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유독성 향수(鄕愁)에 빠져 있는 뿌찐과 트럼프, 그리고 트럭 시위자들

 

 

네이오미 클라인 Naomi Klein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 ‘재난 자본주의’의 부상과 기후위기를 둘러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역학을 파고들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침. 주요 저서로는 『쇼크 독트린』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미래가 불타고 있다』 『미래가 우리의 손을 떠나기 전에』(공저) 등이 있음.

 

 

전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재편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긴급한 상황을 기후행동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석유·가스 붐에 굴복하고 말 것인가?

 

제국에 대한 향수와 냉전 종식 당시 서방에 의해 러시아에 강제 도입된 경제 충격요법의 수치심을 극복하려는 열망이 블라디미르 뿌찐(Vladimir Putin)을 움직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여전히 주도하고 있는 운동의 견인차가 되는 것도 ‘위대한 미국’에 대한 향수다. 미국 건국의 밑거름이 된 이 향수는 지금도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의 악행에 직면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떨쳐내고픈 욕망과 맞닿아 있다. 백신접종 의무화에 반대해 오타와 시내를 한달간 트럭으로 점거한 캐나다 트럭 운전사들을 추동한 것 또한 과거에 대한 향수다. 이들이 점령군처럼 캐나다 국기를 휘두르며 벌인 시위는 원주민 아이들의 죽음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던 더 ‘단순한’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한때 감히 ‘원주민 기숙학교’라 불렸던 이 집단학살기관의 부지에서는 아직도 아이들의 시신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1

이런 향수는 희미하게 기억되는 어린 시절의 환희의 순간을 그리워하는 따뜻하고 아늑한 향수가 아니라, 과거의 영광에 대한 그릇된 기억에 집착하는—그 과거가 영광스러운 과거가 아니라는 증거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분노와 파괴의 향수다.

향수에 뿌리를 둔 이 모든 움직임과 인물들은 뭔가 다른 어떤 것, 관련 없어 보이지만 실은 관련이 있는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량멸종의 경고에도, 미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에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구에서 화석연료를 마음껏 추출할 수 있었던 좋았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향수다. 안또니우 구떼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월에 발표된 IPCC 제6차 보고서에 대해 “인류 전체가 겪는 고통과 기후 리더십의 실패가 낳은 충격적 결과를 보여주는 지도”라고 표현했다.2 실제 뿌찐은 불안정한 원료시장이 자국민에게 미치는 파괴적 영향과 기후위기의 현실을 외면하고 석유 및 가스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다변화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러시아라는 석유국가(petrostate)를 이끌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당시 화석연료로 벌어들일 수 있는 손쉬운 돈에 집착하면서 기후위기 부정(否定)을 간판 정책으로 내세웠다.

캐나다 트럭 운전사들은 대형트럭과 밀반입한 석유통을 자신들의 항의의 뜻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는데,3 이는 시위를 이끈 주도세력이 캐나다 앨버타주 오일샌드에서 추출된 ‘더러운 기름’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자유호송대’라는 이름의 이 시위대에 참여한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2019년에 앨버타주 송유관 건설을 열렬히 지지하고, 탄소가격제 도입에 반대하고, 반(反)이민과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면서 백인 기독교인이 지배하는 캐나다에 대한 노골적인 향수를 드러낸 ‘유나이티드 위 롤’(United We Roll)이라는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었다.

