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반론

 

독자의 목소리

 

월드컵 정담을 읽고

월드컵이 끼친 사회문화적 영향을 점검하면서 민족문화의 진로를 모색하는 ‘정담’은 내용 자체가 새롭지는 않았지만 시기적절하게 문제를 보는 거시적인 틀을 제공하고 있어 유익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정담’이라는 논의방식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쟁점을 둘러싼 치열한 접전도 있을 법한데, 형식을 의식해서인지 논조가 대체로 비슷하고 무난해 아쉬웠다. 논제가 문화라면 이 주제를 좀더 실감있게 풀어갈 만한 사람들도 참여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 문화지도의 현황을 점검하려는 기획의도는 읽을 수 있었지만 현장에 밀착하지 못한 담론위주의 논의도 다소 불만스러웠다. 정담에서 제기된 ‘민족문화론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앞으로 내실있게 이끌어나가길 기대해본다.

고양시 일산구 일산동 유한모

 

 

진실한 시인과의 만남

가을호에 실린 여러 편의 시를 읽다가 문득 멈춰서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한 시가 있었다. 다르위시의 시편이 그러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겸손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시인은 자세를 높이 두지 않고 독자들과 눈높이를 같이하여 자신이 노래하고 싶은 바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아픔을 같이하고 또 자신이 그들이 되어 시적 언어로 응어리진 속을 풀어주기도 한다. 그의 시는 번역시임에도 불구하고 작자가 노래하는 소리가 정확히 들릴 만큼 편안하고 쉬운 시이다. 구구절절 사태와 사상을 담아서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는 운율이 있어서 시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다르위시의 시를 읽다보면 현실에 대한 분노가 울컥하고 솟구쳐오르기도 하고 절규하듯이 애처롭게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시를 읽는 동안은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시적 완성도를 성취한 분노가 때론 이렇게 큰 미학적 감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시인은 진실된 언어로 현실의 파괴를 보여주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맑은 가을날 낮고 깊은 곳에서 민중·독자와 함께하는 시를 만나서 나의 내면은 한층 환해졌다.

안성시 정경아 jkagreen@hanmail.net

 

 

‘팔레스타인 노트’를 읽고

이번 가을호는 그 어느 호보다도 풍요로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가을이란 계절 탓인지, 아니면 가을만큼이나 풍성한 창비의 내용 탓인지 책읽는 것이 즐거웠다. 그중에서도 강대국의 비호 아래서 행해지는 이스라엘의 과격행동(?)을 간접체험하게 한 ‘팔레스타인 노트’는 너무도 깊숙이 다가왔다. 특히 쉽게 읽히고 간결하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꽉찬 힘있는 다르위시의 시는 아랍인의 고통을 공감케 해주었고 이슬람 세계를 또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창비를 통해 좀더 많은 나라의 문화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문향순 am1204@hanmail.net

 

 

최강민의 ‘하성란론’을 읽고

평소 하성란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로서 최강민의 하성란론을 반갑게 보았다. 90년대 중반 이래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이 약진하는 가운데서 하성란은 독자적인 소설문법으로 단연 돋보이는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온 작가라고 생각한다. 최강민은 파놉티콘을 원용한 응시의 시선과 엿보기 욕망, 이중적 서사구조와 우연성 외에도 실명(失名)의 작중인물, 빈번하게 등장하는 후각적 이미지 등 몇가지 코드를 예리하게 포착해 하성란 소설의 ‘숨은 그림’을 찾아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최강민의 논의는 일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성란의 초기 작품들이 이룬 성취는 분명 한국소설이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철학적 깊이를 더 확보하는 쪽으로 나아갔다면 보기드문 소설세계를 구축했으리라 생각한다. 작품들의 성과와 한계를 정확히 짚기 위해서는, 몇몇 코드를 그물처럼 엮어 평자의 논지를 뒷받침하기보다 작품이 변화하는 양상을 좀더 정밀하게 읽어내는 가운데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우연성과 환상성을 얘기한 대목은 아쉬움이 남는다.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비평을 보고 싶다.

이범순 nowregret@orgio.net

 

 

소설을 읽게 하는 힘

김영하의 「조」는 지난호에 발표된 다른 소설들과 조금 달랐다. 백화점의 비상계단에 앉아 종아리를 두드리는 어린 여자들과 그들에게 타락을 권유하는 조. 좀도둑을 사랑하다 못해 좀도둑이 되어버린 조. 구치소에 갇혀서도 백화점을 꿈꾸는 조. 이 타락한 그러나 자못 매력적이기까지 한 인물, 조는 누구인가! 타락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소설 「조」와 소설 밖의 세계는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조가 정에게 했던 안타까운 충고, “너의 미모를 시장에 내놓아라, 경매에 붙여라, 구매자들의 애를 태우고 눈에서 총기를 빼앗아라”는 역설적으로 순수(?)하게 느껴진다. 왜 나는 타락을 권유한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조」 속의 ‘조’가 측은하게 느껴지는가! 이러한 의문이 소설을 읽게 하는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소 twins-so11@hanmail.net

 

 

「자명성의 감옥」을 읽고

가을호에 실린 김명인의 「자명성의 감옥」은, 오랜만에 우리 문단에서 진행된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격려한 글이라 생각한다.

