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배수아 裵琇亞

1965년 서울 출생. 1993년 『소설과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훌』 『올빼미의 없음』 『뱀과 물』, 장편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 『독학자』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등이 있음.

badmaria11@hotmail.com

 

 

우루의 딸 우루

 

 

우루는 보는 눈이다. 우루는 그림자들 사이에서, 춤을 추면서, 걷고 혹은 걷지 않으면서 본다. 눈을 뜨고 있을 때, 그리고 심지어 눈을 감고 있거나 잠을 자면서도 본다. 우루는 결코 정면으로 보지 않는다. 관찰하지도 않고, 응시하지도 않는다. 우루는 단 한번도 뚫어지게 들여다보거나 시선으로 파헤친 적이 없다. 단지 옆으로 흐르듯 보이는 것을 볼 뿐이다. 우루는 보지만, 보지 않으면서 본다. 우루는 비치는 것, 보이는 것에게 끌릴 뿐이다. 우루의 애정은 그런 종류이다. 보이는 것은 고정된 현재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이나 수평선처럼 허구이다. 산책을 나선 우루는 산비탈 길가에서 허리 높이만 한 커다란 엉겅퀴를 발견했고, 멀리 회색과 녹색, 보라색이 섞인 보리밭을 내려다보았다. 길가에는 넓적한 돌을 쌓아 만든 양치기의 오두막과 잎이 연한 어린 떡갈나무들이 서 있었다. 한낮은 불처럼 뜨거웠고 저녁의 길고 달콤한 황금빛 여명은 하루의 종말을 한없이 늦추었다. 바람이 불어왔고 숲처럼 우거진 키 큰 풀들이 파도쳤다. 먼 비탈의 초록은 경사면을 따라 서로 다른 농담으로 일렁였다. 석회암 절벽 아래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창처럼 뾰쪽했다. 우루는 산책을 계속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최후의 푸른빛이 비늘처럼 반짝이는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맞은편 희고 편평한 고원 위로 오렌지색 번개가 수평으로 번쩍였다. 검고 날카로운 제비들이 초록과 금빛이 섞인 허공을 낮게 활강했다. 우루는 집의 창을 모두 열어둔 채로 산책을 나왔기 때문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은연중에 자연을 경외했다. 산길 입구에서 뱀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뱀은 무척 길었으며 누르스름한 갈색이었고 몸통에는 반지처럼 검은 고리 무늬가 있었다. 뱀은 오솔길과 숲 사이의 경계가 되는 낮고 하얀 돌담 위를 몸서리치듯 사정없이 꿈틀거리며 넘어가는 중이었다. 고리 무늬가 진한 뱀을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것은 도래할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루는 맨발로 뜨거운 흙을 디디며 계속해서 걸었다.

우루는 사진을 본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흑백사진이다. 그것은 바닷가를 찍은 낡은 풍경사진인데, 짙은 땅거미 진 해변을 달려가는 세마리의 개가 있다. 수면 위로 수없이 중첩된 희미한 빛과 모래언덕의 그늘 사이, 개들은 한 생에서 막 다른 생으로 흐르는 유체인 듯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이다. 그리고 사진 가장자리에 마치 예상치 못하게 프레임 속으로 들어온 우연한 피사체처럼, 바다를 향해 비스듬히 서서 개들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의 몸이 절반쯤 보인다. 여자는 나체이다.

“상상해봐요” 하고 우루의 손님은 말했다. “이렇게 상상해봐요. 우리는 그동안 오랜 여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어느날 둘이 함께 기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동시에 기억을 잃은 거라고, 그래서 모든 이름과 얼굴을 다 잊었다고 말이에요.”

우루는 본다. 그녀의 눈은 어디에서 왔을까? 여리고 숨겨진, 노란 달을 감춘 개과 동물의 눈동자는. 우루는 끊임없이 보는데, 그녀가 보는 것은 한번도 만난 일이 없는 최초의 여인이다. 최초의 여인은 매번 모습을 바꾸며 나타나 우루의 앞을 지나쳐간다. 어느날 우루는 시내에서 어떤 얼굴과 마주쳤다. 우루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고 그 얼굴은 인도를 걷고 있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손을 뻗으면 서로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속도를 줄인 버스는 정류장에 멈추어 섰고, 얼굴은 버스를 지나쳐 계속 걸어갔다. 얼굴은 작고 여위었으며, 갈색 얼룩으로 덮인 채 뜨거운 재처럼 흐릿하게 휘발되는 중이었다. 얼굴은 아직 살아 있는가? 믿을 수 없지만 그래 보였다. 얼굴에는 인상이 실려 있었다.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는 종류였는데, 하지만 평화로움이나 초연함은 아니고, 입을 벌린 채 살짝 일그러진, 고요하게 굳어버린 어떤 최후의 격렬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차마 혀에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이미지를 강하게 연상시켰다. 한참 뒤 마침내 우루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회색 머리카락이 달린 해골이었다. 우루는 그것이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최초의 여인이라고 믿었다.

우루의 손님은 말했다. “나는 당신의 미래를 알아요.”

