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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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95년 『문학동네』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소설 창작 시작. 소설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참말로 좋은 날』, 장편소설 『순정』 『인간의 힘』 등이 있음. ssje@paran.com

 

 

 

여행

 

 

오라고 팔 벌려 기다리는 사람 없고 언제든 가도 좋을 여행, 그것도 무전여행인데 남들 다 가는 휴가철 초입에 출발하기로 한 것은 삼자가 합의를 한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일껏 만나자마자 비가 뿌리니 아무래도 때 잘 맞췄다고 표창장 주고받기는 틀렸다. 만재, 봉수, 영덕 세 사람은 보슬비 내리는 금천역 역전 마당에서 삼각형을 이룬 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만재는 서울에서 특별히 빨리 운행하는 기차[特急]를 타고 왔으므로 ‘무전(無錢)’의 취지를 시작부터 위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표 사는 데 돈을 들이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들이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철도고등학교에 다니던 기정을 만난 이래 만재는 기차표를 사서 기차를 탄 적이 없었다. 기정의 학생증만 있으면 개찰구를 그냥 통과할 수 있었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철도공무원증이 나왔던 까닭에 조금 더 확실하게 공짜로 기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봉수는 애초에 여행을 제안했을 뿐 무전여행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만재가, 영덕이 기왕 여행을 할 바에는 돈이 안 드는 무전여행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 하더라고 했을 때 어차피 생돈 들여서 갈 생각은 없었노라고 했을 뿐이었다. 봉수는 늘 하던 대로 삼촌의 고물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기차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삼촌이 하루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받은 전화로는 오토바이가 완전히 뻗어서 낙동강 오리 곁에 놔두고 걸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덕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봉수를 뒤에 태우고 함께 역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배낭을 거북처럼 뒤로 멘 채로 자전거를 탈 수는 없었다. 영덕이 배낭을 가슴 앞으로 돌려 메고 봉수는 보통 거북 모양으로 배낭을 멘 채, 한 사람은 자전거 안장에 한 사람은 짐을 싣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명목이 무전여행이라니 앞으로 얼마나 굶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동면을 앞둔 곰처럼 소화기관에 음식을 최대한 집어넣은 스무살의 두 청년에, 역시 먹을 것이 대부분인 배낭 두개의 무게를, 교사인 영덕의 아버지를 집에서 학교까지 삼십여년간 태우고 다니다 함께 퇴역한 낡은 자전거가 감당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타자마자 수십번을 때운 자국이 역력한 뒷바퀴 타이어에서 퇴임식을 하러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던 날 아침상 앞에서 내쉬던 영덕 아버지의 한숨 같은, 바람 빠지는 소리가 피슈우우욱, 하고 났다. 그를 무시하고 페달을 내리밟자 덩달아 앞타이어도 푸슉, 하며 납작해지는 것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배낭만 자전거에 싣고 걸어서 기차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만나기로 했던 오후 한시가 되자 봉수와 영덕은 만재가 약속한 대로 장비를 모두 갖춰 왔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별도의 가방에 든 텐트는 우산을 접었다 펴듯 쉽게 치고 걷을 수 있는 최신형 3, 4인용이었으나 몇번 쓰는 동안 손질을 전혀 하지 않아 찌든 라면국물 냄새와 녹 냄새가 났다. 기타는 만재가 고등학교 때부터 쳐온 낡은 클래식기타로 여섯달 전쯤 겨울에 봉수가 만재의 방에서 기식할 때 보았던 바로 그 기타였다. 이어 만재는 봉수가 점호를 하듯 “코펠, 버너, 알코올, 석유, 랜턴, 석유램프, 물통, 노래책, 비누, 수건, 치약”이라고 호명할 때마다 배낭을 탁탁 두드리며 있다고 답해주었다. 깜빡한 것은 지금 오고 있는 비를 가릴 수 있는 우산이었다.

