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리진』 『바이올렛』 『외딴방』, 소설집 『종소리』 『감자 먹는 사람들』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이 있음.
장편연재 4(마지막회)
엄마를 부탁해
제4장 아무도 모른다
소나무가 울창하구나.
어떻게 이 도시에 이런 마을이 있다냐? 참, 꼭꼭 숨어 있구나. 엊그제 눈이 왔냐? 나무에 흰 눈이 소복하구나. 네 집 앞에 어디 보자 소나무가 세그루나 있네. 내가 앉기 좋으라고 꼭 그 사람이 옮겨 심어놓은 것 같구나. 내가 그 사람 얘기를 꺼내다니. 그래도 나는 너를 만나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갈 것 같어. 그럴 게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 형제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며 오피스텔들은 내 눈엔 다 똑같이 보여. 어느 집이 어느 집인지 혼란스럽고나.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어째 그리 똑같은 공간에서들 살재? 각자 다르게 생긴 집에서들 사는 게 좋을 것 같어. 헛간도 있고, 다락방도 있음 좋지 않을거나. 아이들이 숨을 데가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거나. 니가 걸핏하면 심부름을 시키려 드는 손위 오빠들을 피해 그 집의 다락방에 숨었듯이. 이젠 시골에도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이 불쑥불쑥 생겼고나.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봤냐? 거기서 읍내에 새로 생긴 고층아파트들이 다 보이재. 네가 자랄 때만 해도 버스조차 다니지 않던 마을이었는데. 시골도 그런디 사람 많은 여기서야 뭐라겠냐. 그냥 똑같이만 안 생겼으면 좋겄어. 너무나 똑같이 생겨서 나는 도무지 어디도 찾아갈 수가 없어. 네 오라비 집도, 네 언니 오피스텔도 나는 못 찾아가. 그것은 내 사정이다. 내 눈엔 너무나 다 똑같이 생긴 입구, 다 똑같이 생긴 문들인데 사람들은 한밤중에도 자기 집을 잘 찾아가네. 하물며 아이들조차도.
너는 용케도 여기 살고 있네.
여기가 어디다냐?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여기가 종로구란 말이냐? 종로구… 종로구… 아, 종로구! 그 옛날 니 큰오라비가 신혼살림을 차렸던 집 주소의 시작이 종로구였다. 종로구 동숭동이었재. 어머니, 여기가 종로구예요, 그랬재. 주소를 쓸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종로는 이 서울의 중심이거든요. 근데 거기에 내가 살고 있잖아요. 시골 촌놈이 드디어 종로에 입성한 거예요, 그랬어. 그때도 서울의 중심 종로구라는데 내 기억엔 낙산이라던가 하는 가파른 산자락에 다닥다닥 위험하게 붙어 있는 연립주택이었어. 거기까지 올라가는데 어찌나 숨이 차던지. 그때도 아이구, 이 도시에 어찌 이런 곳이 있는고, 우리 시골보다 아주 더 시골이네, 생각했었고나. 그런데 여기가 그러네. 그때와 똑같은 생각이 드네. 어찌 이 도시에 이런 곳이 있다니.
작년에 네 가족들이 삼년 남짓 되었던 외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 전세도 못 얻게 되었다고 실망하더니 이런 마을을 찾아낸 모양이로구나. 여긴 완전히 시골마을여. 커피집도 있고 미술관도 있긴 하나 방앗간도 있더구나. 방앗간에선 흰 가래떡을 뽑고 있더구나. 옛날 생각이 나서 한참 구경을 했구나. 설이 다가오는가. 방앗간에서 흰 떡을 뽑는 사람들이 꽤 있던걸. 아직도 설이라고 흰 떡을 뽑는 그런 마을이 이 도시에도 있구나. 설 때가 되면 쌀을 한말이나 리어카에 실고 떡을 뽑으러 방앗간에 가곤 했었재. 차례를 기다리느라 언 손을 호호 불곤 했었는데.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살기에는 불편하겠네. 사위가 선릉까지 출근하려면 먼 길이기도 하겠고나. 주변에 시장은 있는 게야?
