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편집자 대담

왜 이 작가들인가

 

 

임규찬·진정석

 

 

때: 2004년 4월 22일

곳: 창비 회의실

 

 

임규찬(본지 편집위원) 이번 문학특집은 창비로서는 비교적 오랜만에 마련한 것인데요, 기존의 특집과 비교해볼 때 작가(작품)론으로만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창비의 문학관련 편집진이 총동원되다시피 필자로 참여한 데서 다소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짧은 대담 역시 보기 드문 양식이라, 먼저 왜 이런 대담을 마련했는지 잠깐 언급해두어야겠습니다. 사실 이 대담은 일종의 ‘편집자의 말’에 해당하는 것인데, 단순한 설명투의 가벼운 안내에서 벗어나 이번 특집이 구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좀더 생생하게 전달하여 특집의 취지를 더 분명하게 밝혀보자는 뜻에서 준비했지요.

진정석(본지 자문위원) 편집자 대담이라니, 읽는 분들도 그렇겠지만 대담에 참여하는 저부터가 낯설고 생소한 형식입니다. 사실 이 대담은 특집의 구상단계부터 미리 준비되었다기보다는, 진행과정에서 나중에 추가되지 않았습니까? 특집의 골격이나 구성이 처음 의도와는 조금 달라졌고, 애초의 착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서 일종의 보완설명이 필요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자칫 이번 특집에 빈 구석이 많고 허술한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겠는데, 그런 궁색한 이유만은 아니고 좀더 적극적인 뜻도 있지요?

임규찬 결과적으로 특정 작가를 선별하여 특집이 구성된 것이기에 적어도 선별과정에 대한 설명은 어떤 형태로든 당연히 있어야지요. 특히 선별했다가도 최종적으로 필자의 제한으로 아쉽게 누락된 작가까지 생겨난 터라 이 과정에 대한 좀더 충실한 안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방금 ‘결과적으로’라는 말을 썼는데, 이런저런 논의과정을 거쳐 대표적인 작가를 선별하는 안이 정해진 터라 그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하고요. 게다가 대담의 이러한 논의과정 자체가 사실은 현단계 문학의 경향과 상태에 대한 진단과 맞물려서 이번 특집을 자연스럽게 보완할 수도 있거니와, 대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문학의 현황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보탬으로써 특집의 의도를 더 잘 살리는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지요.

진정석 사실 ‘편집자의 말’이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경우야말로 가장 성공한 특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각각의 글들이 충실하게 씌어지고, 그게 모여서 해당 주제에 관해 어떤 명료한 입장으로 집약된다면 그걸로 충분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이상적인 경우고, 대개 모든 특집에는 기획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일종의 잉여부분이 남는데, 거기에 따로 정리된 부가정보가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예요. 그러니까 이 대담의 의미를 정리해본다면, 일종의 ‘윤활유’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다시 말해서 기획·구상단계부터 책으로 나오기까지의 전반적인 과정, 정보, 논점을 독자와 편집자 간에 최대한 공유함으로써 상호소통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역할은 전통적으로 ‘책머리에’나 ‘편집자의 말’이 맡아왔지만, 방금 말씀하신 대로 그 직접성이나 현장감에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지요.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2003년 봄호 이래 꽤 오랜만에 다시 맞이하는 문학특집인데요?

임규찬 근래에 들어서 대략 한해에 한번 정도 문학특집을 했기 때문에 창비로서는 ‘아주 오랜만’이라고는 할 수 없겠죠. 아마도 오랜만이란 표현 속에는 ‘창비가 문학을 소홀히한다’는 평소의 무의식적인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꼭 진형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애초 이번 특집의 출발은 최근 10년간에 이루어진 우리 문학의 성과를 점검하여 과연 오늘의 우리 문학이 어떠한가, 나아가 어느 수준으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를 규명해보자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사실 그때그때 이루어진 문학적 성과를 정리하고 거기에 일정한 방향성과 문제의식을 불어넣는 일 역시 창비가 일상적으로 해야 할 주요 과업인데, 근래에 들어와서 이 과업을 다소 소홀히 한 셈이죠. 맨처음 특집 가제를 ‘과연 우리 문학은 죽었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내걸고 논의를 시작했는데, 은연중 그런 반성이 주제 자체를 크고, 또한 도발적으로 만든 점이 없지 않았다고 봅니다.

