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역사주의적 방법론과 실학적 당파성

송재소 『한시 미학과 역사적 진실』, 창작과비평사 2001

 

 

윤재민 尹在敏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yoonjm@korea.ac.kr

 

 

송재소(宋載.) 교수의 저서 『한시 미학과 역사적 진실』은 1981년부터 2000년까지 근 20년 동안 저자가 쓴 18편의 논문을 수록한 책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격동의 시절이 아닌 때가 언제 있었겠는가마는 지난 세기의 마지막 20년, 곧 80년대, 90년대는 바로 금세기의 오늘을 사는 우리, 특히 이 20년을 겪어온 세대들에게는 정치·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참으로 변화·곡절이 많았던 격동의 시절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바로 이 격동의 20년의 산물인 셈이다. 흔히 하는 말로 그사이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그러나 이 20년 동안 씌어진 저자의 18편의 논문들은, 적어도 그 밑바탕에서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일관된 관점을 보여준다. 그것을 저자는 머리말에서 ‘역사주의적 방법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역시 머리말에서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4면)이라고 하거나 “문학작품을 통하여 한 인간의 삶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또 이를 통하여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진실에도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3〜4면)라고 한 표현 등으로 볼 때 이 ‘역사주의적 방법론’은 곧 ‘역사주의적 세계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역사주의적 시각이 이 책에 실린 논문들에 구체적으로 적용될 때 부각되는 것이 실학적 당파성이다.

이 책의 논문들은 한시 용사(用事)의 비유적 기능을 다루는 한 편을 제외하면 모두 특정 작가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크게 성리학자와 실학자의 두 부류로 대별된다. 곧 고려 말엽의 이곡(李穀)·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과 조선 초·중기의 김일손(金馹孫)·이언적(李彦迪)·김성일(金誠一) 등과 조선 후기 17세기의 이경석(李景奭)·이현일(李玄逸), 19세기의 이원조(李源祚), 구한말의 유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이남규(李南珪) 등을 성리학자 계열로 묶을 수 있다면, 조선 후기의 실학파 인물로 널리 알려진 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정약용(丁若鏞) 등과 이 “실학 시대를 여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한 셈”(199면)이라 할 17세기 초의 허균(許筠) 등을 실학자 계열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있는 사실은, 이 작가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애정어린 긍정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자신의 논문이 다루는 대상에 대해서는 누구나 애정이 가게 마련이고 또 어느정도 이러한 애정이 없다면 즐겁게 논문을 작성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고려말 수용기의 성리학과, 조선 건국 후 관학화(官學化)한 성리학에 대항해 등장한 사림파의 도학(道學)에서 성리학의 긍정적 역할을 찾고, 사림파의 집권 후 다시 관학화의 길을 가게 된 성리학적 도학이 그 부정적 기능을 드러냄에 따라 이에 대항하여 실학이 등장했다고 보는 저자의 구도에 비추어볼 때, 성리학이 그 사변적인 말폐(末弊)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평가되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적 인물들에 대해서까지 보이는 저자의 애정어린 긍정의 시선은 자못 각별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저자의 논리적 파탄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자의 문학과 역사를 바라보는 일관된 관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들을 관류하는 공통점은 그들이 저마다 처한 정치현실 아래에서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시대의 고민을 부여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하게 진실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성리학과 실학의 대립적 구도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자 계열에 속하든 실학자 계열에 속하든 이 책에서 대상으로 삼은 작가들은 다분히 경세가(經世家)의 기질이 강한 실천적 인물들이다. ‘시인이라기보다 경세가’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가령 학봉(鶴峯) 김성일을 평하여 “퇴계 사후에 지루한 사변적 논쟁으로 그 말폐가 드러나고 있었던 이기(理氣)·심성론(心性論)으로부터 한걸음 비켜나 있었다는 것은, 그가 현실의 문제를 매우 중시한 경세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152면)고 한 것이나, 백헌(白軒) 이경석을 평하여 “의연한 자세로 난국을 헤쳐나간 훌륭한 정치가이자 탁월한 경세가”(203면)로서 “시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도를 전달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 사람”(214면)이라고 한 것, 그리고 갈암(葛庵) 이현일을 평하여 “뛰어난 도학자이자 경세가였다. 그러므로 그를 시인이라 하기는 어렵다”(230면)고 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들 외에도 수당(修堂) 이남규를 평하여 “그는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성품의 선비로서 조정에 있을 때나 야(野)에 있을 때나 유학의 정도를 지켰고, 일제(日帝)의 마수가 뻗쳐왔을 때에는 오로지 우국일념(憂國一念)으로 처신하여 지금까지도 추앙을 받고 있다”(266면)고 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115-422이러한 경세가의 기질은 실학적 성격과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시대성·역사성을 사상하고 ‘실학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면,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작가들은 대부분 어느정도 ‘실학적’이라는 관형어를 붙여도 좋을 인물들로서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저자가 ‘실학’이라는 용어를 ‘허학(虛學)’에 대한 상대적 용어, 곧 일반명사로 취급하고 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다만 저자의 일관된 관심사가 실학 바로 거기에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학이야말로 저자가 입각해 있는 당파성의 근거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바로 이 실학적 당파성을 준거로 해서 저자는 고려말로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가들의 정신세계를 때로는 시를 중심으로, 때로는 산문을 중심으로, 때로는 그들의 문학론과 미의식을 중심으로 꼼꼼히 짚어본다. 고려말 이래 조선시대 문학의 큰 흐름을 도학파의 문학과 실학파의 문학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하는 근저에도 바로 이 실학적 당파성이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퇴계(退溪)·율곡(栗谷)에 의하여 정점에 이른 성리학이 그 참신한 맛을 상실하였다고 평가되는 쇠퇴기의 일부 성리학적 인물들에 대해서도 긍정의 시선이 가능했던 이유 또한 이 실학적 당파성의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응와(凝窩) 이원조의 경우는 예외로 취급될 만도 한데, 그것은 이원조가 19세기의 이른바 ‘보수반동기’를 거치면서 실학이 위축되고 “다시 부활한 성리학의 학풍”(245면)을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부활’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선명하지 않다. 상승기 성리학의 순기능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면 어느정도 실학적 당파성 아래에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점을 분명하게 해명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저자는 “이 시기에 주자학이 다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주자학 중에서도 주리론(主理論)이 득세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244면)고 하여 이 문제를 잠시 미뤄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저자의 실학적 당파성 그 자체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 및 그 결과 나타난 성과들에는 역시 세심하고 정치하게 따져야 할 적지 않은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물론 이것들을 세심하고 정치하게 따지는 일은 저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