- 마트에 한번 다녀오면 무엇을 많이 산 것 같은데도 금방 먹고 없어. 요플레를 하나씩만 먹일래두 세개 사야 하잖아. 사흘치 사려면 그것만도 아홉개야, 엄마! 무서워 죽겠어요. 이만큼 샀는데 금방 없어진다니까!
너는 팔을 크게 벌리며 이만큼을 강조했었재. 아이가 셋이니 당연한 일이재.
뺨이 붉게 물든 네 첫째가 타고 온 자전거를 대문 앞에 세워두려다가 흠칫 놀라네. 첫째가 엄마! 너를 부르며 황급히 대문을 밀고 들어가는구나. 잿빛 카디건을 걸친 네가 셋째를 가슴에 안은 채 왜?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밀창 문을 밀며 나오네.
- 엄마! 새가!
- 새?
- 응, 대문 앞에!
- 무슨 새?
첫째가 대답을 않고 손가락으로 대문을 가리키네. 네가 안고 있는 셋째아이가 추울세라 윗옷에 달린 모자를 잡아당겨 얼굴에 씌우고 대문께로 나가보는구나. 몸 전체가 잿빛을 띤 흰 새가 대문 앞에 널브러져 있네. 머릿등부터 날개까지 검은 점무늬가 박혀 있네. 날개가 꽁꽁 얼었구나. 새를 바라보는 너의 눈이 흔들리네. 내 생각을 하고 있군. 그런데 얘야, 네 집 주위는 온통 새투성이네. 웬 새들이 이리 많어? 겨울새들이 소리도 내지 않고 네 집 위를 맴돌고 있구나.
며칠 전에 네 집 모과나무 밑에 까치가 앉아서 떨고 있는 걸 보고 배가 고프겠지, 싶어 너는 집으로 들어가 아이가 먹다 남긴 빵을 부스러뜨려 모과나무 밑에 뿌려주었재. 그때도 너는 이 에미 생각을 했어. 겨울철이면 앙상한 감나무에 앉아 있는 새들 먹으라고 묵은쌀을 한 됫박 퍼와 감나무 아래에 뿌려주었던 나를. 네가 빵부스러기를 뿌려준 저녁때에 모과나무 아래로 스무마리도 넘는 새들이 날아들었재. 날개가 네 손바닥만한 새도 있었어. 그날부터 너는 날마다 배고픈 겨울새들을 위해 빵부스러기를 모과나무 아래에 뿌려두곤 했재. 그런데 모과나무 아래도 아니고 대문 앞에 널브러져 있는 새라니. 그 새 이름은 내가 알고 있다. 개꿩이야. 이상도 하네. 혼자 다니는 새가 아닌데 왜 여기에 있다니? 해안가에나 있어야 할 새인데. 그 사람이 사는 곰소에서 봤던 새야. 썰물 질 때에 거기 갯벌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개꿩들을 봤어.
네가 가만 서 있자, 큰애가 네 팔을 잡고 흔든다.
- 엄마!
- ……
- 죽었어?
큰애가 물어도 너는 입을 다물고 있다. 얼굴이 굳어지며 그저 가만 새를 보고 있다.
- 엄마! 새가 죽었어?
바깥의 소란에 튀어나온 둘째가 다가와 물어도 셋째를 안은 채 너는 말이 없다.
전화벨이 울리네.
- 엄마, 이모!
큰딸이 전화를 한 모양이군. 네가 둘째에게서 수화기를 건네받는다. 수화기를 받아든 네 얼굴이 또 굳는다.
- 언니가 가면 어떡해?
