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남일

김남일 金南一

1957년 수원 출생. 1983년 『우리 세대의 문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청년일기』 『국경』, 소설집 『일과 밥과 자유』 『천하무적』 『세상의 어떤 아침』 등이 있음. bayon@dreamwiz.com

 

 

오생의 부활

 

 

만물의 배후에 와습1이 있다고 주장하여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오생을 더러 기억하실 것이다. 그가 홀연 기세(棄世)했다고 알려진 것이 민국 59년 엄동 엊그제였는데, 오늘 아침 사지육신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 민생에 바쁜 세인은 뜬금없이 개헌안을 발의한 대통령 대하듯 그를 대하였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만큼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오생의 부친은 오생이 외투, 지갑(빛바랜 당원증도 들어 있었다), 구두 다 잃어버린 채 나타나자,

- 전동차에 치였는데 살아나셨다고? 허, 그것 참…… 그러니까 언필칭 부활했다 이 말이시지? 다시 부, 살 활? 불알은 그대로 있으시고? 에라, 이놈아!와습은 뭐해? 이런 놈 안 데려가고?

하며 왼고개를 틀었고, 평소 오생을 마뜩하게 여긴 적이 거의 없는 누이는 여전히 지구의 화석연료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6기통 외제 승용차를 타고 와서 일전에 빌려갔던 김치보시기를 돌려주며,

- 얘가 이젠 소설까지 써요. 아나, 소설!에꾸니 가오리처럼 재미나 있으면 몰라? 써도 꼭 민국 소설을 써요, 흥.

하며 데퉁맞게 지청구를 놓았으되, 다만 식구 중에 오생의 모친도 있어,

- 에구 가엾어라. 그래, 밥은 먹고 다녔니?

하며 불변의 측은지심으로 제 새끼 얼어붙은 머리를 쓰다듬었을 뿐이다.‘부활’한 오생이 그런 모친의 손을 붙잡고 딴 식구들이 들을세라 조곤조곤 말하였다.

- 어머니,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니어요. 인류는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끔찍한지 알아야 해요. 그건 자유라는 이름으로 뭐든지 집어삼키는 괴물이어요. 민제(민국과 제국)FTA는 시작에 불과해요. 장차 자유가 스스로 더 자유하고 시장이 스스로 시장을 더 넓히면 보건, 소방, 철도, 우편, 전기, 통신 등 모든 게 다 무한경쟁에 휩싸이게 되어요. 그럼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 얘, 어떤 일? 그땐 어미가 제 새끼 밥도 못해 먹인다니?

- 자유시장 경제원리에 어긋나면 그럴지도 모르죠. 가령 민국의 어머니들이 신토불이 구호 아래 제 새끼들에게 지극정성으로 하얀 이밥만 해 먹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제국의 LMO, 즉 유전자조작 생물체를 수출하는 업자들이 눈곱만큼이라도 타격을 입는다고 계산이 나오면 말이어요.

오생은 평생 밥만 하다 늙어서 어쩔 수 없이 이해력이 부족한 모친을 위해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머지않은 미래의 비극적인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민영 집배원은 딴 우편회사(특히 제국계)와의 경쟁력을 고려하여 산간 오지와 낙도에는 가급적 편지를 배달하지 아니하였고, 민영 소방관은 화재 신고를 받고 불을 끄러 가기 전에 피해 고객의 신용카드가 연체되어 있는지 재빨리 확인하였고, 민영 강력계 형사는 국제 형사노조의 결정대로 비정규직 경비원이 별도로 있는 빌딩 내 소매치기 검거는 의무계약사항이 아니라며 팔짱을 낀 채로 보고 있던 「CSI과학수사대」(마이애미편)를 계속 보았고, 심지어 이라크에 파견된 민영 졸병은 야간 초과근무수당과 위험수당을 100프로 인상하여주지 않으면 보초를 서지 않겠다며 소대장의 기를 꺾었다. 오생의 모친은 귀까지 나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애만 태웠는데, 그 순간 귀밝은 오생의 부친과 누이는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심전심 뜻을 나누었다.

대충 이런 뜻이었다.

- 간 거지? 확실히 간 거 맞지?

- 당연하죠. 저래도 안 간 거라면 지구상에 누가 가겠어요? 근데, 아버지, 이게 혹시 얘 말대로 와습 때문일까요?

- 뭐, 와습? 얘, 너 박서방 앞에서는 농담이라도 행여 그런 말 말아라. 고지식한 박서방이 너까지 간 줄 오해하겠다.

