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장은진 張恩珍

1976년 광주 출생.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와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없음』,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등이 있음. bom25da@hanmail.net

 

 

 

외진 곳

 

 

집을 옮기고 첫날 밤이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휘이휘이 소리를 내며 불고 있었고, 창문이 부들부들 떨 때마다 방은 냉기로 차올랐다. 그릇에 수돗물을 받아두면 다음날 아침 얼어붙어 있을 것 같은 강추위였다. 나와 여동생은 불을 끄고 각자 이불을 두채씩 포개어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 웅크린 몸으로 이빨을 덜덜거리던 여동생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 씨발 좆나 춥네. 내일 뽕뽕지 사다 창문이나 덮자.”

이불에 반쯤 묻혀 탁해진 목소리 때문인지 동생이 방금 한 게 욕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쁘게 짐을 정리하느라 보일러에 기름 넣는 걸 깜빡했더니 코딱지만 한 방에 닥친 재앙이었다.

“기름보일러라 난방비 많이 들 텐데. 그냥 전기장판 살까.”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난 저렇게 창호지로 된 방문은 첨 봐.”

“나도.”

방은 전에 살던 원룸을 딱 반으로 접어놓은 크기였다. 급하게 보증금을 빼야 했고, 역시나 반토막 난 보증금에 맞추어 방을 구하다보니 동생 말대로 ‘여기까지’ 굴러오게 된 것이다. 추운 날씨에 짐을 옮기는 과정도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다급하게 이루어졌다. 새 세입자가 들어오기로 한 날짜를 일요일인 내일로 착각하는 바람에 점심을 먹다 말고 당장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우리 짐을 치우는 것과 새 짐이 들어오는 시간이 겹쳐서, 밥통이 있었던 자리에 곧바로 토스터가 놓였고, 운동화 네켤레뿐이라 자리가 남아돌던 신발장은 하이힐과 부츠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 짐은 오도 가도 못한 채 시멘트 바닥에 반나절 동안 까발려지듯 놓여 있어야 했다. 정말 엄동설한에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이 된 것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누추한 우리 살림을 자주 힐끔 거리는데다 눈까지 내려서 보자기와 수건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덮어두어야 했다. 포장이사를 할 만큼 물건이 많은 게 아니라서 작은 용달차를 렌트한 뒤 면허증이 있는 대학교 동기를 불러 운전을 부탁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 어찌나 많은지 용달차 안에서 우리의 몸은 여러번 서로 부딪쳤고, 자주 출렁였다. 짐을 대충 옮긴 뒤 정신 차리고 났더니 저녁이 한참 지나 있었다. 음식을 배달시키기엔 후미지고 위치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곳이었지만 주인집의 도움으로 겨우 보쌈과 군만두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그때, 무언가를 걷어차듯 발을 휘두르며 동생이 다시 소리쳤다.

“우리한테 사기 친 그 개새끼를 어떻게 잡아 죽일까?”

나는 뭉개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죽여야지. 언젠가 꼭. 돈도 돌려받고.”

입도 얼어붙은 듯 우리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각자의 이불 속에서 자기 숨으로 덥힌 공기로 조금씩 추위를 누그러뜨려가며 천천히 잠이 들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우리 자매에게 적응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언제나 방 한개짜리 집에서 살아온 생이었지만, 그 모든 방에는 배려하듯 화장실이 공간 안에 덧붙어 있었다. 그런데 여긴 화장실이 저 멀리 떨어진 곳에, 딴청 부리듯 다른 공간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화장실에 가려면 제일 먼저 휴지를 챙긴 뒤, 방문을 열고 나가 마루에 앉아서 신발을 신고 긴 마당을 지나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공동화장실이라 볼일이 생길 때마다 집을 옮겼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깨닫게 해주었다. 하루에 여섯번 화장실을 사용하면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가난과 그것이 몰고 온 온갖 불편함들을 여섯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날도 추워서 화장실 가는 건 우리에게 매번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동생은 오래 참거나 자주 가는 일이 안 생기도록 물을 적게 마셨다. 그러다 병난다고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만, 여름까지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 걸 주인아주머니도 아는지 방을 계약하던 날 남이 들을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래 말고, 조금만 살다 가.”

