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상영 朴相映

1988년 대구 출생.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등이 있음.

 

 

 

요즘 애들

 

 

카메라가 꺼졌다.

황은채가 큐 사인을 보내기 무섭게 남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청바지가 아니라 그럴듯한 정장을 입은 선배의 모습이 오랜만이라 낯설었다. 선배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웃으며 말했다.

“야, 넌 어째 유튜브랑 더 잘 맞는 것 같다? 대본 없으니까 더 잘하네.”

그럼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에서는 어떻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신입사원 특유의 작위적인 미소를 지으며, 선배랑 함께 유튜브 프로그램 하나 맡아야 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황은채가 웃으며 대답했다.

“김기자님, 실없는 소리 하는 버릇은 여전하네요.”

눈치 빠른 선배가 은근히 하대를 하며 물었다.

“황피디랑 김기자랑 어떻게 아는 사이라고 했지?”

황은채가 어물쩍대는 사이 내가 잽싸게 답했다.

“언론사 시험 칠 때 같은 스터디 그룹이었어요.”

“그렇구나, 소중한 인연이네. 대단히 잘됐네. 둘 다 잘돼서 만났으니 정말 잘됐네.”

선배 특유의, 같은 어미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리액션이었다. 나로서는 단순히 어휘력이 모자란 사람처럼만 느껴지는데 방송에서는 저런 화법이 꽤 잘 먹혔다. 오디오가 비지 않아서 그런가.

비지 않는 오디오.

그것은 첫 출근날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던 남선배가 신입사원 열명에게 가장 먼저 일러두었던 덕목이기도 했다. “3초 이상 오디오가 비잖아? 그건 방송사고야.” 그의 말을 대단한 격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 적던 때도 있었다. 그게 마치 지난 생의 일처럼 까마득해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저는 화장실이 급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표님께 안부 전해주고요.”

하지 않아도 될 핑계까지 덧붙이고는 황은채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하는 남선배. 은근슬쩍 말을 놓을 때는 언제고 저러는 걸 보면 확실히 사회생활 15년 짬밥을 거저먹은 건 아니었다. 남선배는 스스로를 유능한 사회인이라고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 판단은 상당 부분 옳았다. 내가 기억하기로 선배는 신입 때부터 지금까지 쭉 회사의 간판이었으며, 심지어는 지난 몇년간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던 언론파업 때조차도 노조의 대표 얼굴이었다. 어느 집단에 속해 있든 항상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 집단의 이익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일치시킬 줄 아는 사람. 그런 종류의 인간들을 항상 동경하는 동시에 의아하게 생각해왔다.

황은채는 문밖까지 선배를 마중한 뒤,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스터디에서 만났다고? 언제 그렇게 순발력이 늘었대?”

“말도 마. 눈칫밥 3년에 거짓말만 청산유수다. 기자 똥은 개도 안 먹는다더니 그동안 는 건 맘고생이랑 구라밖에 없어.”

“하긴 솔직하게 다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해. 구질구질하기도 하고.”

그제야 나는 우리의 과거가 솔직하게 말하기 조금 그렇고 구질구질해져버린 종류의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는 우리가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공간이 우리의 자랑이었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더이상 그렇지 않다는 게 못내 어색하게 느껴졌다. 황은채가 내게 말했다.

“시간 되면 우리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할래?”

“좋지.”

황은채가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검은 백팩을 둘러맸다. 목선이 고스란히 드러날 만큼 짧게 잘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렸다. 통이 넓은 청바지와 오버사이즈 항공 점퍼가 썩 잘 어울렸다. 5년 전에는 단정하고 불편해 보이는 투피스 계열의 옷들을 고수했던 그녀였다. 내가 알던 이십대의 황은채와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고백하자면 연락을 받기 전까지 나는 황은채에 대해 단 한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며칠 전 유튜브 섭외 요청,이라는 제목을 단 메일을 보았을 때 한숨부터 나왔다. 최근 원치 않게 여론의 집중을 받게 된 이후로 부쩍 수상한 섭외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경영진 교체 후 화려하게 현업으로 복귀한 남선배와 파업 기간 동안 임시로 채용된 비정규직 사원들 중 유일하게 정규직으로 전환된 내가 얼마 전 한 시사 프로그램의 메인 MC로 기용되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애초에 신입 기자가 레귤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진으로 선발되는 경우도 잘 없거니와, 남선배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불필요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느 때처럼 영양가 없는 채널에서 간 보기 식으로 돌린 연락이겠거니 하고 무심히 넘기려 했는데 메일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뭔가 낯익었다. 자세히 보니 내 첫번째 직장의 유일한 입사 동기였던 황은채였다. 그녀가 꼬박 5년 만에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황은채는 내가 다니는 방송국이 포함된 미디어그룹의 협력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주로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뉴미디어 계열의 신생 프로덕션이었는데, 파업 때 해고당한 전 교양국 본부장이 차린 사업체라 우리 회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자주 제작했다.

