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우리말과 음양오행의 인지과학적 특성

 

 

소광섭 蘇光燮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저서로 『대통일이론』 『물리학과 대승기신론』 등이 있음.

 

 

1. 음양오행의 짝과 우리말의 순서

 

음양(陰陽)은 서로 대립하는 반대의 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움과 더움, 어둠과 밝음, 무거움과 가벼움 등 수없이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자연과 생활 가운데 음양의 짝을 파악하여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인식과 사고의 기초를 이룬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사고활동의 매체인 언어의 규칙에도 이 점이 은연중 스며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우리말의 음양적 규칙성을 찾아보면 실제로 뚜렷한 순서의 규율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음양의 짝에서 순서상 음이 먼저 오고 양이 뒤에 놓인다’는 법칙이 우리말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안’과 ‘밖’은 안이 음이고 밖이 양이므로, 묶어서 말할 때 ‘안팎’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느낀다. ‘오고 가는 것’ 역시 음양의 짝이므로 ‘오가며’라고 말하지 ‘가고 온다’라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이 음이므로 ‘드나든다’로 줄여서 음양순서의 법칙이 지켜진다.

이러한 음양의 규칙은 한자어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우리말에서는 어버이(어머니와 아버지), 연놈(여자와 남자), 처녀총각과 같이 음이 먼저 오는데, 한자어에서는 양이 앞에 서고 음이 뒤따른다. 부모, 남녀, 신랑 신부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 규칙이 한자어에서 철저히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예를 들어 天地·乾坤·父母·男女·明暗·輕重·增減·强弱·出入·動靜)에는 양음 순서를 지키지만, 음양·자웅(雌雄)·내외(內外)와 같이 순서가 바뀌는 예외도 없지 않다. 이 바뀐 순서의 경우 한국에서만 쓰이는 한자 어휘일 수도 있겠고, 또는 한국에서 기원된 것(예를 들어 음양)을 중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였을 경우(중국에서는 외래어인 셈)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우리말의 경우도 어순이 대부분 음양의 순서이지만(예를 들어 어버이, 연놈, 암수, 처녀총각, 안팎, 오가며, 들락날락, 드나든다, 쥐었다 폈다, 옴짝달싹, 우툴두툴)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닫이’는 양인 열다와 음인 닫다의 순서이고, ‘미닫이’도 마찬가지로 순서가 반대이다. 발음상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또 많은 경우에 음양의 짝으로 낱말을 만들지 않는다. 어둡고 밝음, 춥고 더움, 차갑고 뜨거움, 달과 해, 땅과 하늘, 무겁고 가벼움, 부드럽고 단단함, 속과 겉 등 한자 어휘는 있으나 하나로 된 우리 낱말은 없는 예들이 많다. 한자어에서는 음양의 적용을 상하·고하·전후·좌우·대소·다소·장단·광협·원근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에 확대적용한 데 비하여, 우리말의 음양 순서는 그렇게까지 일반화되지 않았다. 왜 철저하게 만들어나가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어쩌면 이런 일반화는 경험에서 벗어나는 관념적 확장이라고 보았는지 모른다. 예로 ‘오르내린다’ ‘위아래’를 음양의 짝으로 볼 수 있느냐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말의 음양순서 규칙을 좀더 체계적으로 살펴보자. 이 글의 첫부분에서 ‘음양은 서로 대립하는 반대의 짝’이라 정의하고 그 예로 온냉·명암·경중 등을 들었는데, 이 예들은 한자어의 이분법적 표현을 음양에 확대적용한 것이고, 우리말의 음양순서 규칙을 조사해보면 음양은 극히 제한된 두 가지 경우에 한함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성(gender)의 분별로, 어버이, 내외(內外=夫婦), 처녀총각(處女總角), 연놈, 암수 등이다. 단 오누이(오라비와 누이), 아들딸처럼 음양의 어순이 바뀐 것은 영어에서 어린이(child)를 중성(he 또는 she가 아닌 it)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안과 밖, 그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운동과 밖으로 나가는 운동에 음양 어순이 지켜진다. 안팎, 들락날락, 드나든다〔入出〕, 오간다, 오락가락, 오므렸다 폈다, 옴짝달싹, 들쭉날쭉, 들숨날숨〔呼吸〕 등이다. 요즈음 만들어진 낱말로 고속도로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곳을 ‘나들목’이라고 하는데, 출구만 가리키면 맞지만 입구도 함께 의미한다면 ‘드나들목’이라고 해야 우리말의 규칙에 맞는다 하겠다. 또하나 흥미로운 점은 운동이라도 안과 밖의 중간 경계에서 일어나는 것은 순서가 지켜지지 않는다. 미닫이와 여닫이는 안팎으로 열고 닫는 면도 있지만 옆으로 밀고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과 밖의 중간인 ‘겉’도 또한 음양의 구분에 속하지 않으므로 ‘겉과 속’은 짝이지만 음양의 짝으로 보지 않는다.