이런 시위대와 세력은 석유달러(petrodollars, 석유대금을 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 석유산업에 기반한 미국의 경제적 패권을 일컫는 말—옮긴이)의 지원을 받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석유가 더 넓은 세계관을 대변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 세계관은 엄격한 계층구조 내에서 백인 기독교인 남성을 정점에 두고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생명까지도 순위를 매긴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미국의 팽창주의를 상징하는 슬로건—옮긴이) 및 ‘발견자 우선주의’(the Doctrine of Discovery, 원주민 터전 침탈 등 미국의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는 논리—옮긴이)와 깊이 얽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석유는, 화석연료를 추출할 수 있는 권리를 신이 인간에게 부여했으며 인간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계속 취하고 독을 남기고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추출주의적(세계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지구에서 자원을 추출하는 활동—옮긴이) 사고방식의 상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급격한 기후위기는 채굴 분야에 투자한 이들에게 경제적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세계관에 투자한 이들에게는 우주론적 위협이 된다. 기후변화는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로, 공짜는 없다는 것, 인간이 (특히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 한쪽만 이득을 취하는 일방적인 관계 같은 건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행동에는 반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수세기에 걸친 굴착과 추출은 이제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튼튼한 구조물—해안도시, 고속도로, 석유굴착기 등—조차 취약하고 허약해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추출주의적 사고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뿌찐, 트럼프, ‘자유호송대’의 공통된 우주관을 감안하면, 이들이 저마다 다른 지역에 살고 다른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서로 일맥상통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트럼프는 캐나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위해 항의하는 애국적인 트럭 운전사, 노동자, 가족들의 평화로운 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4 트럭 운전사들이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Make America Great Again 슬로건, 트럼프의 대선 구호로 쓰임—옮긴이) 모자를 휘두르는 동안 터커 칼슨(Tucker Carlson, 보수 성향의 방송인—옮긴이)과 스티브 배넌(Steve Bannon, 트럼프 정부의 수석고문을 역임한 기업인—옮긴이)은 뿌찐을 응원한다. 자유호송대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 중 한 사람인 랜디 힐리어(Randy Hillier) 온타리오주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이 주사(코로나 백신)로 죽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썼다. 지난 2월 온타리오의 한 식당은 식당 알림판에 뿌찐이 “우끄라이나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전세계 사회·경제 체계를 재편하자는 아이디어, 2021년 세계경제포럼의 공식 주제—옮긴이)과, 악마 숭배자들과, “인류의 노예화”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이러한 동맹은 얼핏 보면 매우 이상하고 도무지 성립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화된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대한 힘겨운 진실을 마주 보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가 이들을 묶고 있는 명백한 특징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또한 대형트럭 대 보행자, 시끄럽게 날조된 현실 대 신중한 과학 보고서, 핵무기 대 기관총의 대립을 드러내며 원초적인 힘을 행사하는 데 희열을 느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에너지가 현재 다양한 영역에서 증폭되면서 전쟁을 일으키고, 국가 행정부를 공격하고,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수많은 민주적 위기, 지정학적 위기, 기후위기의 뿌리에 있는 것은 유독한 과거에 대한 폭력적인 집착, 그리고 인간과 지구가 취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인간과 지구가 서로 더욱 긴밀한 상호관계에 놓이게 될 것임을 부인하는 사고방식이다. 여기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벨 훅스(bell hooks,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진 왓킨스의 필명—옮긴이)가 종종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제국주의적 백인우월주의적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라고 묘사한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이런 유명인사의 말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시급한 정치적 과제는 뿌찐이 우끄라이나에 대한 범죄적 침공을 지속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할 만큼 충분히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2월 발표된 획기적 보고서를 지휘한 IPCC 제2실무그룹의 한스오토 푀르트너(Hans-Otto Pörtner) 공동의장은 “지구에서 살기 좋은 미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있긴 하지만 이 창은 좁고 재빨리 닫힌다”고 말했다.5 우리 시대의 공통된 정치적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앞서 언급한 유독성 향수의 불길에 대한 종합적 대응책을 제시하는 것이며, 또한 대량학살과 탈취 가운데 탄생한 지금의 세계에 우리가 가본 적 없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세계 다양한 국가의 지도자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같은 도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유독성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뿌찐과 트럼프는 강경 우익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브라질의 군사정권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필리핀은 놀랍게도 1970~80년대 내내 자국을 약탈하고 위협한 독재자인 전 대통령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할 태세다(지난 5월 29일 대통령에 당선됨—옮긴이). 그런데 우익으로 인한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자유주의(liberal) 기수들 또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다시 고개를 드는 파시즘에 대한 해독제로, 삶의 질을 파괴하는 대기업—거대 제약회사부터 대형 은행에 이르기까지—의 이익과 공공연하게 연계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조 바이든(Joe Biden)은 미국을 트럼프 이전의 정상 상태—바로 그런 토양에서 트럼프주의가 자라났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고—로 되돌려놓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다. 쥐스땡 트뤼도(Justin Trudeau)는 자신의 아버지 삐에르 엘리엇 트뤼도(Pierre Elliott Trudeau) 전 캐나다 총리의 얄팍한 ‘관심경제’(소비자의 관심을 파악해 맞춤형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경제 패러다임—옮긴이)를 그대로 따라 하면서, 그가 아버지와 다른 점은 젊다는 것뿐, 사실은 같은 정책기조를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 세계무대에 등장한 트뤼도 주니어의 첫 발언은 “캐나다가 돌아왔다”였고, 그로부터 5년 후 바이든은 “미국이 돌아왔다. 세계를 이끌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독성이 덜한 향수(鄕愁)를 되찾는다고 해서 독성이 강한 향수의 힘을 물리칠 수는 없다.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는 제국주의적 침략, 우익 사이비 포퓰리즘, 그리고 기후붕괴를 동시에 야기하는 세력과 싸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싸움과 매우 흡사한 것이 그린뉴딜이다. 그린뉴딜은 현 체제에서 가장 조직적으로 버려지고 오염된 지역사회를 돌보는 일부터 시작해 저렴한 친환경주택과 좋은 학교를 짓는 등 의미있는 일을 하는, 가족을 지원하고 노조가 결성되어 있는 사업장에 투자함으로써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정책이자 운동이다.6 그린뉴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한성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돌봄과 회복7의 노동에 투자해야 한다.

