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경숙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리진』 『바이올렛』 『외딴방』, 소설집 『종소리』 『감자 먹는 사람들』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이 있음.

 

 

장편연재 2

엄마를 부탁해

 

 

제2장 미안하다, 형철아

 

그가 나눠준 전단지를 받아든 한 여자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전단지 속의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그를 기다리곤 했던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다.

 

그가 도시에 방을 갖기 시작한 후로 서울역에 도착할 때의 엄마는 전쟁이 터져 피난살이를 온 사람의 행색이었다. 엄마는 그에게 실어나를 것들을 머리에 이고 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고도 모자라 허리에 찬 채 서울역 플랫폼을 걸어나왔다. 그러고도 사람이 걸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엄마는 할 수만 있다면 가지나 호박 같은 것을 다리에 매달고라도 왔을 것이다. 엄마의 주머니에서 풋고추나 알밤, 신문지에 싼 깐마늘 들이 쏟아져나오기도 했으니까. 그가 엄마를 마중나가보면 엄마의 발치 아래엔 젊은 여인 혼자 들고 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보퉁이들이 수북했다. 엄마는 뺨이 상기된 채 그 보퉁이들 가운데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여자는 주춤주춤 그 앞으로 와서 저기요, 용산2가동 동사무소 앞에서 이분을 본 것 같아요, 전단지 속 그의 엄마를 가리켰다. 여동생이 만든 전단지 속에서 물빛 한복을 입은 그의 엄마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 옷을 입고 있었던 건 아닌데 눈이 너무 똑같네요. 소눈하고 똑 닮아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여자는 전단지 속 그의 엄마의 눈을 또 한번 들여다보더니 발등에 상처를 입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슬리퍼가 엄지쪽 발등을 파고들어갔고 살점이 떨어져나가 패어 있었다고 했다. 고름이 밴 상처 부위에 자꾸 파리가 날아와 앉으니까 귀찮은지 손을 뻗어 쫓곤 했었어요. 아플 것 같은데도 상처엔 무심한 듯 동사무소 안을 기웃기웃거리고 있었어요. 일주일 전 일이긴 해요.

일주일 전이면?

오늘 아침도 아니고 일주일 전에 동사무소 앞에서 본 것 같다는 여자의 말을, 그것도 전단지 속 엄마의 눈과 용산2가동 동사무소 앞에서 만난 여인의 눈이 서로 닮은 것 같다고 하는 여자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는 여자가 총총 사라진 뒤에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가족들이 동원되어 서울역에서 남영동까지 식당이며 옷가게며 서점과 피씨방 등에도 전단지를 뿌리고 붙여놓았다. 불법이라고 뜯어내면 그 자리에 다시 붙이기를 반복했다. 그쪽만이 아니었다. 남대문과 중림동, 서대문까지 가족들은 번갈아가며 전단지를 돌리고 붙이고 뿌렸다. 신문광고를 보고는 전화 한통 없더니 전단지를 보고는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식당에서 본 것 같다는 제보를 듣고 쏜살같이 가보면 엄마가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엄마 또래의 사람이었다. 한번은 자기네 집에서 보살피고 있으니 와보라며 주소를 또박또박 불러주기에 기대를 품고 달려가보았으나 주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전단지에 보상금으로 적혀 있는 오백만원을 먼저 주면 엄마를 찾아주겠다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도 보름이 지나자 시들해졌다. 기대를 품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의 가족들은 코가 빠진 채 서울역 시계탑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사람들이 전단지를 받자마자 구겨서 바닥에 버리면 다시 주워 펼쳐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이는 여동생이었다.

 

