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중혁

김중혁 金重赫

1971년 경북 김천 출생.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펭귄뉴스』가 있음. kool@penguinnews.net

 

 

 

유리 방패

 

 

우리는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었다. 간단한 일이다. 실의 한쪽 끝을 잡고 차근차근 매듭을 풀기만 하면 된다. 꼬여 있는 부분을 찾아낸 다음 그 속으로 실끝을 통과시키면 매듭은 쉽게 풀린다. 우리는 각자 실몽당이 하나씩을 들고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리듬에 따라 손끝에다 모든 감각을 모았다.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가끔 눈을 흘깃거리며 우리를 수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수상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실로는 지하철을 폭파시킬 수도 없고 불을 지를 수도 없으며 사람을 죽일 수도 없다. 실은 그냥 실일 뿐이다. 열심히 매듭을 풀어보라고 파도타기 응원을 했으면 했지, 못하게 말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실뭉치에서 풀려나온 실을 길게 뻗은 지하철 의자에 늘어놓았다. 풀어진 실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간격은 더욱 넓어졌다. 녹색 의자 위에 파란색과 빨간색 실이 쌓여갔다.

“이게 뭐야. 너무 쉽잖아. 아까는 왜 이렇게 안됐을까?”

부피가 반으로 줄어든 파란색 실몽당이를 들고 M이 물었다.

“우리가 그렇지 뭐. 중요한 순간에 모든 걸 망치는 게 우리 특기잖아.”

나는 빨간색 실의 매듭을 풀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M과 나는 두 시간 전에 서른번째 입사시험의 면접을 봤다. 오늘 역시 면접관으로부터 ‘됐으니까 그만 나가보세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력서 특기항목에다 그걸 적지 그랬어. 중요한 순간에 모든 걸 망치기. 불쌍해서 합격시켜줄지도 모르잖아.”

“너는 취미란에다 친구 비아냥거리기라고 적지 그랬냐?”

우리는 실타래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형편없는 오전이었고, 시시한 신세였다. 우리는 입을 잠그고 다시 실 풀기에 몰두했다.

“이거 순환선인가?”

“그럴걸.”

“어쩐지 어지럽더라.”

“순환선이라 그런 게 아니고 실타래를 너무 오래 들여다봐서 어지러운 거야. 좀 쉬자.”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갑자기 지상의 풍경이 나타났다. 우리가 실타래에서 눈을 떼길 기다렸다는 듯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환한 빛과 함께 낮은 건물들과 수많은 간판들이 꼴라주 그림처럼 펼쳐졌다. 하나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누군가 이어붙인 듯한 그림이었다. 우리는 지하철이 다시 지하로 내려가길 기다리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전깃줄이 지하철의 방향을 안내했다. 지하철은 계속 지상을 달렸다. 지하철 맨 뒤칸에 앉은 덕분에 창문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면 몸을 뒤틀면서 곡선을 질주하는 지하철의 앞모습이 보였다. 순환선이라는 게 실감났다. 두 곳의 역을 지난 후 지하철이 앞쪽으로 기울더니 창밖의 풍경들이 사라졌다. 창문이 거울처럼 변했고, 풍경 대신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다시 실타래를 풀었다.

두 시간 전 면접관들의 웃음소리를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M과 나는 언제나 입사시험을 함께 치렀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큰 탓도 있지만 혼자서 시험을 친다는 게 불가능하게 여겨질 정도로 M과 나는 분리될 수 없는 사이였다. 우리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거나 한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이었다. M이 사라지면 나는 두께가 얇은 종잇장처럼 변해버려서 혼자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나 역시 M에게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른번의 입사시험을 함께 치렀다. 백전백패, 승률은 제로였지만 혼자서 시험을 치러야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들지 않았다.

우리는 면접시험도 함께 치렀다. 함께 치른 정도가 아니라 면접실까지 함께 들어갔다.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신입사원은 한명만 뽑을 거라는 답변을 하는 회사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막무가내였다. 함께 면접을 봐야 우리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다면서 인사담당자를 들볶았다. 가끔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회사도 있었지만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담당자가 더 많았다.

우리는 ‘면접시험의 역사를 새롭게 쓰자’라는 포부를 가슴에 품고 새로운 형식의 면접을 시도했지만 면접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만든 만담 듀엣의 심정으로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지만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유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한번은 쫓겨나는 도중에 인사담당자에게 탈락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개그맨 시험이나 한번 쳐보세요’라며 등을 떠밀었다. 일단 재미는 있다는 거네?라며 M이 웃었다.

