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영희는 언제 우는가

 

 

“아이, 아이, 애란 어미 어디 갔느냐.”

악을 쓰는 노인은 영희의 시고모다. 영희가 나오는 곳은 화장실이다. 느릿느릿한 영희 거동에 내가 다 애가 단다.

“할머니, 애란이가 아니고 아람이요.”

노인이 영희 큰딸 아람이를 애란이라고 하든 애랑이라고 하든, 꼭 그 자리에서 토를 달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무슨 어깃장이었던가. 서방 죽어도 처먹을 것 다 처먹고 볼일은 다 보는 저년이나 네년이나 한통속이라고 노인이 느끼는 것 같아서일까. 노인이 나를 흘낏 건너다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모가 서 있다. 내 말에는 대꾸하지도 않고 노인이 대뜸,

“아이, 너는 어째 허는 짓이 다 그 모냥이냐. 상석 올리얄 것 아녀.”

시고모의 악다구니에는 이골이 나 있다는 태도인가. 아니면 저도 많이 지쳐서 그런 것일까. 영희는 내가 봐도 사뭇 답답한 걸음걸이로 부엌으로 들어간다. 영희 뒤태를 매섭게 꼬나보던 노인이 헤앵, 탄식의 한숨을 몰아쉬고 나서 돌아선다.

밥과 국과 나물 몇가지가 올려진 소반을 들고 영희가 제 남편의 시신이 놓여 있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침에 동네 바느질장이가 가져다준 하얀 나일론 소복치마가 자꾸 발에 걸려 영희 발걸음은 위태롭다.

“아이, 상석 놓을 때마다 내가 일일이 말을 해야 알아듣겄냐. 곡을 해얄 것 아녀, 곡을.”

방안에서 예의 노인의 새된 소리가 흘러나온다. 영희는 잠잠하다. 참다 못한 노인이 먼저 아이고오 아이고오, 곡을 한다. 노인의 곡소리는 하나도 슬프지 않다. 청승맞은 노랫가락 같다. 흐흑,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영희 큰딸 아람이 울음소리다. 이어, 애애애애, 영희 막내아들 건주 울음소리. 방 밖에서 그 소리를 듣던 동네 아낙이 뭣이여, 저것이, 뭔 맴생이가 우는 것이여? 하고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섰다가, 어이 자네는 시방 이 판국에 웃음이 다 나온단가? 다른 아낙의 면박에 후다닥 부엌으로 내뺀다.

“고모할매 자꾸 울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마란 말예요. 그란해도 울엄마 맘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질 판인데, 고모할매가 자꾸 호랭이같이 갈구니까는 울엄마가 더 슬프잖아요.”

이건 둘째 소담의 야무진 일갈이다. 소담이는 차돌멩이같이 야무져서 죽은 제 아비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아이였다.

“엇따따, 호랭이 물어갈. 소자 났다, 소자 나. 소자 나면 뭣을 헐 것이냐, 인자 느그 애비도 없는디. 아이고오 아이고오, 창색아아, 내 새끼 창색아아, 이 무정허고 무심헌 놈아아, 너를 업어주고 키워준 느그 고모를 내던져불고 뭣이 그리 바빠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부렀느냐아. 아이고오 아이고오, 농판이 되아분 느그 아부지는 어찌라고 너 혼자 가부렀느냐아아. 원통허고 절통혀서 고모는 못 살겄다아……”

노인의 마른 울음 섞인 사설은 끝이 없다. 어제 처음 이 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줄창 들어온 통곡소리다.

싸락눈이 내린다. 싸락눈은 싸락싸락 내린다. 영희집 뒤안에 무성한 대나무 이파리와 싸락눈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싸락싸락 싸르르, 그러다가 그 소리는 이내 서걱서걱 소리로 변하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 대나무숲이 일렁거리면 솨아아, 파도소리가 난다. 나는 선득거리는 마루에 서서 눈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눈이 댓이파리와 부딪는 소리를 듣는다. 대숲 일렁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영희 울음소리를 기다린다. 영희가 울어주기를. 제 남편 죽었다고 동네방네 다 들으라고, 제 가슴 주먹으로 콩콩 찧으며 울어주기를. 그러나 영희는 잠잠하다. 조바심이 인다. 문을 열고 야, 울어라 울어 좀, 한마디쯤 던지고 싶다. 영희가 울지 않으니까 영희 친구인 나도 눈치가 보인다. 아침 일찌감치 건너온 영희 일가 아낙이 부엌 샛문 틈으로 슬쩍 내다보는 것이 아무래도, 당신이 대관절 누구관데 식전부터 초상집 마루에서 건들거리느냐, 된 통박을 줄 것만 같다. 실제로 어젯밤 나는 부엌 안에서 흘러나오는 아낙들 속닥이는 소리를 들었다.

