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정아 金正雅
소설집 『가시』 등이 있음.
padosoridul@gmail.com
유니크한 오브제
한옥 게스트하우스 경영이 보람씨의 로망은 아니었다. 남편에게 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주말에 오갈 생각이었다. 그 마을은 인권활동가인 보람씨가 평화기행 때 알게 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의 주모자라고 옥고를 치르다가 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들어가 영영 소식이 없었다는 항일운동가가 태어난 마을이었다. 보람씨가 얻은 집은 항일운동가의 집 바로 아래, 마당이 툭 트여 있고 서까래와 기둥이 반듯한 백년이 넘은 고택이었다. 무엇보다 남해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풍광이 그녀를 매료시켰다. 할머니와 살던 B시의 바다가 옛 친구 같아서 보람씨는 항상 바다를 그리워했다. 사업은 하기 싫었던 보람씨는 남편 오작가의 제안에 처음에는 질색을 했는데 매주 여행을 할 수 있는 완벽한 구조라고 생각하니 슬슬 신이 났다. 설레는 마음이 처음엔 물방울처럼 맺히는가 싶더니 갈수록 통제할 수 없는 덩어리가 되어 그녀를 장악했다. 결국 명품 쇼핑하듯 임대계약을 해버렸다. 결혼 무렵 아버지는 우편으로 통장과 도장을 보냈다. 단 한줄의 통장 내역, ‘축의금’이라고 인쇄된 그 글자를 보고 보람씨는 책상 서랍 깊숙이 통장을 넣어버렸다. 아버지는 끝내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 옆을 그날만은 지켜줄 거라 기대한 자신에게 그녀는 가장 실망했다. 가족주의에 비판적인 평소 소신과 다른 이율배반. 비혼모의 딸이라는 게 뭐 그리 억울한 일이라고. 이 한옥을 임대할 때 보람씨는 그 통장을 비로소 꺼내보았다. 적지 않은 액수였다. 아버지 퇴직금의 일부라더니 퇴역 장군에 대한 국가의 예우가 참 대단하다 싶어 놀랐다. 집을 살 수도 있는 액수였지만 보람씨는 임대를 선택했다. 여태 그림만 그리고 산 남편이 사업에 성공할지 미심쩍었다. 남편이 긴장할 구실을 만들어두고 싶었던 거다. 빚이 있어야 사람은 게을러지지 않으니까. 공사비까지 다 지불해도 ‘축의금’의 반이 넘게 남았다. 남편에게 그 돈은 철저히 비밀이었다.
빈집이라서 손볼 곳이 많았고 게스트들이 공동으로 쓰는 별채도 만들어야 했다. 오작가가 알고 지내던 기술자에게 공사와 함께 빈티지한 소품까지 함께 발주했다. 오작가를 비롯해 미술가들이 그를 ‘기술자’라고 불렀다. 그는 인테리어 공사에 꼭 필요한 용접, 조적, 목수 일을 다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인데 그중에도 철과 같은 금속을 잘 다루어서 금속 조각가들의 어시스트를 많이 했다. 용접 기술이 뛰어나 인근의 작가들이 그를 매우 선호했다. 그도 미대를 나왔지만 가정을 가진 뒤로 그의 모든 재능은 돈과 교환하는 데만 쓰였다. 아내와 결혼을 할 때 밖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약속한 생활비는 꼭 책임지기로 했고, 그 약속이 결혼을 유지하는 철칙으로 공고해진 건 첫째 아이가 발달장애로 진단받은 후부터였다. 기술자는 장비와 함께 소품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 난로를 하나 싣고 왔다. 철로 된 구형 LPG 가스통을 거꾸로 세워 주둥이가 장작을 태우는 직사각형의 화구로 연결되도록 했고 가스통 옆으로 구멍을 내 연통을 내고 위로는 닭갈빗집 주물 철판을 올려 음식을 조리하는 불판으로 쓰게 했다. 기술자는 T29라고 난로에 표지를 새겼다. 그는 물건을 완성하면 용접으로 그런 표지를 새겼는데 누가 물으면 “작품이 아니라 제품이니까 제품 번호”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수년 동안 창고에서 부식되고 있던 가스통 입장에서는 기술자에게 발탁되었을 때 소생의 기쁨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이런 업사이클을 가스통은 기대하지 못했다. 그의 창고에는 가스통처럼 쓸모없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못하고 시간 속에서 서서히 삭아가는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날 매립지에 묻히는 것이 아닌가 두려웠다. 쓰임을 위해 태어났지만 쓰이지 못하고 그 상태로 멈춰버리는 것이 이런 물건들의 세계에서 가장 큰 저주다. 가스통은 하루라도 빨리 용광로로 들어가 순수한 철로 다시 환원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업사이클된 거다. 가스통은 불태우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지난 시절 인간을 위해 태우고 태웠던 많은 나날들을 돌이켜보니 다시 한번 의욕이 불타올랐다. 중국집에서 연료를 공급했을 때를 생각하면 자신은 이미 신화적인 존재가 아닌가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는 거니까. 이 나라 중국집의 번성은 가스 화력이 없다면 불가능했다고 가스통은 믿고 있었다. 연탄화덕이나 석유풍로로는 중국 음식의 그 강한 불맛은 불가능했다는 거다. 그런데 이제 한층 품위있는 소품으로 다시 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은 마치 후방에서 전투를 지원하는 행정병과 같다.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판에 박힌 역할. 공무처럼 따분하다. 하지만 발화와 연소의 세계는 다르다. 상황을 판단해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필요할 때 가장 큰판을 벌여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예술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난로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온기는 인간의 큰 환대를 받아왔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난로는 영화나 소설에서 부지기수로 등장하고 거기서 수많은 ‘로맨스’가 생성되었다. 난로는 그러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파주에서 남도의 끝까지 내려오면서 가스통은, 아니 T29로 다시 태어난 난로는 보람씨만큼이나 설렜다.