진정석 동감입니다. 사실 한번의 특집으로 지난 10년간 우리 문학의 성과를 총괄하겠다는 다소 무리한 구상을 하게 된 데는 그간의 직무소홀을 일거에 만회해보자는 야심(?)도 어느정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여기엔 일단 한정된 지면 문제가 큰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창비는 종합지 겸 문예지고, 때문에 문학과 사회과학, ‘창작’과 ‘비평’이라는 ‘두 바퀴’가 서로간의 긴장, 견제를 통해 의미있는 상생(相生)효과를 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어쨌든 전문 문예지에 비해 문학에 할애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지면을 감안하더라도 그걸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당대의 문학적 흐름에 충실하게 동참해왔는가, 생각해 보면 역시 반성할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창비 문학란에는 대체로 과감한 모험, 문학적 투기(投企)라고 할 만한 태도가 부족하지 않은가 싶어요. 제가 보기에 이런 일종의 ‘보수성’은 작가, 독자, 편집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가령 시나 소설의 경우, 아주 발랄하고 참신한 작품을 쓰던 작가도 창비에만 오면 이상하게 점잖고 진부해진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창비의 역사적 정체성을 의식한 일종의 자기검열 기제가 작동하는 것 같아요. 자꾸 깎고 다듬고 하다보니까 졸작, 태작이 걸러지는 대신 걸작, 문제작이 나오기 어려운 분위기지요. 평론도 비슷합니다. 정전화된 작가·작품에 대한 꼼꼼한 다시 읽기, 민족문학·리얼리즘 등 중요한 문학개념들을 정교하게 다듬는 이론비평이 볼만한 대신, 새로운 문학적 경향이 출현했을 때 거기에 적절한 이름을 붙이고, 당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 문학사적 맥락을 점검하는 실제비평은 약하다고들 하지요. 사실 신세대 문학, 대중문화, 뉴미디어 체험 등 지난 10년간 문학에서 자주 거론된 주제들 중 상당수가 창비와 다른 자리에서 제기되고 진행되었습니다. 창비는 그것들을 사후에 추인하거나 논박하는 정도였고요. 오류나 판단착오, 허언(虛言)의 위험을 무릅쓰고 당대의 문학적 흐름과 함께 가는 진취적 태도, 좀더 과감한 비평적 모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규찬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진형께서 뼈아픈 지적들을 쏟아붓는군요. 더구나 이 자리가 이번 창비의 특집을 잘 보완하는 막대한 책무가 있다고 했는데도 말입니다.(웃음) 진형의 지적에 저 자신 편집위원의 한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지 않으나, 가능한 한 그 의미를 지금 이 자리의 의도에 충실한 것으로 살리고 싶습니다. 사실 진형의 말을 역으로 뒤집어보면 그 비판 자체가 바로 이번 특집이 의도하는 중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형은 마치 실제 현실에 상당한 무엇이 있는데 창비가 그것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진단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런가 솔직히 반문하고 싶습니다. 근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학적 환경이 과연 그런 역사적 체계화를 자연스럽게 추동할 만큼의 긴장된 문학적 움직임을 담지하고 있는가, 정말 창비는 놓쳐서는 안될 어떤 문학적 흐름과 작가들로부터 뒤떨어져 있는 느림보인가? 저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쉽게 규명할 수 없는 현실의 복잡성 속에서 다양한 질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현실의 중요한 변화들을 제대로 감당할 만한 문학적 움직임이 활발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먼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들, 작품, 매체 등을 보면 양적으로는 이전 시대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또 훨씬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진형도 이야기했다시피 창비는 종합지로서 일종의 ‘정선(正選)’을 할 수밖에 없는 매체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류의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모험 등은 좋은 말이긴 하지만 정곡을 찌른 비판이라고는 보여지지는 않는군요. 오히려 민족문학·리얼리즘 등 중요한 문학개념들을 정교하게 다듬는 이론비평이 볼 만하다고 했는데, 저는 그 ‘이론비평’이 ‘실제비평’과 한몸이 되는, 무엇보다 최근의 작품들 속에서 한몸이 되는 분투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진정석 ‘비평이란 결국 교묘한 칭찬’이라는 어느 분의 말씀이 생각나는데요. 약간은 엄살이 섞인 ‘문학위기론’ 속에서도 지난 10년간의 한국문학은 유례없는 양적 성장을 했고, 그 가운데 좋은 작가, 작품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비평가들이 진심으로 감탄하고 칭찬하면서 읽고 분석해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고 단단한 텍스트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나 싶기도 하네요. 다시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뛰어난 군소작가들의 시대’였다고나 할까요.