오행과 우리말의 관계를 논하기 전에 음양과 관련하여 한두 가지 생각을 보탤까 한다. 언어에서의 음양 순서가 행동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숫자를 셀 때 손가락을 안으로 꼽으면서 다섯까지 센 후 밖으로 펴면서 나머지 열까지 센다. 화가 나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도 우리말의 순서와 일치한다.

남녀·천지·상하·강유를 양과 음으로 분류하는 언어체계를 갖는 사회에서는 남자는 하늘처럼 높고 단단하며, 여자는 땅처럼 낮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남녀차별의 사고가 자연스러울 것이다. 우리말은 음양을 성과 안팎으로의 운동에 국한하고 일반화된 이분법으로 확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부터 남녀차별의 사고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안사람, 바깥 양반’은 우리말과 생활이 일치하는 것인데, 이를 꼭 남녀차별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여성 먼저’라는 관념이 있었는데, 한자 언어권의 영향으로 흐려졌을는지도 모른다.

한자어에서 이분법으로 음양을 확대한 경우 우리말은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해당하는 낱말이 없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다.

─천체와 기상: 천지, 건곤, 일월, 온냉, 한서(寒暑), 춘추, 수화(水火), 명암.

─방향과 크기: 상하, 전후, 좌우, 동서, 남북, 선후, 대소, 다소, 고저, 심천, 경중, 강약, 강유, 장단, 원근, 광협.

─변화와 운동: 동정, 출입, 왕래, 굴신, 증감, 생멸.

─기타: 흑백, 가부(긍정과 부정), 수족(손과 발), 심신(몸과 마음), 희비, 고락, 애증(愛憎), 인의(仁義).

우리말에서는 음양을 암수의 구분과 안팎으로 오므라들고 나가는 운동의 구분이란 구체적 현상에만 제한하고, 이를 일반화하여 하나의 범주로 확장하는 보편성이 부족한 듯하다. 흑과 백, 쓴맛과 단맛을 음양으로 볼 수 있는 추상적 사고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흑백을 음양으로 보는 관점이야말로 흑백논리로 세상을 갈라보는 지나친 단순화이며 세계는 좀더 복잡하다는 것이 우리말의 세계관인 듯하다. 즉 음양말고 다섯 가지 다른 범주가 있다는 것이니, 이를 오행(五行)이라 하며, 흑백도 오행 중의 두 요소란 관점이다.

 

 

2. 오행

 

오행(五行)에서 행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와는 같지 않다. 고대의 물·불·바람·흙 4원소나 현대의 원자(수소·헬륨·우라늄 등)는 물질의 분해와 조합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분명한데, 오행의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는 물질의 요소도 아니고, 관념적 범주로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행은 한·중·일의 극동 문화권에서는 한의학을 비롯하여 철학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류의 틀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오행이 널리 쓰이므로 우리말과 글에도 오행적 요소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음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말에는 오행의 사상이 원초부터 깊이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행 사상을 따라 우리말의 체계를 세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예로 색깔에 대해서 살펴보자. 오행체계에서는 각 행마다 해당하는 색이 있다. 즉,

 

목: 청(靑), 화: 적(赤), 토: 황(黃), 금: 백(白), 수: 흑(黑)

 

이다. 색은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녹(綠), 감(紺), 남(藍), 자(紫), 갈(褐), 홍(紅), 주(朱)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에는 색깔에 대해서는 다섯 가지 낱말만이 뚜렷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오행에 맞춰져 있으니,

 

목: 파랑, 화: 빨강, 토: 노랑, 금: 하양, 수: 까망(검정)

 

과 같이 ‘-앙’으로 끝나는 일정한 규칙을 갖고 있다. 한자어에 기원을 갖고 있지 않은 색깔 관련 낱말은 이 다섯 외에는 없는 듯하다. (‘풀색’은 청색과 녹색을 잘 구분하지 않는 우리의 습관으로 볼 때 파랑과 하나로 칠 수 있겠고, ‘보라색’은 한자어에 기원이 있지 않은가 의심이 든다. 흔히 듣는 연두색은 연두`軟豆이니 원래 우리말이 아니다.) 낱말뿐만 아니라 색깔의 사고와 표현에서도 여러가지 빛깔이 섞여 황홀하도록 아름다움을 ‘오색찬란’ ‘오색영롱’이라 하고, 갖가지 짓을 다하는 놈을 ‘오색잡놈’이라고 한다. 색깔에 관한 인지가 오행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한자어에서는 흑백, 적청이 음양의 대립으로도 파악되지만, 우리말에서는 이를 오행의 요소로만 보았다.

맛에 관해서는 색깔에서 보듯 뚜렷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에서는 역시 다섯 가지가 주로 쓰인다.

 

목: 신맛, 화: 쓴맛, 토: 단맛, 금: 매운맛, 수: 짠맛

 

이밖에 우리말로 어떤 맛이 더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상적으로는 이것이 전부일 듯싶다.

혀의 감각으로는 신맛, 쓴맛, 단맛, 짠맛 네 가지가 기본적인 맛이다. ‘매운 맛’은 맛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고, 영어에는 ‘맵다’라는 단어가 따로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