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선 이후 촛불의 갈 길

 

위기에 빠진 진보정치

역사적 평가와 재구성의 길

 

 

윤영상 尹永商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노회찬재단 운영위원,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원 역임.

yzeroup@hanmail.net

 

 

1. 시작하며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진보정치의 위기는 현실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패배와 국민의힘의 압승,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의 존립 위기로 간단하게 진단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그 속에서 대안적 정치의 부재, 진보정치의 위기를 발견한다. 진보당의 약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정의당의 쇠락과 비교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진보정치의 위기를 둘러싼 논란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지금 우리는 문재인정부의 실패와 정의당의 쇠락에서 논란의 여지없이 이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제 대중은 진보정치에 대한 어떤 환상도 미안함도 갖고 있지 않다. 진보정치는 혐오스러운 한국정치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민주당이나 정의당·진보당·녹색당 등 진보정치세력들 내에서는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소속집단의 이익과 가치에 매몰된 토론 경향이 나타나는가 하면 윤석열정부의 무능과 한계로 인한 반사적 이익을 강조하거나, 당면투쟁에 집중할 필요성을 내세우며 반성과 평가를 소홀히 하는 모습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집단이기주의나 낡은 관성적 사고에 사로잡혀서는 제대로 된 반성과 혁신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로 인해 진보정치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무게와 국민적 고통이 얼마나 더 가중될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진보정치의 의미와 역사적 변천

 

(1) 진보정치의 한국적 맥락

진보정치의 위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사실 무엇이 진보정치냐에 대해서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유럽식 개념에서는 이념 중심의 좌파적 관점을 중시한다. 이때 ‘진보’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한 대안적 이념—즉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등—과 관련되어 있다. 미국식 진보 개념은 대체로 자유주의적 진보를 의미한다.1 고전적 자유주의를 존중하면서도 빈부격차, 소수자 투표권, 잠정적 우대조치, 동성애·난민 정책 등에서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과 확연하게 구분된 공공적 접근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기본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 개념이다.

과연 우리가 말하고 있는 한국에서의 진보, 진보정치는 어떤 의미일까? 학자나 평론가들마다 다른 개념을 사용해 경우에 따라 유럽식 관점이나 미국식 관점으로, 혹은 그 둘이 섞여서 표현되기도 한다. 이때 놓치고 있는 것은 한국정치의 역사적 맥락이다. 한국정치에서 진보와 진보정치의 개념은 무엇보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왔기 때문이다. 양김씨(김대중 김영삼) 등이 주도하는 제도권 야당과 구별되는 재야, 민족민주운동, 민중운동을 ‘진보운동’ ‘진보세력’으로 규정해왔던 역사적 맥락이 있고, 대중들도 그에 더 익숙하다. 그러한 한국적 맥락을 무시하면 설명에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2) 진보정치의 성장신화2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제도권 야당과 구별되었던 진보진영은 198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양김에 대한 입장 차이로 비판적 지지론, 후보단일화론, 독자후보론으로 분화된다. 야권 분열로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가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런 흐름은 독자적인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발전한다. 독자정당, 합법정당, 진보정당이라는 말이 뒤섞여 사용되는 과정에서 ‘진보’라는 말도 점차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사실 이들 사이에는 많은 견해 차이가 있지만, 진보정치나 진보정당에 대한 개념 인식은 유사했다. 이때의 진보정치는 양김에 대한 비판적 입장, 국가보안법 철폐와 같은 철저한 민주개혁, 노동자·농민 등 기층민중의 삶에 대한 중시, 자주와 평화에 근거한 통일 강조 등을 의미했고, 진보정당은 양김의 정당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합법정당을 가리켰다.

92년과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를 둘러싸고 진보정치세력은 소위 비판적 지지론과 독자후보론으로 크게 양분되었다. 이 둘 모두 김대중 후보를 보수적 자유주의자, 혹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3 그러한 인식을 전제하되 진보정치세력의 성장을 위해 김대중 후보와 연합할 것이냐, 별도로 독자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할 것이냐 하는 차이를 보였다. 당연히 그 바탕에는 한국사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자리하고 있었는데, 민주대연합과 민주개혁 과제를 중시하느냐, 노동운동 등 대중운동의 발전과 합법적 진보정당 건설을 통한 진보적 사회대개혁 추진을 중시하느냐가 그것이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3년 노무현정부 출범 과정은 과거와는 다른 중요한 변화를 포함하는데, 무엇보다 과거 비판적 지지와 독자정당론으로 나뉘었던 인적 자원 및 집단이 뒤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독자적인 진보정당 건설 움직임에 부정적이었던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해 인천연합·울산연합 등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지역조직 다수와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대중운동조직이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다. 또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4에는 소위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상당수와 주요 시민단체 간부 출신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중 많은 이들이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NL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PD 계열 혹은 80년대 운동권 내 정파 갈등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도 다수 포함되었다. 학생운동 출신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 비판적 지지론의 주류세력을 대체, 흡수하는 모습은 특히 한국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진보정치의 성장 과정에서 2004년 총선은 의미가 각별하다.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논쟁을 넘어, 진보정치를 주장하던 사람들의 정치적 진출이 돋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10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해내면서 87년 이후 최초로 원내 진출하는 진보정당이 되었다. 노회찬 의원과 같은 ‘스타’의 탄생은 진보정치에도 운동권 정파를 넘어선 대중적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열린우리당은 152석이라는 사상 최대의 성과를 만들어냈고, 80년대 운동권 출신 인사 다수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민주노동당이 기존의 논쟁을 뛰어넘는 진보정당의 상징이 되고, 열린우리당은 민주진보세력의 새로운 아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를 전후로 정치권과 언론, 여론조사기관에서 진보, 진보정치 개념이 과거와는 다르게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두 당을 중심으로 진보라는 단어가 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에서는 보수와 중도, 진보를 구별하는 패턴을 보였다. 바야흐로 진보 개념의 확대, 진보정치의 경쟁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3) 성공과 동시에 찾아온 진보정치의 위기

진보정치의 위기는 무엇보다 대중적 위기를

  1. 미국의 자유주의적 진보를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 진보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라고도 부른다.
  2. 진보 개념의 역사적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의 치열한 이념 갈등과 전후 조봉암의 진보당, 그리고 4·19 이후의 혁신계 활동까지를 검토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 글에서는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면서 부각되고 변화되어온 진보정치 개념에 초점을 둔다.
  3. 양김을 보수적 자유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80년대 운동권 문서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된다. 87년부터 비판적 지지론을 선도해왔던 민주화운동청년연합(약칭 민청련)이나 독자후보론, 진보정당을 추진했던 민중의당·민중당·진보정당추진위원회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노무현정부가 등장하고 난 뒤 달라진다. 한국형 중도진보의 뿌리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재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위 ‘국보급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그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4.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민주당 계열의 정당. 이로써 당시 민주당 계열은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으로 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