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여기의 빛

 

 

백수린 白秀麟

소설가.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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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빛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은희경 작가를 인터뷰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은 건 아직 한낮의 빛이 다 사그라지기 전인 어느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그 제안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아니, 왜 나한테?’ 인터뷰를 하기 싫어서는 아니었고, 나에게 제안하게 된 연유가 순수하게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먼발치에서 본 은희경 곁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들, 다정한 안부를 주고받는 많은 후배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가끔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별다른 친분이 없는 나보다는 은희경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인터뷰하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망설임 끝에 해보겠다고 결심했는데,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오랜 독자이자 숫기없는 팬으로서, 이런 강제적인 상황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고백 못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을 것이고 핑계 김에 그녀의 작품에 대해 실컷 이야기 나누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특별한 친분이 있든 없든, 은희경 이후 문단에 나온 후배 작가라면 누구나 저마다 ‘은희경’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은희경’ 하면 떠오르는 두가지 기억이 있다. 그중 첫번째는 1997년의 일인데, 당시 나는 한국소설을 쉽게 구해 읽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던 중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해 알게 된 두살 많은 한국인 언니가 나에게 책을 한권 빌려줬다. 하얀 바탕에 초록색 네모와 노란색 네모가 그려진 표지의 『새의 선물』(문학동네, 초판 1996)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까지 소설을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던 열여섯살의 나에게 『새의 선물』과의 만남은, 내 안에 어렴풋이 있으나 아직 실체를 갖추지 못한 감각을 언어를 통해 존재하게 만드는 일의 황홀함을 가르쳐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2014년 나는 실존 인물 은희경과 나란히 앉아 처음으로 술을 같이 마셨다. 그때 나는 이제 막 세상에 첫 책을 내놓은 햇병아리 소설가였다. 출간 직후 출판사의 뒤풀이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곳에 은희경이 와 있었다. 은희경이라니! 그날 밤 나는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그녀가 노래 부른 목소리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 노래를 부르자고 말을 꺼낸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누군가의 제안으로 그날 술자리에서는 모두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터라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알아서 도망가는 편인 나는 그날 하필 테이블 가운데 자리에 앉아 오도 가도 못하고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가뜩이나 긴장한 탓에 달달 떨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러주던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던 은희경이었다.

 

왼쪽부터 백수린 은희경

왼쪽부터 백수린 은희경

 

인터뷰 당일, 빨간 천가방을 멘 그녀가 발랄한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에 들어왔다.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 난 수린씨라고 부르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내 앞에 앉자마자 그녀가 물었다.

“저는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러면 좋지.”

그리고 그녀는 인터뷰에 필요한 사진을 먼저 찍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2019)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무심코 고개를 젖혀보니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어난 곳을 떠나온 뒤 몇십, 몇백 광년의 미지를 통과해서 이제야 내게로 도착한 빛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 선 채로 한참 동안 그 빛을 한사코 바라보았다. 바람이 젖은 눈가를 말리며 스쳐 지나갔고 그것이 나의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110~11면)

 

1997년과 2014년. 1997년, 아직 어렸던 내가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소설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면 2014년, 첫 책을 내고 이제 막 소설가가 된 나는 언젠가 나도 곤경에 처한 까마득한 후배를 위해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내가 이런 기억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과거를 기억하고 편집하며 살아갈 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빛의 과거』를 읽었고, 그러므로 은희경과 내가 2019년 10월의 어느날 이렇게 마주 앉게 되었다면 그것은 1997년과 2014년의 빛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의 모서리를 어루만지며 아주 긴 여행을 한 끝에 여기, 우리의 앞에 마침내 당도한 그 빛.

 

 

2

 

그러니까 은희경이 7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은 빛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여기를 비추는 빛의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 『빛의 과거』에는 1970년대 서울 소재의 한 여대 기숙사에 사는 이십대의 학생들이 등장한다.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여학생들’이라고 쓰려다가 고쳤는데, ‘여대’라는 표현이 나오므로 ‘여학생들’이라고 쓰는 것은 불필요한 중복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학생 집단을 그냥 ‘학생’이라고 쓰는 것에 나도 모르게 어색함을 느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017년에 이제 중년이 된 유경의 회고 속 1977년의 여대 기숙사생들. 이 소설에서 1977년의 여학생들은 두가지 버전을 통해 독자에게 제시된다. 하나는 독자가 읽고 있는 은희경의 『빛의 과거』를 통해서. 또 하나는 소설 속의 소설 형태로 제시되는 희진의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통해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녀가 앞서 한 인터뷰들을 꽤 많이 찾아 읽었는데, 그러다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은희경은 근황을 묻는 질문에 여자 기숙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잘 풀리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해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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