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외계인 만나기와 지금 이곳의 삶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에 출간된 주요 저서로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등이 있다. paiknc@snu.ac.kr

 

 

‘외계인 인터뷰’와 시적인 것의 탐구

 

이장욱(李章旭)의 「외계인 인터뷰-시적 윤리와 질문의 형식」은 몇가지 이유로 무척 매력적인 글이다. 물론 가장 큰 매력은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1에 실린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작품을 가려 읽는 능력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자신의 이 능력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묻는 진솔함이다. 그러나 이런 미덕은 좋은 평론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고, 「외계인 인터뷰」의 논지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끈 이유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글은 요즘 한국 시단의 젊은 시인들이 많이 써내는 난해한 시들을 옹호하고 있지만 난해성 자체의 옹호보다‘시적인 것’의 본모습에 대한 탐구를 목표로 한다. “외계인 인터뷰로서의 시. 이 비유는 시가 요령부득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며, 말의 지시적 의미를 무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 외계인 인터뷰는 요컨대,‘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라’라는 ‘시적 정언명령’에 대한 응답이다”(73~4면)라는 입장인 것이다. 둘째로 이장욱은 “외계인은 하늘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당신들의 내부에 있고, 나와 당신들의 보이지 않는 사이에 있다”(74~5면)는 명제로 그의 외계인 논의를‘지금 이곳의 삶’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셋째는 그의 논의에서 큰 지면을 차지하지 않지만 역시 본질적인 사안인데, 세르반떼스와 도스또예프스끼 그리고 발자끄 같은 소설가들이 “스스로에게 하나의 질문이 되었”(95면)음을 상기함으로써 논의를 소설로까지 확장할 근거를 마련해준다.

여기서‘외계인 인터뷰’라는 개념이 생소한 독자를 위해 이장욱의 설명을 요약 소개하면, 그것은‘메소드’(The Method) 연기론의‘지버리쉬(gibberish) 훈련’, 즉 “의미없는 말을 지껄이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연기훈련”(72면)의 일환이다. 인간의 말을 모르는 외계인 역의 배우가 온갖 표정과 제스처와 무의미한 소리를 통해 표현하는 것을 다른 배우가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인에게 의미를 갖는 까닭은,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외부에서 부여된 언어 바깥에 존재”(74면)하기 때문이다.

이장욱이‘다른 서정시’라 부르는 시들은 그런 의미로 외계인을 만나고서 기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지금 이곳의 언어로 써낸 것이다.‘서정시’라는 표현을 버리지 않는 것은 그가 문제는 “서정 자체가 아니라 서정의‘권위’”(「꽃들은 세상을 버리고」 38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형철(申亨澈)은‘서정성’자체를 해소하고‘서정적인 것에서 시적인 것으로’한걸음 더 나아갈 것을 주장하는데,2 내가 보기에 이는‘시적인 것’에 대한 이견이라기보다‘서정적인 것’에 대한 견해차이가 작용한 결과인 것 같다. “고전적인 정의대로 서정성의 원리를‘세계의 자아화’라고 할 때”(신형철, 같은 글 347면)는 이장욱 역시‘서정성의 해소’에 동의하겠지만, 더욱 고전적이랄 수 있는 헤겔 『미학』의 정의에 따른다면 서정시의 본질은 주관성의 발로에 있고 그것이 세계를 자아화(自我化)하는 주관성인지, 또는‘외계인 인터뷰’를 수행하는 자아인지는 불문에 부쳐진다. 실은 이장욱이 문제삼는 서정의‘권위’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제 느낌과 깨달음과 전언에 귀속시키는”(35면) 권위가 아니라 외계인과의 만남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권위를 상정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3

오늘의 젊은 시인들이 써내는 난해시가 이런‘시적인 것’의 기준에 과연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사안별로 따질 일이다. 또한, 흔히‘전래의 서정시’로 분류되는 선배세대의 시에 외계인이 출몰한 흔적이 있는지도 탐색해볼 만하다. 나는 두가지 모두 정면으로 논할 능력이 태부족이고 특히 전자에 대해 그렇다. 여기서는 최근에 읽은 비평담론을 비빌 언덕 삼아 우회적인 접근을 시도해본다.