메일의 내용은 여느 프로그램들의 섭외 요청과 다르지 않았다. 신입 공채 시즌을 맞아 신입과 부장급 사원이 출연해 자소서를 쓰는 방법과 미디어 기업에 입사하는 꿀팁을 공개하는 기획이었다. 관심도가 높은 취업 관련 이슈에 최근에 인기몰이를 하는 신구 간의 세대차를 예능적으로 녹이는 기획은 새로울 건 없었으나 적어도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섭외 메일을 받은 지 십분이 채 지나지도 않아 남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언제나처럼 질문의 외피를 입고 있으나 명령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이 기획 괜찮은데?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없고. 김기자는 어떻게 생각해?”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다니, 설마요. 유튜브 콘텐츠에 우리 둘의 얼굴이 함께 잡히는 것만으로도 몹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걸 선배도 나도 모르지 않았다. 탐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섭외에 응하게 된 것은, 단지 황은채가 보고 싶어서였다.

 

황은채가 데리고 온 앳된 VJ 한명이 박스에 마이크 송신기와 조명, 트라이포드를 담아 들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채근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선배님, 저 회사로 복귀할까요?” 황은채는 VJ에게 곧장 집으로 가되 내일 일찍 출근해 사무실에 장비를 들여다 놓으라고 답했다. VJ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저분 되게 개성이 강하신 것 같다?”

“말도 마. 요즘 애들 아주 칼 같지?”

정작 입 밖으로 그 단어를 꺼낸 황은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그러더니 이내 내 팔을 때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황은채의 입에서 요즘 애들,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그것은 그 옛날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멸칭이었다. 나는 웃을 때 옆 사람을 때리는 습관이며 매운 손맛은 여전하다고 생각하며 과장되게 팔을 문질렀다. 그리고 황은채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네가 선배라니. 너무 어색하다.”

“선배인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우리 회사에서는 위에서 몇번째다? 벌써 이런 나이가 됐다.”

“무슨 소리야, 난 아직도 신입인데.”

황은채는 대단한 실례를 저지른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 표정은 지난 몇달간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지어 보였던 표정이기도 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의미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황은채와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

 

나에게 『매거진C』가 영세한 문화 잡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내 인생 첫번째 직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잡지사에 들어가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대학 마지막 학기, 수업 몇개를 함께 들어 꽤 친분이 있었던 선배에게서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선배는 (기자들 특유의 별로 급하지도 않은데 항상 다급한 목소리 톤으로) 선배의 신문사와 같은 계열의 잡지사에 에디터 자리가 났다고 했다. 잡지의 이름은 『매거진C』.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인터뷰 지면이 충실해 잡지업계나 문화계에서 꽤 단단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갑작스러운 제의에 당황한 내게 선배가 마침표를 찍듯 말했다.

“내가 왜 너한테 전화했겠냐. 너 잘하잖아.”

예나 지금이나 칭찬을 들으면 일단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간 썼던 기사며 산문을 추려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눈이 펑펑 내리던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눈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밀치고 가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매거진C』의 건물을 찾았다. 안면 윤곽 전문 성형외과와 보톡스 전문 피부과 사이에 함정처럼 위치해 있는, 도무지 강남 한복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낡은 4층짜리 건물이었다. 1층 상가에는 쇼윈도에 먼지가 잔뜩 낀 천냥 백화점이 있었고, 그 옆으로 돌아가니 온갖 박스가 쌓여 있는 시멘트 계단이 나왔다. 나는 박스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2층 『매거진C』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면접장이랍시고 마련된 곳도 뭐 그럴듯한 공간이 아니라, 덩치가 큰 책장 뒤에 놓인 십인용 테이블이 전부였다. 책장에는 『매거진C』의 과월호들이 차곡차곡 꽂혀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 다섯명 정도 되는 면접 대기자들이 더 있었는데 다들 왠지 힙하고, 세련되고, 그러니까 잡지사를 위해 완벽히 준비된 인재들인 것만 같았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이 들어 오히려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면접은 평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원들은 거의 다 여성이었는데 편집장만 중년 남자였다. 포트폴리오 중 몇몇 글의 디테일에 관해 물었고, 『매거진C』에서 인상 깊게 본 기사가 무엇이냐, 대학 졸업 여부나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한가,와 같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면접 내내 말이 없던 편집장이 면접 말미에 궁금한 것이 없냐고 했다. 나는 수습 기간이 얼마나 되냐고 했고, 그는 약간은 불편한 듯한 표정으로 “3개월 정도”라고 짧게 답했다. 사무실이 너무 추워 면접을 보는 내내 무릎을 쓰다듬었던 기억이 있다. 막상 이틀 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다음 날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곧바로 받았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끼기는 했다. 그때 내 감을 믿었어야 했다.