전단지를 한아름 안고 서울역에 나타난 여동생이 그 옆에 섰다. 여동생의 메마른 눈이 그의 눈을 잠시 일별했다. 그는 여자의 말을 전하며 용산2가동 동사무소를 찾아가 그 주변을 살펴볼까? 물었다. 여동생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엄마가 왜 거길 갔겠어? 어쨌든 이따가 가보자, 짧게 대답하고는 우리 엄마예요, 버리지 말고 한번만 들여다봐주세요, 큰 소리로 말하며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냥 나눠주는 것보다 여동생처럼 외치며 나눠주는 게 효과는 있어 보였다. 그가 나눠줄 때처럼 돌아서자마자 전단지를 버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집이나 동생들의 집 말고 이 도시에서 엄마가 갈 만한 곳은 없었다. 그와 가족들에겐 그것이 고통이었다. 엄마가 찾아갈 만한 곳이 있으면 거기를 중심으로 주변을 뒤져볼 텐데, 갈 만한 곳이 없으니 이 도시 전체에서 엄마를 찾아봐야 했다. 여동생이 엄마가 왜 거길 갔겠어?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여자가 말했던 용산2가동 동사무소가 자신이 이 도시에서 처음 근무했던 일터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벌써 삼십년 전의 일이니까.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는데도 그의 얼굴에 땀방울이 묻어났다. 그는 나이 오십줄에 접어든, 아파트 전문 건설회사의 홍보부장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휴무지만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송도의 모델하우스에 있을 터였다. 송도에는 준공될 예정인 그의 회사의 대규모 아파트가 2차 분양중이었다. 100퍼센트 분양을 위해 그동안 그는 밤낮없이 일했다. 얼굴이 알려진 모델이 식상하다 하여 일반주부 중에서 광고모델을 선발하는 일의 실무를 지난봄 내내 맡아했다. 모델하우스를 짓는 일이며 언론사 기자들을 접대하는 일 들에 치여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요일엔 종종 사장을 비롯한 상무급 간부들을 수행해 속초나 횡성으로 골프를 치러 가기도 했다.

- 형! 엄마를 잃어버렸대!

그런 그에게 한여름 오후에 전해진 다급한 동생의 목소리는 안쪽이 얼지 않은 얼음판을 디뎠을 때처럼 쩡 소리를 내며 그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둘째네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다가 아버지만 올라탄 지하철이 떠나버리는 통에 엄마 혼자 지하철역에 남게 되었는데 그 뒤로 엄마를 찾을 수 없다는 얘길 전해들으면서도 그는 그것이 엄마의 실종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둘째가 일단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을 때도 괜한 수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신문광고를 내고 병원 응급실마다 연락을 취했다. 밤마다 편을 나눠 노숙자 보호쎈터들을 찾아가봤으나 허사였다. 엄마는, 서울역 지하철 구내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는 엄마는, 꿈처럼 사라졌다. 아버지에게 엄마와 같이 서울에 온 것이 사실인지 되묻고 싶을 정도로 엄마는 흔적이 없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자 그와 그의 가족들은 다들 뇌 한귀퉁이를 손상당한 사람들처럼 허둥지둥거렸다.

그는 들고 있던 전단지를 여동생에게 넘겼다.

- 내가 가봐야겠다.

- 용산에?

- 그래.

-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 내가 서울 처음 왔을 때 살았던 곳이다.

그는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할 테니 휴대폰을 자주자주 확인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젠 필요 없는 말이다. 걸핏하면 전화를 받지 않던 여동생은 이제 벨이 세번 울리기도 전에 받는다. 그는 택시 승강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는 삼십 중반을 넘겨서도 아직 미혼인 여동생 걱정을 많이 했다. 어떨 때는 첫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형철아! 지헌이네 좀 가봐라, 어째 전화를 안 받는다, 전전긍긍했다. 받지도 않고 하지도 않어야… 한달째 갸 목소리 한번 못 들었다. 글 쓴다고 틀어박혀 있거나 아니면 어딜 갔을 거라고 해도 엄만 그가 여동생 지헌의 오피스텔에 다녀오길 청했다. 혼자 아니냐, 어디 아파서 누워 있을 수도 있고 목욕탕에서 넘어져 못 일어날 수도 있고…… 엄마가 열거하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일들을 듣다 보니 딴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부탁을 받고 출근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여동생의 오피스텔에 가보면 여동생의 부재를 알리는 증거로 문 앞에 신문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곤 했다. 그는 신문을 정리해 쓰레기통에 밀어넣고 돌아왔다. 신문이나 우유 같은 게 문 앞에 없을 땐 안에 있는 걸 다 안다는 듯이 초인종을 쉼없이 눌러대면 여동생은 부스스한 얼굴을 내밀며 왜 또? 하고 퉁명스럽게 굴었다. 언젠가는 초인종을 누르고 서 있다가 여동생을 찾아온 듯한 남자를 만나기도 했다. 남자는 멋쩍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까지 했다. 그가 누구냐 묻기도 전에 상대가 여동생의 이름을 대며 너무 닮아서 따로 물어볼 것도 없네요, 했다. 남자도 갑자기 여동생과 연락이 끊겨 찾아와본 거라고 했다. 엄마에게 여동생이 여행을 떠난 듯하다, 집에 잘 있었다,라는 소식을 전해주면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그러다가 갸가 죽어도 우린 모르고 있을 게다. 그러면서 갸가 하는 일이 대체 뭐라냐? 물었다. 여동생이 보름씩, 길게는 한달씩 소식을 끊어버리고 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써야 하는 것이냐? 물으면 여동생은 다음부터 엄마한텐 전화할게, 체념한 듯 말했다. 그뿐이었다. 아무리 엄마가 그리 나와도 이따금씩 식구들과 여동생의 단절은 계속되었다. 그가 엄마의 말을 두세번 지나친 다음부터 엄마는 그에게 여동생 집에 가봐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너는 내 말에 귀기울일 새가 없구나,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여동생의 갑작스런 단절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으니 그 대신 가족들 중 누군가가 엄마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후 여동생은 아무래도 내가 벌을 받나 봐…… 중얼거렸다.

