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유주 韓裕周

1982년 서울 출생. 200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달로』가 있음. ehcztein@hanmail.net

 

 

 

유령을 힐난하다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일까, 혹은 무엇일까, 아니면 아무도 아닐까. 속이 좋지 않았다. 수도꼭지를 잠글 때, 꼭지가 비틀리면서 끼이익, 하고 세 음절의 소리가 났다. 남아 있던 두어개의 물방울이 툭, 툭, 세면기의 매끄러운 표면 위로 떨어졌다. 수첩만한 창밖으로 비가 오고 있다. 창틀 위에서 빗방울이 새된 소리들로 부서지고 있다. 발가락 사이마다 물기가 고였다. 욕조에 걸터앉았다. 무수한 소리들 사이로 적막이 습기처럼 피어올랐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아무도 없다. 빛도 없고, 온기도 없고,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에 등뒤가 서늘하다. 작은 창을 투과하는 희미한 빛으로 아직 가라앉지 않은 물의 입자들을 어림하다가,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서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머리를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젖은 머리로 나다니면 의심받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미심쩍다. 누구로부터의, 무엇에 대한 의심일까? 욕조의 배수구에는 마개 대신 노란 고무오리가 꽂혀 있다. 고무오리는 끔찍한 소리를 낸다. 날개를 비틀면 자지러지고, 목을 조르면 높이 웃는다. 가슴이 저릿해온다.

 

그에게 공포는 성장통과 같이 찾아왔다. 그의 부모는 그가 잠든 뒤에야 따로따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의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모른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주먹질을 당할 때에도, 매질을 당할 때에도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누구일까? 저 사람……은 누구일까? 그러나 아무것도 질문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감정, 감정들. 두려움, 공포, 무서움, 불안, 혐오. 1994년은 여느 해보다 1초가 더 길었다. 달의 인력 때문에 지구의 시간이 가끔 그렇게 늦어진다고 했다. 일초가 늦고 있다고, 그는 벽시계를 볼 때마다 문득 중얼거리고는 했다. 윤초라고 명명된 일초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살거나, 알더라도 곧 잊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이 일초를 늦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부모는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지만, 그를 매우 답답하게 여긴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그는 부모를 두려워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제는 죽고 없는 옛 독재자에 대한 향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식탁머리에서 종종 굶주림과 추위로 매몰되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그는 아이였고, 어머니의 이야기가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었지만, 겨우내 계속되는 배고픔에 대한 묘사에는 진저리를 쳤다. 그가 처연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면 그의 어머니는 네가 뭘 알겠느냐며 그를 비웃었다. 그는 부모가 보는 앞에서 잘 먹지 못했다. 밥알을 셌고, 구운 생선의 살점을 잘게 바수었다. 국에 뜬 기름방울들을 휘저었고, 죽은 동물들을 생각했다. 어느날 그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뺨을 때렸다.

그는 끊임없이 흉터를 새기고 파헤치는 자비로운 시간들을 견뎠다. 슬픔과 분노는 한발의 총성과 같아서, 당시는 견딜 수 없이 괴롭지만 곧 잠잠해진다. 사람들은 가장 두려웠던 기억들을 심장의 밑바닥에 묻어둔 채 평생을 살아간다. 나도 그들……과 같이 태생적으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는 나지막이 묻는다.

그가 어릴 때 가장 무서워했던 이야기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였다. 지나가는 여행자를 자신의 침대에 재운 뒤, 여행자의 키가 침대의 길이보다 모자라면 다리를 늘이고, 넘치면 자른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침대는 작았다. 아이용이었다. 밤이면 종아리가 아팠다. 키가 점점 크고, 그래서 침대의 끝자락이 가까워올수록, 그는 바로 누워 가만히 어둠을 노려보며 두 다리가 잘려나가는 상상을 했다. 상상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양 무릎을 한껏 가슴께에 붙이고, 숨쉬기도 힘든 자세로 불편하게 잠을 잤다. 귀를 기울이면 좁은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둔 부모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시계 초침 소리를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물이 하나쯤 쉼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안도했다. 도망가지 않겠다고, 그는 잠결에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가 꿈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둠이 자신의 눈꺼풀을 내리누를 때, 다른 세상도 눈을 감는 것인지 그는 궁금했다. 잠들기 직전에 무엇엔가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그는 모니터에 나타나던 심박출량 그래프가 고요히 정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파동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마침내 선분 하나로 수렴되자 사람들이 갑자기 오열했다. 깜짝 놀란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흘리면서,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냐고 묻자, 아버지는 붉어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비교적 침착하던 누군가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했다. 그가 하는 말을 고인이 들었을 거라고 했다. 그는 불현듯 두려워졌다.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밀치며 죽은이에게 달려들었다. 죽은이의 맏딸이었다. 그는 죽은이가 죽어 누워 있는 침대발치에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병실은 17층이었다. 하늘이, 거리가, 건물들로 빼곡한 지평선이, 도시가 멀리 보였다. 할아버지, 하고 그는 속삭였다. 죽은 사람은 어디로 돌아가나요? 죽은 사람의 몸에 남아 있는 암세포는 어디로 가나요? 그는 산 아버지의 죽은 아버지에게 마음속으로 물었다. 몇번인가의 힘겨운 수술에도 암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었다. 암세포가 위와 간과 장을 모조리 집어삼킨 뒤에 그들은 또 누구의 체온과 누구의 살을, 누구의 삶을 잠식할 수 있을까. 그는 궁금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을 에워싼 채 곡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죽음의 순간은 일초보다 길까, 혹은 짧을까, 측정할 수 있는 시간일까, 그건 영혼의 무게를 달아보려는 시도처럼 쓸데없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지 슬프지 않았지만 쉽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어머니가 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괜찮아,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어머니의 가슴이 몸에 닿았을 때, 그는 움찔했다. 그는 어색한 자세로 어머니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그의 어머니 역시도 그다지 슬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어떤 감정들을 연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서, 아버지의 아버지 유령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상상을 잠시 했다.

그는 묻고 싶었다. 아버지에 대해서, 어머니에 대해서. 기억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죽은 사람도 사람일까? 그리고 잊어버린 기억도 여전히 기억일까? 그는 수업시간마다 검은 칠판의 여백을 좇으며 생각에 잠겼다. 깜빡 잠이 들 때마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대개 병사의 역할을 맡았다. 달리고, 넘어지고, 뛰어내리고, 헤엄치고, 총을 쏘고, 총을 맞고, 칼을 겨누고, 칼에 찔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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