어쨌거나 오생은 다시 학문에 매달렸으니, 애오라지 진리를 궁구하는 열정만큼은 부활 이전이나 여일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당과 조합과 연대마저 민생이라는 근시안적 이익에 눈이 멀어 외면한 진실을 폭로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 오생이 망(網)언론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되기로 굳게 다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오생, 다시 라면을 먹다

 

세상에는 다짐하고 결심하고 각오한다고 해도 되지 않는 일이 많은 법이니, 오생이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는 번번이 잉걸뉴스에도 오르지 못하였다. 오생은 관타나모 제국기지에 9·11 이후 몇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초법적으로 감금된 이른바 테러 용의자들이 수백명이나 있고, 더구나 그들은 언제 재판을 받을지 아무런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손발목을 쇠사슬로 묶인 채 잔인한 고문과 야비한 조롱을 당하고 있으며, 지구의 대기를 오염시키는 이산화탄소를 하염없이 배출하면서도 대부분의 문명국들이 애써 합의한‘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관한 의정서’, 즉 쿄오또의정서에 서명하기를 악착같이 거부하며, 끝없는 생산과 끝없는 소비에 기초한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최소한 굶주림과 거기서 비롯한 예방 가능한 질병만으로도 전세계적으로 매일같이 다섯살 이하 어린이가 평균 3만 4천명이나 죽는 끔찍한 현실을 너끈히 개선할 수 있는데도 제국의 중량을 줄이려는 뚜렷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며,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가는 것은 문화의 종다양성을 인정하여 그렇다 치더라도 침대에까지 버젓이 신발을 신은 채 턱 누워버리는 관습을 완강하게 유지하는 등 제국의 문제점들을 정확히 인식하고 당당히 맞서지 못하면 민국의 민생쯤은 모래로 쌓는 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줄기차게 폭로하였으되, 금주 들어 벌써 일곱번 퇴짜를 맞았다. 오생은 적잖이 실망하였으나, 불현듯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어도 그 뜻을 펴는 재주가 부족하다면? 사실 오생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두루 허술한 바, 그중에서도 글씨와 문장이 특히 허술하기는 하였다. 스스로 슬펐지만 오생은 학인답게 부족한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쉬이 또 결심하였다. 생각난 김에 리모컨을 들어 EBS교육방송을 틀었다. 상업광고가 부족한 교육방송이 프로그램 막간에 광고인 양 내보내는 지식꽁뜨였다.

한 청년이 라면을 박스째로 사왔다. 어찌된 일인지 뜯는 것마다 스프가 없었다. 청년은 기가 막히고, 방바닥에는 스프 없는 라면만 널렸다. 이튿날 청년은 회사에 나가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다. 스프가 없이 포화지방산만 둥둥 뜬 멀건 라면이었다. 청년은 미칠 것만 같았다. 동료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후루룩 후루룩 잘만 먹었다. 조직인데, 청년도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장면은 바뀌어 화장실 안. 청년은 변기에 얼굴을 박고 웩웩 먹은 것을 토해낸다. 화면에는 이런 글이 새겨진다.

‘당신의 스프는 무엇입니까?’

오생은 제가 토하고 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고, 돌연 배가 고파졌다. 그러자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오생이 라면이라니!그건 마치 물과 기름, 오생과 세상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으니, 대학시절 자취를 할 때 빈한한 가정형편을 생각하여 값싼 라면을 질리도록 상식(常食)하였기 때문이다. 그후 라면의‘라’자만 들어도 속에서 무엇인가 매우 불편한 기운이 솟구쳐 귀를 막곤 하였다. 그런 오생이 스스로 라면을 떠올리다니!오생은 혹시 와습의 음모가 어느새 호모 싸피엔스의 미각마저 장악해들어오는 게 아닐까 의심하였으되, 라면을 향한 간절한 욕구는 그런 의심마저 쉽게 장악하였다.

오생은 중국제 아디도스 추리닝 바람으로 냅다 달려나갔다. (뛰면 안돼, 오생!에너지, 에너지!지구를 생각해!)

 

 

스프가 진짜 없다

 

놀라운 일은 거듭 일어났다.

  1. 항간에 와습이 訛鰼, 즉‘물 흐리는 미꾸라지’라거니, 혹은 WASP, 즉 앵글로쌕슨(AS)계 백인(W) 프로테스탄트(P)를 가리킨다거니 하는 설들이 있으나, 오생학파에 따르면, 와습은 늘 와습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