그린뉴딜—또는 레드·블랙·그린뉴딜(기후위기의 영향이 인종에 따라 다르게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양한 사회문제와 기후위기를 결합해 사고하고 대응하는 활동—옮긴이)8—은 분열을 넘어 공유지대를 모색하는 것을 바탕으로 견고한 다인종 노동계급 연합을 구축하려는 우리에게 최선의 희망이다. 그리고 뿌찐 같은 사람들에게 석유달러가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무한성장에 대한 중독을 극복한 녹색경제에는 석유·가스 수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린뉴딜은 또한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의 엘리트들을 향한 분노를 민주당원들—이들 중 상당수가 그 엘리트에 속한다—보다 훨씬 잘 이용하며 기반을 확장해가는 트럼프-칼슨-배넌의 사이비 포퓰리즘에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은 그같은 녹색변혁의 시급성을 더욱 절감케 하는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러시아 탱크가 우끄라이나로 진격하기 전부터 뿌찐의 침략을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은 북미에서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침공이 있은 지 몇시간 만에, 우익 정치인들과 산업 친화적 전문가들은 송유관 건설, 가스 수출터미널 건설, 수압파쇄법(고압의 액체 화학물로 광물을 파쇄해 셰일가스 등을 채취하는 기술—옮긴이), 북극 시추 같은, 지난 10년간 기후정의운동이 간신히 막아온 지구온난화 유발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 들고 있다. 이들은 뿌찐의 전쟁자금이 석유달러로 조달되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원유와 가스 자원을 더 많이 시추하고 생산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같은 ‘재난 자본주의’의 속임수에 대해 여러차례 글을 쓴 바 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첫째, 중국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마르셀러스 셰일 유전이나 캐나다 앨버타주의 오일샌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러시아산 석유를 계속 사들일 것이다.9 둘째, 그들이 내세우는 개발 일정은 현실성이 없다. 화석연료의 단기 사용 같은 각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모든 프로젝트는 그 영향이 파악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며, 게다가 거기 투입된 매몰비용을 회수하려면 과학계로부터 점점 더 절망적인 경고를 받으면서도 해당 프로젝트를 수십년간 운영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북미 국가들이 우끄라이나를 돕거나 뿌찐의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새로운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산유업자들이 송유관의 먼지를 털고 재가동하려는 진짜 이유는 우끄라이나전쟁으로 인해 석유 판매수익이 하루아침에 급증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끄라이나를 침공한 그 주에 국제유가의 기준점이 되는 유럽산 브렌트유 가격은 2014년 이후 최고가인 배럴당 105달러를 기록했으며, 지금도 100달러(2020년 말 가격 기준 2배)를 상회하고 있다.