임규찬 ‘뛰어난 군소작가’라. 그 말을 들으니 어디다 방점을 찍어야 할까 문득 고민이 됩니다. 결국 ‘뛰어남’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문제일 것인데, 저로서는 아무래도 ‘군소’라는 말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게다가 좋은 의미로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최근 10년간의 성과를 역사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하는 의도를 강조하면 할수록 이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는 판단이 듭니다. 마치 원점으로 되돌아가듯 기본적인 제반사항에 대한 정밀한 탐사와 개별적인 작품성과에 대한 분석작업이 다시금 절실해지는 것이지요.

진정석 그러니까 지난 10년 동안 한국문학이 정말로 위기국면이었는가 하는 문제를 꼼꼼하게 따져보자는 게 애초의 기획의도였는데, 어설프게 분류하고 함부로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개별적인 작가나 작품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제일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돌아온 셈이네요. 너무 소극적인 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저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생각입니다. 이른바 ‘해설비평’이니 ‘텍스트주의’니 해서 비평이 너무 작품이란 좁은 테두리에만 갇혀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작품이란 게 결코 ‘좁은 테두리’가 아니지요. 창작의 비밀을 담고 있는 구체적 실물이고, 모든 비평적 담론의 생생한 원천이 바로 작품입니다. 발자끄의 『인간희극』과 사실주의, 조이스의 『율리씨즈』와 모더니즘의 관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의미있는 문학적 흐름의 출현은 보통 그 이론적 거점이 될 만한 걸작의 존재와 더불어 비로소 가능해졌습니다. 전체와의 연관을 상실한 ‘해설비평’의 병폐는 마땅히 경계해야겠지만, 작품에 대한 분석적 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임규찬 그래서 이런 제반조건들을 충분히 감안할 때 이번 특집을 어떻게 구성하면 소기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작품(작가)론의 형식을 택하게 된 것도 그러한 고민의 결과입니다. 말하자면 형식 자체는 지극히 평범할 뿐만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구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점검 자체가 지금 시기에서는 절대적인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는 판단이었죠. 한마디로 일정한 유형별·주제별 범주화를 손쉽게 허용치 않는 상황이라면 구체적인 작품성과를 기반으로 착실하게 논의를 모아 의미있는 비평적 기반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 기본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셈이죠. 그리고 그런 취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문학관련 편집진을 총동원하다시피 한 것이고요.

진정석 그동안의 소홀함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문학관련 편집·자문위원들이 대거 필자로 나섰을 뿐만 아니라, 작품 선정과정에도 함께 참여하고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형식이지요? 한번의 특집에 이렇게 ‘올인’하는 방식이 편집진 쪽에선 사실 부담스러운 일이죠. 좀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요. 덕분에 이번 특집의 ‘이벤트’적인 성격이 부각될 수 있긴 했지만요.