이 논쟁의 초기부터 관심을 기울인 독자로서, 임규찬·윤지관·황종연 등의 글을 흥미롭게 읽어왔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이 근거하고 있는 리얼리즘·모더니즘의 미학이 과거의 개념적 규범으로부터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더불어 이들의 분석이 작품들을 ‘계열화’하려는 경직된 시도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의심해보았다.

이런 찰나에 읽은 김명인의 글은, 이번 논쟁의 의의를 정리함에 있어서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 명쾌하면서도 희망적이다. 그는 이번 논쟁에 참여한 논객들이 개별 작품의 ‘내적’ 특성에 깊이 천착하고, 리얼리즘·모더니즘 이항대립의 논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과거의 그것과 차별되는 ‘발전’을 이룩했다며 이 논쟁의 미덕을 찾아내고 있다. 아울러 그 발전된 인식과 에너지를 새로운 시대의 미학을 구축하는 데 쓰라는 요구도 잊지 않고 있다. 사실 김명인이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후자 쪽일 것이다. ‘과연 아직도 문제는 리얼리즘이고 모더니즘인가’라고 묻는 대목에 이르면 김명인의 목소리는 자못 절실하게까지 느껴진다. 김명인의 글이 우리 시대의 미학을 논하는 새로운 논쟁의 서곡으로 역할하기를 기대한다.

박희원 theaprilgirl@hotmail.com

 

 

비평담론의 방향

최근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에 대한 김명인의 견해는 이 논쟁을 이항대립을 넘어선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 바라보자는 것인데 일견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는 듯하지만 폭넓은 사유를 내포하고 있어 공감하는 바 크다. 최근의 논쟁이 종래의 비평담론과 다른 점은 담론비평에 해석논쟁을 곁들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김명인의 비판은 작품 중심의 해석비평 작업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자칫 이를 소홀히한다면 비평에 대한 목표와 방향설정이 분명해지는 대신 접근방법을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비평의 난맥상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작품을 재단한다는 것이 곤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제3의 미학이념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미학이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원론적으로 강조하는 담론비평보다는 실제 작품에서 그것을 검증하는 실천적 작업이 더 중요하다. 모처럼 불어닥친 생산적 대화가 작품을 매개로 한 해석비평 분야에서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

이정훈 arbre@intizen.com

 

 

반론

 

글쎄라니? 역사는 사실의 총체성이란 상식을 부인하는가!

필자는 비록 그 역사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식민지근대화론이 한국경제사연구에서 가지는 연구사적 의의와 연구방법론의 기여를 인정한다. 그러나 평자인 주익종씨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논자들 가운데서도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황에 무지하다고 할 정도로, 조선인 자본가들의 ‘흡수능력’과 ‘후발성의 이익’을 특히 강조하며, 그들의 기업경영을 성공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필자의 저서 『한국근대자본가연구』의 주요 대목에서 자의적 이해를 거듭한 지난호 그의 촌평에 대해 간단히 견해를 밝히려고 한다.

첫째, 필자는 1910년대 중·후반 공장 설립을 주도한 조선인 자본가들을 근대적 자본가=산업자본가란 역사적 용어로 개념화하였다. 이는 산업자본의 개념을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가치 즉 잉여가치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이라고 보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필자는 산업자본은 직접생산자인 농민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 판매가 유일한 생활원천인 임금노동자로 전화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전제한다고 본다.

평자는 필자가 산업자본의 ‘형성’이라고 쓴 것을 산업자본의 ‘성립’이라고 읽었으며, 이를 다시 산업자본의 ‘확립’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였다. 많은 경우 ‘산업자본의 확립’이란 기계제대공업의 발전에 의해 자본제 생산양식이 소비자료뿐 아니라 생산수단의 생산부문에까지 지배적으로 되고, 이에 따라 수많은 산업예비군이 창출되는 노동력 재생산구조 즉 자본제적 인구법칙이 관철되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수반되는 것으로, 즉 산업혁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필자는 1910년대 중·후반에 산업자본의 형성을 말하면서 어디에서도 기계제대공업화(동력에 의한 대량생산체제)를 말한 바 없다. 이 시기 조선인 자본은 매우 영세했으며, 따라서 공장들의 평균자본금이 매우 적고 또한 공장당 평균기관수는 많으나 마력수는 매우 낮은 것으로 보아 기계화의 정도는 매우 미미했다고 누누이 서술하였다. 때문에 산업자본의 ‘형성’이란 용어가 혹 애매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산업자본의 ‘확립’이란 의미로 해석될 여지는 없다.

