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경숙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리진』 『바이올렛』 『외딴방』, 소설집 『종소리』 『감자 먹는 사람들』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이 있음.

 

 

장편연재 3

엄마를 부탁해

 

 

제3장 나, 왔네

 

굳게 잠겨 있는 파란 대문 앞에 젊은 여자가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 누구요?

당신이 뒤에서 기침소리를 내자 젊은 여자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머리를 뒤로 묶고 매끈한 이마를 지닌 여자의 눈에 반가움이 실렸다.

- 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라보자 젊은 여자가 미소지었다.

- 여기가 박소녀 아주머니 댁이지요?

오래 비워둔 집 문패엔 당신 이름만 달려 있다. 박소녀. 아내를 두고 할머니라 하지 않고 아주머니라 칭하는 소리를 오랜만에 듣는다.

- 무슨 일로?

- 아주머니 안 계세요?

- ……

- 정말 실종되신 거예요?

당신은 젊은 여자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누구요?

- 아, 저는 남산동의 소망원에 있는 홍태희라고 합니다.

홍태희? 소망원?

- 고아원이에요. 아주머니가 너무 오래 나오시지 않으셔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걸 봤어요.

젊은 여자가 당신에게 내미는 건 아들이 낸 신문광고였다.

- 어찌된 일인가 궁금해서 몇번 왔었는데 늘 문이 잠겨 있었어요. 오늘도 그냥 돌아가야 하나 했는데… 어찌 된 건지 얘기나 좀 들어보고 싶어서. 책을 읽어드려야 하는데……

당신은 대문 앞에 놓여 있는 돌을 들어내고 열쇠를 꺼내 대문을 땄다. 오래 비워둔 집 대문을 손으로 밀면서 혹여 싶어 안에 기척을 살폈다. 조용하다.

당신은 홍태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젊은 여자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책을 읽어드리기로 약속했다니? 아내에게 말인가? 당신은 아내로부터 소망원 이야기도 홍태희라는 이 여자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홍태희는 마당으로 들어서자 안을 향해 아주머니? 하고 불렀다.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 대답이 없자 홍태희의 얼굴이 조심스러워졌다.

- 집을 나가셨어요?

- 아니오, 잃어버렸어요.

- 네에?

- 서울서 잃어버렸단 말이오……

- 아주머니를요?

홍태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내가 십여년 전부터 소망원에 와서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빨래를 하고 소망원 마당에 농사를 지어주기도 한다고 했다. 아내가? 홍태희는 아내가 한달에 사십오만원씩 소망원에 후원금을 내고 있는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다. 몇년째 단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사십오만원씩? 서울의 자식들이 얼마씩 걷어서 매달 아내 앞으로 보내는 돈이 육십만원이었다. 자식들은 시골 살림이니 그 돈이면 두 사람이 쓰고 살 정도는 되려니 여기는 듯했다.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 돈을 아내는 처음엔 당신과 나눠 쓰더니 어느날부턴가 이 돈은 자신이 다 쓰겠다고 했다. 왜 갑자기 돈 욕심이 생겼는지 의아했지만 아내는 어디다 쓰는지 용도는 묻지 말라고 했다. 자식들을 다 키워냈으니 그 돈을 쓸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래 생각해둔 말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돈을 쓸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어투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아내의 말투가 아니었다. 일일연속극에서 들었던 말 같기도 했다. 아내가 며칠을 혼자서 그 말을 허공에다 대고 연습해보았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언젠가 아내가 논 세마지기를 자기 명의로 해달라고 한 때가 있었다. 왜 그러느냐 물으니 인생이 허망해서 그런다고 했다. 자식들이 다 제 갈 길을 가고 나니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오월 어버이날인가 자식들 누구로부터도 연락이 없던 다음 일이었다. 아내는 읍내의 문구점에 나가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씌어진 리본이 달린 카네이션 두송이를 사왔다.

- 누가 볼 깜습소!

신작로에 서 있는 당신을 집으로 가자 하더니, 집에 와서도 방 안으로 들어가게 하더니 문을 걸어 잠그고 당신의 점퍼 앞자락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 내가 자식이 몇인디 오늘 같은 날 꽃 한송이 안 달고 댕기믄 사람들이 뭐라겄소이. 그래서 사왔소이.

