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선영 吳善映

1981년 서울 출생.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모두의 내력』이 있음.

greenz45@naver.com

 

 

 

우리들의 낙원

 

 

1

 

퇴근 후, 남편은 작은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좋아하는 꼬막무침과 연근조림 앞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는 고시생처럼 입속에 음식을 밀어넣고는, ‘잘 먹었다’는 말도 없이 작은방으로 사라졌다. 내심 신경 써서 만든 반찬이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냉동식품 취급을 받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못 끝낸 잔업이 있는가 싶었다. 같은 부서의 사원 한명이 사표를 냈다고 했었다. 적은 임금과 고강도 업무, 경직된 사내 분위기에 자신의 미래와 비전을 걸 수 없다면서 말이다. 남편은 사원의 말에 동의하며 미래가 창창하니 진취적으로 앞날을 개척해나가라는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은 30대 초반의 미혼 남성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자신은 그렇게 사표를 쓸 일이 없다는 말을 각주처럼 덧붙였다. 남편의 조언은 훌륭했으나 과장과 사원으로 구성된 부서의 일은 모두 남편에게 돌아왔다. 그렇지만 잔업도 하루 이틀이지, 주중뿐 아니라 주말에도 작은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문에 귀를 대어보았다.

탁탁, 타닥타닥 …… 타타타탁탁. 탁!

빠르고 짧게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 뒤이은 정적.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의미없는 후크송처럼 반복되었다. 남편이 피시게임에 빠졌나 싶었다. 하지만 20대에 친구들이 스타크래프트에 빠져서 피시방 24시간 정액권을 끊을 때에도 무관심했던 남편이다. 뒤늦게 게임에 빠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윤후에게 뽀로로 동영상을 보여주는 시간조차 제한하는 남편이 저녁 내내 게임을 할 확률은 낮아 보였다.

“윤후 아빠, 요즘 작은방에서 뭐 해?”

“으응…… 뭐 좀 하느라고. 나중에 말해줄게.”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저녁 설거지를 끝낸 뒤 윤후와 거실에서 스티커를 뗐다 붙였다 하며 놀고 있었다. 작은방 문이 활짝 열리고 남편이 거실로 걸어 나왔다. 마치 가정용 망원경으로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미확인 소행성을 찾은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말이다.

“우리 주택청약통장 있지?”

“응.”

“얼마나 됐지?”

“윤후 태어났을 때 들었으니 만 3년 좀 지났겠네.”

“300만원 만들어졌지?”

남편이 거듭 확인을 했다. 나는 대답을 하고 상어가족 스티커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상어, 엄마상어, 아기상어가 바닷속 용궁으로 유유히 들어가고 있었다. 윤후가 엠보싱이 들어간 폭신 스티커로 용궁의 외벽을 꾸몄다.

“오케이, 그거면 됐어!”

남편이 청소년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다부지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기 온천장 일대랑 T아파트가 재개발된대. 삼성이랑 현대가 연합으로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다고 확정했다더라. 대기업 시공사에 상권이랑 교통까지 끝내줘서 당첨되면 바로 그날로 피(P) 붙을 거야. 거기가 치맛바람은 크게 없어도 전통적인 교육동네여서 학군까지 좋잖아. 윤후 학교 갔을 때를 생각해도 이득이지.”

윤후에게 불가사리 스티커를 쥐여주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의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이 막연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미 신문에 공고 다 난 거야.”

국회의원들만 알고 있다는 도로계획이나 도시재생사업, 그것도 아니면 아파트 통장만 돼도 미리 알 법한 도로포장공사 소식도 아니고. 신문, TV, 라디오 심지어 버스 옆면의 광고판까지 붙어 있는 정보를 저렇게 순진한 얼굴로 말하고 있다니. 작은방에서 며칠을 끙끙거린 이유가 고작 저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나 싶었다.

“그래, 근데 나처럼 투자가치를 정밀 분석한 사람도 없을 거야. 남들이 하는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주변 시세랑 거래, 최근 3년 이내 매매 가격까지 진짜 면밀하고 꼼꼼하게 살펴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야. 회사에서 프로젝트 따낼 때보다 더 열심히 알아봤어. 그러니까……”

남편이 나와 윤후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건 당첨이 돼서 이사를 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나는 파란색 아빠상어 머리에 황금 왕관을 붙이면서 남편의 입을 막았다.

남편이 나와 윤후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성실하고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늘어나는 생활비와 교육비를 걱정하고, 남은 정년과 퇴직금을 계산하면서 우리 가족의 미래와 노후를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성을 쏟고, 마음을 기울인다고 해서 밤하늘의 별 같은 이야기까지 너그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었다. 더욱이 남편이 말하는 미확인 소행성에 함께 열광하기엔 나는 육아와 집안일로 지쳐 있었다. 그가 찾은 별이 이미 오래전에 발견돼서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북극성이라는 것도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사이 윤후는 용궁 입구에 해파리와 오징어, 문어, 조개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놨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용궁이 텔레비전과 미니책상, 타요 미끄럼틀, 뽀로로 붕붕카로 빼곡한 우리 집 거실 같았다. 나는 말없이 윤후가 붙여놓은 해파리, 오징어, 문어 스티커를 다 떼어냈다. 아이가 스티커를 달라고 졸랐지만 못 들은 척하면서 한 손으로 구겨버렸다. 남편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2

 

남편이 말한 동네, 그러니까 T아파트와 온천장 일대에 나도 살았던 적이 있다. 내 손으로 부동산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가 정보를 얻고 흥정을 하며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정해놓은 집에 쥬쥬 인형과 레고 블록을 챙겨 이사하면 되던 때에 말이다. 안방의 꽃무늬 벽지가 내 방의 별모양 스탠드보다 예쁘다는 것에 속상해하던, 벽지의 가격과 재질, 인테리어 시공비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이었다.

아빠의 이직으로 그곳에 전학을 갔다. 열두살, 50명의 아이들이 100개의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서울에서 전학 온 김미연입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인사를 하고 선생님이 정해준 자리에 가서 앉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얼굴이 까맣고 코가 납작한 남자애가 상체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롯데월드 가봤나?”

전학 온 학교에서 처음 받은 질문이었다.

“응.”

1991년의 일이었다. 88올림픽이 끝난 이듬해에 생긴 롯데월드는 한국의 디즈니랜드를 표방하면서 서울 시내에 세워졌다. 실내, 실외로 구성된 놀이공원은 아이스링크와 민속박물관까지 있어서, 국민학생들에겐 꿈과 희망의 에덴동산과 다름없었다. 우리 집은 롯데월드로 가는 지하철 노선에서 먼 곳에 있었지만, 이사 오기 전 엄마를 졸라서 그곳에 놀러 갔었다.

“진짜 좋더나? 그럼 후룸라이드도 타봤나?”

다시 질문이 쏟아졌다. 반 아이들이 나와 남자애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최대한 친절하게. 튀지 않으면서도, 평범하지는 않게. 전학생에서 학급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후룸라이드 타봤는데, 그보단 월드모노레일 타고 매직아일랜드 가는 게 훨씬 좋더라. 밖으로 나가면 공기도 좋고, 석촌호수도 구경할 수 있구.”

“어? 그거 수빈이도 타봤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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