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호철

이호철 李浩哲

1932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55년 『문학예술』로 등단. 소설집 『나상(裸像)』 『이단자』 『이산타령 친족타령』, 장편소설 『소시민』 『물은 흘러서 강』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 연작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이 있음.

 

 

 

오돌할멈 손자 오돌이

 

 

동해안의 요충지 월비산(月飛山)과 351고지의 치열을 극했던 전투는 서로 빼앗고 빼앗기기를 십여차례, 남북 피아의 전사자가 물경 수백명에 이르렀다.

그렇게 두 고지의 전투가 피투성이로 이루어지다가 모처럼 조용하게 잠잠해지던 어느날 저녁, 소대장 최소위는 땅굴 막사 안에 완전무장한 휘하 소대원 전원을 모아놓고 야간전투에 임한 몇가지 주의사항을 하달하였다.

“야간 이동중 적의 조명탄이 투하되어 대낮같이 환하게 밝아졌을 때는 즉각 그 자리에 엎드려서 꼼짝달싹하지 말아야 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아!”

하고 소대원 전원이 일제히 씩씩하게 응답하는 중에, 맨 앞자리에 앉았던 일등병 하나가 번쩍 한 손을 들며,

“소대장니임.”

하고 불렀다.

원체 상대가 상대라, 이 삼엄한 판국에 또 웬 엉뚱한 소리를 하려나 하고 최소위도 비시시 웃으며 한껏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뭔가. 우리‘고문관’님께서 모처럼 또 할 말이 있으신 모양인데.”

하자, 여느 소대원들도 하나같이 싱얼싱얼 웃으려고들 들었다. 하지만 그 일등병은 추호나마 기 죽는 법 없이 당당하게 아뢰었다.

“제가 며칠 전에 351고지를 공격할 때는 적 소이탄이 터지면서리 환 하게 밝아져서 우리 소대원 모두가 납작하게 엎드리는 속에, 나 혼자서만 냅다 뛰어서 앞으로 나갔다 앙입니까. 근데, 저는 부상 하나도 안 당하고 말짱했는데, 김하사는 그 자리서 즉사하고 김일병도 크게 부상당했슴다. 그렁이 지금 소대장님께서 말씀하시는 거, 그런 거 말짱 헛소립디다요.”

그러자 일거에 한바탕 박장대소가 터지는 속에, 최소위도 일단은 따라 웃기는 하면서도, 금방 벌레라도 씹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그렁이까 그 경우의 자네는 특별히 조상 덕을 보았을 것이야. 그러고 지금 내가 하는 이 이야기는 대강 일반적인 경우의 그런 경우를 두고서 그렇다는 거고, 알겠나?”

순간 자리는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지는 속에, 그 일등병도 다시 곧장 한마디 지껄였다.

“저는, 그냥 모리겠습니다요. 그렁이까 지금 소대장님 말씸은,‘대강 일반적인 경우의 그런 경우를 두고서 그렇다’는 것인 모양인데, 웬 그런 놈의 배배 트는 소리가 다 있으시까요잉.”

소대원들 한쪽 구석에서는 다시 박장대소가 터지려고 하는 속에, 숫자는 적지만 몇몇 소대원들은 조금 신묘한 얼굴을 하고, 조금 전에 소대장이 했던 소리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되옮겨놓는 듯한 것을 보면, 그‘고문관’일등병이 통째로 바보는 아닌 것 같아 소대장의 다음 반응에 잔뜩 귀들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자 소대장도 더이상 이‘고문관’이 걸고드는 데 무작정 휩쓸려들었다가는 괜스레 자기 꼬락서니만 더 이상해지겠다고 작심한 듯,

“자, 자, 그만. 농담들은 그만들 하고, 주목, 주목.”

하고 평소의 소대장답게 위엄을 챙기면서도, 다만 그 일등병에게만은 조금 은밀한 억양 섞어 한마디했다.

“그건 그렇고, 지금 자네 오줌 마렵지 않나. 오줌 마렵지?”

하자, 그 일등병도 대강 그만한 눈치는 있어, 저러는 소대장에게 나름대로 대놓고 야합을 하듯이 능청 섞어 받았다.

“야하, 우리 소대장님 정말 귀신 같네요잉. 오줌 마려운 거, 나도 잠깐 잊어뿌리고 있었는데, 이런 거꺼정 우찌 알고 저리 챙겨주시까잉.”

“그런 거 모르고 우찌 우리 고문관님이 계신 이 소대를 제대로 이끌겠는가. 자, 어서 낼름 나가서 오줌 누고 와.”

“예, 알았슴다.”

하고 그 일등병도 별로 오줌이 마렵지 않음에도 마치 일이 매우 급하기라도 한 듯이 무거운 철모 차림에 군복 아랫도리 그 근처까지 한손으로 움켜쥐면서 곧장 막사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또 별안간 상부에서 어떤 명령이 떨어져 몇시간 뒤에는 얼마만한 규모의 격전에 휘말려들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전체 소대원들 중 과연 몇 사람이나 제대로 살아남게 될는지, 그야말로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첨예하고 삼엄한 판국임에도, 저 일등병의 저런 모습은 소대장 최소위를 비롯, 전체 소대원들로 하여금 잔잔하게 즐거운 웃음을 머금게 하였다.

 

그 사흘 뒤였다.

아침 일찍 대대 휘하 전 장교에게 집합 비상이 걸렸다.

최소위도 득달같이 대대장이 기거하는 막사 바로 옆의 참모 회의장으로 달려나갔으나, 벌써 대대 소속 장교 거개가 다 모여 있었다. 최소위가 막사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서며 일단 대대장 쪽으로 가볍게 예를 표하고는 바로 눈앞, 맨 뒷자리에 살그머니 앉았다.

순간, 지휘봉을 한 손에 든 채 대대장이 빼락 소리를 질렀다.

“간밤에 내 숙소 경비를 담당했던 중대가 어느 중대인가?”

금방 앞쪽에 앉았던 2중대장이 벌떡 일어서면서,

“저희 2중대입니다만……” 하고는 조금 의아한 듯이 대대장을 마주 바라보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하고 묻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대대장은 그냥 묵살한 채 다시 물었다.

“그럼, 밤 12시부터 3시까지 내 방 앞에 보초를 섰던 소대는 어느 소대인가?”

“옛, 저희 소대입니다.”

하고 금방 들어선 최소위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2중대 3소대, 우리 소대였습니다.”

“그래?! 그럼 3소대장 자네, 이리 좀 나와보아.”

3소대장 최소위도 급하게 대대장 앞으로 나가 차려 자세로 섰다.

그와 동시에 대대장의 가죽 지휘봉이 날렵하게 최소위의 철모를 다섯번이나 내리쳤다. 최소위는 도시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는 채였지만, 철모에 와닿는 가죽 지휘봉 소리만 날카로울 뿐 전혀 맞는 기별은 와 닿지 않았다. 그런대로 조금 얼얼하기는 하였다.

비로소 대대장은 조금 풀어지는 얼굴로 비시시 웃음 섞어,

“야 이놈아, 너희 소대 고문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