임규찬 사실 필자 진용을 이렇게 구성한 탓에 특집에서 다룰 수 있는 작가의 숫자가 자연스럽게 제한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대상작가에 대한 논의는 전부터 있었지만 구체적인 선별작업은 편집진 총출동이라는 원칙을 전제로 진행되었거든요. 우선 논의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장르를 한정키로 하고, 최근 우리 문학의 고민과 의도를 살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르가 소설분야이며, 문학사적 체계화보다는 현단계의 문학적 가능성에 더 촛점을 두어 신진작가의 성과작을 중심으로 살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90년대 이후 등단작가를 중심으로, 최근 5년간에 발표된 작품들을 기본적인 대상으로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진정석 그러니까 이런 기준을 갖고 첫째로 최근의 문제작에 대한 분석적 검토를 통해 세간에 떠도는 ‘문학위기론’의 내용을 검증한다, 둘째로 이를 통해 우리 소설의 새로운 경향성을 짚어본다는 것이 이번 특집의 주요 목표가 되겠습니다. 그럼 구체적인 방안은 뭔가, 세대나 경향에 대한 고려 없이 오직 작품적 성과만 보자는 작품론, 최근 문학의 주도적인 흐름과 맥락을 짚어보는 주제론 등이 논의되다가 90년대 이후 등단한 젊은 작가들의 최근 작품론이라는 절충안이 만들어졌고요. 이 기준에 따라 일단 거론된 작가로 먼저 비교적 선배세대인 성석제, 공선옥 등이 있었고, 이어서 강영숙 권지예 김경욱 김영하 김연수 김종광 김종은 민경현 박민규 배수아 백민석 윤성희 이만교 이명랑 이응준 이현수 전성태 정영문 정이현 조경란 하성란 한강 한창훈 등이 거론됐습니다. 물론 이 예비명단에 등단연도가 아주 엄밀하게 적용된 건 아니죠. 세대나 경향의 대표성도 감안하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누락된 경우도 없지 않을 겁니다. 어쨌든 이 명단을 갖고 이번에는 필자의 관심, 취향도 고려하면서 다시 몇명으로 선별, 압축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지면과 필진이 제한되어 있다보니 특집의도에 어울리는 작가들까지 제외된 건 상당히 안타까웠고요.

임규찬 2차 선별과정은 필자 문제를 유념하면서 자연스럽게 개별 작가들을 중심으로 엄선하는 과정이었던 셈이죠. 앞서 거론한 기준을 고려하되 이미 창비에서 많이 다뤘거나 새로운 견해가 나오기 힘든 작가의 경우는 가급적 제외하면서 젊은 작가를 주된 대상으로 삼고자 했지요. 그래서 등단시기를 90년대로 잡은 것이고요. 그러다보니 최근 5년간 계속 문제작을 산출했더라도 자동적으로 배제된 분들이 많습니다. 황석영 같은 중진은 물론이고 신경숙도 아예 고려대상이 안됐지요. 반면에 은희경이나 하성란 같은 작가는 등단년도 기준으로는 당연히 포함되지만, 그간 창비 지면에서 상당히 다룬 편이고 필자들이 한정되어서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성석제의 경우는 80년대에 시로 등단했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이니까 대상에 넣기로 했지요. 여기에 91년 등단의 공선옥이 추가됐고 더 젊은 신예들 가운데서는 논란 끝에 김영하 배수아 이만교 박민규 정이현 천운영 윤성희 강영숙 이명랑 등으로 압축되었습니다. 각각의 필자가 이들 중에서 다시 한명 또는 두명의 대상을 골랐고요. 그래서 이번 특집에 등장하게 된 작가들은 필자 개개인에 의해 최종 선별된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한번도 다룬 적이 없어서 공선옥을, 한기욱 선생은 검토 후 적절한 상대로 김연수를 각기 선택했지요.

진정석 저는 주춤하는 사이에 주변의 권유로 성석제를 맡게 됐습니다만……

임규찬 가능한 박민규와 함께 다루어주길 바랐지요. 필자들을 두루 살펴볼 때 진형이 필자로서 가장 적임자일 것 같아서요.

진정석 게으른 탓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나요. 어쨌든 지난해 최대의 신인작가라는 찬사를 받은 박민규가 결과적으로 빠지게 돼서 저도 아쉽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경쾌한 문장이나 발랄한 감각도 좋아 보였고…… 나중에 다시 기회가 있겠지요.