큰딸애가 또 비행기를 탈 모양이군. 네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입술이 떨리는 것도 같네. 갑자기 네가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얘야, 너는 그런 애가 아니잖어. 왜 언니에게 소리를 지른다냐.
- 다들 너무해… 다들 너무해!
수화기를 쾅 내려놓아버리기까지 하네. 그건 네 언니가 너한테 그리고 나한테 하는 짓인데. 곧바로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수화기를 한참 바라보고만 있더니 벨소리가 멈추지 않자 네가 수화기를 든다.
- 미안해, 언니.
그사이 목소리가 침착하게 돌아와 있네. 너는 수화기 저편에서 네 언니가 하는 말을 가만 듣고 있네. 그러다가 다시 얼굴이 붉어지네. 갑자기 소리를 팩 지르네.
- 뭐? 싼띠아고? 한달이나?
네 얼굴이 더욱 붉어지네.
- 지금 가도 되냐구 나한테 묻는 거야? 이미 가기로 다 결정해놓고 묻긴 왜 물어! 그럴 수 있어?
수화기를 들고 있는 네 손이 떨리고 있네.
- 대문 앞에 새가 죽어 있었어. 기분이 나빠.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단 말야! 왜 여태 엄말 못 찾아! 왜! 그리군 어딜 간다구? 모두들 왜 그래? 언니까지 그럴 거야? 이 추운 날에 엄마가 어딨는 줄도 모르는데 그렇게 다들 제 할일 다 하구 그럴 거냐구!
얘야, 진정해라. 언니 마음도 이해해야지. 지난 세 계절 동안 네 언니 꼴을 보고도 하는 소리냐.
- 뭐? 나한테 엄마를? 나한테! 내가 애들 셋을 데리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도망치는 거지? 죽겠으니까 도망치는 거지? 언닌 늘 그랬어.
얘야, 괜찮아진 거 같더니 왜 또 그러냐. 수화기를 또 쾅 내려놓고 엉엉 울기까지 하네. 셋째가 따라 우네. 셋째 코가 금방 빨개지네. 이마까지 빨개지는구나. 둘째가 덩달아 우네. 첫째가 방문을 열고 나오다가 우는 세 사람을 물끄러미 보고 있네. 전화벨이 또 울리네. 울던 네가 얼른 수화기를 든다.
- 언니…
네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 가지 마! 가지 마! 언니!
결국 큰딸애가 너를 달래고 있네. 달래다 안되니 큰딸애가 네 집으로 오겠다고 하네. 수화기를 내려놓고 너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네. 셋째가 네 무릎 위에 올라앉는다. 네가 셋째를 품에 안는다. 둘째가 다가와 네 뺨을 어루만진다. 네가 손을 뻗어 둘째의 등을 토닥여준다. 첫째가 너를 기쁘게 해주려고 네 앞에 엎드려 수학문제를 푼다. 네가 첫째 머리를 쓰다듬는다. 열린 대문을 밀고 큰딸애가 들어오네. 아이구, 윤아! 큰딸애가 밀창문을 열어주는 네게서 셋째를 받아 안는다. 아직 낯가림이 심한 셋째가 이모인 큰딸애 품에서 엄마인 너에게 가려고 손을 뻗으며 버둥대네.
- 잠깐만 있어보렴.
큰딸애가 얼굴을 비비려 드니 셋째가 와앙 울음을 터뜨리네. 큰딸애가 너에게 아이를 내민다. 엄마 품에 안겨서야 아이는 눈썹에 눈물을 매달고 이모를 향해 웃는다. 어이구! 큰딸애가 아이의 뺨을 문질러주네. 너희 자매는 말없이 앉아만 있네. 전화로 안되겠으니 이 눈길에 달려왔으련만 큰딸애는 아무 말이 없네.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퉁퉁 부어 그 큰 눈이 일자가 되어 있네. 오랫동안 잠을 숫제 못 잔 얼굴이야.
- 갈 거야?
오랜 침묵 끝에 네가 언니에게 묻는다.