기술자의 일정에 맞추다보니 공사를 장마에 시작하게 되었다. 일은 거기서부터 틀어진 게 아닌가 보람씨는 나중에 원인을 곱씹었다. 비가 퍼붓기 시작하자 한옥 마당은 진창이 되어버렸다. 마사토가 곱게 깔려 있어야 제맛인 한옥 마당은 오랜 풍화에 황토밭이 되었다. 중력을 실감하고 싶다면 비 오는 날 이 집 마당을 걸어보면 된다. 누군가 밑에서 일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여실히 느낄 테니. 기술자는 빗속에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해진 날짜에 공사를 마쳐야 했다. 비가 오더라도 약속한 기간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다고 장담했던 것이다. 기술자는 매달 부인과 약속한 생활비만큼을 자신의 인건비로 계산하고 이 공사를 맡았다. 그런데 보람씨가 이런 공사에 어울리지 않게 ‘턴키’ 발주하겠다고 했다. 공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맡긴다는 그 말을 오작가가 추가비용은 절대 없다는 것으로 엉뚱하게 해석해 기술자에게 종용하는 바람에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기간 안에 공사를 마쳐야 했다. 기술자가 이처럼 흐리멍덩한 계산법으로 인부도 없이 혼자 이 공사를 맡은 건 오작가가 바쁠 때는 ‘데모도’를 쳐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오너가 직접 거들면 공사비도 절감하고 공기(工期)도 단축하고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니까. 게다가 공사를 제시간에 끝내는 건 기술자뿐 아니라 오작가에게도 중요했다. 하지만 오작가는 삼복더위를 이겨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분투할 만큼 치열하게 삶을 전개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픈 전 공사 기간을 최대한 줄여야 초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건 장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오작가는 그런 점에 안달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으로 흐르도록 배선되어 있었다.
비가 기세를 꺾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세게 내리꽂히던 날이었다. 기술자는 집 뒤 대밭과 밭둑에 박혀 있는 돌을 옮겨서 계단과 경계석을 쌓아갔다. 비는 사람의 실루엣이 간신히 보일 정도로 억수같이 퍼부었다. 빗속에서 움직이는 기술자의 실루엣이 고독해 보이지만 근사했다. 여기 온 이후로 광 앞에 부려져 꼼짝 못하고 있는 T29에게도 빗속에서 돌로 계단을 만들고 있는 기술자의 모습은 근사해 보였다. 저런 인간의 의지가 수많은 도시 탄생의 동력이었을 것이다. 근사함은 존재의 미덕 아니겠는가. T29는 의연함으로 버려진 듯 방치된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오작가는 돌을 옮기는 것을 좀 돕다가 전화가 와서 대청마루에 앉더니 얼마 안 되어 잠이 들어버렸다. 비와 함께 무겁게 내려앉은 집의 분위기는 한 사람이 찾아온 덕에 달라졌다. 마을의 부녀회장이 노란 비옷을 입고 폭우를 뚫고 왔다. 그녀는 대청마루에 가지고 온 것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당에 불 좀 켜시요, 공사 안 하고 다 도망간 줄 알았네.”
오작가와 기술자를 며칠 전에 불러 저녁을 먹이더니 또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걸 보자 침침하고 무겁게 눌려 있던 두 사람의 분위기가 갑자기 확 달라졌다.
“진호야, 이거 어디서 구워야 제맛이냐?”
오작가가 기술자의 이름을 불러가며 다정하게 물었다.
“오작가, 오늘 난로에 불 좀 넣어보자.”
“아 그놈 말이지, T29!”
그렇게 해서 난로에 첫 불이 들어가게 되었다. 오작가와 기술자는 T29를 금이 간 커다란 독이 가득 들어차 있는 광에 넣어두고 거의 잊고 있었다. 오작가는 난로를 보고 빨리 불 한번 넣어보고 싶었지만 공사 일정에 쫓기는 기술자는 그런 말이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