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

 

우리 소설의 새 길 열기

중진들의 최근 장편을 중심으로

 

정호웅 鄭豪雄

문학평론가,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저서로 『우리 소설이 걸어온 길』 『한국문학의 근본주의적 상상력』 『한국의 역사소설』 등이 있음. yuhaj@wow.hongik.ac.kr

 

 

1. 자기갱신과 창조의 정신

 

우리 소설이 길을 잃고 골짜기에 빠져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여기저기 한탄의 소리, 우려의 소리, 개탄의 소리가 들린다.‘거 봐라, 문학의 시대는 벌써 끝났다니까.’선지자를 흉내낸 듯한 의기양양, 단호한 확신의 목소리도 같이 들린다.

그들 풍문의 말이 실제를 정확하게 짚어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작가들이 저마다 앞길을 열며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같은 전진의 사실은 우리 소설의 자기갱신과 창조의 생명력이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니, 우리는 저같은 소문의 말들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 나는 70년대 이래 우리 소설을 앞에서 이끌어온 중진작가들의 최근 장편들을 살펴, 그 속에 뚜렷한 새 길 열기의 실제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논의대상은 김원일(金源一)의 『전갈』(실천문학사 2007), 조정래(趙廷來)의 『인간연습』(실천문학사 2006)과 『오 하느님』(문학동네 2007), 이문열(李文烈)의 『호모 엑세쿠탄스』(민음사 2006), 한승원(韓勝源)의 『소설 원효』(비채 2006)이다.

그 각각은,‘역사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내걸고 추상화된 관념의 규정성을 해체하며 과거 진실의 포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시적 단순성의 형식’으로써 대하소설 이후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현실공간의 가상공간화’란 새로운 형식 실험으로써 현실공간의 제약을 넘어 좀더 넓은 소설공간을 열고자 한다는 점에서,‘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소설의 고전적 규율에 충실함으로써 이에서 벗어난 역사소설이 지배적인 현실을 되돌아보게 이끈다는 점에서 소설사적 의미를 지닌다.

 

 

2. 자기징벌의 형식과 역사적 진실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로서, 독자로서 내가 읽고 싶은 소설 중 하나는 우리 근현대사 갈피갈피에 서려 있는, 드러난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배신과 변절을 깊이 다룬 작품이다. 비슷한 소재의 작품은 물론 많다. 하지만 거칠게 말한다면, 그런 작품들은 대개 선/악의 윤리적 이분법에 갇혀 있으며, 배신과 변절을‘악’으로 미리 규정해놓고 부정한다. 오직 부정의 대상으로만 작품 속에 호출된 그 배신과 변절의 과거는 객관적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악’이라는 추상관념일 뿐이다. 추상관념으로 환원된 그 과거가 실제의 과거일 수 없으며, 숨겨진 진실을 담고 있는 과거일 수 없음은 자명하다.

고정불변의 관념으로 추상화된 그 과거는 대체로 부정하는 주체의 현재를 옹호하고 선전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은폐하는 정치적 도구로서 기능한다. 그 부정의 주체는 부정 대상인‘악’과 맞서는‘선’이라는 또다른 추상관념 속에 몸을 숨기고, 검증불가의 안전공간에서 절대의 자유를 누린다. 한국사회에 흘러넘치는 저 과거부정의 엄숙한 말 가운데 상당수는 이같은 자유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때의 선이란, 저 악으로 규정된 과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행운에서 생겨난 텅 빈, 허위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선이라는 추상관념에 몸을 부리고 저같은 절대의 자유를 향락하는 그 부정의 주체는 악으로 규정하여 배제하는 그 과거와 스스로를 단절시킴으로써 자신이 그 과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잊는다. 또는 숨기고 잊는다. 과거와의 무의식적 또는 의식적 단절인데 이럴 때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형성되는, 바람직한 역사 개진을 추동하고 이끄는 역사의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읽고 싶은 것은 그런 거짓 자유에서 생겨난 일방성의 정치적·윤리적 언어로 이루어진 작품,‘악’이라는 추상관념으로 환원된 과거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구체적 실제로서의 과거를 파고든 작품이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며, 슬픔이며, 고뇌며, 때로는 자기반성과 자기갱신의 피투성이 행로를 이끄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정신이며, 온갖 것들을 담고 어둠 속에 웅크린 괴물 같은 그 배신과 변절의 과거를 읽고 싶은 것이다.

김원일의 『전갈』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주인공의 조부 강치무가 태어난 1900년에서 2000년까지, 100년에 걸친 한 집안의 삼대 가문사가 서사의 골격을 이룬다. 살아남고자 하는 강잉(强仍)한 생존욕에 이끌린 그들 삼대의 가문사는 처참할 지경으로 남루하다. 작가의 붓길은 참으로 냉정하여 그 남루의 현실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서사를 주도하는 중심인물들을 미화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인력(引力)을 물리칠 수 있는 통제력이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닌데, 아마도 필경(筆耕) 40년의 쉼없는 고행에서 얻어진 것일 터이다.

남루한 가문사의 깊은 곳에는 치욕 하나가 외눈알 번득이며 도사리고 있다. 잊어버릴 수도, 변명으로 가릴 수도, 내부의 눈 때문에 다른 그럴싸한 것으로 꾸며 덮을 수도 없는 절대의 상처다.

 

강치무는 해삼위 헌병대에서 무단장으로 이송될 때, 거기 헌병대에서 죽지 않았으니 명줄 하나는 타고났다 싶었고, 이제부터는 목숨을 돌보아야 한다고 느꼈기에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살아남기로 작심했다. 그렇게 마음이 변한 뒤부터 애국심, 정의감, 양심 등 듣기 좋은 모든 말에 등을 돌렸다. 시간에 맡겨 부평초처럼 흘러가기로 했다. 몸으로 때울 수 있는 노동에 가축처럼 헌신했다. 마루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했던 것이다.(273면)

 

고향인 밀양에서 3·1만세운동에 가담하고 추적을 피해 만주로 옮긴 뒤 관동군 방역급수부(1941년 8월 1일부로‘만주 제731부대’로 개칭)에서 짐승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치욕에 떨어지기까지 그가 걸었던 행로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신흥무관학교 하사관반 수료→대종교 산하 대한군정회(북로군정서) 전사로 청산리전투 참가→자유시참변(흑하사변)을 겪고 헤이룽장(黑龍江)성과 해삼위로 유전(流轉)→해삼위의 고려공산당에 들어가 활동→1933년 여름 해삼위 일본영사관 소속 헌병대에 체포되어 헌병대 영창에 수감되었다가 10월 하순 무단장 헌병대 특수감옥에 수감→1934년 2월 하얼삔 근교 관동군 방역급수부로 이감.

이렇듯, 핏빛 죽음의 험로를 뚫고나온 독립운동의 굳센 전사가 잔혹한 고문의 공포와 마루따로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덜미잡혀‘살아남기로 작심’하고‘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한다. 전사에서 인간 아닌 존재로의 전락은 그를 짓누른 상황의 폭력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를 증언하는 것인데, 70년 세월을 단숨에 넘어 덮쳐와 읽는이의 숨결을 막는다.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