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지영 田志映

1983년 경북 포항 출생. 2023년 조선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jjyoung314@naver.com

 

 

 

언캐니 밸리

 

 

당신의 목적지는 언제나 청한동 꼭대기였다. 저택이 줄줄이 이어진 언덕을 차로 오분 정도 올라가면 그 집이 보였다. 크기가 다른 자갈을 촘촘히 이어 붙인 외벽 덕분에 멀리서도 단번에 그 집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새벽 야간 운행을 마친 뒤 그 집 담벼락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다. 언덕에서 행인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검은 세단이 지나가거나 담 너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때야 비로소 이 동네에 사람이 산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차에서 내리면 이 도시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청량한 공기가 코로 밀려들었다.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선 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맞은편 산등성이를 따라 가로등이 켜진 스카이웨이가 보였다. 나는 턱 밑까지 점퍼 깃을 올렸다. 벽돌이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이 잘 벼린 칼날처럼 등을 찔렀다. 압도적인 높이의 담에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 때는 두렵기보다 무기력해졌다. 내가 당장 여기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과연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작업실로 돌아오면 아침 일곱시였다. 내 작업실은 청한동에서 차로 사십분 떨어진 동네에 위치했다. 청한동은 도시의 북쪽, 작업실은 서남쪽 구석이었다. 내 작업실은 낡은 상가 건물 2층이었다. 아래층에는 영업한 지 이십년 된 통닭집이 자리했다. 가게는 보통 오후 네시에 문을 열지만, 새벽 공기에는 항상 기름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도시의 지대는 북쪽에서 서남쪽을 향해 미세하게 내려앉은 모양새였다. 청한동은 북쪽에서도 가장 지대가 높은 지역이었다. 도시 어느 곳에서든 멀지만 또렷하게 보였다. 한마디로 청한동은 달과 같았다.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곳이었다.

비가 내릴 때는 지대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곤 했다. 청한동 언덕에서 낮은 지대로 빗물이 흘러내릴 때, 통닭집에는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올여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장과 나는 비를 맞으며 손으로 배수구를 팠다. 낙엽과 쓰레기가 끝도 없이 손에 잡혔다. 가게 안에 고인 물에는 묵은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고무대야로 물을 퍼내는 동안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사정없이 몸이 떨리자 청한동에서 피운 담배 한모금이 더욱 간절해졌다.

작업실에 돌아오면 구석에 놓인 일인용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조악한 스프링으로 만들어진 매트리스는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요란스럽게 삐거덕거렸다. 침대 옆에는 그간 그린 스케치와 팔리지 않은 캔버스 패널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갔다.

졸업 후 내가 판 그림은 딱 한점이었다. 그것은 당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 작품은 최근 열린 개인전 마지막 날 팔렸다. 익명의 구매자.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의 이름을 몰랐다. 큐레이터는 내 작품을 산 사람이 실소유자가 아닌 대리구매자 같다고 했다. 대리구매는 흔한 일이니 굳이 자세히 알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야간택시 운전은 나의 유일한 밥벌이였다.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스케치 작가라고 답할 수 없었다. 그림을 판 돈으로 먹고산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심야배달도 해봤지만 석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편의점에서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렀고, 오토바이 위에서는 너무 빨리 흘렀다. 택시 안에서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라디오를 듣거나 눈 붙일 겨를도 생겼다. 운이 좋을 땐 경치가 괜찮은 길을 달릴 수도 있었다. 사납금은 도시 근교로 나가는 손님을 네명 정도 태우면 절반쯤 메울 수 있었다. 앱 연동 콜택시 시스템 덕분이었다. 앱을 요령껏 이용하면 빈 차로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뿐더러 장거리 손님을 태우는 일도 훨씬 수월했다.

나는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운수회사에 보급해준 택시를 몰았다. 내가 모는 택시는 왜소증을 가진 사람이 운전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었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에 다리가 닿지 않기 때문에 페달 대신 핸드 컨트롤러가 장착되었다. 나는 장애인등록증이 없었지만 구인을 서두르던 사장이 눈감아줬다. 내게 있어서 배려란 주로 상대편 사정이 급할 때 베풀어지곤 했다.