- 안 갈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큰딸애가 소파에 쓰러지듯 엎드리네. 졸음에 떠밀려 몸을 가누지 못하네. 가엾은 것. 강한 척할 뿐 속은 물러터진 것. 몸을 그리 혹사해서 어쩌려고?
- … 언니! 자?
네가 언니의 어깨를 흔들어보다 손바닥으로 쓸어주네. 잠든 언니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네. 어려서도 무슨 일로 거칠게 서로 항변하며 싸우다가도 너희는 금세 조용해지곤 했재. 야단을 치려고 보면 서로 손을 잡고 자고 있곤 했어. 네가 방 안으로 들어가 담요를 꺼내와 언니를 덮어주네. 큰딸애는 이마를 찡그리네. 부주의한 것. 그리 잠을 매단 채 운전을 하고 오다니.
- 미안해…
네가 웅얼거리자 큰딸애가 눈을 치떠 너를 보네.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네.
- 어제는 그 사람 어머니를 만났어. 결혼을 하면 내겐 시어머니 될 분이지. 그 사람 누나 집에 살고 계셨어. 그 사람 누나는 스위스라는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어. 독신이야. 그 사람 어머니는 아주 작고 말갰어. 그 사람 누나를 졸졸 따라다녔어. 딸을 보고 언니라고 부르면서. 그 사람 누나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우리 엄마 참 이쁘다 늘 그러니까 어느날부터 언니라고 불렀대. 그 사람 누나가 그러더라. 엄마 때문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거라면 걱정 말라고. 자기가 언니 노릇 하면서 엄마와 계속 살 거라고. 새해가 시작되는 1월에는 엄마를 요양원에 맡기고 여행을 가니까 자기가 없는 그때만 찾아 봐주면 된다고. 그 사람 누나는 레스토랑을 운영해 남은 돈으로 일년 중에 1월 한달간 여행을 다닌 지 20년 됐다고 했어. 엄마에게 언니라 불리며 사는데도 좋아 보였어. 그냥 스스럼없이 엄마가 여태 길러줬는데 이제 뭐 역할을 바꿨으니 셈이 맞는 거 아냐 하며 밝게 웃었어.
얘기를 멈추고 큰딸애가 가만히 너를 본다.
- 엄마 얘기 해봐.
- 엄마 얘기?
- 응… 너만 알고 있는 엄마 얘기.
- 이름: 박소녀. 생년월일: 1938년 7월 24일. 용모: 흰머리 많이 섞인 짧은 파마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지하철 서울역.
큰딸애가 너를 향해 실눈을 떴다가 졸음에 떠밀리며 다시 눈을 감네.
-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밖에는.
이제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네.
이런,
내 이럴 줄 알았재. 이건 코미디에나 나올 장면이로구나. 아이구, 정신없어. 이런 판에 넌 웃음이 나오냐아? 네 아들 첫째가 저기서 모자를 쓰며 너에게 뭐라고 하고 있구나. 뭐라는 게야? 가만? 아, 스키장에 보내달라는군. 넌 안된다고 하네. 환경이 달라져 학교공부를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지 않느냐고, 방학 끝나면 학교공부 따라갈 수 있게 이번 방학엔 아빠하고 함께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군.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힘들다고. 네가 말하는 사이에 식탁 밑에서 이제 걸음마을 배운 네 셋째가 밥알을 주워 먹으려 드네. 넌 손에 눈이 달렸냐? 눈은 첫째놈을 바라보고 말을 하면서 손은 셋째놈에게서 먼지 묻은 밥알을 뺏어내네. 셋째가 흐앙, 울음을 터뜨리려다 네 다리에 엉겨붙는구나. 네 손이 자연스럽게 넘어지려는 셋째 손을 붙잡네. 여전히 입으로는 첫째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네 말은 듣는지 마는지 여기 봤다 저기 봤다 하던 첫째는, 나 다시 가고 싶어! 여기 싫어! 소리를 지르네. 방 안에서 네 딸 둘째가 너를 향해 엄마! 부르며 튀어나오네. 머리가 다 헝클어졌다고 투덜거리네. 조금 있다 학원 가야 한다고 빨리 머리를 땋아달라는구나. 네 손은 이제 딸아이 머리를 매만지고 있네. 입으론 계속 첫째에게 말을 하면서.