아내는 자기 옷 앞자락에도 자기가 사온 꽃을 달았다. 꽃이 자꾸 아래로 처지자 두번이나 반듯하게 다시 달았다. 당신은 대문을 나서자마자 꽃을 떼어버렸으나 아내는 종일 그 꽃을 달고 다녔다. 그러곤 그 다음날은 끙끙 앓아누웠다. 한 며칠 잠을 설쳐가며 뒤척이더니 벌떡 일어나 논 세마지기를 자기 박소녀 앞으로 해달라고 했다. 당신이 우리 논은 다 당신 논인데 새삼 세마지기를 명의로 해달라니 그건 당신이 손해 보는 일이라 했더니 그런 거 같소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자식들이 보내오는 돈을 모두 자신이 써야겠다고 말할 때의 아내는 단호했다. 아내의 기세에 뭐라 반론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랬다간 큰 싸움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조건을 달았다.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을 아내가 다 차지하는 대신 당신에게서 돈을 타가는 일은 없기로. 아내는 선선히 그러마고 했다. 옷을 사 입는 것 같지도 않고 따로 무엇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슬쩍 통장을 보면 같은 날에 꼬박꼬박 사십오만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어쩌다 돈이 늦게 들어오면 형제들이 보내는 돈을 모아서 다시 아내에게 부치는 딸애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보내달라고까지 했다. 그것도 아내다운 일은 아니었다. 어디다 그 돈을 쓰는지 묻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묻진 않았지만, 매달 똑같은 날에 사십오만원씩 정확히 돈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아 허망하다더니 돈을 모으려고 적금을 드는가 보다 생각했다. 못 찾았지만 그리 믿고 적금통장을 적극적으로 찾아본 적도 있었다. 홍태희의 말대로라면 아내는 그동안 육십만원 중 사십오만원을 남산동의 소망원에 후원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당신은 아내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홍태희는 자기보다 아이들이 아주머니를 더 기다린다고 했다. 아이들 중에 균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엄마 역할을 아주머니가 다 하고 있어서 특히 균이가 갑자기 아주머니가 고아원에 나오질 않으니 상심에 빠져 있다고 했다. 태어난 지 육개월도 안되어 이름도 없이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인데 아주머니가 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균이는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고 했다. 중학생이 되면 아주머니가 책가방과 교복을 사주기로 했다고도 했다. 균이. 당신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당신은 홍태희의 얘기를 가만 듣고만 있었다. 아내가 남산동의 고아원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가 벌써 십년째라는데 당신은 그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당신이 잃어버린 아내가 홍태희가 말하는 박소녀 아주머니이기는 한지 의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언제 소망원엘 다녔단 말인가? 왜 그런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당신은 아들이 낸 신문광고에 난 아내의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서랍 깊숙이 들어 있는 앨범을 꺼내 넘기다가 아내의 얼굴이 크게 박힌 사진을 한장 떼어냈다. 아내가 바닷가 방파제 위에서 딸과 함께 바람에 자꾸만 벗겨져 내려가는 옷자락을 부여잡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당신은 홍태희의 눈 앞에 사진을 들이밀었다.

- 이 얼굴이 맞소?

- 어마! 아주머니!

아내의 선명한 사진을 보더니 홍태희는 아내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갑게 아내를 불렀다. 햇볕 때문인지 이마를 찌푸린 채인 아내가 당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래,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니? 그건 무슨 얘기요?

- 소망원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하셨어요. 아이들 씻겨주는 일을 제일 좋아하셨어요.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아주머니가 왔다간 날은 소망원이 반짝반짝했어요. 무엇으로 감사드려야 하나 싶어 뭐 도와드릴 게 없냐고 물어도 그런 거 없다고만 하시더니 어느날 이 책을 가져오셔서 한시간씩만 읽어달라고 하셨어요. 좋아하는 책인데 눈이 나빠져서 이젠 책을 못 읽으신다며.

- ……

- 이 책이에요.

당신은 홍태희가 가방에서 꺼내놓는 책을 응시했다. 딸애가 쓴 책이었다.

- 이 작가가 이 지방 출신이에요. 중학교까지 여기서 다녔대요. 그래서 아주머닌 이 작가를 좋아하시는 거 같던데… 지난번에 읽어드린 것도 이 작가 책이었거든요.