임규찬 말이 나왔으니 작가와 필자를 어떻게 연결했는지 잠깐 더 말씀드리지요. 백낙청 선생과 최원식 선생의 경우에는 젊은 편집진이 강요(?)하다시피 작가를 들이민 경우라 할 수 있지요. 한때 배수아 소설을 가지고 리얼리즘과 관련하여 논란을 벌인 적도 있고, 나름대로 변화무쌍한 작가의 활동을 명쾌하게 그 핵심을 포착하여 이론적으로 잘 정리해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지요. 어쨌든 백선생께서도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라 흔쾌히 받아들이셨고요. 또 최원식 선생 같은 경우는 논의 당시 북한 작가 홍석중의 역사소설 『황진이』를 주목하시던 터라, 이왕이면 남한의 문제작과 함께 다뤄보는 것도 좋겠다는 보이지 않는 강권(?)을 펼쳐 김영하의 역사소설 『검은 꽃』을 함께 다루기로 한 것이고요. 사실 김영하는 단독으로 다룰 방침이었는데, 북한의 대표작가와 함께 다루는 것 자체가 오히려 단독논의 못지않은 대우라고 보았습니다.

진정석 그러고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빠진 작가들이 사실 꽤 되지요. 가령 지금 영국에 가 계신 김영희 선생이 원래는 천운영·강영숙·윤성희 중 두 작가 정도를 다루어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결국 천운영만 남게 됐습니다. 촌평의 고정필자인 임홍배 선생이 강영숙 새 소설집을 다루기로 하면서, 약간 만회는 된 셈입니다만.

임규찬 최종적으로 누락된 작가들말고도 왜 이 작가가 빠졌을까 의심을 가질 만한 예가 사실은 꽤 있지요.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문체로 인간에 대한 위악적 시선과 삶에 대한 냉소를 탁월하게 묘파하여 95년 등단 이후 지속적으로 화제작을 산출해낸 은희경이나, 집요한 현미경적 묘사를 특장으로 하여 삶의 이면을 헤집는 하성란 등은 비교적 많이 다루어진 작가라 자연스럽게 대상에서 배제되긴 했지만, 특집 자체만을 놓고 볼 때는 여전히 빈곳으로 다가와 아쉬움을 갖게 합니다. 또 안정적이면서도 매우 독특한 문학세계를 흐트러짐없이 계속 이어나가는 한강이나, 촘촘한 구성과 세밀한 심리묘사로 현대적 삶의 본질을 다양한 형태로 파헤치고 있는 권지예 등도 생각나고요. 또 조경란·이현수·이명랑·김종광 등도…… 나열하다보니 결국 또 이렇게 ‘뛰어난 군소작가들’의 덫에 걸려들고 마는군요.

진정석 이번 특집에는 뜻밖에 민중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는데요. 질펀한 입담과 능청스런 해학으로 웃음의 미학을 찾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한창훈, 견고한 구성과 밀도있는 문장으로 민중소설의 조형미를 한차원 높인 전성태, 주변부 현실을 유쾌한 카니발적 언어로 그려낸 김종광 등이 모두 제외됐지요. 물론 이번에는 창비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다뤘던 작가 작품 들은 가능한 한 배제하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고, 또 창비와 친화력(?)이 있는 경향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탓도 있겠지만, 최근 이 계열 작가들이 다소 부진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임규찬 어쨌든 이번 특집을 구상할 때부터 한번의 기획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길게 이어질 특집의 첫 단추를 꿰는 셈이라고 할까요? 여기서 다루지 못한 작가들은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가질 터이고, 소설뿐만 아니라 시분야로도 범위를 넓혀서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문학을 위한 창비 나름의 비평적 개입을 계속 확장해나가야겠죠. 또 창비 편집진이 총동원되었다고 해서 이번 특집에 담긴 각 필자의 생각이 곧바로 창비의 문학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보기에 따라서는 창비 내부의 싸움이기도 하지요.

진정석 그렇습니다. 창비가 우리 문학에 어떤 비평적 기여를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내부논쟁을 활발히 하면서 보는 눈을 가다듬어야 되겠지요. 이번 특집 때문에 여러분이 애 많이 쓰셨는데,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임선생님도 원고 쓰시느라 바쁜 가운데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