아, 세 아이가 한꺼번에 너에게 달라붙어 있네.
내 딸. 너는 세 아이 말을 동시에 듣고 있네. 네 몸은 세 아이에게 척척 잘 단련되어 있네. 너는 식탁의자에 둘째를 앉히고 머리를 빗기며 큰놈이 그래도 스키장에 가고 싶다고 하자 겨우 타협책으로 아빠하고 상의해보겠다고 말하다가 셋째가 넘어지자 얼른 빗을 내려놓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 코를 문질러주고 다시 빗을 들어 둘째 머리를 빗기고 있네.
그러다가 네가 문득 창 바깥을 본다. 모과나무에 앉아 있는 나를 본다. 내 눈과 네 눈이 마주친다. 네가 웅얼거리네.
- 처음 보는 새네.
너의 세 아이들이 모두 네 시선을 따라간다.
- 대문 앞에 죽어 있던 새 식구인가 봐, 엄마!
둘째가 네 손을 잡는구나.
- 아냐… 그 새는 저렇게 안 생겼었어.
- 아니야, 맞어!
너희는 대문 앞에 죽어 있던 새를 이 모과나무 밑에 묻었재. 첫째가 땅을 팔 때 둘째가 나무십자가를 만들었어. 천방지축 셋째는 앙앙거리고. 네가 새를 집어 날개를 접고 첫째가 판 땅 속에 밀어넣을 때 둘째가 아멘! 그랬어. 새를 묻고 둘째는 사무실의 아빠에게 전화해 새를 묻은 이야기를 종알종알 옮기더군. 내가 십자가도 만들어줬어요, 아빠! 하면서.
바람결에 그 십자가가 쓰러져 있네.
네 아이들이 종알대는 소리를 들으며 네가 나를 잘 보기 위해 창가로 걸어오는구나. 네 아이들이 너를 따라 쪼로로 창쪽으로 몰려들어 나를 보네. 아이구, 그만 보렴. 난 너희들에게 미안해. 너희들이 태어날 때마다 너희들보다 네 에미 생각을 더 했재. 머리를 다 땋은 둘째가 빼꼼히 나를 보는군. 네가 태어났을 땐 네 엄마 젖이 말랐었지. 네 오빠 낳았을 땐 일주일도 안돼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너를 낳고 뒤끝이 좋지 않아서 네 엄만 한달도 넘게 병원에 있었단다. 그때 내가 네 어밀 돌봤어. 네 친할머니가 문안차 병원에 왔을 때다. 네가 울어대니 네 친할머니가 네 엄마보고 아기 운다고 빨리 젖을 물리라고 하더구나. 나오지도 않는 빈 젖을 물리는 니 에미를 보며 내가 신생아인 널 향해 눈을 흘겼어. 네 친할머니를 얼른 돌려보내고 네 에미 품에서 너를 뺏듯이 안아들고 네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기까지 했재. 아기가 울면 친할머니는 아기 운다, 어서 젖 물려라, 하고, 외할머니는 저 애는 에미 힘들게 왜 저리 울어댄다냐… 한다더니 나도 다를 게 없었단다. 네가 그걸 알 리가 없건만 넌 이상하게 나보다는 네 친할머니를 더 따랐어. 나를 보면 할머니, 부르며 안녕하세요! 그랬지만 네 친할머니한텐 할머니이이- 부르며 달려가 푹 안기곤 했재. 그때마다 속으로 나는 그때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린 걸 니가 알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