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장류진 張琉珍

1986년생.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이 있음.

jace.ryujin@gmail.com

 

 

연수

 

 

출발지에 집 주소, 목적지에는 출근지의 주소를 검색해 넣었다. 그리고 자동차 길 찾기 버튼을 눌렀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우회전 두번 바로 좌회전 한번.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직진. 계속 직진. 사거리에서 크게 좌회전. 그리고 직진 또 계속 직진. 그렇게 얼마간 가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했다. 큰길까지 나가는 작은 길들을 제외하면 크게 둥근 ‘ㄱ’ 자 모양의 길이었다. ㄱ 자의 가로획을 달리는 데 십분, 세로획을 달리는 데 십분. 합해서 이십분의 거리. 출퇴근이 차로 이십분 걸린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부러워했다. 이번엔 자동주행 버튼을 눌렀다. 액정 화면 속에 출근길 도로가 일인칭 시점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화면을 눈으로 좇으면서 쥐고 있던 차 키를 만지작거렸다. 견고하게 양각된 로고를 엄지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매만졌다. 신형 A5 스포트백.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페이스, 날렵하게 빠진 뒤태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 차를 타고 이제 출근만 하면 되는데.

나는 운전을 못한다. 잘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못한다. 기능시험에 두번 낙방, 도로주행 세번 낙방 후 네번째에 면허를 따긴 했지만 그마저도 구년 전의 일이었다. 심지어 그중 한번은 사고를 냈다. 예의 그 샛노란 차를 타고서. 조수석에는 감독관이, 뒷좌석에는 다음 응시자가 타고 있었고 나는 핸들에 바짝 붙어 앉은 채로 그저 차선만 따라 달리던 중이었다. 그러다 별로 크지도 않은 사거리를 지나던 때에, 길과 길이 교차해 차선이 잠시 끊어졌다 이어지는 그 짧은 찰나, 내가 달리고 있던 차선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헷갈려 어어, 어어, 하다 앞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충돌의 순간, 감독관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뒤에 타고 있던 응시자는 몸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바람에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쿵, 뒤이어 반사적인 비명. 질끈 감았던 눈을 떠보니 뒷범퍼의 오른쪽 귀퉁이가 옴폭 들어간 SUV에서 운전자를 포함한 4인 가족이 뒷목을 잡고 줄줄이 내리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주연씨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단순히 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네가 저지른 일을 똑바로 마주하라는 듯 책망과 비난이 가득했던 그 목소리. 이후에도 그 힐난조의 목소리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한동안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운전은 내게 유일한 실패의 경험이다. 살면서 마주해온 여러 관문들을, 대부분 성공적으로 통과해왔다. 지역 명문고교 입시에 합격했고, 원하던 대학에 한번에 입학했고, 장학금을 받았고, CPA도—물론 공부하는 동안은 힘들고 어렵고 외로웠지만—삼년간의 공부 끝에 합격했다. 빅펌 네군데 중 맘에 드는 두군데에 원서를 썼고, 모두 최종 합격했으며, 그중 초봉이 더 높은 곳을 골라 입사했다. 스물다섯살 때의 일이었다. 무언가 해내고 싶은 마음, 되고 싶은 모습이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모습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몰랐다.

그러니까 운전대를 잡기 전까지는.

 

*

 

아무래도 운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신규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앞으로 최소 삼개월 이상 출근해야 하는 클라이언트의 오피스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교통편이 애매했다. 버스로는 아홉 정거장일 뿐이었지만 타러 나갈 때, 그리고 내리고 나서 걷는 시간만 이십분이 넘었다. 같은 길을 차로 이동하면 도어 투 도어로 이십오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사내 홍보 게시판에 올라온 수입차 프로모션 행사, 때마침 눈여겨봐오던 신규 모델, 때마침 나온 상반기 인센티브…… 나는 덜컥 계약서에 사인해버리고 말았다.

출고일을 알리는 딜러의 전화를 받은 날, 포털사이트에 ‘운전 연수’를 검색했다. 결과를 최신순으로 정렬해두고 제목을 살폈다. 대부분 업체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의 광고성 글이었는데, 우리 동네 맘카페가 출처인 글을 하나 발견하고 곧장 클릭했다. 연수가 너무 만족스러워서 추천한다는 본문 내용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에는 강사의 연락처를 문의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각각의 댓글에는 원글의 작성자인 ‘준서맘’이 일일이 비밀댓글을 달아두었다. 가장 최근 작성된 댓글은 바로 어제 달린 것이었는데, ‘10년 장롱면허 청산했어요. 정말 잘 가르치세요!’였다. 왠지 신뢰가 가서 문의해보려 했지만 카페 회원이 아닌 사람은 댓글을 달 수도, 쪽지를 보낼 수도 없었다. 나는 우선 카페에 가입했고 정회원 승급 조건을 맞추기 위해 가입인사를 쓰고 틈틈이 이런저런 글에 댓글을 달았다.

