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장욱 李章旭

1968년생.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소설집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등이 있음.

oblako@hanmail.net

 

 

 

유명한 정희

 

 

정희 중에서 제일 유명한 정희는?

물론 박정희다. 유신시대의 저 유명한 박정희 말이다. 두번째는 추사체의 김정희고 세번째는 배우 윤정희다. 그뿐인가. 소설가 오정희도 있고 시인 고정희 문정희도 있고 통진당 이정희에서 아이돌 그룹 페이버릿의 멤버 정희까지…… 그리고 세상에는 또 수많은 정희들이……

하지만 열서너번째쯤에는 분명히 내 친구 곽정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곽정희는 한때 포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른 적이 있는 유명인이고 나는,

정희의 오랜 친구다.

 

오랜 친구.

그렇다. 정희와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절친……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사이였다. 우리 집은 주인집에 딸린 단칸 셋방이었고 정희는 주인집 아들이었다. 셋방에는 밖으로 난 쪽문이 따로 있어서 나는 아침마다 쪽문을 박차고 나가 학교로 달려갔고, 정희는 자기 집 철제 대문을 박차고 나가 학교까지 달려갔다. 우리는 매번 지각이었기 때문에 변소 청소를 도맡다시피 했는데, 그런 곳에서 함께 묵념을 하기까지 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정신적 교분을 나누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묵념을 함께한 사이라고 해서 정신적 교분을 나눴다고 할 수 있나? 나는 의아해서 물었지만 정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그렇다, 이것은 확실히 정신적 교분이다,라고 말했다. 초딩이 어떻게 ‘정신적’이라거나 ‘교분’ 같은 딱딱한 단어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희가 그 단어를 쓴 것만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나는 또 어떻게 그 단어들을 알아들은 거지?

어쨌든 그날도 우리는 청소를 하다 말고 잠수놀이를 하고 있었다. 잠수놀이란 정희가 개발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재미가 오진 놀이인데, 빨간 물통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얼굴을 집어넣어 누가 오래 견디는지 내기를 하는 것이다. 정희는 대개 이겼고, 나는 대개 졌다. 나는 어린이답게 사소한 패배에도 실의에 빠졌고, 정희는 이제 막 삶이 시작되어 모든 게 신선하게 느껴지던 그 나이에도 건조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 그런 정희가 나는 좋았다.

그날도 정희와 나는 수돗가에서 고무 물통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물속에는 물고기도 없고 해조류도 없고 그저 빨간 바닥에 잔물결이 보일 뿐이지만 확실히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비로움이 있었다. 그 신비로움 사이로 갑자기 아아,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시험 중,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교내 스피커를 통해 학생주임이 방송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학생주임은 자꾸 갈라져서 듣기 거북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데다가 언제나 같은 말을 두번씩 반복하는 버릇이 있었다.

학생 여러분. 직원 여러분. 학생 여러분. 직원 여러분. 지금부터 묵념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묵념을 시작하겠습니다.

물속이었기 때문일까? 목소리는 어디 멀리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학생주임의 목소리라는 건 단박에 알 수 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반복해서 외쳤다.

묵념을 시작하겠습니다. 묵념을, 묵념을 시작하겠습니다.

묵념을 해야 하니까 정희가 좋아하겠구나 하고 나는 물속에서 생각했다. 정희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겠구나 하고 나는 물속에서 생각했다. 정희가 나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난 묵념하는 것을 좋아해……라고.

묵념하는 것을 좋아한다구? 묵념하는 것을?

응.

묵념을? 묵념이? 왜? 어째서? 뭣 때문에 묵념 같은 것을 좋아해?

내가 어쩐지 다급해져서 물으면 정희는 순진하고 맑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묵념을 하고 있으면,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정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묵념을 하면 왜 혼자가 아닌 거지? 눈을 감고 말없이 생각을 하는 게 묵념이라는 것인데, 눈을 감고 말없이 생각을 하면 오히려 더 혼자가 되는 게 아닐까?

정희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너는 안 그런 모양이지?라고 반문하면서 말을 이었다.

묵념을 하면, 묵념하는 동안 무언가가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게 좋다.

정희는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구름에 대해 묵념을 한 적도 있고 우리 집 마당의 사철나무에 대해 묵념을 한 적도 있고 배가 터진 비둘기 시신 앞에서도……

나는 그렇게 말하는 정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도 알고는 있었다. 묵념이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추모하는 행위라는 걸. 죽은 사람이라든가 순국선열이라든가 역사적인 위인이라든가 그런 것을. 하지만 구름이라든가 사철나무라든가 비둘기 같은 것을 향해 묵념을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강아지라든가 호박넝쿨 또는 죽은 귀뚜라미의 시신 앞에서 묵념을 하는 정희를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아파지곤 했다.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정희가 또 나는 좋았다.

