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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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朴昭姸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1995년생.

batto5@naver.com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의 동력, 그 마음을 움직이는 힘

최은영 작가론 1

 

1. 비디오키드의 비디오테이프

 

여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과거의 친구가 있다. 자기테이프(magnetic tape)에 영상과 소리를 기록하는 수단인 비디오테이프는 IMF에 유년기를 보내며 문화 향유가 어려워진 80~90년생들의 주된 문화 향유 매체였다. 말하자면 그 시절 비디오테이프는 ‘키즈’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두의 친구였던 셈이다. 늦은 시간까지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캄캄한 어딘가에서 색색으로 번져가는 영상을 오래도록 바라봤던 기억, 동시대를 지나며 이러한 공유 기억을 가진 존재들을 이 글에서는 조심스럽게 ‘비디오키드’라고 명명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사회적 병폐와 맞닿은 개인의 고통이 연대를 통해 정치적 입장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삶은 지점에서 지점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세월호, 강남역 살인사건, 대통령 탄핵의 단절면 이후가 아닌 연속선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그 무엇도 한순간에 바뀌지 않았으며 우리는 여전히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부조리를 마주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꾸준히 피로하고 때때로 버거운 것이다.

최근의 소확행 담론과 SNS로 표상되는 단문의 활성화, 즉 가벼운 고통과 적당한 행복을 전시하는 분위기는 무거운 현실을 외면하고 점점 더 가벼워지고자 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지나온 지점들, 앞서 말한 사건들에서 생성된 분위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있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여 어떤 공동체적 연대를 이루려는 ‘진정성’에 기반한 윤리 또한 다시 유효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의 진정성은 어떤 주체가 성찰적, 참여적이게 하며 어떤 가치, 정신, 태도를 중시하는 사회적 구조를 다시금 재정립한다.2 그렇기에 이러한 사회적 담화는 문학에 되돌아와 문학이 무엇일 수 있느냐를, 즉 문학의 윤리와 의미를 다시금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문학이 다시금 정치적・사회적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요구로 회귀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문학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이고 말랑말랑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비디오키드 최은영의 목소리가 값진 이유는 무거운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면서도, 공동체적 연대를 이루려는 윤리 또한 유효해지고 있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과거와 현재의 연속 지점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직접 들려주는 목소리라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당사자를 표방하는 최은영의 목소리는 동시대적 감각과 감수성을 가진 목소리이며 이는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같은 시대, 같은 구조 속에 있다는 점에서 모두의 당사자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데까지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은영의 비디오테이프는 시간의 결을 거슬러 올라 서사를 재현하고, 현재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 서사와 맞닿은, 공통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강한 인력으로 끌어당긴다.

최은영의 서사는 오래된 비디오에 겹쳐진 내레이션과 같은 목소리에 기반을 두고 구축된다. 이를테면 요란한 전자음을 배경으로 뻣뻣하게 돌아가는 애니메이션의 장면처럼 정제된 모노톤의 세계이지만 동시에 선명한 목소리를 가진 세계인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오래된 감각이지만 결코 빛바랜 감각은 아니다.

 

 

2. 순차접근의 방식

 

상처받은 기억들, 혹은 그때의 마음들은 “기억나지 않는 시간”(「지나가는 밤」)이 될지라도 어딘가에 “분명한 자국”(「쇼코의 미소」)으로 남는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 슬픔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자꾸만 멈춰 서게 만들거나 ‘이유 없이 아프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아프다는 것을 자각하고 왜 아픈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유는 상처를 발견하고 인정하며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알아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비디오테이프는 ‘순차접근’만이 가능한 기억장치이다. 그렇기에 비디오테이프에 기억된 어떤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 서사를 차례로 판독하며 되짚어봐야 한다. 최은영은 우리를 덜컥 멈춰 서게 하는 ‘아픈 지점’을 찾기 위해 차례로 탐색을 실시한다. 그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바로 파고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점의 전후, 더 나아가 시작과 끝을 모두 훑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최은영은 우연한 계기로 어떤 관계가 시작되고, 깊어지며, 옅어지고, 끝나는, 그리고 그 이후의 지점까지를 조명한다. 지나온 마음들을 발견하고 위로하기 위해, 혹은 그때의 마음을 되돌려주기 위해 비디오키드 최은영은 비디오테이프를 천천히 재생시키는 것이다. 비디오테이프에 나열되는 서사들은 지금의 내가 왜 아픈지에 대해 말하기 위해 촘촘하게 기록된 유년의 서사들과 그 서사를 둘러싸고 있는 감정을 발굴하며 천천히 굴러간다. 이 비디오테이프에서 최은영은 이따금 아팠지만 아픈 줄 몰랐던 지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현재의 작은 행복에 몰두하며 과거의 상처를 애써 잊고자 하는 우리를 상처받은 그때로 끌고 가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한지와 영주」 174면) 바라보며 온전한 슬픔을 마주하게도 한다.

「쇼코의 미소」는 한국인인 소유와 일본인인 쇼코의 성장담이라고만 요약될 수 없으며 「그 여름」 또한 이경과 수이의 사랑 이야기로만 요약될 수 없다. 이 안에는 같은 구조 속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각자의 삶이 있으며, 복잡한 감정의 결들, 다시 말해 단일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움직이는 마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여름」에서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난다(9면). 둘의 서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던 이경이 축구부였던 수이가 찬 공에 우연히 얼굴을 맞으면서 시작된다. 이경은 수이를 볼 때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13면)거리는 듯 마냥 들뜨고 떨리는 마음을 느낀다. 둘의 관계는 점차 깊어지지만 일찍 성정체성을 깨달은 수이는 둘의 관계를 들킬까봐 극도로 불안해하며, 이경은 그런 수이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둘은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만 그후 수이는 “아무런 악의도 없었다던 남자애의 ‘장난’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부상”(20면)을 입은 뒤 축구를 그만두고 20살이 되고 나서는 자동사 정비소 일을 시작하며 바빠진다. 대학생이 된 이경은 바빠진 수이로 인해 더욱 외로움을 느끼고 레즈비언 바 사장이 추천한 까페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두 사람은 점점 더 멀어진다. 이후 이경은 까페에서 만난 은지에게 호감을 느끼고 수이와는

  1. 이 글은 최은영의 단편 「한지와 영주」 「쇼코의 미소」 「먼 곳에서 온 노래」(이상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와 「그 여름」 「601, 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아치디에서」(이상 『내게 무해한 사람』, 문학동네 2018)를 참고했다.
  2. 김홍중은 「근대문학 종언론의 비판」을 통해 “근대문학의 종언은 근대소설의 죽음을 넘어서, 근대소설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가치, 정신, 태도의 사회적 구조인 진정성의 윤리 그 자체의 죽음을 지시하고 있다”고 보았다.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1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