내 닉네임은 ‘주연맘’이었다. 그냥 내 이름 뒤에 ‘맘’만 갖다 붙인 것으로, 어차피 등급만 조정되면 따로 활동은 하지 않고 필요할 때 원하는 정보만 얻어 갈 생각이었다. ‘진짜 주연맘’과는 냉전 중이었다. 몇년 전부터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대체 결혼은 언제 할 거냐면서 들볶이는 일에 지쳐 있었고, 문제의 그날 역시 오늘도 한 소리 듣겠구나 하는 마음에 고속버스 안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잔뜩 차려둔 밥상 위로 내민 건 이미 가입이 완료된 수백만원짜리 결혼정보회사의 서류였다. 위태롭게 이어져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입을 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서류를 한 손으로 구겨 쥐고 있었다.

“왜 그래? 왜 쓸데없는 짓을 해? 그리고, 이게 대체 얼마짜리야? 돈이 그렇게 많아? 이런 데 쓸 돈 있으면 엄마 옷이나 좀 사 입든지!”

내가 결국은 서류를 바닥에 내던졌을 때도, 엄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걸 다시 주워 올렸다.

“내가 너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니. 비싼 과외를 시켜줘봤니, 해외연수를 보내줘봤니…… 주연아, 너는 내가 따로 신경 못 써도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해왔잖아. 그게 얼마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는지 아니?”

엄마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내오면서 말했다.

“네가 여태까지 다른 건 알아서 다 잘해왔으니까, 이건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너 결혼만큼은, 내가 꼭 시켜주고 싶어.”

또 시작된 엄마의 요지경 화법. 마치 내가 갖고 싶어했지만 끝내 가지지 못한 결핍을 자신의 큰 결심으로 채워주겠다는 뉘앙스. 문제는 내가 비혼주의자이며, 엄마에게도 그 사실을 이미 여러번 말했다는 사실이었다.

“왜 또 거룩한 척하면서 나만 나쁜 사람 만드는 거야? 내가 결혼 생각 없다고, 결혼 안 할 거라고, 몇번이나 말했잖아요.”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건, 엄마가 해줄게.”

또 못 들은 척.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엄마의 청력은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결혼 안 하겠다는 말만은 필터라도 걸어놓은 듯 튕겨냈다. 나는 먹던 밥숟가락을 식탁 위에 딱 소리 나게 내려놓고 그대로 집을 나와버렸다. 그날 이후로는 서로 전화 한통 오가지 않았다. 벌써 두달째. 냉장고의 밑반찬들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안내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카페에 가입한 지 정확히 일주일 뒤, 정회원으로 승급되었다는 알림을 받았다. 나는 글 작성자에게 쪽지로 강사의 연락처를 물었고, 전화번호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준서맘 소개로 왔다 그러면 잘해줄 거라길래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고 카페를 괜히 한번 둘러보고 있는데 전체 글 목록에 새 글이 떴다. ‘사고팔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무심결에 클릭해보니 자동차 캐릭터가 그려진 손바닥만 한 삼각팬티 열장을 다섯장씩 두줄로 나란하게 펼쳐놓은 사진 한장과 그 각각의 팬티를 하나씩 찍어 올린 사진 열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개당 천원이고 열개 다 하시면 팔천원에 드려요. 기저귀를 막 뗀 30개월 무렵의 아이가 입으면 딱 좋다는 말과 함께 전부 깨끗이 빨아서 다려놨다는 부연설명이 적혀 있었다.

카페에서 육아용품들이 거래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입던 팬티까지 사고파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입던 팬티를 천원 주고 사는 삶과 입던 팬티를 팔아서 천원을 버는 삶, 둘 다 생경하게 여겨졌다. 예전에 우연히 보게 된 어떤 커뮤니티의 글에서 남편의 팬티를 빨 때마다 미세하게 똥이 조금씩 묻어 있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푸념을 본 적이 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공감한다는 댓글들을 보고 한번 더 깜짝 놀랐다. 아마 내가 비혼을 결심하게 된 건 인터넷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전해주는 기혼의 삶을 들여다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끝을 알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디테일을 하나도 모른 채로 누군가와 결혼했으면 어쩔 뻔했나, 그 생각만 하면 그지없이 아찔했다. 안쪽에 똥이 묻어 있는 성인 남자의 후줄근한 트렁크 팬티를 상상하자 참혹함에 온몸이 떨려왔다. 나는 재빨리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브라우저를 닫았다. 남아 팬티 한개 천원 열개 팔천원의 세계로부터 황급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내 팬티만 빨면 돼. 그건 팬티 한장만큼 가벼운 일이었다.

카페에서 받은 휴대폰 번호를 저장하자 메신저에 자동으로 새 계정이 떴다. 프로필을 눌렀더니 새하얀 테니스 원피스를 입은 웬 까무잡잡한 여자애 사진이 나왔다.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은 채로, 초록색 라켓을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 공을 쳐내기 직전의 순간을 찍은 것 같았다. 상태 메시지는 ‘한국의 샤라포바’였다. 나는 ‘운전 연수해주시는 분 맞나요? 준서맘 소개로 연락드립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곧바로 이렇게 답이 왔다.

 

(아래 서식 작성 요망)

이름:

주소:

나이:

혈액형:

차종:

면허취득 시기:

원하는 연수 날짜 :

 

순식간에 답이 온 것으로 보아서는 새로 입력한 게 아니라 어딘가 저장해둔 걸 복사해서 보낸 것 같았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구나, 하는 안도도 잠시. 혈액형은 대체 왜 필요한가 싶어 의아해졌다. 혹시 연수 중에 교통사고가 날까봐 그런가? 수혈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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