서울역에서 숙대입구까지 길이 꽉 막혔다. 그는 눈을 치켜뜨고 차창 밖 거리를 내다보았다. 오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 인파 속에 혹시 엄마가 있나 해서.

- 손님! 용산2가동 동사무소라고 했지요?

숙대입구 쪽에서 용산고등학교 쪽으로 방향을 틀며 택시기사가 묻는 말을 그는 놓쳤다.

- 손님?

- 예!

- 용산2가동 동사무소 앞이라고 했지요?

- 예.

스무살이던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걸어다니던 길이 차창에 스치는 풍경이 낯설기만 했다. 이 길이 맞나? 싶었다. 하긴 삼십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변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 토요일이라 동사무소는 문 닫았을 텐데요.

- 그렇겠지요.

택시기사가 그에게 뭐라 더 말을 붙이려다가 그만두려는 참에 그가 주머니에서 전단지를 꺼내 택시기사에게 내밀었다.

- 운전하시다가 혹시 이런 분을 보면 연락 좀……

택시기사가 그가 내민 전단지를 훑었다.

- 어머니신가요?

- 예.

- 어쩌다가……

 

지난해 여름 여동생에게서 엄마가 이상하다는 전화를 받고서도 그는 아무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 그 연세면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을 때라고 생각했다. 여동생이 침통해하며 엄마가 두통 때문에 기절하기도 하는 모양이라고 전해서 그가 시골집에 전화를 걸어보면 엄마는 형철이냐!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별일 없으세요? 엄마는 수화기 저편에서 별일이라두 있었음 좋겄다! 하며 웃었다. 여그 걱정은 말어라. 두 늙은이 살림에 뭔 일이 있겄니. 너그들이나 잘 지내라.

- 서울에 한번 오세요.

엄마는 그래… 그러마, 하며 말끝을 흐렸다. 무심한 그에게 화가 난 여동생이 회사 앞으로 찾아와 엄마의 뇌 사진을 들이민 적도 있었다. 여동생은 엄마도 모르게 엄마 뇌 속으로 뇌졸중이 지나갔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그래도 그가 무심히 듣자 여동생은 오빠! 박형철 맞아?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 별일 없다고 하시는데 왜?

- 그 말을 믿어? 엄만 늘 그러잖아. 그게 엄마 어법이잖아. 알면서 왜 그래? 오빠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잖아.

- 나한테 뭐가 미안하단 말이냐?

- 그걸 내가 알아? 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 들게 해, 오빠는?

- 내가 뭘 말이냐?

- 아주 옛날부터 엄마 입에 붙은 말이잖아. 내가 묻고 싶어, 대체 엄마가 왜 오빠한테 미안한데?