필자가 1910년대 중·후반 조선인 자본가의 공장설립 붐을 산업자본의 형성이라고 한 이유는, 이들 공장의 기관수가 일본인 공장에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한 점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기계(작업기)를 보편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분명 기계제 공장공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말 『황성신문』이나 1910년대 초 『매일신보』에는 작업기계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여 공장을 설립하거나 또는 직접 작업기를 개선 발명하여 판매한 사실이 자주 보도되었다. 그런데 기계가 발달하면 그에 상응하여 원동기와 동력전달기계를 요구하게 되는데, 그 사용은 매우 적었다. 왜소한 자본 규모나 저열한 공업화 수준을 근거로 이 당시의 공장을 매뉴팩처 단계의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전반적인 자본주의 발달의 추이와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둘째, 평자는 “구한말 지주·상인의 자본축적과 자강운동 간에, 그리고 1910년대 새로운 상공업의 태동과 비밀결사운동 간에 무슨 관련이 있었던가?” 라고 지적하였다. 이는 “경제사와 운동사를 결합해 조선인 자본가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겠다는 시도”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평자의 핵심주장이기도 하다.

자강운동의 주도층인 자산가들은 그 물적 기반이 토지 또는 물품교역에 의한 양도차익에 있었으며, 그 자본축적 형태는 화폐보다 주로 토지였다. 때문에 자강운동에서 제기된 식산흥업론에서 미작·양잠업·식림(植林) 등 상업적 농업의 생산력증대를 통한 경제건설론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은 당연하다. 자산가들은 자강단체를 중심으로 결집하여 봉건권력의 수탈과 실정(失政)을 비판하고 제도개혁을 요구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기관지에 동척법·삼림법에 관해 게재하는 등 제국주의 경제침탈의 실상을 알리고, 나아가 조선인 상업회의소 설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자산가층에게 자강운동은 일면 안정적인 자본축적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한말 자산가층의 물적 토대 및 자본축적활동과 자강운동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한말 자산가층은 1907년과 1910년을 계기로 정치적 입장이 분화되기 시작했다. 일부 대지주·대상인층은 일제의 각종 통치기구인 동척·농공은행·지방위원회에 포섭된 반면, 평양의 안태국·이승훈 등 상권을 빼앗긴 상인층은 비밀결사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원하였다. 1910년대 중반경 비밀결사운동의 주요 지원세력 가운데 곡물상·잡화상·무역상 등 상인층이 많았던 것은 이들이 제국주의 상품유통체계의 창출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자 당시의 자본축적 경로에 규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1운동 이후 민족주의운동의 주류로 경제적 실력양성운동이 대두된 것은 임정의 분열, 만주 독립군 기지의 쇠퇴 등 정치적 요인 이외에 비밀결사운동을 주로 후원해온 일부 지주·상인층 등 자산가층의 물적 기반의 변화에 기인하였다. 즉 토착자본가들은 1910년대 중·후반 이후 제조업에 투자하면서 금융·원료조달·기술개발과 교육·판로 면에서 열악한 조선인 공업의 재생산조건을 개선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인산업대회, 물산장려운동, 협동조합운동 등 사회적 경제운동에 참가·지원하는 한편, 일제 당국에 국가적인 보호장려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같이 1910년대 중·후반 산업자본의 형성과 자본가의 경제적 토대 변화는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운동에서 무장투쟁노선의 비밀결사운동이 쇠퇴하고 경제적 실력양성운동이 대두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평자 말대로 “1910년대 새로운 상공업의 태동과 비밀결사운동 간에는 아무 관련도 없었다.” 평자는 제대로 읽지 않고 딴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평자는 조선인 자본가를 연구하는 데 있어 경제사와 민족운동사적 측면에서 함께 연구하는 방법론이 심히 부질없으며, 자본가 연구는 기업활동만을 분석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윤획득, 자본축적이 목적인 자본가의 활동은 좁게는 기업경영이지만, 더 넓게는 정치활동과 불가분의 복합적 활동이다. 1921년 조선인 자본가들이 조선인산업대회를 결성하여 총독부 산업조사위원회에 건의안을 제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물산장려운동에 경성·평양 등 주로 도시지역의 많은 자본가들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주도했는가?

필자는 자본가의 기업경영과 그 성장 및 몰락의 경로에 촛점을 두지 않았다.(때문에 분석단위도 산업별이나 기업별, 개별 자본가가 아닌 지역단위를 택했던 것이다.) 그 부분은 서문에서 밝혔듯이 재생산조건에 대한 구명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므로 후속작업으로 기약했다. 필자의 의도는 근대 자본가의 경제적 형성과 그 배경, 그리고 정치·사회적 활동과 자본주의경제론의 역사적 의미를 구명함으로써 제목 그대로 근대 자본가의 총체성을 보여주고, 나아가 이를 통해 한말과 식민지시대의 역사상을 구성하는 데 있었다. 평자 말대로 역사연구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의 편린들을 조합하고 연계하여 이미지(역사상)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이미지를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본다면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 아울러 역사 연구의 기본은 현재적 관점에서의 평가에 앞서 당대 역사적 상황에 대한 사실 접근에 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吳美一/부경대 연구교수

omilil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