당신은 딸애가 쓴 책을 집어들었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하여. 아내가 딸애의 소설을 읽고 싶었구나. 당신에겐 한번도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었다. 당신은 아내에게 딸애가 쓴 글을 읽어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식구들은 아내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당신이 아내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내는 모욕을 당한 얼굴이었다. 아내는 당신이 젊은 날 집 바깥을 떠돈 일, 당신이 이따금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일, 당신이 아내에게 당신은 알 것 없어!라고 언성을 높이는 일들을 죄다 자신이 글을 몰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아니었으나 부정할수록 아내는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당신은 이제서야 아내의 말처럼 사실은 자신이 은연중에 그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이 아내에게 딸의 소설을 읽어주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젊은 여자 앞에서 글을 모른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내는 얼마나 애를 썼을까. 얼마나 딸의 소설을 읽고 싶었으면 이 젊은 여자에게 이 소설을 쓴 작가가 내 딸이라는 말을 못하고 눈이 보이지 않으니 책을 읽어달라고 했을까. 당신의 눈이 시어졌다. 이 젊은 여자에게 딸을 자랑하고 싶은 걸 아내는 어떻게 참았을까.

- 참, 나쁜 사람이오.

- 예?

홍태희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당신을 바라봤다. 그렇게 읽고 싶었으면 나에게 읽어달라고 할 일이지. 당신은 메마르고 거친 당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아내가 딸이 쓴 책을 읽어달라고 했으면 그때의 당신이 읽어주기는 했을까? 아내를 잃어버리기 전에 당신은 아내를 거의 잊고 지냈다. 잊고 지내지 않을 때는 대부분 무엇을 청하거나 탓하거나 방치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공손한 말씨를 쓰다가도 아내에게만 오면 말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가끔은 이 지방 사람들만이 쓰는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당신은 공손한 말투는 아내에게 써서는 안된다고 어디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랬다.

 

- 나, 왔네.

홍태희가 돌아간 후 빈집이 되고 당신이 웅얼거렸다.

 

당신은 젊어서도, 결혼해서도, 자식이 생긴 후에도 이 집을 떠날 생각을 했다. 이 나라 땅 남쪽에 별 특징 없이 붙어 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이 집에서 살다가 늙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고독해졌다. 그럴 때면 말도 없이 이 집을 나가 팔도를 떠돌아다녔다. 제사 때가 되면 유전자가 시키는 것처럼 이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나가 몸이 아파 운신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기신기신 다시 돌아왔다. 몸이 회복되면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웠다. 그 오토바이에 아내하고는 생판 다르게 생긴 여자를 태우고 이 집을 다시 떠나기도 했다.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이 집 따위는 다 잊고 내질러 가서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세 계절을 못 넘겼다.

 

집을 떠나 낯선 것에 익숙해지면 어김없이 아내가 쉴 새 없이 기르는 것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강아지들이 닭들이 캐도 캐도 또 나오는 감자들이… 그리고 자식들이.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냈던 아내가 당신의 마음 안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후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당신은 이제서야 근 이삼년 동안의 아내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해냈다. 아내는 무감각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놓이곤 했다. 아내는 마을의 아주 낯익은 길에서도 집을 찾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곤 했다. 오십년 동안 사용해온, 집 안의 아주 낯익은 솥이나 항아리를 도대체 이게 무엇이지? 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다. 빠진 머리카락이 집 안 아무데서나 나뒹굴었다. 매일 보는 일일연속극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으로 시작되는 몇십년 동안 입에 달고 부르던 노래를 잊었다. 아내가 당신을 잊은 것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도.

 

그것만은 아니었다.

 

아내는 한없이 잦아들던 물속에서 무언가를 되찾은 듯 어떤 것을 세밀하게 기억해내기도 했다. 당신이 언젠가 집을 떠날 때 광 문틈에 끼워두고 갔던 돈을 싼 신문지까지. 사는 동안 말을 못했지만 떠나면서도 그 문설주에 돈을 남겨두고 가서 고마웠다고 했다. 신문지에 돌돌 말려 있던 그 돈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 시절을 어찌 살아냈을지 모른다고도 했다. 아내는 가족사진을 다시 찍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번에 찍은 가족사진에 작은딸이 막 낳은 아이가 빠졌다며.