스케치 주제는 택시에 탄 손님이었다. 나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서 룸미러에 비친 손님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리고 손님이 없는 시각에 차를 세운 뒤 보조석 수납함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휘발했다. 따라서 작업은 대부분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기억의 왜곡 덕분에 가끔 예상치 못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룸미러로 손님과 눈이 마주치면 혹시 불편한 건 없느냐고 능청스럽게 물었다. 의미 없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열명 중 아홉은 경계심을 낮추었다. 나머지 한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선을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룸미러를 통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승객의 하관과 어깨선 일부였다. 얼굴 전체를 볼 수 있기도 했다. 좌석에 몸을 푹 파묻은, 만취한 사람의 경우였다. 술에 취한 사람은 얼굴에 드러나는 사연이 모호했다. 얼굴만 봐서는 진심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술에 취하면 진심이 드러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대개는 진심보다 야만성이 드러나곤 했다.

룸미러로 볼 수 없는 부분은 나중에 상상으로 그려넣었는데, 주로 강한 이미지를 가진 동물을 동원했다. 이를테면 부엉이의 눈, 말의 다리 같은 동물의 신체 일부를 차용했다. 동물 다리에서 배와 등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근육, 뻣뻣한 털, 사막처럼 퍼석하게 갈라진 피부, 동공이 큰 눈동자, 주름진 눈꺼풀을 최대한 세밀하게 그려넣었다. 정밀하게 표현된 동물의 신체는 그림에 힘을 불어넣었다. 나는 강한 이미지와 약한 이미지의 조합에서 나오는 뒤틀린 균형이 마음에 들었다. 결핍은 강한 힘과 맞붙을 때 아름다움을 불러낸다고 믿었다.

역겹다. 그만해라. 졸업전시회에 온 동기가 문자를 보내왔다. 또다른 동기는 변태라는 두글자만 보냈다. 그나마 지도교수는 정중한 편이었다. 조금 더 가려보세요, 김군. 다 드러내는 건 결코 아름답지 않아.

동기들은 아무도 네 그림을 사지 않을 거라 했다. 전업작가로 살겠다는 내 의지를 비웃었다. 그 비웃음에서 악의를 압도하는 혐오감이 느껴졌다. 손님 없는 밤길을 달리다보면, 그들의 말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럴 때는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쓸쓸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

 

2월 말 즈음이었다. 누군가 작업실 철문을 정중하게 두드렸다. 그 사람은 자신을 청한경찰서에서 나왔다고 소개했다. 너는 살면서 경찰과 판사만 만나지 않아도 인생 성공한 거다. 엄마는 술에 취하면 내 좁고 굽은 어깨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그렇게 말했다. 엄마 말대로라면, 이제 나는 성공한 삶의 최소 조건조차 만족시키지 못하게 된 셈이었다.

작업실에 들어온 경찰은 뜸 들이지 않고 장신영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경찰은 휴대전화에 담긴 증명사진 한장을 내밀었다. 사진 속 여자는 분명 당신이었다. 한참 만에 당신의 이름이 장신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는 이름은 달랐다. 당신은 자신을 김승민이라고 소개했고, 모든 SNS 플랫폼에서 김승민이라는 이름을 썼다.

경찰은 1월 22일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들어서 아시지요? 그가 물었다. 청한동에서 그 정도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모를 리가 없지 않냐는 투였다. 당연히 알았다. 묻지 마 염산 테러 사건.

이 도시에서는 하루에도 대여섯건씩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라디오 정시 뉴스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아버지를 때린 이십대 아들과 상습적으로 이웃집 앞을 서성이던 여자가 구류되었다. 내일 더 심한 뉴스가 들려와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는 오늘의 사건이 어제의 사건을 덮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빠르게 잊었다.

그러나 염산 테러 사건은 조금 달랐다. 청한동의 물리적 위치와 인식 때문이었다. 청한동은 도시에서 완전히 분리된 동네였다. 사람들은 청한동 언덕에 사는 사람들의 안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안전한 삶을 누릴 거라 여겼다.

“생각보다 보안이 허술한 곳이죠.”

경찰이 말했다. 담벼락 모서리나 쪽문 근처에는 CCTV 사각지대가 많을뿐더러 아예 방범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집도 있다고 했다. 마크만 붙여놓고 요금을 내지 않아서 서비스가 종료된 경우였다.

경찰은 사고 전 당신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나라고 했다. 당신은 그날 밤 청한동 꼭대기 근처에서 괴한이 뿌린 염산을 뒤집어쓰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농도 35퍼센트, 2리터가량의 염산이었다. 당신의 비명소리에 잠자던 개들이 동시에 짖었다.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동네 주민 중 한 사람이 전화로 경찰에 신고했다. 목격자는 없다고 했다. 당신이 얼굴을 부여잡고 아스팔트를 뒹구는 동안, 아무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당신은 어깨, 팔, 얼굴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각막에 염산이 흘러들어가서 시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의식이 돌아온 지 나흘째지만,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입술과 턱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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