우루가 보는 것은 어떤 장면이기도 하다. 기억이 시작되는 태초에 장면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분명히 알고 있는데, 어느날 저녁의 학교였다. 그것은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처럼, 지금도 종종 우루의 눈앞에 경이롭고 장엄하게 떠오르곤 했다. 검은 제비들이 해질녘의 운동장 위를 짧고 날카로운 화살처럼 히스테릭하게 질주했다. 제비들의 외마디 울음이 텅 빈 학교 운동장에 가득했다. 제비들의 활강은 점점 더 빠르고 점점 더 낮아지고 있었으므로, 마침내는 짧고 단단한 제비의 부리가 운동장 흙바닥에 앉아 있는 우루의 속눈썹을 스칠 것만 같았다. 서쪽 하늘의 무겁게 층이 진 짙은 구름들의 테두리는 연한 장미색과 푸르스름한 회색, 갈색과 연두색 빛이 섞여 흐릿하게 반짝였다. 공기는 물속처럼 뜨끈하고 무거웠다. 우루는 손을 들어 손바닥을 살펴보고, 눈꺼풀 위의 모래알을 털어냈다. 입천장에서 쇠와 먼지의 맛이 느껴졌다. 가느다란 빗방울이 몇방울 떨어지다가 멈추었고 우루는 느리게 일어섰다. 우루가 앉아 있던 흙바닥에는 그날 오후 내내 우루를 괴롭혔을 것이 분명한 검붉은 얼룩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우루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속옷에 묻은 피의 흔적은 아마도 비누칠을 하면 없어지리라. 우루는 바닥에 놓인 책가방을 집어 들었다. 구름 아래로 펼쳐진 낮고 편평한 산 위로 오렌지색 섬광이 번득였고, 지붕이 낮은 모래색 집들이 거울에 비친 달걀더미처럼 드러났다. 우루는 그 번갯불 속에 자신의 집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고향의 뒤편 하늘에서는 번개가 번쩍이며, 아버지도 어머니도 죽었다고 했으므로……

우루는 일생 동안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고 단 한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어떤 기회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가가 되었다. 어느날 우루는 한 사람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들은 마치 기적처럼 여행지의 커다란 강변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것이다. 뜨거운 햇빛이 모든 것을 태우는 한낮, 그는 푸른 강변의 흰 계단에 사지를 뻗고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우루는 부활의 기적 앞에 선 사람처럼 그 앞에서 얼어붙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한줄의 편지도 없이 떠나간 사람을 먼 외국의 강가에서, 그것도 이런 방식으로, 마주칠 수 있다니!

그의 검은 여행가방과 벗어 던진 신발, 책과 담배가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그날은 뜨겁게 작열하는 햇볕 속에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는 강물에 떠내려온 사람처럼 보였다. 태양빛은 저절로 불이 붙을 듯이 뜨거운데 그의 바지와 셔츠가 아직 젖어 있었다. 신발을 벗어 던진 그는 혼자였다. 우루는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자신이 그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를 알아본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불가사의하게 여겼다. 앞으로 우루는, 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만났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강에서 나온 사람을 만났어! 그의 입에는 고대의 동전이 물려 있었고.” 우루는 근처의 분수로 달려가서 손수건을 물에 흠뻑 적신 다음 그것을 죽은 듯 누워 있는 그의 입술에 갖다 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마셔요, 이것을 빨아 마셔요!” 그러자 그가 눈을 떴다. 오, 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만났어! 그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가볍게 몸을 떨었고, 그제야 우루는 그가 잠시 잠이 들었을 뿐 죽어서 강물에 떠내려온 시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루는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우루는 살구버섯 요리와 라이스 샐러드를 만들었다. 라이스 샐러드는 우루가 잘하는 음식이고, 살구버섯은 오래전 그가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동물원에서 기이한 사건이 있었다. 한 남자가 코요테 우리로 들어가서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남자는 전날 동물원의 문이 닫히고 아무도 없는 시간까지 동물원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자 울타리를 기어오르고 그다지 깊지 않은 작은 해자를 뛰어넘어 코요테 우리로 들어간 것 같았다. 코요테는 과거에 사슴 방목지였던 우리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키 작은 관목 숲과 연못, 계곡과 사막, 무릎 높이의 풀들이 넓게 펼쳐져서 코요테의 고향인 초원지대와 흡사했다. 과거 20여마리의 사슴이 살던 그곳에 지금은 기이하게도 단 한마리의 코요테가 살았다. 그래서 코요테는 눈에 거의 뜨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곳이 빈 우리라고 생각하고는 그냥 지나쳐버렸기에 낮에도 무척 한산한 장소였다. 사실 동물원에서 코요테는 크게 흥미로운 동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슴이 사라져버린 후 풀들은 점점 더 무성하고 높게 자라났고,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코요테는 점점 더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연두색 안개가 지상 낮은 곳을 가득 뒤덮었고, 이슬 맺힌 풀들은 연한 모래색으로 빛났다. 남자는 녹색 담요 하나를 몸에 둘렀을 뿐 나체였다고 한다. 손에는 긴 호두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에는 훼손된 흔적이 있었지만, 정확히는 왼쪽 귀가 사라졌지만, 그것이 주로 시체를 먹는 코요테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까마귀나 쥐 등 다른 동물들의 짓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코요테가 남자를 죽인 걸까? 아니면 남자는 저절로 죽은 것이고 코요테는 우연히 거기에 있었을 뿐일까? 그들은 과연 서로 만나기나 한 것일까? 그런데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 후 이상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남자가 거기 들어간 것은 어제가 아니라 더 이전이며, 어쩌면 일주일, 열흘 이상일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남자와 코요테는 그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은 채 한 우리에서 살았고,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주의 깊게 지켜보기만 하다가, 남자는 아마도 굶어서 죽었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죽었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동안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던 이유는, 남자가 녹색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항상 키 큰 풀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고, 또 코요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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