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피터 베이커 Peter C. Baker

프리랜서 저술가. 가디언(The Guardian) 장문기사 고정필자.

apcbaker@gmail.com

 

 

* 이 글은 The Guardian에 게재된 “‘We can’t go back to normal’: how will coronavirus change the world?”(2020.3.31)를 번역한 것이다. ⓒ Guardian News & Media Ltd 2020 / 한국어판 ⓒ(주)창비 2020.

 

 

격변의 시대는 언제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이다.

일부 사람들은 팬데믹이 사회를 개조하고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한 세대에 한번 있을 법한 기회라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의 불의가 더 악화되기만 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피터 베이커(Peter C. Baker)

 

모든 것이 새롭고 믿기 어려우며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느낌이다. 동시에, 자꾸 되풀이되는 오랜 꿈속으로 걸어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면에선 사실이다. 예전에 TV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대충 상황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마주친 현실이 덜 낯설어지는 것이 아니라, 왠지 더 낯설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사태의 진전—그저 며칠이 아니라 몇년은 걸려야 할 일—에 관한 보도가 매일 날아든다. 우리는 뉴스를 따라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민의식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 보도를 접한 이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 가능성 때문에 계속 새로운 뉴스에 귀 기울인다. 사태의 진전이 너무 급속하게 이루어져 그 진전이 얼마나 급진적인 것인지 깨닫기 어려울 정도다.

기억을 몇주 되돌려 누군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한달 내로 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다. 거의 모든 단체 모임이 취소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수억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각 정부는 사상 최대로 꼽힐 만한 경기부양책을 서둘러 마련할 것이다. 곳에 따라서는 집주인이 집세를 받지 않고, 은행이 주택 담보 대출금을 징수하지 않고, 집 없는 사람들이 공짜로 호텔에 머물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부가 직접 지급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이 진행될 것이다.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 가급적 최소 2미터의 거리를 상호 유지하는 공통 과제가—각기 다른 정도의 강제와 설득이 있기는 하겠지만—수행될 것이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과연 믿었겠는가?

현기증이 나는 건 단순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규모나 속도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이처럼 큰 조치를 신속히, 혹은 전혀 취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데 익숙해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자리에 서 있다. 역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위기와 재난이 빈번히 변화를 위한 계기, 많은 경우 더 나아지기 위한 계기가 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1918년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많은 유럽 국가에서 국민 보건 서비스가 생겨나게 되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2차대전이라는 한쌍의 위기는 현대 복지국가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지만 위기는 사회를 더 어두운 길로 내려 보낼 수도 있다. 9·11테러 사건 이후 시민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폭증하는 한편, 조지 부시(George W. Bush)는 무한 점령으로 이어진 새로운 전쟁에 착수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침략한 지 19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의 숫자를 줄이려는 미 군부의 시도가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늦추어지고 있다.) 또다른 최근의 위기로 2008년의 금융위기는 엄청난 공공비용을 들여 은행과 금융기관을 사고 이전의 정상 상태로 복구하고자 했고 의도대로 수습된 반면, 전세계적으로 공공서비스 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은 대폭 삭감되었다.

위기가 역사의 진로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연구하는 데 생애를 바친 수백명의 사상가들이 있다. 이러한—‘위기학’ 분야라고 부를 수 있을—작업은 주어진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그 공동체의 기저 현실이 어떻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지 낱낱이 기록한다. 누가 더 많이 갖고 있고, 누가 더 적게 갖고 있는지. 권력은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이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사회의 고장 난 부분은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나 심하게 고장 났는지가 드러나게 마련이며, 많은 경우 뇌리를 떠나지 않는 사소한 이미지나 이야기의 형태를 띤다. 지난 몇주간 뉴스 보도로 인해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예를 접하게 되었다. 항공사들이 최우수 항로에 대한 자사의 자리를 지키려는 단 한가지 목적만으로 완전히 비었거나 거의 빈 항공기를 다수 운항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프랑스 경찰이 록다운(lockdown) 조치를 어기고 밖에 나와 있다는 이유로 집 없는 노숙인들에게 벌금을 물리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뉴욕주의 수감자들은 손세정제를 병에 담는 일을 하는 댓가로 한시간에 1달러도 채 못 되는 임금을 받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알코올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세정제를 사용할 수 없다. 더구나 그들이 갇힌 감옥은 비누도 거저 주지 않아 매점에서 사서 써야 한다.

그러나 재난과 비상사태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상성의 장막을 찢어 열어젖히기도 한다. 벌려진 틈 사이로 우리는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얼핏 보게 된다. 재난을 연구하는 일부 사상가는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다른 일부는 좀더 낙관적인 태도로, 잃는 것뿐 아니라 무언가 얻을 수도 있다는 관점으로 위기에 접근한다. 물론 모든 재난은 성격이 다르며, 결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손실과 이득은 항상 공존한다는 얘기다. 사후에 돌이켜보았을 때에야 우리가 진입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의 윤곽이 분명해질 것이다.

 

비관적 견해는 위기로 인해 나쁜 상황이 더 나빠진다고 본다. 재난—특히 팬데믹—연구자들은 재난이 외국인 혐오와 소수인종을 속죄양으로 삼는 경향에 불을 지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4세기 유럽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크고 작은 도시가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했다. 그리고 ‘탐탁지 않은’ 공동체 성원들, 대개는 유대인들을 공격하고 추방하고 살해했다. 1858년, 뉴욕시의 폭도들은 스태튼아일랜드(Staten Island)의 이민자 격리 병원에 난입해서 모두 떠나기를 요구한 뒤 병원을 불태워버렸다. 이 병원으로 인해 병원 밖 사람들이 황열병(yellow fever)의 위험에 노출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현재 위키피디아에는 ‘2019~20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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