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우리가 함께 무한을 꿈꿀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朴濬

1983년 서울 출생.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등이 있음. 신동엽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수상.

 

박혜진 朴惠眞

문학평론가. 공저 『읽을 것들은 이렇게 쌓여가고』 등이 있음. maple30@naver.com

 

 

183호_p403

 

 

1월 15일 오후 12시 기준 서울시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101, ‘매우 나쁨’ 수준이었다. 그 시각 나는 강변북로 위에 있었다. 왼쪽으로 펼쳐진 한강과 강 건너 빌딩들이 짙은 먼지에 가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전부 다 삼켜버린 희뿌연 풍경은 재난영화의 한 장면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어떤 공포심도 엄살만은 아니었던 그날, 나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를 출간한 박준 시인을 만나기 위해 먼지 속을 뚫고 도로 위를 달렸다. 상상 속에서 그려보던 재난의 이미지가 가까워진 만큼이나 가까이 있던 ‘장마’라는 단어가 아득해졌다. 아틀란티스나 노스탤지어 같은 말처럼 ‘장마’도 만질 수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였을까. 길 위에서 나는 사라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중대한 임무라도 부여받은 사람처럼 비장한 마음마저 들었다. 박준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 사라져가는 공기를 되찾으러 가는 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만나러 가는 사람이 시인이 아니라 자연의 수호신쯤 되는 것처럼.

 

기대에는 이유가 있다. 2017년 여름, 박준 시인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과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는 박준 시인이 이끄는 대로 여기저기를 다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운동장이 있는 초등학교라거나 여울물 소리가 잘 들리는 나무 그늘이라거나. 여행은 자연스레 ‘박준과 함께하는 정선 문학캠프’가 되어갔는데, 놀랍게도 나는 처음 가본 장소에서 내가 잊고 있던 감정들을 만났다.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던 그런 감정들 말이다. 그리고 그 만남은 어딘가 익숙했다. 박준 시인이 시로 쓰는 것들이야말로 세상이 변화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들이 아니었나. 말하자면 남아 있는 것들. 봄, 가을, 하늘, 공기라 해도 좋고 슬픔, 기쁨, 그리움, 다정함이라 해도 좋을 그것은 한국인 화자로서 공유할 수 있는 고유한 서정과 언어를 관통하며 박준의 시를 특징 짓는다. 환경이 오염되고 속도가 빨라지며 삶의 가치관이 변하는 동안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 만나자마자 날씨 이야기를 꺼낸 건 관습적인 인사말이 아니었다.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과 기후변화에 대한 그날의 염려는 박준의 시쓰기에 대한 진지하고도 본격적인 내 첫 질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박준의 시어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몇해 전 강원도 정선에 간 적이 있었잖아요. 저는 남들 앞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데 어찌하다가 그날 노래를 했고요. 기억 안 나시지요? 기억이 안 나셔야 할 텐데.(웃음) 어쨌든 그때 부른 것이 「찔레꽃」이라는 노래였어요. 박태준 곡에 이원수의 동시를 바탕으로 이연실이 개사해 부른 버전이에요. 가사의 1절은 이렇습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오래전부터 이 노래를 좋아했어요.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찔레꽃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슬프고 슬퍼요. 이상하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만도 아니에요. 어려서 부모님이 생업으로 늦을 때면 주로 컵라면을 먹었거든요. 찔레꽃과 컵라면만 두고 보면 세상이 변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 남은 아이가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 급하게 허기를 채울 때 드는 슬픔 같은 것을 두고 보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마 빠르게 변하면 변할수록 변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쓸 것 같아요.

 

 

남아 있는 나날

 

남아 있는 것을 쓸 것 같다는 시인의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치는 문장이 있었다. ‘남아 있는 나날’. 영화 제목이자 원작인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 표현은 원제(The Remains of the Day)를 잘못 번역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남아 있는 나날’이란 여생을 뜻하며 미래의 시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흔적들, 그러니까 시인의 말처럼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을 뜻하기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과거의 시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번역의 타당성은 차치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지시할 수 있는 이 문장이 박준의 시를 표현하기에 맞춤하단 생각이 들었다. 박준 시의 현재는 과거를 향해 열려 있다. 단절된 시간에 다리를 놓고 현재를 과거로 잇는다. 과거는 현재를 통해 계속 진행되며 미래를 장악한다. 기억을 모티프로 한 예술의 한 축이 불완전한 기억을 통해 인간 의식의 허위성과 허구성을 드러낸다면 박준의 기억은 현재와 과거라는 시제의 구분을 무화시켜 단절되고 제한된 인간의 시간을 연장한다. 그 연장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시간에 대한 초월적 경험이다. 「종암동」을 처음 읽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삼대에 걸친 시간이 차례로 집 안에 들어서며 제한된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house)이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집(home)으로 비약하던 순간, 집은 독립된 하나의 실체가 되었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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