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가흠

백가흠 白佳欽

1974년 전북 익산 출생.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가 있음. gahuim@nate.com

 

 

 

웰컴, 베이비!

 

 

1

 

아이는 옷장 안에 숨어 있다. 떨어져나간 자물쇠 구멍에 눈을 붙이고 막 정사를 시작하려는 중년 남녀의 엉덩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아이는 들키지 않고 능숙하게 훔쳐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이는 옷장 안에 숨어 있는 몇시간 동안 전혀 움직이지도 부스럭거리지도 않는다. 아이의 참을성은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다. 침대 위의 남자와 여자는 옷장 안 아이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남자와 여자는 필사적으로 욕망의 끝을 향해 몰두한다. 남자는 여자의 늘어진 젖가슴과 처진 뱃살 사이를 파고든다. 아이는 허망하게 허물어지는 육체의 끝을 무뚝뚝하게 바라본다.

대낮의 정사로 지친 중년들은 곧 코를 골며 곯아떨어지고 아이는 자물쇠 구멍으로 잠든 중년의 남녀를 무심히 바라본다.

오메, 오메.

오메, 오메.

갑자기 옷장에서 튀어나온 아이 때문에 중년 남녀는 혼비백산이 된다. 아이가 우뚝 서서 여자가 내뱉은 비명을 비웃으며 중년 남녀를 빤히 쳐다본다. 놀란 중년들이 잽싸게 도망가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본다. 아이는 객실문에 어떤 자물쇠가 걸려 있는지 파악한 다음 능숙하게 문을 열고 사라진다. 객실에서 아이에게 당하는 대부분이 그렇듯 중년 남녀는 아이가 사라진 뒤에야 상황파악을 한다. 중년들은 서둘러 옷을 입고 방을 나선다.

중년의 남자는 카운터에서 점잖은 불만을 쏟아내지만 모텔 주인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다.

아직 애인데요, 뭘. 너무 불쾌해하지 마세요, 손님.

 

 

2

 

웰컴 모텔은 어느 동네에나 있는 오래된 그저그런 모텔이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작은 간판을 따라가다보면 후미진 골목길 끝에 부끄러운 듯 웰컴 모텔은 서 있다. 막다른 골목길에 나 있는 정문을 들어서면 숨어 있던 널찍한 마당이 사람들에게 웰컴, 사시사철 만개한 꽃이 부끄러운 미소를 살며시 머금고 드나드는 쌍쌍의 커플에게 웰컴, 한다. 낡았지만 육중한 오층짜리 건물은 아직도 위엄있어 보이고 넓은 마당에 키 작은 나무들과 꽃밭은 근래에 보기 드문 운치를 간직하고 있다.

 

 

3

 

모텔 주인 미스터 홍이 마지못해 아이를 건성으로 찾는다. 오래된 모텔은 아이가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너무 많다. 미스터 홍은 아이 이름을 몇번 부르더니 카운터로 들어가버린다. 난감해하며 서 있던 여자가 남자를 잡아끈다.

오메, 오메.

어디선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둘러 마당을 나서던 중년들이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이를 찾아낼 리가 없다. 중년의 남자가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4

 

야, 밑에 가서 밥 좀 얻어와라.

니가 갔다 오세요.

201호에는 부부가 장기투숙하고 있다. 침대는 남편이 조금만 뒤척여도 낡은 스프링이 튀어오를 것처럼 삐걱거린다. 남편이 침대에 누운 채로 슬쩍 고개를 돌려 아내를 노려본다. 만삭의 아내는 힘겹게 발톱을 깎는다. 남편이 아내를 흘겨보고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방 한쪽 구석에는 휴대용 버너와 지저분한 냄비, 빨래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뚜껑 없는 냄비에는 라면 가닥이 말라붙어 있다. 구더기가 스멀스멀 기어나올 것만 같다.

만삭의 아내는 가쁜 숨을 내쉬며 정성을 다해 발톱을 깎고 매니큐어를 바른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잔뜩 심술난 사람 같다. 한눈에 보아도 지독한 임신중독증을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밥 굶을래? 애기도 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

지랄하셔요, 미친놈께서는.

시발년. 남편한테 하는 소리 봐라.

남편은 일부러 화난 척 말하지만 별로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켜놓은 텔레비전만 무심히 바라본다. 음식 썩는 냄새와 담배 냄새, 퀴퀴한 빨래 냄새에 질식할 것 같지만 그런 것에 부부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

배고픈데……

나도 고프세요.

 

 

5

 

부부는 돈이 떨어진 지 오래다. 동네 PC방들은 상금 일이십만원을 내걸고 동네 게임대회를 개최하곤 하는데 그것을 따라 부부는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상금을 타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외지에서 온 부부는 상금 킬러로 소문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대회가 열려도 부부의 참가를 받아주는 PC방은 없었다. 만삭의 몸 때문에 여기저기 떠도는 것도 힘에 부쳤다. 어쨌든 부부는 아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니가 가야 좀더 불쌍해 보이잖아, 이년아.

쪽이 팔리셔요, 이 몸은.

남편은 꼼짝 않고 천장만 멍하니 바라본다. 남편과 아내는 아직 앳되고 어린 나이지만 이번이 네번째 출산이다. 부부에게 잦은 임신은 먹고사는 데 너무 거추장스러운 과정이었다. 고아원 동갑내기인 둘은 열여섯에 처음 아이를 갖게 되자 고아원을 나왔다. 첫째아이는 자신들이 자란 고아원에 버렸다.

 

 

6

 

어둠이 깔리고 웰컴 모텔의 네온싸인이 낡은 동네를 밝힌다. 미스터 홍이 모텔을 맡은 후 바꾼 것이라곤 네온싸인이 전부다. 네온싸인은 크고 현란하다. 낡은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내 어디에서도 보일 만큼 웅장하다. 야트막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 한가운데 웰컴 모텔은 성처럼 솟아 있다.

웰컴 모텔은 지어진 지 이십년이 넘은 건물이다. 건물도 사람과 똑같이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건물이 나이를 먹을수록 불편함은 늘어가지만 반대로 편해지는 것도 있다. 사람들이 잊지 않고 웰컴 모텔을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웰컴 모텔은 딱 한번 이름과 주인이 바뀌었다. 원래는‘삼양여관’이었는데 당시 잘나가던 중소기업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당시엔 시내에서 가장 크고 현대식인 여관이었다. 객실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그럴듯했다. 건물 주변의 작은 골목길은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모텔은 단층짜리 기와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 동네를 지배하는 성처럼 보였다.

 

 

7

 

201호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화들짝 놀란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뭔 일이시대?

돈 달라고 그러는 건가?

모르셔요, 나도.

전화가 끊겼다가 다시 울린다.

아이, 시방 짜증나셔.

받아봐, 방에 있는 거 아는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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