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승우

이승우 李承雨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1981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미궁에 대한 추측』, 장편소설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등이 있음. lsw555@chosun.ac.kr

 

 

오래된 일기

 

 

1

 

규의 몸이 병원에서 손쓰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는지 준영이 엄마예요, 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나는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준영이라는 이름을 듣고서도 곧바로 규를 떠올리지 못한 것은, 그 책임이 전적으로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얼마간 무안한 일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풀죽은 목소리로, 병원에 한번 와달라고 말했다.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는 상황이니 일 생기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에요?” 영문을 몰라 반문하는 나에게 그녀는 의외로 차분하게 규의 상태를 설명했다. 소화가 잘 안되고 배가 더부룩한 증상이 한동안 계속되어서 병원을 찾아갔는데, 의사가 자기는 할 일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간에 생긴 암이 커져서 혈액까지 퍼진 상태라고 했다. 너무 늦게 왔다는 것.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병원에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아무리 말기가 될 때까지 증세가 잘 나타나지 않는 병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 무신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 이 정도면 몸이 그동안 여러차례 신호를 보냈을 거라는 게 의사의 생각이었다. 진통제 처방 말고는 병원에서 해줄 게 없다고 하니 공기 좋은 산골마을에 들어가서 요양이나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퇴원을 하루 앞둔 날, 갑자기 장기가 파열되어서 피가 쏟아져나온 바람에 급히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했다. 며칠 만에 의식이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한달이나 더 살지, 그것도 보장할 수 없다고 하네요.”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벌써 체념을 해서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못해 침착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기억은 평평하지가 않다. 기억 속에는 우뚝 솟은 산맥도 있고, 깊게 파인 협곡도 있다. 소용돌이는 움푹 파인 지점을 중심으로 휘돈다. 나에게 그 지점은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자리이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후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마음을 졸인 경험이야 누구에게나 있다. 그 두려움의 도가 좀 지나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종교적 영향이든 뭐든 규범이나 도덕에 대한 훈육이 남달리 엄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는 어린아이를 상정해볼 수 있다. 사실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유년기의 나는 잘못이나 실수 그리고 그에 따라 가해질 징벌에 대해 극도로 예민했다는 기억이 있다. 벌에 대한 공포가 유난했던 것인데, 그때는 그 두려움으로 미리 벌을 받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징벌에 대한 그와같은 과도한 공포와 염려는 벌을 내릴 대상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염원으로 쉽게 모습을 바꾸곤 했다. 나에게 벌을 줄 권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사라져준다면 나는 벌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가 없어진다면, 내가 그와같은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자백이나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로 인한 어떤 비난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숙제를 하지 않은 날 아침, 나는 담임선생님이 아파서 나오지 못하거나 갑작스럽게 전근을 가는 상상을 했다. 학교 앞 가게에서 구슬 몇개를 훔친 적이 있는데, 같은 반 친구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 상상을 했다. 그가‘우리 반 반장은 도둑놈이래요’하고 떠들고 다니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영사되는 바람에 미칠 것 같았다. 어쩐 일인지 그는 그런 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도둑놈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더 불안하고 무서웠다. 나는 그 친구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기 시작했다. 아프든 죽든(세상에!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특별히 내 머릿속에만 악마가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꼭 악마에게 떠넘길 일도 아니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순진하다는 믿음은 어른들이 내놓고 속아주는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순진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순진함은 때로, 그것이 악인 줄 모르고, 왜냐하면 순진하니까, 악마를 연기하곤 한다. 악마가 순진함의 외양을 가지고 있든, 순진함이 악마의 내용을 가지고 있든 무슨 차이란 말인가) 어떻게든 사라져버리라고 주문을 외기도 했다. 물론 내 바람과 주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얼음과자를 사먹기 위해 아버지의 지갑에서 천원짜리 한장을 훔쳤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돈이 없어진 걸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천원짜리가 한장만 있었다면 몰라도 다섯장이나 있었다. 다섯장 가운데 한장 없어진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버지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돈을 빼내고, 얼음과자를 사기 위해 달려가고, 마침내 그 달콤하고 차가운 얼음과자를 입에 넣고 빨 때까지 나의 범죄가 들통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 단단한 확신의 원천은 욕망이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얼음과자를 입에 넣고 빨고 싶은 너무 큰 욕망이 염려와 불안을 잠재웠다. 