“조문 와서 잠이나 퍼자는 여자는 세상천지 처음 보네.”

“누구여?”

“아람 어매 친구라네. 어째 아람 어매는 친구를 사개도 꼭 저런 친구를 사갰으까.”

이곳에 오기 전에 먹은 약이 독했던가. 혼곤하게 잠이 쏟아져 견딜 수가 없었다. 영희집에 오자마자 아무데나 사람이 없는 빈방을 찾아 누워버렸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건 흉거리일 수밖에 없을 거였다. 그래도 약 덕분인가. 아침에 일어나니, 미열이 좀 나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통증도 싹 가셨다.

내 신발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신발을 찾을 수가 없다. 마루밑을 들여다본다. 강아지 새끼들이 구물구물하다. 야, 저리 가, 아줌마 신발 내놔. 강아지들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우리는 아무 죄 없는데요. 태연자약한 그 표정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영희 남편 신발인가. 강아지가 깔고 앉은 것은 커다란 농구화다. 먼지와 개털과 흙투성이 농구화. 개밥그릇이 비어 있다. 나는 영희 것 같은 파란 비닐슬리퍼를 꿰어신고 마당 아래 아랫방으로 간다. 젖은 신이었던가. 발이 시렸다. 어젯밤, 소담이가 강아지들한테 줄 먹이를 그 방에서 꺼내오는 것을 봤다. 상중에도 소담이는 이 앙 다물고 저희 집에서 키우는 짐승들 챙기고 집앞 버섯하우스도 살핀다. 소담이는 제 이름처럼 소담스레 살핀다. 내가 어제 소담이 저것이 어디를 가나 하고 살살 뒤따라 가봤더니 그랬다. 하우스 거적을 덮어주는 소담이 어깨가 흔들렸다. 속울음을 우는 아이 어깨 가만히 쓸어주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소담이 대신 내가 이 집의 짐승들을 챙겨주는 것밖에는.

아랫방 문앞 토방에 신발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거기 내 신발이 있나. 눈에 띄는 것은 운동화와 털신 그리고 구두다. 남자구두다. 그 남자 신발이다. 내게 약을 사주었던 남자. 숨을 좀 깊게 들이마셔본다. 방에 그가 있을까.

 

“이 차가 광주 가는 차 맞나요?”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남자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어디 가시는데요?”

“광주 가지요.”

광주 가는 차인 줄 알고 탔으면서 광주 가는 차냐고 물은 사람이나, 광주 가니까 광주 가는 차냐고 물었을 사람한테 어디 가느냐고 물은 나나 어딘가 아구가 맞지 않은 질문들을 한 것 같기는 했다. 그리고 남자와 나의 문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차가 서울시계를 벗어나면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운전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남쪽 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기상정보를 알리고 있었다.

“눈이 많이 오는군요.”

경황이 없어 옷을 허술하게 입었을 뿐 아니라, 몸상태가 안 좋아 차가 휴게소에 정차했을 때도 나는 그냥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갔다 들어온 남자가 캔커피를 건넸다. 캔은 따뜻했다.

“광주 가십니까?”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광주 가는 차에 탄 사람보고 광주 가냐고 묻는 것이 우문인지 현문인지 더는 따지고 싶지가 않았다. 몸상태가 안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언가를 생각한다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내겐 없었다. 남자가 건네준 커피를 마실 염조차 나지 않아 나는 캔을 그대로 손에 쥔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눈발의 기세는 더 거세지고 있었다. 차 안에 난방이 되고 있는데도 나는 추웠다. 아침에 나설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더니 버스를 타고 얼마 안 지나 몸살기운이 급격히 몰려왔다. 내가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아야 할 정도로 극렬한 난동을 부리고 나간 남편은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래주기를 나는 바랐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가 집으로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나면 나와 아이들은 절망할 것이다. 새벽녁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의 발신자번호 표시창을 노려보았다. 공중전화면 틀림없이 남편 전화일 것이었다. 여기 과천이야, 혹은 야, 여기 강원도 정선이다. 남편에게서 내가 들을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돈을 준비해놓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전화는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제 옆집 슬기 엄마 표현대로라면, 눈에서 불이 날 정도로 남편에게 대항했다. 그 후유증으로 몸은 비록 아팠지만, 그동안 내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산 세월들이 억울할 정도로 시원한 감도 없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나가라고 악을 썼고 남편은 내가 악을 쓰는 것에 맞추어 나를 두들겨팼다. 슬기 엄마와 내 아이들이 합세하여 남편을 몰아내지 않았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알 수 없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 잔뜩 오그라들던 마음이 표시창에 뜬 숫자를 확인하자 금세 누그러졌다. 그것은 영희에게서 온 전화였다.

“박창석씨, 지금 막 저세상으로 갔다.”

영희 목소리는 예상했던 대로 담담했다. 췌장암을 앓는 남편의 격렬한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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