집주인은 60대 부부였다. 그들은 이 집을 네모집이라 불렀다. 집 구조가 ‘ㅁ’ 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인데, 부부는 세를 놓지 않고 네모집 전체를 여섯 식구가 쓰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남부러울 게 없어서 그때는 아흔아홉칸짜리 집에 사는 것 같았다던 아주머니는 몰락한 가문의 여인처럼 처량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한숨에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봤자 세입자에게 그들은 집주인이고, 월세가 하루만 늦어도 방문을 두드릴 것이므로. 그렇게 떵떵거리며 살다, 둘째 아들놈이 사업을 크게 말아먹어서 자식 덕 보고 살기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고 판단한 내외는 자기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방을 개보수했다. 아들놈이 쫓아와 있는 돈 다 내놓으라고 할까봐 서둘러 집을 고치는 데 써버린 것이었다.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어 코인세탁기를 세대 들여놓고, 부엌이 없는 방에는 물을 쓸 수 있게 수도관을 연결하고 보일러도 따로 놓았다. 네모집에는 주인 내외가 기거하는 방을 빼면 총 아홉개의 방이 있었고, 부엌이 별도로 딸린 방은 방세가 조금 더 비쌌다. 방마다 번호가 붙어 있는데 우리가 사는 곳은 9번방으로 네모집에서 모서리에 해당하는 끝방이었다.

나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손에 들고 고무신 변기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오늘의 가난에 대해 두번째 생각하는 중이었다. 공동화장실은 엉덩이를 걸치고 사용해야 하는 변기보다 고무신 형태의 변기가 위생적이었다. 단점은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린다는 거였다. 나는 다리가 저려오기 전에 서둘러 용무를 끝낸 뒤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고 발로 레버를 눌렀다. 오늘의 두번째 가난이 소리를 내며 물과 함께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화장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되도록 다른 세입자와 마주치지 않고 살아보려 애썼는데 네모집의 구조상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중앙 마당. 여긴 원룸과는 다른 것이다. 화장실을 나가자 내 또래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여자는 치약 거품이 하얗게 튄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며 인사했다. 애초의 다짐을 잊고 얼떨결에 나도 모르게 얼룩덜룩한 거울을 향해 고개 숙이고 말았다. 네모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정을 묻지 않아도 나와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뜻이므로 이 사람도 어딘가에서 밀려왔을 것이다. 힘의 원천이 무엇이든, 그 힘이 없으면 사람은 외진 데로 밀려나는 거였다. 바깥으로, 중심에서 먼 변두리로, 어둡고 냄새나는 구석진 자리로.

“지난주에 9번방으로 이사 오셨죠?”

“아, 네.”

“전 3번방이에요.”

“네.”

“9번방이 웃풍은 세도 재수가 좋은 방이에요.”

“네?”

“그 방에 살았던 사람들 다 잘돼서 나갔어요.”

“여기 오래 사셨나봐요.”

“2년 됐어요. 사는 데 좀 불편하긴 해도 방세가 싸니까요.”

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다 씻은 여자는 자기 옷에 물기를 닦고 화장지 좀 빌려달라고 말했다. 나한테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 것도 화장지를 얻어 쓰기 위한 꿍꿍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엉거주춤하게 두루마리 화장지를 건네자 여자는 손에 한 열바퀴쯤 돌돌 감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두루마리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헤픈 여자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화장실을 나가는 내 등 뒤로 여자의 발랄한 목소리가 닿았다.

“자전거 탈 줄 알아요? 알면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 언제든 필요할 때 써요. 여긴 컵라면 하나 사러 편의점 가는 길도 멀잖아요. 그리고 밤에는 되도록 혼자 다니지 말고요.”

헤프지만 공짜는 좋아하지 않는 여자 같았다.

 

3번방 여자의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햄버거를 사 왔다. 여기가 얼마나 한적한 곳이냐면 네모집이 있는 데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버스 종점이 나왔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그조차도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며, 밤에는 다른 곳보다 빨리 어두워져서 행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편의점이 가까운 데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자전거를 세게 몰았더니 방에 도착했을 때 약한 불에 올려둔 물이 막 끓기 시작해서 동생과 나는 컵라면에 곧바로 뜨거운 물을 부을 수 있었다. 치자 단무지에 라면을 먹으며 아까 3번방 여자한테 들은 ‘9번방의 재수’에 대해 얘기하자 동생이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다단계 사기꾼 새끼도 잡을 수 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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