우산은 물론 우의가 없기도 마찬가지인 봉수와 영덕의 배낭에는 옷가지 같은 개인 물품 외에 공통으로 된장과 고추장, 쌀이 담겨 있었다. 서울에 사는 만재가 공동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장비를 가져오는 대신 두 사람은 삼인분의 식량을 책임지기로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가지고 온 고추장, 된장의 양을 합치면 영덕의 큰누이가 일년에 한번 다니러 와서 가지고 가는 된장, 고추장의 절반쯤 되었다. 쌀은 두 사람의 것을 합치면 사과푸대 한말은 되었다. 큰누이를 본받아 영덕은 사이다병 하나에 간장을 담고 비닐로 마개를 한 뒤 검은 고무줄로 친친 동여매어 가져왔다. 그외 먹을 음식이며 반찬은 모두 ‘무전’이라는 막강하고 일관된 원칙을 고수하며 현장, 현지에서 조달하게 될 것이었다. 물품 확인이 끝난 뒤 각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고 동시에 불을 붙여 길게 내뿜는 것으로 그들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비는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일차 목적지로 역에서 백리, 곧 사십킬로미터쯤 떨어진 만폭동까지 갈 작정을 한 세 사람의 발걸음을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만폭동은 내륙에서는 제법 유명한 휴가지였으므로 금천읍에서 만폭동까지 직행하는 임시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장에 나왔다 돌아가는 사람들이나 여남은명 태우고 가다 버스정류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내려달라는 데 태워달라는 데 아무데나 설 것이지만, 그러니까 말만 잘하면 공짜로 얻어타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지만, 임시운행 버스는 외양부터 다부져 보이는 것이 무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타기에는 만만치 않아 보였다.

“쫌 말랑하기 생긴 인간들은 다 예비군훈련 갔나.”

앞에 선 봉수가 운전석을 기웃거리며 지나쳤고 그뒤를 만재, 영덕이 따라갔다. 버스는 이미 승객으로 꽉 차 있었다. 좌석에 앉아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통로에는 짐과 사람이 뒤엉켜 서 있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사람과 짐의 차이는 땀을 비 오듯 흘리느냐 아니냐의 차이 정도였고 모두 벌써 지친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오히려 선택받은 사람은 자신들인 듯 세 사람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야, 이거라도 있으이 다행이다. 비가 훨썩 덜 들어오네.”

봉수가 이불가게 앞에서 구한 비닐을 도롱이처럼 덮어쓰고는 소리쳤다. 도로변에 있는 이불가게는 한여름에 이불을 살 사람도 없으련만 가게를 열어두고 있었다. 안은 어두웠지만 불을 켜지 않았다. 실내의 어두움과 혈족이라도 되는 듯 어두운 표정의 여주인이 그들이 비닐을 주워 배낭과 모자 위에 덮고 목 주위를 끈으로 묶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런 대로 비를 가릴 만해지자 세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앞쪽 만암산의 정상부가 부옇게 개고 있었다.

세 사람이 무전여행에 합의한 건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 어느날이었다.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대학에 예비고사 점수로만 당락을 결정하는 무시험 특차전형을 통과하자마자 서울로 온 봉수가 마찬가지로 합격통지를 받은 친구를 고른 끝에 만재를 찾아왔다. 만재의 방에 두달가량 머무는 동안 봉수는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공단 배후지 동네라는 여건을 감안하여 음악다방의 디스크자키가 되었다. 봉수는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크리스마스이브와 제야에는 다방 주인과 협상해서 따로 표를 팔았고 이틀 밤의 수입이 한달치 월급에 해당했다. 만재는 자신이 태어난 도(道)를 한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으면서 서울에 온 지 칠년이 다 되어가는 자신보다 훨씬 더 능란하게 표준말을 구사하는 봉수에 잠깐 놀랐을 뿐, 일관되게 자신의 방식대로 놀았다. 그 방식에는 기식하는 친구에게 제 방을 비워주고 본고사 시험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친구의 자취방에 가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다 거꾸러져 자는 것도 있었는데 그 자취방은 대개 영덕의 방이었다. 대학 입학금을 장만하여 만재의 방을 떠나기 전 봉수는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서울에 온 건 말이다. 풍전호텔 나이트 가서 나이트 피버를 즐겨보고 마장동 도살장도 가보고 싶어서였는데 느덜 집이 그런 데에서 좀 멀다 보이까네 우째 하다 보이 돈만 벌고 말았다. 이 돈으로 여행이라도 가면 좋겠는데 지금은 입학식을 하러 가야 하는 고로 시간이 없구만. 원래 천리 여행을 가는 게 만권 책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더나. 우리 같이 올여름에 딱 천리 여행을 가기로 하자. 그래 젊은 시절을 멋지게 끝내고 나는 군대에 갈 생각이다.”

만재는 “그래. 넌 모르겠지만 네가 영덕이 신세도 많이 졌으니까 걔도 같이” 하고 봉수의 어깨를 밀어 떠나보냈다. 어느날 영덕을 찾아간 만재가 “봉수가 여름방학 때 여행을 가자고 그러던데. 너도 갈 거지” 하자 영덕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재가 “너는 먹을 양식이나 제대로 싸가지고 와라. 다른 건 내가 준비할게. 봉수 그놈은 주둥이만 가지고 올 거 같지만” 했을 때 “나 돈 없는데” 한 게 영덕이 여행에 관해 한 말의 전부였다.

