 구성 방식의 개정안에 부정적이라는 얘기가 전해졌다.1 이후 여당이 된 민주당에서는 더이상 언론장악방지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경영진 교체를 도모하려던 KBS와 MBC 본부를 포함한 전국언론노조는 총파업을 통해 공영방송 정상화를 도모하기로 방향을 수정했다.

 

 

  1. 「與, 방송법 개정안 대안 검토키로…“곧 이효성 만나 논의”」, 연합뉴스 2017.8.25.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