 

삼십년 전 당시 5급으로 분류되던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그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이 용산동 동사무소였다. 시골 고등학생이었던 그가 이 도시의 대학에 떨어졌을 때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엄마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 한번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때까지는 무슨 시험을 보아도 그는 일등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일등으로 붙어 입학금도 내지 않았다. 삼년 내리 일등이었으므로 그는 학교에 돈을 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도 그는 일등으로 합격했다. 아이구, 나는 우리 형철이 입학금 좀 내봤으면 좋겄다, 하는 것이 그를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그의 엄마가 쓰는 말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내내 일등이었던 그가 대학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은 엄마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일등으로 합격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엄마는 아니 니가 안되면 누가 된단 말이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대학에 붙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또 일등을 할 생각이었다. 생각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쩌든지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떨어져버렸으니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재수는 처음부터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곧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냈다. 두 종류의 공무원시험을 보았고 모두 다 합격했다. 먼저 발령이 난 곳을 택해 집을 떠났다. 그리고 몇개월 후 이 도시의 야간대학에 자신이 가고 싶어한 법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원서를 내려고 보니 고등학교 졸업증명서가 필요했다. 졸업증명서를 떼어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그걸 시골에서 우편으로 부치면 원서마감일이 넘어서야 도착할 터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고속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사람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뒤 우체국에 가서 동사무소로 전화를 해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몇시 차편인지 동사무소 전화로 알려주면 자신이 고속버스터미널에 나가서 그 차편을 기다려서 받겠다고. 내내 기다렸으나 그날 전화가 오지 않았다. 시골집에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어찌 됐는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다음날까지는 원서를 내야 하는데 어쩌나 걱정하고 있던 한밤중에 누군가가 동사무소 문을 쾅쾅 두들겼다. 당시 그의 주거지가 저 동사무소였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숙직을 서야 했지만 거처가 없던 그가 그 숙직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매일 숙직을 서는 셈이었다. 동사무소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어둠속에 웬 청년이 서 있었다.

- 이분이 어머니요?

그의 엄마는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청년의 뒤에 서 있었다. 그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의 엄마가 형철아! 나다! 엄마다! 앞으로 나섰다. 청년은 시계를 보고는 칠분 후면 통행금지요! 하더니 그의 엄마에게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는 통행금지 칠분 전의 어둠속으로 내달았다.

아버지는 부재중이었다. 여동생이 편지를 읽어주자 그의 엄마는 안절부절못하다가 그의 출신 고등학교를 찾아가 졸업증명서를 떼고 그 길로 밤기차를 탔다. 그의 엄마가 난생처음 타보는 기차였다.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한 그의 엄마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용산동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묻고 있을 때 지나가던 청년이 그의 엄마를 본 모양이었다. 이 밤 안에 아들에게 꼭 전해줘야 할 것이 있다는 그의 엄마의 말을 듣던 청년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그의 엄마를 동사무소까지 바래다준 것이었다. 그의 엄마는 한겨울인데도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가을 추수 때 낫을 잘못 써서 엄지쪽 발등을 다쳤는데 아물지 않아 앞이 터진 신발을 찾다 보니 슬리퍼였다 했다. 그의 엄마는 숙직실 문 앞에 슬리퍼를 벗어놓고 들어와, 늦지나 않었는지 몰르겄다!며 그 앞에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내밀었다. 엄마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 그는 얼음장 같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이 손을, 이 손을 가진 여인을 어쩌든 기쁘게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입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따라오란다고 따라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엄마를 책망했다. 엄마는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산다냐!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이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 법이다!며 엄마 특유의 낙천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닫힌 동사무소 건물 앞에 서서 건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엄마가 여길 찾아왔을 리가 없다. 여길 찾아올 정도면 집을 찾아올 것이다. 여기서 그의 엄마인 듯한 사람을 봤다던 여자는 눈 때문에 기억한다고 했다.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고도 했다. 파란 슬리퍼. 그의 엄마는 파란 슬리퍼가 아니라 베이지색 굽 낮은 쌘들을 신고 있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어찌나 많이 걸었는지 슬리퍼가 엄지쪽 발등을 파고들어갔고 살이 깊이 패어 있었다고 말해주던 여자는 분명 파란 슬리퍼라고 했다. 그는 실종된 엄마가 신고 있는 신발이 굽 낮은 베이지색 쌘들이었다는 생각을 이제야 떠올렸다. 그는 닫힌 동사무소 안을 기웃거리다가 보성여고쪽 길과 은성교회로 이어지는 길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아직도 동사무소엔 그 숙직실이 있을까.

 

스무살의 그에게 졸업증명서를 가져다주려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온 엄마와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잤던 그 숙직실. 그가 엄마와 그렇게 나란히 누워본 것은 그때가 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