은행 및 에너지회사들은 텍사스, 펜실베이니아, 앨버타에서 이러한 유가 반등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뿌찐이 냉전 이후 동유럽의 지도를 다시 그리기로 결심한 지금, 화석연료 분야의 세력 다툼으로 에너지 지도도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후정의운동은 지난 10년간 매우 중요한 몇몇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수압파쇄법이 전면 금지되었고, 키스톤 XL 같은 거대한 송유관 연결 사업이 중단되었으며, 수많은 석유 수출터미널이 봉쇄되고 북극 시추가 중단되었다. 지역사회의 토착민 지도자들은 이 모든 싸움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운동을 통해 투자 철수를 설득하는 노력이 10년간 끈질기게 이뤄진 덕분에 현재까지 어떤 형태로든 화석연료 투자를 철수하겠다고 약속한 기관은 놀랍게도 1500곳에 이르며, 철회된 기금 및 연기금은 40조 달러10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의 운동이 종종 스스로에게도 숨기는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2015년 유가 폭락 이후 값싸고 접근하기 쉬운 석유 및 가스가 북미에서 대부분 고갈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 손이 등 뒤로 묶인 석유산업과 싸워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주로 셰일층이나 심해, 북극의 얼음 아래, 캐나다 앨버타의 오일샌드 등에서 화석연료를 추출하는 ‘비전통적’이며 비용이 많이 드는 신규 사업에 반대하는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할 때다. 이같은 새로운 화석연료 개척지 중 상당수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습으로 유가가 급등한 후에야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심해에서 석유를 추출하거나 앨버타의 진흙 역청을 정제유로 바꾸는 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일이 수익성이 있다고 여겨지면서 호황을 맞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이 시기의 오일샌드 광풍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이후 북미 최대의 자원 붐”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2015년에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그처럼 미친 속도로 성장을 계속 이어나가려던 석유업계의 의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이 투자한 만큼 수익을 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몇몇 주요 기업은 북극과 오일샌드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기업의 이익과 주가가 하락하자, 투자 철수를 결정한 기업들은 갑자기 화석연료 자본이 부도덕할뿐더러 자본주의적 측면에서도 형편없는 투자라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그렇다, 뿌찐의 행동은 거대 석유업체의 등 뒤에 묶여 있던 손을 풀고 그것을 주먹으로 만들었다.

이는 기후운동이, 그리고 과학에 기반을 둔 기후행동을 주창한 몇몇 민주당 정치인들이 최근 들어 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뉴욕주의 공화당 소속 톰 리드(Tom Reed) 하원의원은 “미국은 러시아를 석유·가스 시장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의 환경극단주의자들과 영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원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지난 10년 반 동안 그린뉴딜 같은 장래성 있는 정책을 내건 수많은 정부가 실제로 그 정책을 시행했다면, 뿌찐이 점점 더 수익성이 높아지는 탄화수소의 고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지금처럼 국제법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공공연히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 위기는 북미와 서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대체할 화석연료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다. 그 위기는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 우리 모두가 여전히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위한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풍력과 태양열로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며, 운송 시스템을 전기화하면 된다. 또한 모든 에너지원이 생태학적 비용을 수반하는 만큼 에너지 효율을 더 높이고, 대중교통을 확충하며, 에너지 과소비를 줄임으로써 전반적인 에너지 수요를 줄이면 된다. 기후정의운동은 수십년째 이같은 주장을 해왔다. 문제는 정치 엘리트들이 이른바 환경극단주의자들의 말을 너무 오래 귀여겨들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말을 좀처럼 귀여겨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이상한 순간에 직면해 있다. 지난 2월 영국의 글로벌 에너지기업 BP가 러시아의 국영석유사 로스네프트의 지분 20퍼센트를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11한 뒤, BP의 행보를 따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부문에 대한 압력은 확실히 뿌찐의 관심을 끌 것이기 때문에 BP의 결정은 잠정적으로는 우끄라이나에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BP가 가격 상승으로 촉발된 북미 및 기타 지역에서의 석유·가스 열풍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BP는 로스네프트 관련 보도자료12에서 “BP는 재무구조의 유연성과 탄력성에 확신을 갖고 있다”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BP의 주식 매각 뉴스는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독일 총리가 심각한 기후비상 사태에 직면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안정적으로 천연가스를 수송받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두곳을 새로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한 지 몇시간 만에 나온 것이라 그 의미가 범상치 않다. 이런 터미널 건설은 오랫동안 독일 환경론자들의 반대로 저지되어왔지만, 이제 부족한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되면서 전쟁 상황을 틈타 강행되고 있다. 숄츠 총리는 이 터미널에서 송출되는 천연가스는 최근 발트해 해저에 새로 건설된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2’를 통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에릭 레귤리(Eric Reguly) 『글로브 앤 메일』 유럽국장은 이번 조치로 최첨단 화석연료 기반시설이 “110억 달러 규모의 땅굴”로 바뀌었다고 논평했다.13