 

 

황병승 시에 관한 논의들

 

「외계인 인터뷰」에서 “외계인 전집(全集)”(87면)으로 지목된 황병승(黃炳承)의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중앙 2005)는‘미래파’라고도 불린 바 있는 일군의 젊은 시인들의 작업 중에 근래 가장 큰 관심을 끈 시집일 게다. 이장욱이 쓴 해설 「체셔 고양이의 붉은 웃음과 함께하는 무한전쟁 연대기」(『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에 재수록)를 비롯해 수많은 평자의 찬사를 받았는가 하면, 시 자체의 문제점에다가 그의 명성으로 말미암아 양산될 아류들로 한국 시단이 그릇될 위험성을 경계하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4

어느 작가가 두각을 드러냄으로써 아류가 뒤따르는 현상은 딱하지만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평의 책임있는 대응은 진품에 대한 인정을 유보하기보다 진품과 아류의 차이를 어김없이 구별해주는 일일 텐데, 나 자신은 황병승 시에 대해 정확한 판정을 내릴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자인한다. 무엇보다 시인의 세대가 친숙한‘비주류문화’5의 세계에 거의‘외계인’급으로 생소한 탓이고, 게다가 진품이든 모조품이든 황병승과 비교하여 상대평가에 도움을 얻을 젊은 시인들에 대해 너무도 독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집이 거듭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것이, “사물과 의미에 대해 소실점과 위계질서를 설정하려는”(「꽃들은 세상을 버리고」 38면) 시인의 존재가 거의 완벽하게 지워진 느낌과 더불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상징들”, 그러나 “상징 아닌 상징들”(「체셔 고양이의 붉은 웃음과 함께하는 무한전쟁 연대기」 171면 및 173면)을 뿜어내는 시인의 에너지를 실감하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묘하게 서정적인 이 매력적인 구절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줄 아는 감각이야말로, 이 시집을 지탱하는 힘이다”(176면)라는 평과 함께 인용된 여러 싯구들을 접하면서‘시집의 힘’과‘평자의 맛썰미’를 동시에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몇몇 빛나는 구절이 아니라 한편의 시를 놓고 제대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추상화를 놓고 구상화 해설하듯 과잉해석을 내릴 위험과도 같은데, 예컨대 황병승의 「커밍아웃」에 대해 권혁웅(權赫雄)처럼 그 비유를 하나하나 설명해준다거나 시집에 등장하는 대상들의‘성적인 기표’목록을 작성해주는 일은6 외계인

  1. 이장욱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이장욱의 현대시 읽기』(창비 2005). 앞으로 이 책에서의 인용은 본문 중에 면수만 표시한다.
  2. 신형철 「문제는 서정이 아니다」,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3. 박형준(朴瑩浚) 시인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수긍할 만하다.“하나의 화자로 된 서정시라고 해서 다 권력적이고 일인칭에 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새롭게 표출된 과거나 새롭게 의미부여된 과거, 새롭게 의미작용을 하는 과거들도 지금 다시 한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좌담 「우리 문학의 현장에서 진로를 묻다」, 『창작과비평』 2006년 겨울호, 175면)
  4. 내가 읽은 황병승론 중 매우 적극적이거나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로는 이장욱의 해설 외에 황현산 「완전소중 시코쿠-번역의 관점에서 본 황병승의 시」(『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와 오형엽 「환상 가로지르기-새로운 시적 징후를 읽는 한 방식: 황병승을 중심으로」(『세계의 문학』 2006년 여름호)가 많은 도움이 된 경우이고, 황병승 및‘황병승현상’을 비판한 예로는 『오늘의 문예비평』 2007년 봄호의 특집‘한국문학의 새로운 신화 만들기: 박민규·황병승’에 실린 엄경희 「난독(難讀)의 괴로움을 넘어서 독자는 무엇을 얻는가?」와 하상일 「황병승현상과 미래파의 미래」를 들 수 있다.
  5. 흔히 이렇게들 말하지만, “이들〔최근 환상적 경향의 시들〕이 기대고 있는 문화는 하위문화도 아니고 비주류문화도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트렌드를 지배하는 주류문화다”(이숭원 「환상 혹은 관념, 그 너머의 진실」, 『시작』 2006년 겨울호, 38면)라는 주장도 참작할 일이다. 또한 김민정·황병승·이민하·유형진을 “한통속으로 묶어서 다루면 정말 곤란하다”(같은 글 28면)는 지적도 경청할 만하다.
  6. 「미래파-2005년, 젊은 시인들」, 권혁웅 비평집 『미래파-새로운 시와 시인을 위하여』, 156~7, 158~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