그러나 얼음과자의 부피가 줄어들고 숨겨져 있던 막대가 드러나면서 염려와 불안은 서서히 깨어났다. 그렇게 단단하던 확신은 어느 순간 얼음과자 녹듯 녹아 흘렀다. 아버지가 천원짜리 한장 없어진 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급격히 기울었다. 안도의 구실이 되어주었던 다섯장이라는 지폐의 숫자도 다르게 해석되었다. 천원짜리가 고작 다섯장밖에 없었지 않은가. 다섯장 가운데 한장 없어진 걸 어떻게 모른단 말인가. 아버지가 그렇게 주의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얼음이 녹아 손등으로 흐르고 얼음 속에 숨어 있던 동그란 막대가 거의 다 드러날 즈음 얼음과자는 내 입 안에서 다만 얼얼할 뿐 더이상 아무 맛도 내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서서히 몰려왔다. 막대를 빨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친척 누나가 돈이 어디서 나서 그걸 사먹느냐고 물었을 때 내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누나는 고자질을 할 것이다. 아버지가 지갑의 돈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손에 들고 있는 얼음과자의 막대가 몽둥이처럼 여겨져서 나는 얼른 길바닥에 버렸다. 그러자 이내 학교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에게 품었던 것과 같은 바람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났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 바람은 거의 무의식적인 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얼 원하고 있는지도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그저 종아리와 엉덩이에 떨어질 몽둥이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마음속의 바람이 하필이면 그때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긴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야단칠 수 없는 몸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타고 있던 이웃 어른의 트럭이 언덕 아래로 굴렀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이 취한 상태였고, 운전을 한 이웃 역시 취한 상태였다. 아버지가 취한 것은 괜찮지만, 운전자가 취한 것은 괜찮지 않았다. 병원에 옮겨진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채 일주일을 살았다. 그리고 천원의 행방을 따지지 않고, 따질 수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친척들을 비롯하여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당황하게 했지만, 내가 받은 충격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듯 지상에서의 삶을 급히 마감해버린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죽은 것은 내가 사라져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무슨 신념처럼 견고해졌다. 내가 그런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 신념은 대들었다. 한번도 탄 적 없는 그 트럭을 하필이면 그날 아버지가 왜 타고 왔겠는가. 너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신념이 나를 취조하고 심문했다. 나를 변호하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불합리한 재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죄책감이 엷어지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해보았지만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의 법정에서는 시간도 내 편이 아니었다. 시간은 오히려 나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죄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더 생생해지고 빤질빤질해졌다. 언젠가 주일학교 선생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다 들어준다고 하면서, 꼭 소리를 내서 기도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예컨대 우리가 속으로 무엇인가를 바라기만 해도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그 마음의 소원을 다 기억하고 적당한 때가 되면 이루어주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신실하고 열정적이었지만, 기도에 대한 그의 신실하고 열정적인 가르침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한 불쌍한 영혼을 죄의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는 걸 아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의 탓은 아니다.

 

 

2

 

규와 나는 태어난 날이 같다. 그는 9월 7일 새벽에 태어났고, 나는 9월 7일 저녁에 태어났다. 태어난 날짜는 같아도 몇시간이라도 일찍 세상 빛을 본 사람이 형이라며 친척 어른들은 규를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거기에 규가 큰댁 장손이라는 이유가 덧붙었다. 물론 나는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였고, 따라서 그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규도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우리는 친구처럼 지냈다. 우리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생김새가 그 정도로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특별히 좋거나 나쁜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사실상 나의 보호자는 큰아버지가 되었다. 어머니는 몸이 약했고, 생활력도 없었다. 큰아버지는 자기 집 사랑채를 우리 모자를 위해 내주었다. 한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규와 나는 더욱 쌍둥이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체격이나 얼굴은 물론 목소리까지 똑같다며 신기해했다.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기해하지도 않았지만 언짢아할 일도 아니었다. 다만 큰아버지가 가끔 공부도 좀 닮으면 얼마나 좋아, 하고 말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불편했고 그는 언짢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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