인터넷 기획회사의 면접을 볼 때는 둘이서 만담을 했고—면접관들은 한번도 웃어주지 않았다—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의 면접을 볼 때는 어설픈 마술쇼를 하기도 했으며—M이 소품으로 준비한 손수건에 불을 잘못 붙이는 바람에 천장에 달려 있던 스프링클러가 작동됐다—영어교재 회사의 영업직 사원 면접시험 때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행상의 모습을 재연하기도 했다. 그나마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이 지하철 행상 재연이었다. 우리는 말도 안되는 영어를 써가면서 영어교재 광고를 했는데, 면접관 한명은 너무 심하게 웃다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죠, 저희가 만드는 책은 지하철에서 파는 것 같은 엉터리 교재가 아니랍니다,라는 것이 인사담당자가 밝힌 탈락 이유였다. 우리는 면접 준비의 첫번째 원칙을 잊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회사에 대해 공부해둘 것. 우리는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지만 영어교재를 파는 회사라는 사실만 알았을 뿐 어느 정도 수준의 책을 파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어제의 면접 준비회의는 나름대로 철두철미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회사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컴퓨터게임 회사였고, 게임기획자와 게임테스터를 구하는 중이었다. 응모자격란에는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이 가능하신 분,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분, 상상력이 뛰어난 분, 모든 게임에 자신있는 분, 게임 하나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응모자격에 해당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매일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사지원서를 써냈다.

“그래도 우리가 상상력은 좀 되는 편 아닌가?”

M이 물었다.

“그렇지. 아이디어도 많은 편이고……”

내가 대답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력과 회사에서 원하는 상상력이 비슷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입사지원서를 낸 회사 중에서는 우리의 적성에 제일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상상력을 어떻게 보여주지? 마술쇼나 한번 더 해볼까?”

“됐다. 회사 불낼 일 있냐? 우린 허를 찌르는 거야. 상상력하곤 전혀 상관없는 면접을 준비해서 뒤통수를 치는 거지. 그게 오히려 점수를 더 딸 수 있을 거야. 다른 애들하고는 반대로 접근하는 거지.”

“어떻게?”

“요즘 신입사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게 뭐겠어?”

“지난번에 공부한 거잖아. 인내력과 애사심.”

“바로 그거야. 우린 인내력을 보여주는 거야. 컴퓨터게임을 테스트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인내력이니까.”

“그걸 어떻게 보여줘? 이번엔 차력이라도 하자는 거야? 불에 달군 돌덩이 위에서 10분 버티기, 뭐 그런 거?”

면접관 앞에서 실타래를 푸는 이벤트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연습도 필요없었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일은 연습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끈기와 인내로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대사 몇마디만 준비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저희들을 소개하는 대신 한가지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컴퓨터게임을 테스트하는 일은, 엉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단계 한단계, 참을성있게 실을 풀어나가면 언젠가는 모든 매듭을 풀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멋진 대사였다. 면접관들의 반응도 좋았다. 우리가 파란색 실타래와 빨간색 실타래를 종이가방에서 꺼낼 때 어디선가 낮은 탄성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대기실에서 실타래를 너무 헝클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고른 실타래는 너무 컸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들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3분이 흐른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질 않았다. 5분이 흘렀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손바닥에 고인 땀 때문에 실이 더 엉켜서 5분 동안 30쎈티미터 정도의 실밖에는 풀어내질 못했다. M은 매듭을 푸는 대신 실을 마구 잡아당겼다. 그때 내가 한숨을 쉬었다. 뒤이어 M이 낮은 목소리로 ‘에이, 씨’라는 소리를 냈다. 그걸로 모든 게 끝났다.

“됐습니다. 그만 하세요. 아이디어는 참 좋은데, 두분 다 참을성이 부족하신 거 같군요. 실 푸는 연습을 더 하고 다시 한번 도전해보세요.”

면접관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면접관들을 향해 실타래를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그들은 잘못한 게 없었다. 면접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땀에 푹 전 우리 모습을 보고는 대기자 한명이 ‘무슨 질문을 하길래 그렇게 땀을 흘려요?’라고 물었다. 그 녀석 얼굴도 한대 쳐주고 싶었지만 잘못한 게 없는 놈이었다. 문제는 우리였다.

“아까 네가 한숨을 쉬지 않았으면……”

“그래서 내 탓이라고?”

“아니, 내가 먼저 한숨을 쉬었을 거라고.”

“네가 한숨을 먼저 쉬었으면 내가 에이 씨발, 했겠지.”

백전백패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우리는 에어컨디셔너 시설이 잘돼 있는 지하철을 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고, 너무 더웠다. 몸의 온도가 낮아지자 끝까지 실타래를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타래를 풀기 시작한 지 30분 만에 우리는 모든 실을 뽑아냈다. 지하철 의자에 빨간색과 파란색 실을 늘어놓으니 그 부피가 엄청났다. 녹색 천 위에 빨간색과 파란색 실이 뒤엉켜 있는 광경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화가의 그림 같기도 했고, 내 마음속의 풍경 같기도 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길겠다.”

“한 50미터 될까? 아니다, 100미터는 되겠다. 더 되나?”

“그럼 재보지 뭐. 지하철 한량의 길이가 20미터니까 실을 들고 왔다갔다해보면 길이가 나오겠네.”

“20미터인 건 어떻게 알아?”

“저기 써 있잖아, 멍충아.”

나는 지하철 문 위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지하철 한량의 길이와 넓이, 그리고 차량번호가 적혀 있었다. 혼자서 지하철을 탈 때면 멍하니 그 표를 읽고는 했다. 가끔은 차량번호를 외우기도 했다. 같은 지하철 같은 칸에 다시 타게 된다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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