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솔뫼

1985년 광주 출생.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 등이 있음.

songbook1123@gmail.com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영우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는 뉴욕 런던 자카르타 토론토 상하이뿐만 아니라 광주 통영 울산 제주 서귀포 전주 광양 보령도 있었다. 종종 어떤 곳은 가보지 않았지만 가보았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영우는 광주에 가게 되었고 후에 전부는 아니지만 다른 장소들도 몇군데 가게 된다. 상문은 순천 사람인데 대학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상문은 순천에 살 때 부산에 자주 갔다. 광주에서 대구나 부산을 바로 가는 기차는 없어서 버스를 타야 했지만 순천과 부산은 그래도 가까운 편이었다. 부산에 갈 때 포항과 대구를 들른 적이 있어서 상문은 바다와 바다가 있는 도시와 그외 가보지 못한 많은 도시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버스터미널이 있고 역이 있고 시청이 있고 금은방과 식당이 있었다. 빈 골목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지나갔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지나갔다.

 

녹음기 버튼을 여러번 확인하고 카메라도 챙겼지만 중요한 것은 손으로 적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모든 도시는 같아. 거기에는 똑같은 것이 있고 똑같지 않지만 다시 만날 수는 없는 것들이 있다, 여러번 걷고 걸어도 그런 방식으로 모든 도시는 같다고 또 생각했다. 시간이 많은 두 사람은 미리 광주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피며 하루를 보냈다. 상문은 친구의 빈 작업실을 소개받아 영우와 짐을 풀었다. 밤에 나가니 주변은 오래된 건물뿐이었다. 다음 날 미리 받은 주소의 한복집으로 가 서명운 감독의 따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한복집 주인은 그 사람은 한복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주인이라고 했다. 한복집 주인이 걸어준 전화로 둘은 딸과 약속을 잡았다. 길을 걷는데 구름이 선명하고 도서관을 향해 심긴 나무들의 잎들이 흔들거렸다. 왜 당신들은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찾아와 전화를 하는 거요? 광주에 오기 전에 연락이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어서 연락이 되는 사람과 약속을 하는 김에 여기에 와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한복이 의외로 예쁘다고 생각했어. 상문은 한복집 안 에어컨이 정말 세게 틀어져 있었고 맥심모카골드 대신 오래된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만화에서처럼 우르르 뛰어나갔다. 둘은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광주 지역 주요인물 자료만 모아둔 곳으로 갔다. 서명운 감독 딸의 이름은 서마리였는데 그분은 내일 만날 예정이고 광주에 가기 전 연락이 닿아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은 조구택 선생이었다. 서명운 감독도 서마리씨도 광주 출신은 아니었고 연고도 없었으나 서마리씨는 이혼 이후 광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둘은 혹시 모르니 조구택 선생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그 구역에는 지방대학의 초대 총장인 조기택에 관한 자료가 많았다. 조기택은 여수 누구누구 댁의 차녀 모씨를 아내로 삼아. 빛이 책장 사이에서도 움직이고 사람들은 앉아 있고 영우는 아내로 삼는다는 말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며칠 뒤 만날 조구택 선생이 아니라 친일파의 자손인 조기택 지역사립대학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에 관한 자료를 열심히 읽었다. 그 사람은 광주 시민단체에서 작성한 반민족 인물 목록에도 포함되어, 한때 대학에서 동상을 철거하는 것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동상은 철거되지 않았고 대신 그의 친일 행적을 기록한 안내문이 동상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서마리씨는 이 근처에 자주 와요. 그런데 연락처를 몰라요?”

“그게, 주변에 물어봐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커피 한잔 드세요. 물어보고 알려드릴게요.”

 

한복집 안은 시원했고 주인은 한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몸에 붙는 짙은 연두색의 여름 니트와 검정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상문은 실제로 조구택의 자료를 찾는지 아니면 다른 뭔가를 하는지 도서관 안에서 열심히 자료를 찾고 있었고 영우는 조기택이 대학을 설립한 이야기를 읽었다. 눈으로는 조기택의 개인사를 읽으며 머릿속으로는 조구택의 일화를 떠올렸다. 이름이 비슷한 두 사람은 집안 환경과 교육받은 정도는 달랐고 아마 성격도 무척 달랐을 듯하지만 광주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나이 차는 스무살을 넘지 않았다. 부자였고 정말 둘 다 꽤 부자였다. 당시 조구택 선생은 현금부자였고 영화 제작과 상영에, 특히 상영에 돈을 많이 댔다고 한다. 조구택 선생을 만나려고 왔지만 둘이 아는 것은 그 정도였다. 그때 조구택이 알고 지내던 영화인 중 한명이 서명운 감독이었는데 그는 두어달 전 세상을 떠났다. 상문은 서명운 감독의 영화를 실제로 극장에서 본 적은 없었다. 상문은 서명운 감독의 친구인 이두현 감독의 영화들은 극장에서 본 적이 있다. 상문이 어릴 때 아버지가 일을 보기 위해 극장에 상문을 앉혀놓고 나간 적이 있었다. 상문이 어릴 때 개봉작을 본 것이니 이두현은 그러고 보면 그럭저럭 오랫동안 영화를 만든 셈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 떨린다는 생각, 나이 든 사람이 무섭고 앞으로 할 일이 의심스럽고 그런 식으로 자신이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생각하다가 이두현 감독에 관해 쓰려다가 왜 초대 총장이자 대학 설립자인 조기택에 관해까지 읽고 있는가 생각하다가 커피를 마시며 서마리의 전화를 기다리고 연두색과 검정색은 어울리는가 생각하고 어쩌면 한복집도 처음 와본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영우는 이두현의 영화를 뒤늦게 보았지만 이전부터 보아온 것 같다고 줄곧 생각했다. 조기택에 관해 읽다가 어쩌다 이걸 읽고 있는지에 대해 매 순간 생각하다가 두시간쯤 지나서 둘은 도서관을 나왔다. 이두현 감독은 예순이 넘어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고 전해지고 이후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원래 연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민이 쉬운 일인가 궁금해졌고 이두현은 이후 일본에서도 회고전을 했다고는 하는데 그 사람이 실제 어떻게 지내는지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가 비밀스러워서라기보다 그에게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상문은 서명운 감독의 특집 원고를 쓸 것이라고 했고 영우는 이두현 감독을 주제로 한 논문을 쓸 것이라고 했는데 그들 모두가 한때 만나서 모여 놀고 어울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왜 한복집에까지 갔나 왜 조기택의 일생을 읽고 있나 정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끼어들었다. 영우는 재작년부터 후꾸오까 미술관의 필름 아키비스트와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한번도 한국에 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서울도 부산도 가본 적이 없고 토오꾜오도 스무살이 넘어서 가보았다고 했다. 오끼나와도 삿뽀로도 가본 적이 없고 아오모리도 하꼬다떼도 가본 적이 없고 니이가따도 못 가봤습니다. 그런데 오하이오에서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지낸 적이 있다고 하였다. 왜 이두현 감독의 영화를 늦게 보았으면서도 줄곧 그의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했을까 더듬어 생각해보니 그에 관한 몇편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중 한편은 그 아키비스트가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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