 

당신은 이제야 아내의 혼란 상태를 방치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아내가 두통으로 머리를 싸매고 혼절해 있을 때도 당신은 아내가 잠을 자는 중이라고 여겼다. 아무데나 누워서 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내는 아내가 방문마저 열지 못해 쩔쩔맬 때조차 당신은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퉁박을 주었다. 아내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당신은 아내의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시간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가 빈 돼지막 밥그릇에 젊은 시절 한때 길렀던 돼지 이름을 부르며 밥을 말아 갖다 붓고 그 앞에 앉아 이번엔 새끼를 한마리 말고 세마리는 낳아라… 그러면 참 이쁘겠다… 웅얼거릴 때도 당신은 아내가 싱겁게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돼지는 새끼를 세마리 낳았다. 그 새끼 세마리를 팔아 아내는 형철이에게 자전거를 사주었다.

 

- 안에 있는가? 나, 왔네!

당신은 빈집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귀를 기울였다.

- 인제 오요!

당신을 반기는 아내 목소리를 기대했으나 빈집은 적막했다. 바깥일을 보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 왔네! 하면 어김없이 이 집 어디선가 얼굴을 내밀던 아내.

- 어찌 그리 술은 못 끊소? 나 없인 살어도 술 없인 못 살 것이구마는. 자식덜이 전화질 헐 때마다 그리 걱정을 해쌌느마는 그깟 것을 못 끊고 그러요!

헛개나무 달인 물을 당신 앞에 내밀면서도 아내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 어데 한번만 더 술 마시고 오믄 내가 집을 나가버리든지 할 것이구마는… 저참에 병원서 의사가 안 그럽디여. 당신한티는 술이 젤 안 좋다 안합디여. 세상이 얼매나 좋아졌는디 이 좋은 세상 더 안 보고 撓으면 계속 마시등가.

어쩌다 사람들과 점심밥 먹으러 나갔다가 낮술을 한잔 하고 오면 세상이 뒤집어지기라도 한 듯 낙망하던 아내였다.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흘려버리던 아내의 잔소리가 이리 그리워질 줄은. 그 잔소리를 들으려고 기차에서 내려 역앞 순댓국집에 들어가 괜한 낮술을 한잔 마시고 오기까지 한 당신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은 옆마당쪽 샛문 옆의 개집을 바라보았다. 개라도 기척을 낼 텐데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개줄조차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개밥을 챙기는 것이 귀찮아진 당신 누님이 아예 개를 집으로 데리고 간 모양이었다. 당신은 대문을 닫는 게 아니라 활짝 열어놓고 마당으로 걸어들어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아내가 혼자서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당신은 마루에 이러고 걸터앉아 있곤 했다. 아내가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와 밥은 먹었소? 물으면 당신은 언제 올랑가? 물었다. 왜요? 내가 보고 撓소? 물으면 당신은 보고 撓기는… 내 생각 말고 이참에 실컷 있다 오소, 하였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언제 올랑가?라고 묻는 당신의 말을 듣고 나면, 아내는 무슨 볼일을 보러 서울에 갔든 그 길로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당신이 돌아온 아내를 보며 뭣 하러? 실컷 있다 오라니께는! 퉁박을 주듯 말하면 아내는 당신 땜새 온 줄 아요? 개밥 줄라고 왔구마는… 눈을 흘겼다.

 

아내가 기르는 것들은 낯선 곳에서 얻은 것을 버리고 당신을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이 대문을 밀고 들어오면 아내는 이 집에서 때에 전 수건을 쓴 채로 형철이를 책상에 앉히고 고구마를 캐고 누룩을 빚고 있었다. 당신의 누님은 입버릇처럼 전쟁 때 병역기피로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었던 적의 버릇이 당신의 떠돌이병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징집을 당신이 피했던 건 아니다. 피해 다니는 게 지긋지긋해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간 적도 있으니까. 당시 형사였던, 나이가 겨우 다섯살밖에 차이나지 않은 당신의 작은아버지가 당신을 다시 돌려보냈다. 무너진 집안이라도 당신은 엄연히 이 집안의 종손이니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살아남아 선산을 지키고 제를 챙겨야 한다고. 그렇다고 당신의 검지를 작두에 넣고 마디를 잘라버릴 것까진 없었다. 정작 선산을 지키고 계절마다 돌아오는 제를 지낸 건 당신 아내였으니까. 그랬을까? 집을 두고도 이슬을 맞으며 바깥잠을 자야 했던 것이 당신을 방랑자로 만들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노숙의 습관이 당신을 집 바깥으로 떠돌게 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자는 날이면 대문을 밀치고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