하지만 내가 정희의 말에 다 동의한 것은 아니다. 묵념을 하면 혼자가 아니라니 거짓말. 묵념은 물속 같아서 나는 아무래도 혼자라고 느끼는데. 묵념을 하면 할수록 내 안의 물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말을 하기도 전에 내 말에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런 말을 하든 안 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나저나 학생주임은 뭘 위해 묵념을 하라는 걸까? 순국선열일까? 독립투사일까?

학생주임의 목소리가 교내 스피커를 통해 다시 울려 퍼졌다.

대, 대통령 곽하께서 서거를 하시었습니다. 대, 대통령 곽하께서 서거를 하시었습니다.

각을 곽으로 발음하는 게 그의 말버릇이었다. 학생주임은 곽설탕을 정육면체로 된 설탕이라고 설명했고 내곽의 합을 계산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손바닥을 때렸으며 곽자가 맡은바 교실 청소에 열과 성을 다하라고 명령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삼곽형을 싫어했고 곽도기는 매번 빼먹고 등교했으며 종곽이 서울의 어디 붙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학생주임은 대통령 곽하가 서거하시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방금 들은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했다. 곽하는 뭔지 알겠는데 서거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서거라는 걸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서거라는 곳에 갔거나 서거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뜻인가? 대통령 곽하는 왜 그런 곳에 가거나 그런 사람을 만난 것일까?

물통에서 머리를 빼고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정희가 말했다.

서거를 위해 묵념을 하자.

나는 정희의 각진 턱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 묵념을 하자. 서거를 위해.

그날 종례를 하러 들어온 젊은 담임은 채변봉투를 안 낸 사람을 혼내지 않았고 폐지 수집량을 체크하지도 않았다. 어제의 일기도 검사하지 않았다.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렷, 경롓, 하고 인사를 하기도 전에 담임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얼굴은 상기돼 있고 뭔가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여러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모두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세요. 오늘은 산에도 가지 말고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지 마세요. 골목에서 놀아도 안 됩니다. 집에 가서 라디오를 들으세요. 텔레비전을 보세요. 텔레비전이 없으면 텔레비전이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보세요. 역사가…… 역사가 바뀌고 있습니다.

담임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 대통령 곽하가 돌아가셨구나. 서거라는 것은 대통령 곽하께서 죽었다는 뜻이구나. 대통령 곽하가 죽었다니. 그런데 그건 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 대통령 곽하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대통령 곽하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상상해본 일이 없었다. 태어난 뒤부터 대통령 곽하는 오직 한분뿐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정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총에 맞아서 죽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 우리는 진심으로 슬프고 비통한 마음으로 하교를 했다.

 

정희에게는 나 외에 친구가 없었고 정희의 집에는 형제들이 많았다. 4남 2녀의 막내였기 때문에 정희는 집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정희는 종종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이슥해져서야 쪽문을 열고 나가 다시 철제 대문을 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대개 방구석이나 골목에서 놀았는데, 땅따먹기를 하고 찐뽕을 하고 딱지를 쳤으며 아톰과 로보트 태권브이를 오려서 허공을 날아 다녔다.

그런 시간이 쌓이자 정희는 나에게 얼마간은 형제 같았다. 삶이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던 시절에, 이제 막 삶이라는 것을 처음 느끼기 시작하던 그 시절에,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세상이 깊은 물속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에, 나는 거울을 보듯 정희를 바라보았다. 정희의 표정을 보면 나는 정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정희는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가 할 말을 먼저 하곤 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우리는 단지 어린이답게 단순한 대화만을 나누었던 게 아닐까? 그것이 너무 단순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닮았다고 착각했던 게 아닐까? 단순한 대화만으로도…… 단순한 놀이만으로도……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단지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

 

인생이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툭, 끊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정희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정희와 내가 갈라서게 된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하나의 이미지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날도 고무 물통에 머리를 담그고 잠수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었고 하늘이 높았던가. 가을이었고 낙엽이 지고 있었던가. 하늘이 높거나 낙엽이 지는 그런 오후에 청소를 하다가 빨간 물통에 고개를 처박는 것, 그게 나에게는 초등학생의 삶이었다.

여느 때처럼 잠수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정희는 여전히 물통에 머리를 넣고 있었다. 역시 정희의 승리였지만 어쩐지 그때는 승리니 패배니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희는 물통에서 고개를 빼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오래? 나는 처음에는 놀랐고 3분이 지난 다음에는 의아했으며 5분이 지난 다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죽었나?

물론 정희는 죽지 않았다. 그런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정희는 단지 물속에서 묵념을 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였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정희를 남겨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희에게서 멀어졌다. 정희를 혼자 두고 정희를 버려두고 정희에게서 다급하게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