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미국이라는 우리의 난제

 

우리의 미국인식, 고정관념을 깨자

 

 

황정아 黃靜雅

서울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영문학. 주요 논문으로 「D. H. 로런스의 근대 문명관과 아메리카」 등이 있음. jhwang6@snu.ac.kr

 

 

1.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을 주제로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가장 흔하고 무난한 출발점이다. 사뭇 비장한 어조마저 감도는 이 물음은 그만큼 답을 절실히 찾는다는 인상을 주지만 동시에 의문형을 만드는 ‘무엇인가’라는 부분이 은근히 마음을 짓누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혹은 이러저러한 것인가와 달리, ‘무엇인가’는 ‘역사란 무엇인가’나 심지어 ‘존재란 무엇인가’따위를 연상시키면서 대답을 얻고자 하는 질문 본연의 의도를 거슬러 마치 ‘결코 알 수 없을걸’하는 암시가 배어 있는 듯하다. 다른 한편, ‘우리에게’라는 말 역시 질문의 막연함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미국이 ‘우리에게’ ‘그들 자신에게’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각각 다른 무엇일지 모른다는 애매함을 남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미국의 ‘정체’를 제대로 규명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목표인가, 그리고 ‘우리’의 주체적 인식은 여기에 어떻게 연관되는가 하는 복잡한 질문들의 요약본이기도 하다. 이 글은 굴곡의 현대사를 거치며 양과 질에서 많은 성과를 축적한 우리의 미국연구에 여전히 반복되는 문제점들을 짚어봄으로써, ‘정체를 제대로 규명하는’ ‘주체적인’미국인식이라는 이 주제를 간접적으로 다루어보려 한다.

미국연구의 범위와 수준이 방대하고 다양한만큼 ‘문제점’에 국한하더라도 대상을 상당히 제한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 대한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인식을 ‘미국학’으로 통칭한다면 그 안에서도 미국학 자체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와 구체적인 분야별 연구로 구분되고, 후자는 다시 인문학 분야와 사회과학 분야로 나뉜다. 그리고 흔히 ‘대중서’로 분류될 법한 내용 중에도 학문적 성과를 일정하게 반영하면서 좀더 대중적인 교양에 촛점을 둔 연구가 있는가 하면 그야말로 개인적인 경험이나 여행담에 가까운 부류가 있다. 여기서는 ‘학술’과 ‘대중’그리고 ‘총론’과 ‘각론’의 범주를 모두 대상으로 하되, 2000년 이후 나온 글 가운데 너무 전문적이고 세부적이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크게 보아 ‘미국문화연구’와 관련된 글을 중심으로 몇편을 골라 살펴보겠다.

 

 

2. 미국학의 정체성

 

『한국에서의 미국학: 이론과 실제』라는 책을 보면, 미국학은 기존의 분과학문처럼 분명한 경계나 체계가 확립되기 어려운 성격이어서, “그것이 생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그 학문적 정체성 때문에 많은 논의가 계속”되는 실정이다.1 그러나 이 점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미국학이 지니는 “다양성, 학제성, 협동성, 실용성의 특성들이 오히려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많은 전통적인 학문분야의 연구경향이라고 볼 때 어떤 면에서는 미국학이 전통적인 학문분야가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에 대해 하나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124면). 그렇더라도 이런 정체성 문제는 한국의 미국학이 안고 있는 주요 관심사이자 과제이며, 더구나 미국학이 미국에서“일종의 국책학문”으로 시작되었고“미국의 국가기관인 미공보원이 지속적으로 미국의 아메리카학회 또는 각국의 아메리카학회를 지원하여”(124면) 육성된 점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한층 복잡해지고 첨예해지리라 예상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미국학』의 집필 목적도 “우리의 실정에 맞는 미국학을 정의하고” “한국에서 미국학 교육의 모델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미국학을 활성화시키는 데 하나의 참고가 되도록 하기 위함”(머리말)이며, 따라서 책의 내용도 크게 ‘이론’편과 ‘실제’편으로 나누어 정체성이라는 이론적 주제와 교육의 실제 내용을 각각 다룬다. 그런데 미국학의 기원과 성격을 생각할 때 적어도 미국학 이론을 다루는 데서는 한국의 ‘미국학’이 어떤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화두로 제시되어야 마땅할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가령 「한국에서의 미국학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 같은 글은“미국에서 시작된 미국학이란 학문분과가 어떤 것인가를 살피고, 과연 미국의 미국학이 한국의 교육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데 촛점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2 그래서인지“냉전시대에 미국은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우방국들에 수출하기 위해 미국학을 도구로 사용”하기는 했지만“미국에서 행해지던 연구의 내용과 방법론과는 다른 수출용 미국학을 개발한 경우는 없”기 때문에“미국학 자체가 제국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것이고”또 최근에는“미국학의 냉전적 전통에 대한 반성과 교정을 요구하는 학자들도”등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89면).

