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오래된 기억과 듣는 사람들

 

 

김요섭 金曜燮

문학평론가. 창비신인평론상으로 등단. 주요 평론으로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피 흘리는 거울: 군사주의와 피해의 남성성」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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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마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1

 

1. 고백하는 사람들

 

소설가 박완서는 한국전쟁에 휘말린 자신의 비극적 가족사를 반복해서 소설로 썼다. 등단작인 『나목』이나 첫 연재소설이었던 『목마른 계절』, 대표작 중 하나인 「엄마의 말뚝」 연작,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하 『싱아』)와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이하 『그 산』)까지. 얼마나 많이 반복을 해왔던지 『싱아』를 쓸 때는 “쓰다 보니까 소설이나 수필 속에서 한두 번씩 우려먹지 않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2는 곤란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 곤경(?)에도 박완서는 3년 뒤 『싱아』에서 다 끝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완결하는 『그 산』을 발표한다. 그후 박완서는 『그 산』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온전히 밝혔다면서, 더는 이를 소설에 쓰지 않기로 한다.3 『싱아』를 발표한 시점에 이미 소설이나 산문을 통해서 이야기하지 않은 가족의 사건이 없었다고 토로하던 그가 『그 산』을 쓰면서야 가족사를 완전하게 밝혔다고 말한 사실은 모순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싱아』와 『그 산』으로 이어지는 90년대의 자전소설은 그 이전의 소설과는 달랐다. 『싱아』와 『그 산』에서 박완서는 자신의 가족사를 ‘증언’했지만, 이전 소설들에서는 가족사에 대한 ‘고백’이 더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1989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중편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는 언뜻 비슷해 보이는 고백과 증언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의 개인사가 반영된 이 소설은 국가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족사를 ‘고백’해왔던 이들의 삶을 증언한다. 민주화 직후 출판자율화로 월북작가의 작품이 해금되던 시기, 화자인 소설가 ‘이’는 자신의 스승 ‘송사묵’의 작품집에 들어갈 추천사를 부탁받는다. 그는 납북작가로 분류되는 송사묵이 실은 자신의 삼촌처럼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정치범이었음을 알고 고민 끝에 송사묵의 가족들에게 진실을 말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가 송사묵의 실종에 대해 말을 꺼내자 그의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납북은 가족이 아버지의 죽음을 돌려서 이야기하는 말버릇, 즉 묵계일 뿐이라고 답한다. 국가에 살해당한 사상범의 가족으로 낙인찍히기보다는 납북자의 가족인 것이 덜 불행해지는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즉 “불행해진 것도 억울한데 홀로 특별하게 불행해지는 거라도 면해보자는”4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이 묵계는 다른 이들에게 온전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파편적인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적대적 시선을 피하는 방어적인 발화에 가깝다. 제임스 스콧(James C. Scott)은 한 사회의 공식적인 언어와 행동규칙(‘공개대본’)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지만 이를 속이거나 위반하는 은밀한 피지배자들의 행동문화를 ‘은닉대본’5이라 불렀다. 송사묵 일가의 묵계는 정치적으로 불온시된 이들을 식별하여 공격했던 국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은닉대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민주화 이전 시기 박완서의 소설 역시 가족사의 많은 부분을 숨기는 방식으로 비극적 기억을 이야기해왔다.

『그 산』에서 오빠의 죽음은 한국군의 총기 오발 사건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 작품에서 죽음의 원인은 모두 달랐다. 『나목』에는 하나가 아닌 두 오빠가 등장하고, 그들은 폭격에 휘말려 희생된다. 『목마른 계절』의 오빠는 그를 의심한 인민군 장교가 쏜 총에 살해당한다. 「엄마의 말뚝 2」에서도 인민군 장교의 총에 맞지만, 즉사하지 않고 몇달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렇듯 박완서는 오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매번 다른 장면으로 그린다. 이는 그의 기억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재현의 내용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듣는 자에 의해 결정된다. 단편 「부처님 근처」에서 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나’와 어머니는 실종이라는 말로 사실을 가리지만, 그들은 가족이 우익에게 살해당했다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는 “얘기를 들어줄 사람의 비위까지 어림짐작으로 맞춰가며 요모조모 내 이야기를 꾸며”6가면서까지 어떻게든 말하고 싶어한다. 소설에서는 ‘나’가 가족사를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돌리지만, 실상은 작가가 이야기의 또다른 청자인 독재국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항상 두려운 그 시선을 속이거나 안심시켜야 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래서 박완서는 80년대 중반까지 전쟁 중 보았던 모든 죽음을 인민군의 탓으로 꾸며서 썼다.

가족사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듣는 이와 함께,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을 의식했던 이는 박완서만은 아니었다. 김원일 현기영 이청준 임철우 등 비극적 역사를 작품에 담은 작가 모두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기억하고 경험한 것들을 고백했지만, 어떠한 가림막도 없이 자신을 노출한 것은 아니었다. 역사학자 김재웅은 북한체제 형성기에 자서전과 이력서가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된 양상에 주목한다. 그는 당시 북한이 인민을 분류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와 그 제도 안에서 체제를 속이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활용된 고백이 충돌하는 격전장이었음을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7 북한 대중의 자기고백은 온전한 사실을 말하는 것도, 완전한 거짓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듣는 이들을 의식하면서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숨겨야 할 것들을 말하지 않거나 변형했다. 민주화 이전 한국 작가들의 글쓰기처럼 말이다. 고백의 문제는 문학이 역사를 재현할 때 듣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누락해왔던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체험했던 앞선 세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는 최근 소설들 역시, 그 기억만큼이나 그것을 듣는 이들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2. 듣기, 증언의 조건

 

증언한다고 나온 사람들 다 잘 합디다만 그 말, 속엣말을 다 했을까… 지옥을 댕겨온 사람들인디 그 세상에서 겪은 일을 다 말했을까, 할 수가 있었을까…. 힘들면 굳이 말 안 해도 돼? 하지 말란께 또 하고 잡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려고 했던 말 해 볼라요. 들어주실라요? 나가 편하게 말 놓을라네. 선생님 아군 맞제? (정미경 「독사의 뱃가죽」, 96면. 강조는 인용자)

 

정미경의 단편 「독사의 뱃가죽」(『공마당』, 문학들 2021)에서 여순사건의 증

  1.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계사 2012, 268면.
  2. 박완서 「작가의 말: 자화상을 그리듯이 쓴 글」, 같은 책 8면.
  3. 수류산방 편집부 엮음 『박완서朴婉緖』, 수류산방 2012, 191면 참조.
  4. 박완서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문학동네 2013, 203면.
  5. 제임스 C. 스콧 『은닉대본』, 전상인 옮김, 후마니타스 2020, 69면 참조.
  6. 박완서 「부처님 근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문학동네 2013, 113면.
  7. 김재웅 『고백하는 사람들』, 푸른역사 2020, 7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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