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미월

김미월 金美月

1977년 강원도 강릉 출생.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welcomesnow@hanmail.net

 

 

 

유통기한

 

 

두시였다. 첫째 셋째 주의 목요일 오후 두시는 늘 빨리 돌아왔다. 경수는 습관대로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리다 말고 멈칫했다. 할머니들은 그에게 모자를 쓰지 않는 편이 더 인물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잠시 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렸으나 곧 모자를 쓴 채로 문을 열었다. 발에 무엇인가 차였다. 익숙한 동작으로 그것을 문 뒤의 라면박스로 던졌다. 백보드 슛! 오늘자 신문은 벽에 부딪힌 후 박스 안으로 골인하면서 어제 날짜 신문 위로 포개졌다. 신문사절. 현관문에 부착된 종이의 문구는 여전히 눈에 잘 띄었다. 그런데도 신문은 귀소본능이 발달한 취객처럼 아침마다 끈질기게 문 앞에 누워 있곤 했다. 언젠가 배달원이 구독료를 청구하러 올 순간을 경수는 기대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에 그것은 대단한 사건이 될 터였다.

삼월의 셋째주 목요일 오후 두시 십분.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수는 우산을 폈다. 신발장처럼 집구석에만 붙어 있던 자신이 비까지 오는 날에 외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석달 전까지만 해도 이 나들이는 그의 선배 몫이었다. 그녀는 할머니들을 한달에 두세 차례씩 이년째 방문하고 있었다. 그 행위가 진정한 봉사정신의 발로일까, 아니면 어쭙잖은 시혜의식의 소산일까 경수는 늘 궁금했다.

“육개월만 니가 대신 가라.”

그녀의 말투는 니가 대신 화분에 물 줘라, 하듯 심드렁했다. 경수는 기겁을 했다. 어쨌든 그건 봉사였다. 봉사라고는 동냥젖으로 딸 청이를 키운 심봉사밖에 모르는 그가 아니던가.

“별거 아냐. 그냥 두어 시간쯤 앉아 있다가 오면 돼.”

경수는 딴청을 피웠다.

“선배, 거긴 왜 가? 어떤 마음으로 가?”

“나도 몰라. 한번 가기 시작하니까 중간에 못 그만두겠더라. 근데 신기한 게, 가기 직전까진 진짜 귀찮은데 막상 도착해서 할머니들 얼굴을 보면 잘 왔다 싶어지는 거 있지?”

“어, 그럼 교회 가는 거랑 비슷한 거구나.”

날라리 기독교인이었던 경수는 얼떨결에 그녀의 청을 수락했다. 선배는 뉴욕으로 떠났다. 잊고 싶은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자신의 잊고 싶은 과거인 남자가 뉴욕에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경수는 그 소년의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넌 대체 못하는 게 뭐냐? 급우들은 감탄했다. 소년은 고교시절 내내 전교에서 상위 2퍼센트 이내의 성적을 유지했다. 100미터를 12초에 주파했다. 각종 백일장 및 사생대회, 영어토론대회, 정보화능력경진대회 등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는 족족 입상했다. 이 다재다능함은 집에서도 보란 듯이 발휘되었다. 소년은 잔고장을 일으키는 가전제품들을 드라이버 하나로 제압했다. 다 죽어가는 화초들을 살려냈다. 김치를 담그는가 하면 심지어 좌포우혜,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줄줄이 꿰며 제사상을 법도에 맞게 차릴 줄도 알았다.