맨 앞에서 봉수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모자 차양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손으로 붙든 채 걷고 있었다. 세 사람 다 평균보다 키가 큰 편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봉수가 제일 컸다. 입이 무거운 것까지 몸무게로 친다면 영덕이 제일 무거웠다. 만재는 모든 면에서 중간쯤 되었고 세 사람의 가운데서 걷고 있었다.

출발한 지 한시간쯤 되었을 때 비가 그쳤다. 봉수의 걸음이 상당히 빠른 편이어서 대충 6,7킬로미터는 온 듯했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봉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빗물이 흐르던 몸에 본격적으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걷기 시작한 지 세시간이 가까워오면서 면소재지가 있는 시가지가 나타났다. 만재는 길가의 우체국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물통을 채웠다. 셋은 나란히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해가 안 나서 그렇지 한여름 대낮에 배낭 메고 걸어다닌다는 건 상당히 무리다. 지나가는 차를 타면 몇십분이면 갈 걸 하루 종일 걸어도 못 가겠다.”

만재가 허벅지를 두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무전여행 하는 인간이 정신자세가 글러먹었네. 젊은 놈이 한번 칼을 뽑았으마 죽든동 살든동 끝을 봐야지.”

봉수의 말에 만재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밑져봐야 손핸데 우리 히치하이킹이나 해볼까. 우리가 세 사람이니까 한가지 안건에 둘이 찬성하면 가결되는 거다. 조영덕, 찬성? 탕탕탕. 통과. 근데 이게 왜 지금 생각난 거지?”

만재와 영덕이 배낭을 들고 일어서자 봉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순간적으로 지도자의 위치를 빼앗긴 게 불만인 듯했다.

“셋이니까 둘은 숨고 한 사람이 서서 차를 잡자.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고생하기로 하고. 그럼 나네?”

처음에는 만폭동 쪽으로 갈 성싶은 승용차를 세워보려 시도했지만 어떤 차도 서지 않았다. 세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차는 없었다. 단 한번 운전자 혼자 탄 차가 서려고 하다가 셋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걸 보고는 달아나버렸다.

“같이 놀러가는데 어떤 놈 타고 가고 어떤 놈 걷고, 사람 등급이 있나. 난 인제 자존심 상해서 저 새끼들 차 태워준다고 절을 해도 안 탄다.”

봉수가 선언했다. 그러고는 긴 다리를 리듬있게 쭉쭉 뻗으며 걸음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앞에서 걷던 만재는 봉수로부터 “갈구친다, 비키라”는 말과 함께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은 동양인의 전형이라는 걸 지적받았다.

만재는 승용차는 포기하고 트럭이라도 방향만 맞으면 타자고 했으나 휴가철에 농촌지역을 다닐 트럭은 거의 없었다. 아니 농촌에 트럭 자체가 많지 않던 시절, 1979년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트럭이라고 판별될 때마다 “트럭!”이라고 외치며 손을 들기를 몇번, 우체국 앞을 떠난 지 한시간이 흘렀다.

“만세, 경운기다!”

오른쪽 허벅다리에 가래톳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만재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경운기라고 아무나 태워주는 것은 아니었고 경운기를 몰고 만폭동까지 가는 농부는 없었다. 세대째 만에 2킬로미터 정도밖에 안되는 구간이나마 경운기를 얻어 타게 되기까지 만재는 목이 쉬었다. 만재가 타자 영덕이 말없이 경운기에 올라탐으로써 경운기를 타고 가는 게 전체의 의사가 되었다. 영덕은 그날 만재에게 “왔네?”라는 두 글자를 발음한 이후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봉수는 마지못해 경운기의 짐칸에 오르고는 배변을 할 때처럼 엉덩이를 경운기 바닥에 닿지 않게 든 채 앉았다.

타고 가는 동안 만재는 경운기에서 내리지 말고 가는 데까지 가자고 주장했다. 어차피 그날 그들이 만폭동에 도착할 수는 없는 일이니 어디선가 자야 할 것이고 그 어디선가가 경운기가 멈추는 곳이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느냐고. 영덕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그게 찬성의 의사에 가깝다는 것을 알자 봉수는 앞에 나타난 저수지로 고개를 돌렸다.

경운기가 멈춘 곳은 국도에서 오백여미터 떨어진 마을 안에 있는 농부의 집 앞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버드나무가 둑에 서 있는 저수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수지 위쪽에 원두막이 서 있었다. 원두막이 있는 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은 오이였다.

텐트 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 안도하며 그들은 원두막 아래로 기어들었다. 어느새 오이를 와그작거리며 씹던 봉수는 “아, 이왕에 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