그러나 죽었다가 부활한 것이 화석연료 프로젝트뿐만은 아니다.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이 있기 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재생에너지를 두배로 늘리고 있다. 이는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전략적 독립성을 높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14

이같은 지정학적 체스게임이 최근 러시아 은행 및 항공 여행에 대한 극적인 제재의 물결과 함께 단 며칠 만에 전면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면, 우려스러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중 하나가 범죄는 부자들이 저지르는데 벌은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식의 조치가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우리는 그같은 개별적인 움직임의 본질보다는 그 속도와 과단성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15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금융 및 에너지 시스템이 그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결정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뜻하는 몇가지 의미를 잠시 짚고 넘어가자. 독일이 110억 달러 규모의 송유관 건설공사를 갑자기 부도덕한 것으로 판단하고(실은 원래 부도덕했지만) 포기할 수 있다면, 안정된 기후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화석연료 기반시설도 다시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BP가 러시아 석유 대기업의 지분 20퍼센트를 포기할 수 있다면, 지구를 거주 불가능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투자인들 포기할 수 없겠는가? 그리고 가스 터미널 건설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발표를 눈 깜짝할 사이에 내놓는 것이 가능하다면, 태양열·풍력 발전시설을 더 많이 짓도록 요구하기에도 너무 늦지 않았다.

칼럼니스트 빌 맥키벤(Bill McKibben)이 자신의 뉴스레터에서 썼듯이,16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으로 보낼 전기 열펌프의 대량생산을 위해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하고 비상용 예비 전력 사용을 승인함으로써 그같은 변화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창조적 정신이다. 우리가 새로운 에너지 기반시설을 구축한다면—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그것은 과거에 대한 유독성 향수를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분명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요동치는 시대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은 많다. 핵무기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도록 내버려둘 때17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한때 강대국이었던 나라들을 비난하는 근시안적 사고에 대해. 어떤 땅과 목숨은 침범하고 버려도 되고, 다른 어떤 땅과 목숨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서구 언론의 기괴한 이중잣대18에 대해. 어떤 강제이주는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위기가 되고, 또 어떤 강제이주는 이주 대상국에 위기로 작용하는가에 대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의지에 대해. 그리고 자기 결정과 영토 보전을 위한 어떤 싸움은 영웅적인 것으로 칭송받고, 또 어떤 싸움은 테러로 치부되는 현실에 대해. 벌거벗은 역사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이 위협받을 때 우리가 만든 세상을 바꾸는 것이, 그것도 빠르고 극적으로 바꾸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년 전 코로나 팬데믹이 처음 선포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두렵지만 매우 유연한 또다른 순간에 놓여 있다.

전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재편하고 있지만, 기후비상 상황도 마찬가지로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전시(戰時) 수준의 긴급성과 행동성으로 기후행동을 추진해 향후 수십년간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전쟁이 이미 불타고 있는 지구에 기름을 붓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이같은 문제를 예리하게 제기한 인물이 있다. 바로 IPCC에 우끄라이나 대표로 참가한 기후학자 스비뜰라나 끄라꼽스까(Svitlana Krakovska)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의 일원이기도 한 끄라꼽스까는 모국이 끄렘린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도 화상회의에 참석해 과학계 동료들에게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와 우끄라이나전쟁은 우리가 화석연료에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19

러시아가 우끄라이나에서 자행하고 있는 잔학행위는 우리 지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거의 모든 세력의 뿌리에 석유·가스의 부패한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준다. 뿌찐의 뻔뻔함은 석유, 가스, 핵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달 동안 오타와를 점령해 주민들을 괴롭히고 대기를 매연으로 가득 채우며 전세계에 제2의 ‘자유호송대’를 부추긴 트럭들은 어떤가? 그들의 지도자 중 한명이 며칠 전 “I ♥ Oil and Gas”(나는 석유와 가스를 사랑해)라고 적힌 옷을 입고 법정에 출두했다. 그녀는 자신의 후원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20 코로나 부정(否定)과 급증하는 음모 문화는 또 어떤가? 일단 기후붕괴를 부정한다면 그다음으로 팬데믹, 선거, 그밖의 거의 모든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논의를 마무리 짓는 지금 단계에 와서야 이 중 많은 부분이 이해된다. 기후정의운동은 변혁적 행동을 위한 모든 논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의 안개 속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용기를 잃을 수도 있다. 그 어떤 주제로도 극도의 폭력, 특히 치솟는 유가를 등에 업고 득세하는 폭력은 바꿔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끄라꼽스까가 IPCC 비공개회의에서 동료들에게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끄라꼽스까는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세계가 기후 친화적 미래 건설에 있어 항복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21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이의 말에 따르면 끄라꼽스까의 이야기에 감동한 러시아 대표가 관례를 깨고 자국의 우끄라이나 침공을 사과했다고 한다. 세상이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잠시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번역: 김루시아/『르몽드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 및
영문학술지 『S/N Korean Humanities』 편집인