그래도 여자는 웃지 않았다. 소년은 더욱 노력했다. 상위 1퍼센트 안에 들기 위해, 100미터를 11초에 주파하기 위해, 더 맛있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소년은 여자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여자를 웃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소년은 동화 속에서 공주를 웃기는 데 실패하여 참수당하는 광대들의 꿈을 자주 꾸었다. 그는 아침에 눈뜨면 기지개를 켜는 대신 목이 제자리에 붙어 있나 만져보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엄마가 죽어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수능시험을 치른 직후에 소년은 혼잣말을 했다. 그것은 진담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농담도 아니었다. 여자가 죽어버리자 소년은 정말로 편해졌다. 언제 찍어둔 것인지 모를 영정사진 속의 여자가 마침내,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섯번째 발가락처럼 잘 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웃음이었으나 소년은 그런대로 만족했다. 상복을 벗자마자 사흘을 내리 잤다. 요의도 없고 꿈도 없던 잠에서 깼을 때 그는 아침마다 제 목을 만져보던 버릇이 없어졌음을 알아차렸다. 없어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넌 못하는 게 뭐냐’고 급우들을 놀라게 했던 많은 지식과 재능과 장기 들을 그는 도박에 진 사내처럼 모조리 잃었다. 불행히도 마지막 기말고사가 남아 있었다. 소년의 컴퓨터용 수성싸인펜은 모범운전사였다. 정답만 요리조리 피해간 그의 답안지를 그러나 선생들은 문제삼지 않았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를 사고로 잃은 충격이 오죽하겠냐며 혀를 찰 뿐이었다.

 

할머니들은 신축 빌라에 살고 있었다. 경수는 근처 슈퍼마켓에서 두유를 샀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모자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김가 왔다?”

이름이 경수라고 아무리 일러주어도 할머니들은 외우기 어렵다며 그를 ‘김가’라 불렀다. 그녀들은 우리말에 서툴렀다. 어릴 때 고국을 떠나 중국에서 오십여년을 살았으니 우리말보다 중국말에 능한 것도 당연했다. 실내는 어둠침침했다. 전기세를 아낀다고 그녀들은 흐린 날에도 낮에는 불을 켜지 않았다. 난방비를 아낀다고 추운 날에도 밤에만 보일러를 가동했다. 경수는 그녀들을 안쓰럽게 여기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집은 경수의 집보다 훨씬 넓고 아늑했다. 현관문의 잠금장치는 최신형 디지털 도어록. TV는 32인치 완전평면이었고 양변기에는 비데가 장착되어 있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준 것이 동네 교회의 후의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들은 정말 누리고 싶은 것을 마음놓고 누리지 못했다. 엄지손가락처럼 땅딸막한 왕 할머니가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법요집을 꺼내왔다. 구부러진 못처럼 앙상한 체구에 허리가 휜 조 할머니는 염주를 챙겨왔다. 경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나무상이 벽에 걸린 거실에서 두 노파는 염주를 굴리며 그의 독경에 귀기울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선배의 말대로 그가 할머니들의 집에서 하는 일은 별거 아니었다. 오후 두시에서 세시 사이에 방문한다. 반야심경을 읽어준다. TV를 본다. 저녁을 함께 먹는다. 그게 다였다. 왕 할머니가 돼지비계가 듬뿍 들어간 정체불명의 국을 끓이고 자반고등어를 기름에 지지는 동안, 경수는 조 할머니와 TV를 시청했다.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 팔십 노파와 함께 보는 프로그램은 웃겨도 웃기지 않고 슬퍼도 슬프지 않았다. 반찬들은 씹지 않아도 목구멍으로 미끄러져들어갈 만큼 기름투성이였으나 경수는 밥을 두 공기 비웠다. 두 할머니는 논에 못물 들어가는 것을 보는 농부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디저트로 나온 것은 역시 그녀들의 말다툼이었다. 둘은 평소에는 우리말 반 중국말 반으로 대화하다가 싸울 때는 백퍼센트 중국어를 썼다. 무슨 일로 싸우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경수는 빈 밥그릇만 만지작거렸다. 왕 할머니가 경수의 소맷자락을 움켜쥐었다.

“내 빗 훔쳐갔다!”

옷핀, 덧버선에 이어 이번엔 머리빗이었다. 말수 적은 조 할머니는 입을 다물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경수는 밖으로 나갔다. 슈퍼마켓에서 규격과 가격은 같으나 색깔이 다른 빗을 두개 사왔다. 두 할머니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경수는 그녀들이 잃어버린 것이 금반지나 가죽장갑이 아니어서, 옷핀이나 머리빗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빌라를 빠져나오면서 그는 모자를 도로 썼다. 난 야구모자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좋더라. 선배는 그렇게 말했었다.

 

경수는 자주 그