물론 그런 과거가 있으니 미국의 미국학이 애초에 그랬듯 언제까지고 ‘이데올로기 수출 도구’에 머무를 거란 주장은 터무니없다. 미국의 미국학이 단일한 흐름이 아님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반대도 늘 진실은 아니라는 데 있다. 심지어 ‘반성과 교정’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크게 보아 ‘국책 이데올로기’가 아니란 보장이 처음부터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도 여러번 지적된 것처럼, 한국의 미국학이“유럽에서와는 달리 무엇보다도 미국의 주도적 역할에서 비롯되었고”3 특히 ‘한국아메리카학회’가 창설 당시나 지금까지 미국공보원과 한미교육위원단의 후원을 받는다는4 ‘불편한’사실을 한국에서의 미국학의 현재적 한계 정도로 간단히 치부하는 것도 걸리는 대목이다.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영향까지 받는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여러 면에서 미국과 이해관계의 갈등을 겪는 마당에 ‘중립적인’후원이 있다는 가정도 너무 안이한 태도로 보인다.

다른 한편, 미국의 미국학과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는 것을 큰 전제로 받아들일 때조차 막상 차별성을 실제로 논의하는 지점에선 뜻밖에도 다시 미국의 사례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이는 ‘타자로서 미국 연구하기’의 대안으로 ‘지역학’을 제시하면서도 그“학문분야와 교육모델을 ‘미국 지역학’으로 설정”5하기 때문이다.6 그렇기 때문에 미국(대학)의 지역학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으로 한국의 주체적 미국학에 대한 모색을 대체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여기서도 하나의 ‘참조사항’으로 미국의 지역학을 검토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필요하지만, 이를 ‘주된’참조점이나 심지어 하나의 ‘모델’로 채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미국인이 자신을 연구하는 학문인 미국학과 타자를 연구하는 학문인 지역학을 대비한다면, 우리의 경우 미국에 대한 연구는 지역학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3면)는 것

  1. 정연선 「한국에서의 미국학: 그 활성화를 위하여」, 정연선 외 『한국에서의 미국학: 이론과 실제』, 한국외국어대출판부 2005, 123면. 머리말에서는“이 책은 2003년도 한국아메리카학회가 ‘한국에서의 미국학: 그 현황과 발전방향’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3회의 미국학포럼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중심으로 몇편의 논문을 추가로 모집하여 엮은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2. 이상돈 「한국에서의 미국학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 같은 책 88면.
  3. 정연선 「한국에서의 미국학: 그 활성화를 위하여」, 정연선 외, 앞의 책 141면.
  4. “학회의 주요활동은 미국공보원과 한미교육위원단(풀브라이트위원단)의 후원하에 개최하는 연례 미국학 국제쎄미나”라고 한다. 김용권 「한국의 미국학: 과거—현재—미래」, 정연선 외, 앞의 책 159면.
  5. 이현송 「미국 지역학의 개념과 교육 프로그램」, 정연선 외, 앞의 책 3면.
  6. 앞의 「한국에서의 미국학: 그 활성화를 위하여」에도“미국학이 지역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미국의 대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미국의 외국연구 프로그램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실정을 감안한 하나의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133면)이란 주장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