 

* 이 글은 미국의 인터넷 언론 『디인터셉트』(The Intercept)에 실린 “Toxic Nostalgia, From Putin to Trump to the Trucker Convoys”(2022.3.1.)를 옮긴 것입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필자인 네이오미 클라인에게 있으며, 필자의 사전 서면승인 없이 다른 용도로의 이용을 금합니다. ⓒNaomi Klein 2022/한국어판 ⓒ창비 2022

 

 

  1. Keili Bartlett, “shíshálh Nation begins to investigate former residential school site,” Coast Reporter 2022.2.25; Naomi Klein, “Stealing Children to Steal the Land,” The Intercept 2021.6.16 참조.
  2. “Climate change: a threat to human wellbeing and health of the planet. Taking action now can secure our future,” IPCC 2022.2.28; “IPCC adaptation report ‘a damning indictment of failed global leadership on climate’,” UN News 2022.2.28 참조.
  3. Ryan Tumilty, “Ottawa protesters employ gas can subterfuge to frustrate police,” National Post 2022.2.8 참조.
  4. The Canadian Press, “Trump criticizes Canada over its removal of convoy protesters in Ottawa,” The Globe And Mail 2022.2.26 참조.
  5. Thomson Reuters, “UN climate report urges world to adapt now, or suffer later Social Sharing,” CBC 2022.2.28 참조.
  6. Kate Aronoff, “With a Green New Deal, Here’s What the World Could Look like the Next Generation,” The Intercept 2018.12.6 참조.
  7. Naomi Klein, “A Message from the Future II: The Years of Repair,” The Intercept 2020.10.1 참조.
  8. redblackgreennewdeal.org 참조.
  9. “Putin hails China oil and gas deals amid tensions with Europe,” Aljazeera 2022.2.4 참조.
  10. “Fossil fuel divestment movement hits $40 trillion in represented assets,” Stand 2022.2.22 참조.
  11. Ramishah Maruf, “BP will dump its 20% stake in Russian oil giant Rosneft,” CNN 2022.2.27 참조.
  12. BP의 보도자료 “bp to exit Rosneft shareholding,” 2022.2.27 참조.
  13. Eric Reguly, “A pipeline too far: How Nord Stream 2 became a geopolitical blunder for both Russia and Germany,” The Globe And Mail 2022.2.25 참조.
  14. Michael Birnbaum and Steven Mufson, “E.U. will unveil a strategy to break free from Russian gas, after decades of dependence,” The Washington Post 2022.2.24 참조.
  15. Naomi Klein, “Coronavirus Capitalism: And How to Beat It,” The Intercept 2020.3.17 참조.
  16. Bill McKibben, “Heat Pumps for Peace and Freedom,” The Crucial Years 2020.2.28 참조.
  17. Sara Sirota, “Russia’s Ukraine War Heightens Urgency around Biden’s Nuclear Weapons Strategy,” The Intercept 2022.2.26 참조.
  18. Mona El-Naggar, “In Mideast, After Decades of War, the Mass Flight From Ukraine Resonates,” The New York Times 2022.2.26 참조.
  19. Joe Middleton, “Russian climate official apologises for Putin’s invasion of Ukraine,” Independent 2022.2.28 참조.
  20. Kimberley Molina and Bobby Hristova, “No bail decision yet for Tamara Lich, convoy protest organizer,” CBC 2022.2.19.; Micah Lee, “Oath Keepers, Anti-dempcracy Activists, and Others on the Far Right Are Funding Canada’s “Freedon Convoy,”” The Intercept 2022.2.18 참조.
  21. Sarah Kaplan, “Russian climate delegate apologizes on Ukraine, saying many ‘fail to find any justification for the attack’,” The Washington Post 2022.2.2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