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시, 새로운 공동체를 향하여

 

우리, 살아 있는 언니들의 시

 

 

양경언 梁景彦

문학평론가.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 등이 있음.

purplesea32@hanmail.net

 

 

1. ‘우리’를 다시 쓰는 언니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이봄 2020)는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최초로 신고하고 해당 사건을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 심층 르뽀 취재물 공모’를 통해 보도한 ‘추적단 불꽃’의 르뽀 에세이이다. 대학생 ‘불’과 ‘단’으로 이루어진 추적단이 불법촬영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텔레그램 방에 잠입해 진행한 취재뿐 아니라 경찰과 협력해 문제 해결에 힘쓴 과정이 생생히 기록된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상황이 절박하게 다가오지만, 특히 주목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취재를 시작하면서부터 연령대가 낮은 이들이 입는 피해상황의 끔찍함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25면)어서 “뭐라도 해야”(34면) 한다는 심정으로 움직였던 추적단이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를 만났던 경험을 언급한 내용이다. 제일 먼저 ‘괜찮냐’고 물어온 선배 활동가와의 만남을 추적단은 든든함과 따뜻함이 함께했던 순간으로 회상한다. 선배 활동가의 그러한 물음에는 좀처럼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싸움의 과정을 이미 알고 있는 이의 염려와 자칫 홀로 싸우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불’과 ‘단’에게 동료로서 갖는 신뢰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언니의 심정으로 혹은 가까운 동료의 심정으로 시작한 추적단의 활동은 자신들과 비슷한 마음으로 사건에 관심을 두었던 기자와 경찰, 또다른 활동가와의 만남을 통해 활로를 마련한다. ‘우리’라는 말의 배타적인 속성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뜻을 모은 숱한 관계가 교차하는 과정에서 열린 속성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우리’를 만들고, 이러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개개인의 ‘살아 있고자 하는’ 힘을 북돋는다.

구조적인 불평등으로 가려졌던 개개인을 중시하는 페미니즘운동이 강조해왔던 ‘개인’의 의미는 자율성을 갖춘 관념적인 단위로 수렴되지 않는다.1 추적단 불꽃의 르뽀 에세이에서도 확인될 뿐 아니라, 팬데믹을 겪는 중에 감염의 공포 속에서도 이어지는 돌봄노동, 필수노동의 최전선에 있는 여성들을 떠올릴 때,2 ‘언니’의 심정으로 새로운 ‘우리’를 형성하는 관계에서 발견되는 ‘살아 있는 이’들의 연결은 “성장과 이윤을 지상목표로 삼는 체제”와 갈라서서 “서로 의존하는 존재”들로 이루어진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 3이 요청되는 지금 시기에 필요한 실천의 한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이같은 연결의 방식은 미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가 거론한 ‘레즈비언 연속체’적인 움직임으로도 이해해볼 수 있다.4 이때 ‘레즈비언 연속체’는 “단지 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성적인 관계를 맺었거나 의식적으로 욕망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고,5 폭력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폭로하고 연대하는 정치적인 합창을 설명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을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짜기 시작한 사람들, ‘언니’의 심정으로 움직인 여성들은 그러므로 폭력과 차별을 양산하는 구조에 질문을 던지면서 권력의 작동 방식을 건드리는 정치적 주체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언니들의 살아 있는 움직임으로 진행되는 변화는 2016년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차원의 페미니즘 이슈와 만나고 있는 한국문학 현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현재 한국문학 현장에서 페미니즘은 그동안 사회가 경시해온 구성원이 누구였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인물들을 ‘엄마’ ‘딸’ ‘유리천장과 싸우는 여성’ 같은 사회적 관계가 부여하는 역할과 분리하여 개별적인 이름으로 호명하고, 개인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포착되곤 한다. 당장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을 하나의 사례로 떠올려봄직한데 이는 꼭 소설 작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정 고유명사를 여러 시편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기획하에 구성된 시집도 부쩍 늘었다.6 하지만 이러한 호명이 관념적인 단위로서의 ‘개인’을 극복하고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삶을 그리는 데에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기계적인 평등의 구축에 급급해 사회적 역할의 윤곽을 가시화하는 기능만을 하는지에 관해서는 작품마다 좀더 따져 읽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주체화의 계기로 작동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누설하는 데에만 머문다면, 그 호명의 의의 또한 개별적인 권리의 언어로 협소하게 이어지는 ‘정체성 정치’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유한 개별성은 “공공적인 장과 다양한 관계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고 비약시키는 존재의 고투”7를 수행할 때 드러난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우리’를 다시 쓰는 실천 속에서 다른 무엇과도 교체될 수 없는 그 고유한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수 있음을 전하기 위해 ‘언니’들과의 연결을 표현한 최근의 시를 읽는다. 이들 시에서 ‘언니’는 경험을 공유하고 관계의 재조정을 촉발하면서 ‘나’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언니’는 한국문학 작품에서 “구세대적인 가족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역으로 해당 질서에 구속되어 있음을 암시했던 “청년 주체”로서의 ‘오빠’나, 희생의 대상으로 재현될 위험성을 안고 등장하던 ‘누이’와는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8 특히 최근의 시에서 ‘언니’는 사전적 의미의 성별 구분, 생물학적 위계를 떠나 먼저 경험을 한 자로서 뒤따르는 이가 편하게 지혜를 구할 수 있으면서도,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는 영화 「벌새」(김보라 연출, 2019)에서 십대 소녀인 ‘은희’가 자신의 얘기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 모습이나, 사진가 황예지가 「절기」(그리고갤러리 2017)에서 보여준, 집 나간 엄마 대신에 ‘복잡한’ 역할을 떠맡으며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역사를 잇게 해준 언니의 모습 등 동시대 문화 콘텐츠에서 구현되는 ‘언니’들의 역할과 연결해서 읽을 때 그 의미가 더 뚜렷이 다가온다. 서로의 “처지를 철저히 해부”함으로써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미처 탐색하지 못한 여성들의 자원과 변혁적인 힘을 서로에게 기꺼이 내놓”음으로써9 정서적 협동 및 유대를 형성하며 어떤 지향점을 선취하는 관계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민주주의적인 가치의 실현이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구축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재)구성을 향한 협동적 창조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우애”를 수행하면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10 기존 체계에서의 이러한 ‘언니’와 같은 역할을 환기함으로써 공동체의 성격을 전환해나가는 시에 주목하여 ‘우리’가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살피는 작업은 중요할 것이다.11 이런 시들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포함의 운동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이 적절한 방향이며 여기에는 다시 포함의 성격을 재규정하는 작업이 필수적”12임을 새삼 일깨운다.

 

 

2. 나란한 연결: 정다연, 주민현의 시

 

정다연의 『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현대문학 2019)에 수록된 몇몇 작품에선 여성들의 시위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제시되며, 그 무리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조정하는 ‘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는 불특정다수의 군중이라는 추상적인 차원으로 그려질 수 있을 집단을 자신과 분리하거나 대상화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영향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위치에 두어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로서의 무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