 

12월 26일, 출근하자마자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동기인 황은채였다. 그녀는 서울 소재 한 여대의 국문과를 졸업한 후 인터넷 신문사에서 일년 동안 일했으며, 그 경력을 바탕으로 피처 에디터로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우리는 동갑이라는 이유로 순식간에 말을 놓았으며 어색함을 덜기 위해 서로 공통분모를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때 키가 크고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가진 여자가 우리 앞에 섰다. 마치 사극에 나올 것처럼 반듯하게 정중앙 가르마를 탄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에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나 목소리만큼은 아기처럼 앳된 비음이었다. 그럼에도 말투에 안정성이랄까, 사회생활 9단 특유의 냉정한 어조가 깃들어 있어 나이나 연차를 짐작게 했다. 그녀가 피처팀의 선임 기자이며 우리를 가르칠 배서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배서정은 우리를 이틀 전 면접장으로 사용되었던 책장 너머의 테이블로 데려갔다. 테이블 옆에는 박스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배서정은 나와 황은채에게 첫번째 업무를 배당해주었다. 정기구독건 잡지와 까페에 무료로 배치하기 위한 잡지를 발송하는 작업이 그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매거진C』의 규격봉투에 잡지를 넣고 라벨지에 인쇄된 주소를 붙여서 박스에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까페며 대학 등지에 무료로 배포되는 분량이 많았다. 대외적으로는 매달 3만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매거진C』였으나, 실상 판매는 그만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단순 작업을 하며 황은채와 나는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경상도 출신인 그녀는 다소 새침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사투리가 묻어나는 시원시원한 말투를 구사했고, 화끈한 성격인 것 같았다. 나와 음악이며 영화 취향도 비슷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조용히 수다를 떨며 당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고 있던 가수의 얼굴을 오백개쯤 봉투에 집어넣었다. 아차 하는 사이 내가 손가락을 베어버렸다. 황은채는 호들갑스럽게 괜찮냐고 물었고, 배서정이 덜그럭거리는 슬리퍼 소리를 내며 책장 너머로 다가왔다.

“너네 뭐가 그렇게도 즐겁니.”

그녀는 특유의 딱딱한 말투로 우리에게 말한 뒤 내가 손가락을 벤 것을 뻔히 보고서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나는 피가 나는 손가락을 입에 문 채, 가뜩이나 반듯한 가르마에 머리를 너무 과도하게 올려 묶어 성격이 더 사나워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피 맛은 비렸다.

 

황은채와 나에게 다음으로 배당된 업무는 커피가 떨어지지 않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드립커피를 내리는 것과, 편집부에 놓인 커다란 고무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었다. 아침에는 회사에서 집이 가까운 황은채가 커피를 내리고, 점심에는 밥을 빨리 먹는 내가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합의가 도출되었다. 고무나무의 경우엔 비교적 자리가 가까운 내가 수시로 물을 주기로 했다.

처음 며칠 동안 우리는 커다란 책장에 백권도 넘게 꽂힌 『매거진C』의 과월호를 보며 잡지의 구성이나 정체성에 대해서 스터디했다. 흥미로운 인터뷰가 많았고, 순수예술부터 대중문화까지 문화계 전반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는 점이 꼭 마음에 들었다. 잡지를 보면 볼수록 나는 꽤 부푼 꿈에 사로잡혀갔다. 언젠가, 그러니까 3개월의 수습 기간이 끝나고 머지않은 시간 후에 이런 사람들을 만나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설렘이 차올랐다.

 

*

 

며칠 뒤 첫번째 기획회의가 열렸다. 기획회의라고 해봤자 세 팀의 선임 기자 세명과 편집장, 수습 에디터인 황은채와 내가 모여 앉아 각자의 기획안을 발표하고, 일방적으로 평가를 받고 혼나는 자리였다. 그룹 차원에서 한차례 커다란 구조조정이 들어간 뒤 편집부의 인원이 반토막 났다고 했다.

첫번째 기획회의가 끝난 후 황은채와 나는 각자 몫의 고민을 안게 되었는데 일단 우리 둘이 제시했던 모든 기획안이 단 하나도 통과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선배들이 알짜배기 기사만 쏙쏙 가져가버린 통에 우리에게 배당된 지면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광고주들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앵무새처럼 받아 적는 홍보용 기사나, 마감에 늦기로 유명한 심리상담가가 필자로 있는 코너의 원고 수발 및 교정, 거리를 쏘다니며 앙케트를 포함한 미니 인터뷰를 하는 것 정도였다. 게다가 원래 막내들의 주 업무라며 『매거진C』의 공식 사이트와 SNS 계정을 담당하는 중대한 역할까지 부여받았다. 황은채가 공식 사이트의 독자 게시판, 이벤트 페이지 등을 총괄하게 되었으며, 내 경우는 『매거진C』의 이름으로 개설된 트위터 계정을 관리하며 매일 오후 두시에 기사를 업로드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나, 황은채와 나는 사회 초년생 특유의 과열된 열정으로 모든 일에 힘을 잔뜩 준 채 최선을 다했다. 황은채는 독자 게시판에 올라온 흔하디흔한 이야기들을 마르고 닳도록 읽으며 최적의 사연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으며, 나는 사진기자를 대동한 채 압구정동과 신사동 일대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누비며 인터뷰감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사무실 안은 히터를 틀어도 언제나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워서 나는 인터넷으로 만원짜리 중국산 난로를 주문해 발아래 틀어놓았다. 난로는 오래 켜놓으면 너무 뜨겁고 또 끄면 금방 발이 시려 수시로 켜고 끄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우리의 사수였던 배서정은 긴 머리칼을 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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